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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4화 (1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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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4화

    4. 가장 반대편의 연금술사(3)

    마을과 가장 가까운 숲을 향해 뛰어가는 더글라스.

    아이치고는 상당히 날렵한 뜀박질이다.

    순수 주력만으로 따라잡기가 힘들 지경.

    대신 이안에게는 약간의 편법이 있다.

    “헤이스트.”

    명색이 마법사 아니겠는가.

    커다란 보폭으로 단숨에 따라잡는다.

    “……?”

    그 인기척을 느낀 더글라스가 돌아보는 순간.

    “슬립.”

    술래잡기는 여기까지.

    낮은 단계의 수면마법이었다.

    어린아이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

    “꽃…… 찾아야…….”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도 녀석은 꽃을 찾았다.

    아비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비의 약초.

    란데오르의 꽃을.

    ‘아차.’

    쓰러지는 더글라스를 한 팔로 잡으려던 이안.

    이내 힘이 모자란 듯 두 팔을 모두 사용한다.

    ‘자꾸 이러네.’

    작아진 몸뚱이를 간혹 망각해 버린다.

    슬슬 적응할 때도 되었거늘.

    “휴우…….”

    더글라스를 눕힌 이안이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먼저 란데오르의 꽃.

    ‘란데오르의 꽃이 마나를 중화시킨다.’

    마법사로서 가장 치명적인 약초의 등장이다.

    전생에는 알지 못했던 효능이다.

    ‘마법사에게는 약초가 아닌 독초.’

    그나마 다행이라면 희귀한 독초라는 점.

    또한 유통과 재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도 있지.’

    이안조차 몰랐을 정도로 불투명했던 효과다.

    이 효과를 아는 자가 얼마나 더 존재할까?

    ‘알아내야 한다.’

    레디오에게 꽃의 효능을 알려준 자들.

    혹은 책, 기록, 소문, 그 무엇이든.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아빠…… 꽃…… 으음…….”

    더글라스가 잠꼬대를 웅얼거린다.

    여전히 란데오르의 꽃을, 아비를 찾았다.

    ‘이 녀석도 문제군.’

    이안이 녀석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더욱 확신이 든다.

    ‘전생의 얼굴에서 악다구니만 빠진다면.’

    그대로 자랐다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악다구니를 뺀다면 그렇다.

    전생에서 봤던 더글라스는 증오로 가득했다.

    물론 스스로는 감췄다고 생각했겠지.

    ‘어떻게 할까.’

    이안이 전생에 마셨던 극독.

    더글라스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확실하다.

    ‘내게 먹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겠지.’

    녀석은 마법사를 증오했다.

    황제의 계획을 알고도 명령에 따라 극독을 제조했을 터.

    ‘미리 제거할까?’

    이안의 목숨을 가장 확실하게 노릴 수 있는 존재.

    어쩌면 눈앞에 이 꼬마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그 후환을 미리 제거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

    ‘내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녀석의 재능을 라그나르가 아닌, 오직 이안을 위해 쓴다면? 마법사를 멸하는 극독이 아닌, 이안의 마법적 역량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아티펙트급 엘릭서를 제조해 낸다면?

    ‘9클래스도 꿈은 아니야.’

    진정한 드래곤의 경지.

    그 미지의 영역에 손이 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동물.

    아무리 아비가 살아남았다고 해도.

    아무리 노예로 전락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무리 전생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해도.

    ‘변하는 건 한순간이지.’

    사람은 결코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이미 한번 믿었고, 그래서 죽었다.

    이번 생에 이안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

    ‘오직 어머니뿐.’

    이제 그녀 말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전생의 값진 경험이 이안에게 준 선물.

    아니, 저주일지도 모르겠다.

    “아, 아빠…… 죽지 마…… 아빠…….”

    또다시 시작된 더글라스의 웅얼거림.

    지독한 악몽이라도 꾸는 모양이다.

    아비를 잃는, 전생에서는 현실이었을 악몽.

    “마법사님!”

    그때 멀찍이 들려오는 목소리.

    헐레벌떡 달려오는 병사 루카였다.

    저놈에 붉은 깃이 달린 창은 꼭 들고 다닌다.

    “무슨 일입니까?”

    “가, 갑자기 뛰어나가시기에…….”

    루카가 더글라스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이안보다 먼저 마을을 뛰쳐나갔던 아이.

    “그 아이는…….”

    “무모한 짓을 할 것 같아서요.”

    “한데 왜…… 지금 잠든 거 맞지요?”

    “제가 재웠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잠이 드는 마법이라! 호오.”

    루카의 고개가 연신 끄덕여진다.

    좋은 취재거리라도 잡았나 보다.

