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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2화 (1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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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2화

    4. 가장 반대편의 연금술사(1)

    이안이 모그리안 가문의 ‘영원한 귀빈’으로 선언된 직후.

    대영주는 이안을 위한 영지 내 직속 호위대를 만들었다.

    “우리가 호위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군.”

    함께 고블린 협곡을 찾았던 선임기사 ’에릭’부터 본인이 창술의 달인이라 믿는 ‘루카’까지 총합 스무 명의 인원. 그들은 이안의 호위와 각종 잔심부름을 도맡게 되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선임기사 에릭의 말에 병사 루카가 대꾸했다.

    두 사람 모두 이안의 얼음지옥을 봤다.

    그런 무시무시한 마법사를 호위하라고?

    지나가던 늑대정령이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어쩌면 저희가 호위를 받는 입장일지도…….”

    “일리 있네.”

    둘을 포함한 총 스물의 호위대.

    그들은 지금 이안을 따라 영지의 끝자락.

    ‘로이드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상인에게 추천받은 연금술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마법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루카가 앞서 걷는 이안에게 물었다.

    보통 마법사라면 겁을 먹게 마련이다. 특히나 협곡의 광경을 목격했다면 더더욱.

    하나 이 루카라는 병사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상상 이상으로 붙임성이 좋은 친구다.

    ‘목숨을 걸고 다니는 친군가.’

    이안이 지금껏 봐온 바, 확실한 것 같다.

    조만간 성질 더러운 귀족이나 마법사한테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까 싶다.

    “로이드 마을까지는 아직 멀었나요?”

    “예? 아, 이제 금방입니다. 좀 멀죠?”

    대답 대신 화제를 돌리는 이안.

    이안의 의도대로 휩쓸리는 루카였다.

    하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후우! 살 떨리네. 진짜.’

    이안의 말에 속을 쓸어내리는 루카.

    사실 그 또한 이안이 두려웠다.

    권위는 귀족에 괴물 같은 마법. 그런 존재를 어찌 편하게 여길 수 있을까?

    평소부터 친했던 사이도 아닌데.

    ‘참아야 해. 이건 기회야. 단 한번뿐인 기회.’

    그럼에도 이안 옆에 찰싹 붙어 있는 까닭.

    간단히 표현하자면 바로 ‘취재’였다.

    일생일대의 꿈을 향한 취재!

    ‘내가 또 언제 마법사랑 말을 섞겠어?’

    틈만 나면 동료들에게 떠들고 다녔던 꿈.

    은퇴 후 멋들어진 영웅 전기를 집필하겠다는 목표!

    모두가 비웃었지만, 루카는 사뭇 진지했다.

    ‘마법사와 창술의 대가는 천년대작이라고!’

    그 원대한 목표의 힘은 컸다.

    비번이면 술이나 퍼마시는 인생이었거늘, 이제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글공부를 한다.

    봉급은 또 어떠한가?

    오로지 술값으로만 나갔던 봉급. 이제 종이와 책, 잉크가 되어 돌아온다.

    ‘힘내자! 할 수 있어! 쫄지 말고! 아자!’

    작은 기합과 함께 창대를 움켜쥐는 루카.

    어느덧 로이드 마을이 가까워졌다.

    “이제 저 언덕만 넘으면 보일 겁니다.”

    선임기사 에릭의 목소리.

    영지서 뚝 떼다 놓기라도 한 듯 머나먼 마을이다.

    전생에서도 듣기만 했지, 와본 바는 없었다.

    ‘연금술사 레디오라.’

    로이드 마을에 산다는 수도 출신 연금술사.

    상인의 말로는 어떤 약초를 얻고자 이주했다고 한다.

    오직 북부의 땅에서만 자란다는 약초.

    이안은 그러한 약초를 몇 가지 알고 있었다.

    ‘그중 타지에서 구할 수 없는 약초라면.’

    딱 하나 있다.

    유통이 힘들 정도로 연약한 성질.

    인위적인 재배조차 불가능한 까다로움.

    ‘란데오르의 꽃.’

    문제는 희귀하기만 할 뿐, 아직 이렇다 할 효능이 알려지지 않았다.

    약초라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다.

    ‘평범한 연금술사가 아닐지도.’

    그런 약초를 얻고자 북부로 이주를 한다?

    아마도 두 가지의 경우일 터.

    쓰임새를 알고 있거나, 혹은 단순한 호기심이거나.

    ‘만나보면 알겠지.’

    * * *

    언덕 높이 오르자 비로소 보이는 자그마한 마을.

    저기가 바로 로이드 마을이었다.

    “음?”

    한데 마을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마을 중앙에 몰린 사람들.

    그들을 날붙이로 위협하는 괴한들.

    관할 소가문에서 주둔시킨 병사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스릉!

    선임기사 에릭이 칼을 뽑았다.

    비적 떼였다.

    “대충 애새끼들만 챙겨! 슬슬 합류하자고!”

    “계집들은?”

    “눈깔 달렸으면 상태를 봐라. 팔리겠냐?”

    음흉한 목소리.

