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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6화 (1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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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6화

    5. 황태자가 오다(1)

    이안과 그 호위대는 로이드 마을에 며칠 주둔했다.

    비적 떼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마을 사람들.

    그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함이었다.

    -창술의 대가 ‘루키’는 용감했다. 수천의 적을 목전에 두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저 멀리서 상황을 가늠하고 있을 6클래스의 대마법사, 바로 그의 완벽한 엄호를 믿었으니까. 이윽고 ‘용의 창 루가니스’가 사방을 크게 베었다. 특유의 붉은 깃을 휘날리며…….

    마을 한구석 느티나무 아래.

    붉은 깃의 창을 허벅지에 올린 병사 루카.

    그가 직접 만든 수첩에 소설을 적고 있었다.

    “가만, 마법사가 뭘 쓰게 만들지? 엄호가 목적이니까. 음, 역시 이안 님이 보여줬던 그 얼음창? 그걸 막 대량으로 파바박……!”

    “가능합니다. 보여드릴까요?”

    “으아악!”

    불쑥 들려오는 목소리에 루카가 비명을 지른다.

    그 바로 옆에 이안이 서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걸까.

    “……마법사님?”

    “놀라게 해드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하, 하하.”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요 며칠 가까워져서 망정이지.

    예전 같았다면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르겠다.

    “용의 창 루가니스.”

    “……예, 예?”

    “빨간 깃이 달렸던데, 혹시?”

    이안이 루카의 붉은 깃 창을 바라보며 말한다.

    어린아이마냥 장난스러운 눈짓과 어투.

    ‘읽으셨구나…….’

    아직 남들한테 글을 보여준 바가 없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설마 마법사님일 줄이야.

    부끄러움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루카였다.

    ‘근데 글을 아시네?’

    이안이 글을 읽는 것은 다소 놀라웠다.

    마법사라곤 하나, 고작 한 달이 지났다.

    그 전까지는 부엌데기의 아들이 아니었던가.

    생계를 챙기기에도 부족했을 터.

    ‘마법사가 되면 글도 알게 되나?’

    당장 루카 자신도 쓰고 읽는 데 수년이 걸렸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알지는 못한다.

    모르는 단어와 어법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그, 글을 아시네요?”

    루카가 용기를 냈다.

    정말 마법으로 글까지 읽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자료다.

    “그럼요. 마법산데.”

    “마, 마법사가 되면 글도 읽을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마법사가 최곱니다.”

    “그런……!”

    이안의 농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루카.

    그런 그의 모습에 이안이 피식 웃었다.

    ‘긴가민가했는데, 맞는 것 같군.’

    이안은 루카를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쓴 책을 알았다.

    읽어본 적은 없으나, 들어는 봤다.

    ‘막 낙향했을 때 그런 얘기를 들었지.’

    모그리안 영지에서 가장 출세한 자는 이안.

    하나 돈 많고 유명하기로는 비슷한 자가 있다.

    ‘루카 루카.’

    가히 돈방석에 앉았다고 알려진 소설가.

    필명이 분명 ‘루카 루카’였다.

    아무래도 이 병사양반이 맞는 것 같다.

    비록 지금의 작품으로는 이름을 날리지 못하지만.

    “마법사님. 여기 계셨군요.”

    그때 이안을 부르는 목소리.

    선임기사 에릭이었다.

    “영주성으로 돌아갈 채비가 끝났습니다.”

    이안이 레디오의 집을 바라봤다.

    좁은 마을인지라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인가.’

    레디오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제 답을 줄 때도 된 것 같은데.

    “슬슬 돌아가도록 하죠.”

    “그럼 한 시간 후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로이드 마을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함께 공격당한 소일 마을도 마찬가지.

    맥파든 가문에서 보낸 주둔 병사도 두 배씩 늘었다.

    “그런데 루카, 자네는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용건을 끝낸 에릭이 루카에게 말했다.

    “자, 잠시 휴식을…….”

    “동료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는듯하여…….”

    “군기가 개판이군.”

    “시, 시정하겠습니다!”

    에릭은 흔치 않은 평민 출신의 기사였다.

    덕분에 병사들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물론 지킬 선은 확실하게 지키는 사람.

    ‘고생 좀 하겠네.’

    루카의 고생길을 애도하며 등을 돌린 이안.

    그 발걸음이 레디오의 집 근처에 머물렀다.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걸까?

    끼이이이……

    바로 그 순간.

    오두막집의 문이 열렸다.

    “어라? 마법사님?”

    눈이 마주친 더글라스와 이안.

    그 뒤로 레디오가 나왔다.

    커다란 짐 가방을 짊어진 채로.

    등뿐만 아니라 손에도 들려 있다.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이안의 물음에 레디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수 있겠습니까? 살고 봐야지.”

    더글라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는 레디오.

    아들을 위해서라도 바득바득 살아남을 요량이었다.

    “판단 잘하셨습니다.”

    “약속은 꼭 지켜주시길.”

    “물론이죠.”

    우연찮게 만난 전생의 악연.

    이제는 기연으로 돌아왔다.

    제법 괜찮은 시작이리라.

    “마을사람들과 인사는 나누셨습니까?”

    “간밤에 몇몇 양반들이랑 한잔씩 했지요. 뭐 그래봐야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이상한 약이나 만드는 이방인 아니겠습니까.”

    씁쓸한 레디오의 목소리.

    물론 마을사람들이 잘못된 건 아니다.

