18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8화
5. 황태자가 오다 (3)
“너냐?”
영주성 앞 이안을 본 황태자의 첫마디였다.
동시에 끝마디이기도 했다.
다분히 노골적이며 의도적인 무시.
황제의 당부 따윈 안중에도 없는 행동이었다.
물론 이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그런 놈이니까.’
제 아비가 지닌 성군으로서의 자질도, 제 어미가 가진 현명함도 물려받지 못한 돌연변이.
그야말로 열등감 덩어리한테 무엇을 바랄까?
황제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진즉 무너졌을 놈이다.
‘황태자보다는…….’
지금 이안의 눈길이 향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
황태자와 함께 도착한 세 명의 마법사.
그중 유일한 여성 마법사에게 눈길이 갔다.
‘세실리아.’
이안으로서는 아주 익숙한 인물이었다.
물론 다른 두 명의 마법사도 눈에 익다.
다만 저 세실리아의 경우는 특별하다.
‘콜드우드 제국의 첩자였지.’
그 사실은 지금보다 한참 후에야 밝혀진다.
마법사가 첩자로 밝혀진, 아주 이례적인 사건.
당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이다.
‘접근은 예상했지만.’
콜드우드 제국이든, 로 공국이든 접촉을 시도할 거라고는 충분히 예상했던 바다.
한데 다른 인물도 아닌 저 여자를 보냈다?
‘여차하면 실력행사라도 하겠다는 건가.’
마침 세실리아가 이안을 바라봤다.
매혹적이면서도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이안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얼굴로 화답했다.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 *
밤이 깊은 모그리안 영주성의 연회장.
황태자의 방문을 기념해 푸짐한 연회가 열렸다.
고작 이틀을 준비한 것 치고는 만족스러운 연회였다.
다소간의 감정과 입장 차이가 어떠하든.
귀한 손님은 반드시 연회로 맞이하라.
이야말로 북부 귀족들의 오랜 전통.
황태자가 그토록 혐오했던 북부의 전통.
그러나 정작 황태자는 연회를 거부하지 않았다.
“하하! 내 북부의 와인이 이토록 기가 막힐 줄은 몰랐소!”
오히려 연회를 전력으로 즐기면 즐겼지.
누구보다 술을 사랑하는 황태자다.
아니, 사랑을 넘어서 집착에 가까웠다.
‘황태자란 놈이 저렇게 줏대가 없어서야.’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황태자를 지켜보는 여인.
마법사 세실리아가 혀를 끌끌 찼다
‘뭐 우리한테는 좋지.’
그녀는 콜드우드 제국의 첩자다.
얼간이 같은 황태자? 나쁠 건 없다.
성군이라는 황제조차 저 얼간이를 감싸고 돈다.
그만큼 그린리버의 미래가 어둡다는 증거겠지.
‘그 꼬마는…….’
그렇다고 저 얼간이를 계속 지켜볼 필요는 없다.
오늘 밤 그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이안.
세실리아의 눈이 이안을 찾았다.
연회장에는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찾아볼까?’
슬쩍 연회장을 빠져나오는 세실리아.
본국에서 내려온 첫 번째 지령은 간단했다.
어떻게든 황태자의 북부 방문에 합류하라.
‘일단 오긴 했는데.’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상아탑에서도 큰 영향력이 있는 3클래스 마법사.
가고자 한다면 능히 그럴 수 있다.
‘정말일까?’
이안에 관한 파견마법사의 보고.
북부로부터 들려오는 몇 가지 소문들.
빠짐없이 본국으로 보고하기는 했다.
하나 그럴 때마다 의심이 들었다.
스스로 마나의 운용을 터득해?
가르쳐주지도 않은 마법을 부려?
최초의 마법사라도 되는 것처럼?
그 의문은 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얼마 전, 두 번째 지령이 떨어졌다.
-소년을 둘러싼 소문의 진위 여부를 직접 파악하라.
힘으로 알아보라는 소리였다.
부풀려진 소문이다? 얼버무리면 그만이다.
같은 마법사로서, 상아탑의 선배로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마침 상아탑주도 이안을 주시하라 명했으니까.
