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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7화
5. 황태자가 오다(2)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너의 사람으로 만들어라.”
황금과 보석으로 수놓아진 화려한 마차.
그 마차에 젊은 미남자가 타고 있었다.
흩날리는 백금발 머리칼이 인상적이다.
“그 아이를 밑거름 삼아 네 미래를 준비해라.”
그린리버 제국의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
그가 황제의 당부를 거듭 떠올렸다.
“오직 너만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라는 얘기다.”
이안이란 꼬마를 능력껏 구슬려보라는 당부.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하!”
아무리 떠올려 봐도 헛웃음만 나오는 하이든이었다.
마법사라 한들 그깟 꼬마가 뭐라고?
그것들이라면 상아탑에도 널려 있지 않던가?
‘재수 없는 꼬맹이들이 너무 많아.’
비단 이안 페이지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다.
저 황궁의 잘나신 다섯 동생들.
아니, 동생은 아니지.
‘어미가 다른데 동생은 무슨.’
언제든 자신의 숨통을 노려올 꼬맹이들.
그놈들만 떠올리면 자다가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내가 황위를 물려받는 날.’
눈엣가시 같은 황자 놈들을 모조리 제거하리라.
특히 다섯 번째 황자, 그 맹랑한 놈만큼은 꼭.
“후후.”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황태자.
여유가 생긴 듯 마차 밖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린리버의 강답게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강.
남부와 북부의 경계선 ‘가마스 강’이 보인다.
“태자전하.”
말을 탄 기사 하나가 마차 가까이 접근한다.
제2 황실기사단장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지금이라도 연락을 넣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얘기라면 이미 끝난 것 같은데.”
그 대답을 들은 단장 올리버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었다.
황태자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들에게도 태자전하를 맞이할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사정을 헤아려 주시길 청합니다.”
정중하고도 정중한 올리버의 간청.
“아아, 그러고 보니 단장의 가문도 북부 가문이었나?”
“그렇습니다.”
레이우드 가문 역시 모그리안 가문의 봉신가문.
올리버의 친형이 가주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음…….”
잠시 고민에 빠지는 황태자.
그도 올리버만큼은 썩 마음에 들었다.
항상 우직하게 자신의 옆을 지키는 기사.
뿐인가? 제국제일검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황태자라면 무릇 이런 인물을 곁에 둬야 하는 법.
‘그깟 마법 좀 부리는 꼬맹이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황태자의 지론이었다.
“도착하려면 이제 얼마나 남았지?”
“이틀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단장의 얼굴을 봐서 허락하도록 하겠어.”
“명을 받듭니다.”
다시금 마차와 멀어진 단장 올리버.
그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곧 두 명의 기수들이 대열을 이탈했다.
통신역참에 들려 모그리안 가문으로 연락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이틀이면 나쁘지 않지.’
황태자의 장난은 실로 고약했다.
이를테면 귀족들이 허둥거리는 모습.
그 꼬락서니를 볼 때마다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우월감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경로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미리 예측을 못 하도록 행군 속도까지 올렸다.
북부 놈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고 싶었거든.
‘북부의 수호자? 제국의 방패? 놀고들 있네.’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북부의 전통이 어쩌니 떠드는 미개인들.
마법사는커녕 마나하트의 기사조차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이 뭘 믿고 그토록 당당할까?
이참에 기를 단단히 꺾어놔야겠다.
‘그리고 마법사.’
마차의 뒤편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행렬.
그 행렬 속 또 다른 마차를 황태자가 노려봤다.
황태자의 마차만큼이나 사치스러운 마차 세 대.
각각 한 명씩의 마법사를 태운 마차였다.
‘저 오만방자한 것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 * *
북부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모든 귀족들부터 평범한 사람들까지.
황태자의 기습적인 방문 소식에 바삐 움직였다.
“태자전하께서 거처하실 곳이다! 한 톨의 먼지라도 나오는 날에는 목이 무사치 않을 게야. 이 점 명심하도록!”
영주성의 수많은 하인과 시녀들은 물론.
“황성 사람들 입맛은 어떻게 맞추지?”
“시녀장님이 오셔야 뭐라도 시작할 텐데…….”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페, 페이지 부인?”
“아이 참, 그렇게 부르지 말자고 했잖아요.”
황성 사람의 입맛을 모르는 부엌데기조차 비상사태였다.
‘연락이 없어 늦어지는 줄 알았건만.’
그중 단연코 골머리가 썩는 이.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모그리안 산의 사건에 이어 황태자라니.
“모두 도착은 했는가?”
“예. 맥파든, 레이우드 가문을 제외한 모든 가문의 가주 분들과 후계자 분들께서 영주성에 도착하셨습니다. 앞선 두 가문도 곧 도착할 거라는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노련한 집사 호가의 흐트러짐 없는 대답.
일단 한시름 덜은 대영주였다.
마땅히 있어야 할 귀족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황태자라면 분명 꼬투리를 잡을 테니까.
하나 아직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마법사께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으시고?”
“예. 아직은…….”
“문제로군.”
물론 이안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황태자가 보여줄 반응이 문제일 뿐이지.
“일단 나가세.”
대영주가 영주성의 정문으로 향했다.
황태자를 맞이할 대열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대영주님을 뵙습니다.”
수많은 종신가문의 가주와 후계자들.
아직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연회자리에서나 마음 놓고 안부를 물을 수 있으리라.
“인사는 나중에, 태자전하를 맞이할 준비부터 합시다.”
그러자 종신가문의 귀족들이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대영주를 포함한 모그리안 일가의 사람들이 첫줄을.
뒤로는 각 가문의 가주와 후계자가 일렬로 섰다.
“휴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란이랍니까?”
간발의 차로 도착한 레이우드 가문의 가주.
알터 레이우드가 자리를 찾아가며 대영주에게 말했다.
어찌나 말을 타고 달려왔는지 머리털이 다 곤두섰다.
“그러게 말이오.”
누구보다 애가 타는 쪽은 대영주였다.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께서 오십니다!”
마침내 우렁찬 병사의 목소리가 사방을 흔들었다.
저 멀리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규모의 행렬.
순백의 기사단과 병사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마차.
결국 우려했던 사태가 현실로 찾아왔다.
“대영주님, 마법사님께서는 어디에……?”
이쯤 되니 다른 가주들도 궁금해졌다.
황태자의 방문 이유가 곧 마법사다.
한데 정작 그 마법사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마법사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웠고, 아직 돌아오지 못하셨다.
그 사실을 모두에게 고하려는 그때.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영주성과의 거리가 황태자의 행렬보다 가까운 샛길.
북부의 깊숙한 곳으로 연결된 샛길로부터 말 한 마리가 달려왔다.
등 위에 어떤 소년을 태운, 아니 매단 채로.
“저건…….”
정말이지 어설픈 자세였다.
자세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승마술의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한데도 말 머리의 방향만큼은 흐트러짐이 없다.
“멈춰.”
푸르르!
명령 한마디에 말이 스스로 속도를 늦춘다.
제아무리 똑똑한 짐승이기로서니 저게 가당키나 하는 일일까?
오랜 세월 말과 함께한 귀족들이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
“조금 늦었습니다.”
“이제라도 오셨으니 천만다행이오. 자, 이쪽으로.”
대영주가 직접 이안의 자리를 잡아줬다.
그만큼 행동 하나하나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마법사께서는 황명을 받은 몸, 가장 상석에 서는 것이 제국의 법도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던 귀족들이 화들짝 놀란다.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저 소년이…… 마법사?’
기이한 승마술과 함께 나타난 소년.
그가 바로 북부의 귀빈, 마법사 이안 페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