    레디오도 그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저, 저기…….”

    그런 아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글라스가 이안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마법사란 무서운 존재.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진짜로 우리 아빠…… 고쳐 주실 수 있어요?”

    “약속하마.”

    “정말로요?”

    “정말로.”

    “그럼…… 앞으로 대장님으로 모실게요!”

    “응?”

    대장님이라.

    참으로 아이다운 단어 선택이다.

    이런 아이가 전생에는 그리 변하다니.

    “그래. 그렇게 불러.”

    “알겠습니다! 대장님!”

    어린 아들과 전혀 아들또래 같지 않은 이안의 대화.

    그 복잡 미묘한 광경을 지켜보던 레디오가 가방으로부터 무언가를 꺼냈다. 입이 빼죽하게 빠진 유리병이었다.

    “그리고 이건, 계약 선물입니다.”

    그 병을 이안에게 건네는 레디오.

    건네받은 이안이 병을 한번 흔들어봤다.

    “뭔가 들어 있군요.”

    정체불명의 액체로 가득한 유리병이었다.

    혹시 며칠간 만든 엘릭서일까?

    보통 엘릭서를 이런 병에 담지는 않을 텐데.

    “술입니다.”

    “술이요?”

    “간밤에 다 마시고 한 병 남긴 건데…….”

    제아무리 이질감을 느꼈어도 그렇지.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에게 술을?

    “그게 진짜 술이란 소리는 아닙니다. 물론 술이기도 한데, 그…… 뭐라고 표현을 해야 좋을까.”

    “몸에 좋은 술?”

    더글라스가 아비의 말에 첨언을 하고 나섰다.

    하나 그것도 레디오의 이상적인 표현은 아니었다.

    “일종의…… 하프 엘릭서라고 해두겠습니다.”

    “하프 엘릭서라.”

    반절만 엘릭서라는 뜻일까?

    “몸에는 좋지만 술맛이 나죠.”

    “취하지는 않습니까?”

    “취하기도 합니다.”

    그럼 술이잖아?

    “그래도 효력은 괜찮을 겁니다. 두고두고 원기를 북돋아주는 정통 엘릭서랑은 다르게 말이죠. 이쪽은 좀 더 즉각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그런…….”

    말이 길어지는 레디오였다.

    지금까지 봤던 것과는 사뭇 다른 성격.

    아니, 아마 이쪽이 레디오의 진짜 성격이리라.

    그만큼 마음을 확실하게 굳혔다는 증거일 터.

    “마법사님!”

    그때였다.

    병사 하나가 이안에게 다가왔다.

    “영주성에서 사람이 오는 것 같습니다.”

    병사가 마을 바깥쪽 언덕배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과연, 말을 탄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등에 모그리안 가문의 깃발을 단 채로.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점점 가까워지는 말발굽 소리.

    이안이 마을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이들도 이안의 뒤를 따랐다.

    “워! 워!”

    이안을 발견한 기수가 말을 진정시켰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영주성의 병사였다.

    “마법사님.”

    “말씀하세요.”

    “급히 영주성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에서 내린 기수의 다급한 목소리.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황태자께서 가마스 강을 건너셨다고 합니다.”

    “가마스 강? 벌써 말입니까?”

    “오늘 아침에 온 연락입니다.”

    이안은 물론 에릭과 병사들까지 술렁거렸다.

    가마스 강이라면 북부의 초입에 위치한 강물.

    영주성까지 빠르면 이틀 내로 도착할 거리다.

    ‘연락을 왜 이제야…….’

    보통 열흘 전에는 통신역참에 들려 연락을 취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야 영지에서도 황태자의 방문을 준비할 테니까.

    ‘일단 가보자.’

    모두가 함께 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호위대 전원과 레디오 부자까지 말을 탄다면 모를까.

    “말을 좀 빌리겠습니다.”

    결정을 내린 이안이 기수에게 통보했다.

    “타실 줄 아십니까?”

    “승마술은 모릅니다만, 다리도 안 닿을 것 같고.”

    아직 맞춤형 안장이 필요할 덩치.

    기수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잠시 친구가 될 순 있죠.”

    그리 말하며 말에게 다가가는 이안.

    말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주문을 걸었다.

    온순한 동물을 뜻대로 부릴 수 있는 마법.

    “테이밍.”

    그러자 이안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말.

    테이밍 주문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먼저 가죠.”

    그 즉시 말 위로 올라탄다.

    아니, 있는 힘껏 매달리는 쪽에 가까웠다.

    “에릭 경은 저쪽 연금술사님을 모시고 와주세요.”

    “예? 저분은 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에릭에게 레디오와 더글라스를 부탁한 그가 다시금 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영주성으로 가자. 데려다줄 수 있지?”

    푸르르!

    마치 응답하듯 투레질하는 말.

    곧장 영주성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고삐를 당길 필요도, 배를 찰 필요도 없었다.

    “…….”

    얼떨결에 이안의 부탁을 받은 에릭.

    멀뚱히 선 레디오를 힐끔 쳐다봤다.

    레디오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실로 어색한 상황.

    “레디오라고 합니다. 연금술을 업으로 삼고 있죠.”

    레디오가 먼저 어색함을 풀고자 노력했다.

    “모그리안 기사단 소속, 에릭입니다.”

    하나 인사를 끝으로 다시금 찾아온 어색함.

    결국은 둘 다 멀어지는 이안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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