단 소문이 사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어미와 함께 반드시 생포, 본국으로 귀환.’
앞으로 기회는 점점 더 적어질 거다.
반드시 지금, 북부에 있을 때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
즉 연회에 정신이 팔린 오늘 밤이 적기였다.
‘그래도 납치는 좀 의외긴 한데.’
일단 살려서 가져와라.
그 상태로 포섭을 시도하겠다.
끝내 불가능하다면 제거하는 편이 낫다.
뛰어난 무기를 다른 이의 손에 쥐어줄 수는 없다.
본국의 의지가 뚝뚝 묻어나는 지령이었다.
‘일단 침실에는 없고.’
그 어미란 자는 무슨 이유인지 부엌일을 도왔다.
부엌데기 출신이라더니, 정말인 듯하다.
‘주로 연무장에 있다고 했었나?’
이곳 하인들의 말로는 그랬다.
영주성 연무장 중 가장 넓은 제1 연무장.
항상 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고.
가끔 대단한 마법을 본 사람들도 있다던데, 솔직히 조금 과장 같긴 하다.
‘소문은 부풀려지게 마련이니깐.’
수백 마리의 고블린? 기껏해야 백 마리 정도 되겠지.
물론 그 마저도 어마어마한 재능은 맞다.
여전히 납치해야 할 재능의 범주였으니까.
‘여기 있나?’
이윽고 제1 연무장 인근에 도착한 세실리아.
그녀가 슬쩍 내부 인기척을 살폈다.
마법으로 하여금 기척도 깔끔하게 지웠다.
‘있네.’
예상대로 이안은 이곳에 있었다.
하인들의 말 그대로였다.
연무장 한가운데 가만히 서 있다.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처음은 가볍게.’
이제 본격적으로 테스트를 시작할 순간이 찾아왔다.
‘노크 정도?’
세실리아의 머리 위로 몇 개의 푸른 구체가 생겨났다.
속성을 부여하지 않은, 순수한 마나덩어리.
가벼운 주먹질만한 파괴력을 지닌 초급 마법이다.
‘매직 미사일.’
그 세 발의 구체가 이안을 향해 날아들었다. 설령 맞더라도 크게 다치지는 않을 터.
쾅! 콰앙! 콰앙!
둔탁한 굉음.
세실리아의 예상과는 달랐다.
육신을 때리는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실드?’
과연 그랬다.
반투명색 보호막이 소년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둔탁한 굉음의 이유였다.
‘어떻게?’
이런 기습적인 공격에 실드로 반응을 한다?
설마 예측이라도 했다는 건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아주 헛소문은 아니다 이거지?’
이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세실리아.
더 이상 숨어 있는 것도 의미가 없다.
“누굽니까?”
소년의 목소리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으레 느껴질 감정.
당혹스러움, 호기심, 공포, 뭐 그런 것들.
확실히 이상하다. 그리고 수상하다.
“마법 보면 몰라? 네 까마득한 상아탑 선배시지.”
세실리아가 시치미 뚝 떼고 답했다.
얼굴에 웃음기도 살짝 뿌렸다.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눠보자.
“뭐하자는 겁니까?”
“마법사끼리 인사도 못 해?”
“인사를 이딴 식으로 합니까?”
“어머? 어린 게 말하는 본새 좀 봐.”
너스레를 떨며 접근하는 세실리아.
가까이서 이안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선배가 까마득한 후배한테 장난 좀 칠 수도 있는 거지.”
예상대로였다.
조금의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꼭 그렇게 정색까지 해야겠니? 사람 민망하게…….”
“세실리아.”
이름을 불린 세실리아가 순간 멈칫했다.
저 꼬마에게 이름을 말해줬던가?
아니, 결단코 그런 적은 없다.
“세실리아 콜드워커.”
“……뭐?”
콜드워커.
날 때부터 콜드우드의 첩자로 길러지는 아이들.
그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임무를 시작한 첩자들.
바로 그런 아이들에게 하사되는 비밀의 성이다.
본국에서도 극소수만이 콜드워커의 존재를 알 터.
한데.
“너……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