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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1화 (1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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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1화

    3. 모그리안 가문의 귀빈(7)

    “자네도 봤어야 한다니깐?”

    “거 고만 좀 하게.”

    “웬 얼음이 그냥 사방으로 쫘아아아아악!”

    “벌써 몇 번을 우려먹어?”

    “수백 마리 고블린들이 비명을 지르는데!”

    “어휴·····.”

    “책으로 읽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차원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하늘.

    영주성의 정문을 지키는 병사 두 명이 보인다.

    왼쪽은 이안과 함께 2차 수색에 나섰던 병사.

    오른쪽은 1차 수색 이후 빠진 병사였다.

    “오죽하면 기사양반들까지 넋이 빠져가지고는!”

    “저게 마법사냐고 중얼거리셨다?”

    “바로 그거지!”

    오른쪽병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수차례 들은 이야기.

    처음에야 흥미롭게 들었다.

    그게 사실인가? 정말이야? 세상에! 엄청나구먼!

    진심어린 맞장구까지 치면서.

    딱 그쯤하고 끝냈다면 좋았으련만.

    “내가 그런 분이랑 영주님을 구하다니! 나중에 은퇴하면 꼭 책을 쓸 거야. 마법사와 창술의 대가, 두 영웅의 일대기! 크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막 펄떡펄떡 뛰지 않아?”

    왼쪽병사가 들고 있는 창을 쿵쿵 찍으며 말한다.

    아무래도 창술의 대가 쪽이 본인인 모양.

    “창술의 대가는 얼어 죽을.”

    “왜 이러실까? 내가 이래 보여도 창질 하나만큼은…….”

    “글이나 쓸 줄은 알고?”

    “어허! 다 공부하고 있다니까!”

    “얼씨구, 퍽이나!”

    두 병사의 대화가 계속되는 사이, 누군가 영주성으로 다가왔다.

    작은 체구, 어린아이다.

    “마법사님?”

    왼쪽병사가 이안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토록 자랑했던 수색동지 아니겠는가.

    “어, 어서 들어가 보십시오! 영주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오늘은 식사를 좀 편하게 할 수 있겠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이안.

    하인들의 표정부터가 달라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찾아볼 수 없었던 활기.

    그 활기가 마침내 영주성으로 돌아왔다.

    “오오! 마법사님!”

    노집사 호가의 목소리.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오면서 깨어나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정말 다행이지요.”

    아직까지 감격을 지우지 못한 노집사.

    가문의 집사로서 흠잡을 데가 없는 인물이었다.

    “저녁식사는 예정대로 진행됩니까?”

    “오, 물론입니다. 영주님께서는 특히 마법사님께서 만찬에 참석해 주시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이안에게 할 말이라. 하긴, 목숨을 빚졌다.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과 기사, 병사들까지.

    할 말이 없다면 그것도 문제다.

    “꼭 참석하도록 하죠.”

    “준비가 되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이안이 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함께 쓰는 널따란 방.

    “이안? 이제 왔니?”

    듣는 것만으로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언제나 그랬듯 베네사가 이안을 반겼다.

    “다녀왔…….”

    순간 이안의 말문이 턱하고 멈췄다.

    “옷이……?”

    “으응? 아, 이거?”

    한 바퀴 빙글 돌며 자태를 뽐내는 베네사.

    이안이 놀란 이유는 바로 저 의상이었다.

    지금껏 가문이 권한 의복을 한사코 거절하신 어머니다

    한데 지금 저 차림새는 누가 봐도 귀족 부인들의 예복.

    그뿐인가? 값비싼 보석으로 수놓아진 액세서리까지.

    “어울리니? 엄만 잘 모르겠는데.”

    “어울리세요. 정말로.”

    무릇 치장의 완성은 본연의 미.

    어울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 다행이다.”

    “어떻게 된 거예요?”

    “실은 아가씨께서 골라주셨단다.”

    “아가씨가?”

    “그럼! 이 보석들까지 전부 다.”

    아가씨라면 대영주의 딸 마가렛을 칭할 터.

    “내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꼴이 거슬리셨나 봐. 그치?”

    그거야 맞는 말이기는 하다.

    얼마 전까지는 확실히 그랬을 터.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주제에 괜찮은 생각을 했네.’

    이안은 잠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나이 스물아홉.

    적은 나이는 아니나 많은 나이도 아니다.

    ‘귀족이었다면, 아마 사교계를 주름잡으셨을지도.’

    꾸미고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이안은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였다.

    자연스레 수많은 영애들의 구애를 받았다.

    제국의 꽃이라 불리던 수많은 미녀들.

    한데도 어머니만큼의 미인을 만나본 바가 손에 꼽힌다.

    ‘어떻게 내가 태어났는지 원.’

    새삼 핏줄의 오묘함을 실감하는 이안이었다.

    아버지가 오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던데.

    그걸 감안한다면 다행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정도 수준에서 그친 것이.

    “흐음.”

    문득 고블린을 팔아치워 얻은 골드가 생각났다.

    단 한 푼도 빠짐없이 엘릭서에 투자하고자 했지만.

    ‘조금은 남겨둬야겠어.’

    그래야 어머니께 뭐라도 사드릴 것이 아닌가?

    모자라면 몬스터나 더 잡아다 팔지 뭐.

    “앞으로 계속 그렇게 입고 다니세요.”

    “그건 좀…… 너무 부담스러운데.”

    “에이, 어머니도 속으로는 뿌듯하시잖아요.”

    “뿌, 뿌듯하다니!”

