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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3화
4.가장 반대편의 연금술사 (2)
“괜찮네.”
언덕 위에 우뚝 선 이안.
그가 모그리안 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느덧 마나의 한계가 2클래스를 넘어서 3클래스 수준에 도달했다. 수련도 수련이지만, 전적으로 모그리안 링의 힘이 컸다.
‘깔끔하게 얻어서 다행이야.’
모그리안 링은 어떻게든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영주에게 말했던 것처럼 훔칠까 고민했을 정도로.
그래도 이왕이면 깔끔한 편이 좋다.
영원한 귀빈임을 알리는 징표.
이보다 더 근사한 모양새도 없으리라.
“마법사님.”
여유롭게 도착한 로이드 마을의 입구.
먼저 도착했던 에릭이 이안에게 다가왔다.
“다친 사람은 없죠?”
“덕분에 다칠 거리도 없었습니다.”
에릭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언덕 위로부터 날아드는 뾰족한 얼음덩이.
그것들은 전부 비적만을 노렸으니까.
집요할 정도로.
‘적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타국의 마법사들도 이럴까?
새삼 언젠가 다가올 전쟁이 두려워지는 에릭.
질 좋은 투구와 방패는 반드시 챙겨놔야겠다.
“시신부터 수습해야 할 텐데요.”
그런 속내를 모르는 이안이 묻자.
“일단 맥파든 가문에 사람을 보내려고 합니다. 주둔 병사들은 모두 그쪽 소속인지라, 그쪽에서 시신을 거두어 갈 겁니다.”
맥파든 가문. 그들은 모그리안의 봉신가문이자 영지 북서쪽을 관리한다. 로이드마을 또한 맥파든 가문의 관할지였다.
“나머지 비적 놈들 시체는 매장하거나 태우고, 죽은 주민들은 마을에 맡기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즉각적이고 모범적인 대답.
과연 기사답게 빠릿빠릿하다.
“그렇게 하세요.”
“예. 그럼.”
에릭의 판단을 승인해 준 이안.
이제 사실상 그가 상급명령자였다.
호위대 모두 이안을 그렇게 여겼다.
여기에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죽지는 않았겠지?’
이안이 살아남은 주민들을 살폈다.
그저 안도하는 사람들.
가족과 이웃을 잃은 비통함에 잠긴 사람들.
저들 중 분명 언금술사도 섞여 있을 터.
“레디오! 이보시게! 정신을 좀 차려봐!”
“아빠! 아빠!”
그 틈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레디오, 연금술사의 이름이다.
이안이 그들에게 접근했다.
“음?”
쓰러져 있는 연금술사 레디오.
그의 안색을 살핀 이안이 흠칫 놀랐다.
‘설마.’
혈색 하나 없이 창백한 피부.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
도드라지게 돌출된 눈썹 뼈.
푹 꺼진 관자놀이.
빼빼 마른 체형.
‘마나중독?’
흔히 ‘신의 저주’라고 불리는 질병.
별명 그대로 특이한 체질에게만 찾아오는 병이다.
연금술사의 증상은 마나중독이 분명했다.
그것도 아주 장기간을 앓아온 증상.
‘확실해.’
세상에는 네 가지 부류의 체질이 존재한다.
평범한 체질을 뺀다면 세 가지로 줄어든다.
‘마나하트와 마나브레인을 모두 타고난 체질.’
체내의 마나를 축적하고 순환시키는 마나하트.
그 마나를 체외로 발현시키는 마나브레인.
극소수의 이들은 마법사가 된다.
‘마나하트만 타고난 체질.’
마나브레인이 없기에 마법은 쓸 수 없다.
대신 마나를 집중시켜 육체적 강화가 가능하다.
이들 대부분은 황실의 기사로 키워진다.
‘마나브레인만을 가진 체질.’
마나브레인의 원천은 마나.
한데 그 마나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즉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문제지.’
그들에게 마나는 치명적이다.
어떤 이유로든 적정량 이상의 마나를 주입받을 경우.
체내에 들러붙은 마나찌꺼기가 마나브레인을 자극한다.
평생토록,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말 그대로 중독.’
물론 마나를 주입받는 경우는 흔치않다.
타인의 몸에 마나를 주입시킬 수 있는 존재.
오직 마법사뿐이니까.
‘종종 악취미를 가진 놈들이 있긴 한데.’