    노략질과 인신매매를 일삼는 비적들의 대화였다.

    “쩝, 그래도 좀 아쉬운데.”

    “애새끼들만 후딱 처분하고 콜드우드로 뜨자니깐.”

    “흐흐! 역시 계집하면 콜드우드지.”

    로이드 마을의 주둔병사가 다섯.

    싸움에 나설 만한 젊은이조차 열둘.

    반면 비적 떼의 머릿수는 스물하나.

    양적으로나 경험으로나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다못해 기습을 당하지 않았던가.

    “아, 아빠!”

    “더글라스!”

    아이를 빼앗기지 않고자 안간힘을 쓰는 부모들.

    그 부모 중에는 연금술사 ‘레디오’도 있었다.

    아들 ‘더글라스’를 필사적으로 끌어안는다.

    “놔, 이 새끼야!”

    하나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발버둥.

    허약한 연금술사가 당해낼 근력이 아니었다.

    “아, 안 돼! 내 아들은!”

    “지랄.”

    퍼억! 퍼억! 퍼억!

    비적이 레디오의 복부를 수차례 걷어찼다.

    “크허억!”

    얼마나 세게 걷어찼으면 눈이 다 뒤집힐까.

    레디오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토했다.

    “다 죽어가는 놈이 염병은.”

    얻어맞기 전부터 이미 새하얬던 레디오의 혈색.

    거기에 빼빼마른 몸뚱이까지 더해지자 확신이 생겼다.

    몹쓸 병에 걸렸을 거라는 확신이.

    “아빠!”

    어린 아들 더글라스가 발버둥을 쳤다.

    어떻게든 비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아빠!”

    “아주 쌍으로 지랄들을 하네.”

    한껏 짜증난 어조로 중얼대는 비적.

    놈이 허벅지 가죽 끈에서 단검을 뽑았다.

    “애비가 뒈져 버려야 주둥이를 닥치려나?”

    “……!”

    그 협박에 더글라스의 입이 꾹 다물어진다.

    “또 찍소리만 냈다봐. 엉? 아주 그냥!”

    “흐윽……!”

    “어엉? 뭔가 들린 것 같은데?”

    비적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거렸다.

    빼앗는 재물도 좋고, 강제로 취하는 계집도 좋다.

    하나 그중에서 가장 즐거운 건 이거다.

    살인, 그리고 살인 직전에 간단한 여흥.

    바로 지금처럼.

    “맞지? 울었지?”

    “아, 아니……!”

    “이야, 이젠 말도 하네?”

    애들 장난마냥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쯧, 저 미친놈 저거 또 저러고 있네.”

    그 모습에 혀를 차는 비적 동료들.

    사람이 여럿 모이면 으레 그렇다.

    꼭 유별난 놈이 하나씩 끼어 있게 마련이지.

    “적당히 하고 애새끼나 데려와!”

    “킬킬! 알았다니깐.”

    놈이 꿈틀대는 레디오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내 특별히 새끼는 좋은 곳에 팔아줄 테니까.”

    더글라스의 얼굴을 보여주며 속삭였다.

    “안 돼…… 더글라스…… 안 돼…….”

    혼미한 와중에도 손을 뻗는 레디오.

    아들을 잡기 위함이었다.

    “잘 가쇼.”

    비적이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목 뒤에 쑤셔 박을 요량.

    놈은 참수를 좋아했다.

    “아, 아빠! 아빠!”

    아이의 처절한 비명이 메아리치는 그때.

    퍼걱!

    아주 오묘한 소리였다.

    깔끔하게 꿰뚫리는 소리는 아니고 무언가 깨부수는 소리도 아닌.

    딱 그중간의 경계에 걸친 소리.

    그러한 소리가 비적의 머리통에서 터졌다.

    붉은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뭐, 뭐야? 방금 뭐야?”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 비적들.

    주변을 살피며 쓰러진 비적에게 다가왔다.

    “얼음……?”

    양끝이 뾰족하게 좁혀진 기다란 얼음덩이.

    그 얼음덩이가 죽은 비적의 골통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다 못해 박살이 나버렸다.

    “어디, 어디야! 어디서 날아온 거냐고!”

    비적들의 고개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 얼음덩이의 근원지를 찾기 위함이었다.

    “저, 저기, 저기에!”

    이윽고 무언가를 발견한 비적 하나.

    놈이 언덕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 영지군?”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기사와 병사들.

    비적들의 눈에는 단지 그 사실만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니까.

    “저, 저것들이 왜 여기까지!”

    “이런 제기랄! 도망쳐!”

    아직 거리가 넉넉하다.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

    비적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철석같이 믿었다.

    퍼걱!

    그때 비적 하나가 또 쓰러졌다.

    이번에도 얼음덩이였다.

    퍼걱!

    연이어 날아드는 얼음덩이.

    단 한 발의 빗나감도 허용치 않았다.

    퍼걱!

    끝내 비적들은 눈치챌 수 없었다.

    얼음덩이가 언덕꼭대기로부터 날아든다는 사실을.

    죽어 나뒹구는 그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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