    “오신 김에 이 녀석 좀 마을로 데려가세요.”

    “마법사님께서는?”

    “전 잠시 다녀올…….”

    순간 이안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어, 어찌 그러시는지……?”

    그 눈빛에 잔뜩 얼어붙은 루카.

    참았던 두려움이 식은땀으로 배출된다.

    “……아닙니다. 먼저 가시죠.”

    “아, 예, 예! 그, 그럼!”

    루카가 황급히 더글라스를 등에 업었다.

    아니라고 해도 무섭다. 진짜로.

    일단 몸부터 멀어지고 보자.

    ‘그래도 하나 얻었어! 수면마법이라니!’

    뿌듯함과 두려움이 뒤엉킨 루카의 머릿속이다.

    루카가 일대를 벗어나 마을에 도착할 때쯤.

    “읏쌰!”

    그답지 않은 기합과 함께 몸을 일으키는 이안.

    이미 반쯤 들어온 숲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꼬맹아?”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혼자 어딜 그렇게 가? 위험하게시리.”

    한두 놈이 아니었다.

    족히 열은 넘어 보이는 머릿수.

    이안의 사방을 좁혀온다.

    “보아하니 로이드 마을에서 나온 것 같은데, 우리가 얘기를 좀 들어야겠어. 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로이드 마을을 급습했던 비적들.

    그놈들과 한패인 듯 보인다.

    “우리가 그래도 나름 신사거든? 말만 잘 들으면 살려줄지도 모르니까. 엉? 그 뭐냐, 자비! 자비를 베풀어서 말이야.”

    뿐만 아니라 몇몇 꼬마들이 붙잡혀 있었다.

    로이드 마을의 아이들은 아니다.

    ‘다른 마을을 습격한 놈들인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마을을 친다?

    비적치고는 너무 과감한 행동.

    이번을 끝으로 활동 영역을 옮기려는 모양새다.

    떠나기 전에 한몫 챙기겠다는 심보이리라.

    “죽였어.”

    이안의 간결한 대답.

    “뭐?”

    “비적 놈들 시체는 태우거나, 매장한다고 했지.”

    에릭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조린다.

    “이놈이 지금 뭐라고…….”

    “여기서 태우면 불이 번질 테니까.”

    아래서 위를 향하는 이안의 작은 손짓.

    “인탱글.”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쿠구구구……

    발밑으로 전해지는 약간의 진동.

    그로부터 몇 초나 지났을까.

    파악! 파악! 파악! 파악!

    흉측한 덩굴들이 흙바닥을 찢고 튀어나왔다.

    “뭐, 뭣……!”

    사방으로부터 튀어나온 덩굴들.

    그 줄기가 비적 떼를 노렸다.

    놈들의 몸뚱이를 칭칭 휘감는다.

    뿐이랴? 입과 코를 틀어막아 질식까지 유도한다.

    커다란 뱀의 무리가 먹잇감을 사냥하듯.

    치밀하고 재빠르게.

    “읍…… 읍!”

    비적들이 괴로움에 몸서리치든 말든.

    이안은 잡혀온 아이들의 포박과 재갈을 풀어줬다.

    “어느 마을에서 왔니?”

    “소, 소일 마을에서…….”

    “소일이라.”

    처음 듣는 마을.

    조그마한 마을이 어디 한두 곳이랴.

    “저쪽으로 쭉 나가면 마을이 보일 거야.”

    이안이 로이드 마을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서 얘기해. 소일 마을에서 왔고, 마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비적들은 마법사님이 처리해 줬다고. 알았지?”

    끄덕거리는 아이들. 이안과 비슷한 또래, 혹은 한두 살 많은 녀석도 있었지만, 누구도 이안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방금 본 게 있으니까.

    “어서 가.”

    아이들을 보낸 이안.

    다시금 비적들 쪽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놈들은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었다.

    “가늠해 보기로 했어. 누군가를 해치기 전에.”

    점점 더 강하게 조여지는 덩굴들.

    이안의 의지가 아니다.

    낌새를 눈치챈 덩굴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죽이는 쪽이 손해일까, 살리는 쪽이 손해일까.”

    이안의 왼쪽 다리에 마나가 모여든다.

    새로운 마법을 시전하기 위함이다.

    “너희들은.”

    쿵!

    흙바닥을 힘껏 내려치는 이안의 왼쪽 발.

    그러자 앞쪽 바닥이 훅하고 내려앉았다.

    아주 큼직한 흙구덩이 하나가 생겨난 거다.

    “살리는 쪽이 손해겠지?”

    이안의 손짓 한 번에 덩굴들이 움직인다.

    저마다 뿌리를 쭉 뻗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

    물론, 덩굴에 휘감긴 비적 떼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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