    “천재는 자기가 천재인 거 알고, 미인은 자기가 미인인 거 안다고 하더라고요. 모르는 게 이상한 거라고. 피차 알 만한 사람끼리 왜 이래요?”

    “요게! 마법사님 됐다고 못하는 소리가 없어!”

    짐짓 부끄러운 듯 이안의 볼을 쭉 꼬집는 어머니.

    이안은 그런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평범한 12살배기 꼬마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어머니께는…….’

    분명 달라진 이안에게 위화감을 느끼고 계실 터.

    이럴 때라도 그 위화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똑똑!

    이안의 볼이 쭉쭉 늘어지는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이안이 잽싸게 외치자 황급히 손을 떼는 어머니.

    나중에 두고 보자는 눈빛을 보내신다.

    “마법사님, 페이지 부인.”

    문을 여는 가문의 하녀.

    이안과 베네사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만찬이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가시겠습니까?”

    “그러죠.”

    이안과 베네사가 하녀의 뒤를 따랐다.

    식당에는 이미 대영주와 그 부인과 아들딸까지 모그리안 일가의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노집사의 귀띔대로 식사에 앞서 할 말부터 하려는 모양새.

    “오! 어서들 오시오. 어서들.”

    대영주가 반가운 얼굴로 이안과 베네사를 맞이했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진심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많은 이들이 염려해 준 덕에 괜찮소.”

    “다행이군요.”

    “마법사께 입은 은혜, 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오.”

    정중한 태도로 감사를 건네는 대영주.

    그 모습에 후계자 라비 역시 머리를 숙였다.

    “모그리안 가문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기반을 지켜주신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내 이 은혜를 모른 척 넘어간다면 제국의 대영주라 할 수 없지.”

    가문의 현재는 대영주를, 미래는 후계자.

    기반은 기사와 병사들을 뜻하는 표현이리라.

    “고민을 좀 해봤소. 으레 그렇듯 처음에는 재물이나 토지,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보상을 떠올렸지. 하나 그런 가치들이야말로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잠시 숨을 고른 대영주.

    부상과 의식불명의 여파가 남아 있는 듯하다.

    “아, 오해는 마시오. 마법사께서 물욕을 초월했다거나, 뭐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니까. 단지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다면 누릴 수가 있다는 뜻이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안 역시 비슷한 얘기를 마가렛에게 했었으니까.

    마가렛도 그때가 떠올랐는지 크게 움찔한다.

    “내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대영주가 식탁 위로 무언가를 올리며 말했다.

    낡고 평범한 나무상자였다.

    “한번 열어보시오.”

    어서 열어보기를 고대하는 대영주의 눈빛.

    이안은 내용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모그리안 링.’

    저 낡은 목함만 봐도 알 수 있다.

    본디 모그리안 링이 담겨 있었던 상자다.

    ‘한 번 빌리길 잘했어.’

    모그리안 산의 사태가 모두 정리되었을 때 이안은 약속대로 모그리안 링을 돌려줬다.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와 함께.

    ‘나중에 언급이나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설마 저쪽이 먼저 건네올 줄이야.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목함을 여는 이안.

    예상대로 모그리안 링이 담겨 있었다.

    “얘기는 들었소. 그 반지에서 마나가 느껴진다 하셨다고.”

    “평범한 반지는 아니더군요.”

    “몰랐구먼. 그저 오래된 반지겠거니, 그렇게만 여겼었지.”

    잠시 말문을 아끼는 대영주.

    그가 한참 동안 반지를, 가문의 가보를 바라봤다.

    “그 반지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소? 아니, 마법사께 도움이 되는 힘이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훔쳐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하면 다행이군.”

    대영주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반지, 마법사께 드리겠소.”

    가문의 가보를 외인에게 주겠다?

    이는 결코 흔하지 않은 일이다.

    가보란 곧 그 가문의 역사나 다름없으니까.

    그럼에도 가문의 사람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사전에 약속이 된 모양이었다.

    “일종의 징표라고 생각해 주시오.”

    “징표라 하시면?”

    “지금 이 순간부터 마법사 이안 페이지를, 모그리안 가문의 ‘영원한 귀빈’으로 모시겠다는 약속의 징표 말이오.”

    이번에야말로 놀라운 선언이 대영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영원한 귀빈’이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제국의 귀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천년서약.

    “이 징표를 받아주시겠소?”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묻는 대영주.

    모두가 이안의 선택을 기다렸다.

    “…….”

    이안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결코 보은으로만 이루어진 서약은 아닐 터.

    모그리안 대영주는 그런 사람이니까.

    협곡의 이안에게서 엄청난 가능성을 봤겠지.

    단단한 줄 하나 대놓겠다는 생각도 분명 있을 거다.

    ‘내게도 나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필요한 날이 반드시 올 테니까.

    이윽고 손가락을 길게 펼치는 이안.

    서약의 반지, 모그리안 링을 착용하며 대답을 대신했다.

    “본 가문은…….”

    그 모습에 대영주가 ‘영원한 귀빈의 서약’을 읊조렸다.

    “이안 페이지의 방문을 언제나 환영할 것이며, 그가 가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그 옆에 설 것을 약속하는 바. 이는 양자의 후손에서 후손으로, 또 그 후손에서 후손까지 이어질 것을 에메랄드 강의 가장 북쪽 줄기로서 맹세하노라.”

    그 서약을 끝으로 이안은 북부의 대 가문.

    제국의 방패이자 녹빛 강의 가장 북쪽 줄기.

    모그리안 가문의 ‘영원한 귀빈’이 되었다.

    전생에는 결코 없었던, 마법사 이안 페이지의 첫 번째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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