이안이 레디오 앞에 몸을 숙였다.
이대로 두면 조만간 죽는다.
고칠 순 없어도, 임시 처방은 가능하다.
“잠시.”
레디오의 이마에 손을 얹는 이안.
마나 주입으로 하여금 증상부터 다스렸다.
“허어억……! 허억……! 허억…….”
그러자 호흡이 점차 안정되었다.
시체마냥 창백했던 혈색도 조금은 돌아왔다.
눈에 띌 정도로 빠른 호전.
“치료하세요.”
“예? 아, 네! 가, 감사합니다!”
레디오의 이웃으로 보이는 남자.
그가 꾸벅 인사하며 레디오를 부축했다.
“우, 우리 아빠…… 이제 괜찮은 건가요?”
이안의 겉모습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꼬마였다.
아니, 조금 더 어린가?
“당분간은.”
마나중독을 완치하는 방법?
이안이 알기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일시적인 완화가 전부일 터.
“그, 그럼 나중에 또 저렇게…….”
“아마 그럴 거야.”
“…….”
울상이 되는 꼬마의 얼굴.
어쩔 도리가 없다.
평생 마법사에게 마나를 주입받으며 살거나.
혹은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빨리, 빨리 아빠가 말한 꽃을 찾아야…….”
두 주먹을 꽉 쥔 녀석의 중얼거림.
이안에게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꽃?’
꽃이라는 말이 유난히도 거슬렸다.
짐작대로 란데오르의 꽃을 뜻하는 걸까.
‘무슨 치료제라도 되는 것처럼…….’
딱 거기까지 생각했던 이안.
순간 번뜩이는 무언가를 느꼈다.
‘마나에 중독된 연금술사가 찾는 약초.’
그 아들까지도 치료제처럼 표현하는 약초.
마나중독의 치료제라면, 어떤 효능을 발휘하겠는가?
‘체내에 남은 마나찌꺼기를…….’
중화.
이안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음을 느꼈다.
마나를 ‘중화’시킬 수 있는 약초의 효능.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혈관 속 마나를 중화시켜주는 독일세.”
이안의 머릿속을 휘젓는 목소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기 직전.
라그나르에게 독살을 당했던 순간.
놈의 그 첫마디가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마셨던 독.’
라그나르가 이안을 제거하기 위하여.
나아가 모든 마법사를 멸하고자 은밀하게 준비했을 극독.
‘확인을 해봐야…….’
이안의 두 눈이 빠르게 레디오를 쫓았다.
꼬마보단 장본인한테 물어보는 쪽이 빠를 터.
그때였다.
“더글라스! 갑자기 어딜 가는 게냐! 더글라스!”
레디오를 부축한 이웃 남자가 소리쳤다.
마을을 뛰쳐나가기 시작한 꼬마를 향해서.
평소 아비가 말한 꽃을 찾으러 가는 거겠지.
‘더글…… 라스?’
한데 저 꼬마의 이름이 익숙했다.
그린리버에서는 흔한 이름 중 하나.
다만 작금의 상황.
‘연금술’과 ‘안티매직’의 약초.
이 두 가지가 섞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황실 연금술사, 더글라스 하몬.’
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금술사의 이름이 떠올랐다.
누구든 이안의 입장이었다면 그 이름을 떠올렸으리라.
‘그래. 이제야 생각이 나.’
더글라스라는 이름을 천천히 상기했다.
그러자 수많은 단편적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노예 출신이었지.’
아마 비적 떼의 손에 끌려가 노예로 팔렸을 터.
이안이 로이드 마을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즉, 전생이었다면 말이다.
‘유독 마법사를 싫어했고.’
마나 주입이 가능한 것은 오직 마법사뿐.
아비를 중독에 빠뜨린 것도 마법사였겠지.
‘정말 저 아이가?’
이안이 달려가는 더글라스를 바라봤다.
하물며 연령대까지 비슷하다.
라그나르, 이안, 더글라스.
모두 한두 살 내외의 연배였으니까.
“……하하.”
실소에 가까운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단지 엘릭서 몇 병 만들고자 찾아온 마을.
그런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만났다.
‘라그나르, 이번에는…….’
장차 제국 최고의 연금술사로 거듭날 재능.
더불어 황제 라그나르의 심복이 될 연금술사.
그런 더글라스의 뒤를 이안이 바짝 따랐다.
‘네가 갖진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