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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9화 (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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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9화

    3. 모그리안 가문의 귀빈(5)

    누가 보면 강아지인 줄 알겠다.

    눈매만 조금 사나운 강아지.

    딱 그 꼴이다.

    ‘전생에는 큼직한 놈이 나왔었는데.’

    현재 수준의 마나량으로는 이 정도가 적당했다.

    더 투자하기엔 여분이 부족할지도 모르니까.

    ‘이래서 소환술이 인기가 없지.’

    마법사 중 9할이 평생을 1클래스 내지 2클래스에 머문다.

    즉 대부분의 마법사한테 소환술이란 이따금씩 귀여운 정령 한 마리 구경하고 싶을 때나 쓰이는 마법이란 얘기다.

    “우와…… 마법 쓰는 거 처음 봐.”

    “자넨 본 적 있어? 수도 출신이잖아.”

    “아무렴! 봤지. 내가 누군가?”

    “오오.”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거든다.

    마법이 신기하긴 신기한 모양이다.

    “이리 와.”

    붉은 피가 뿌려진 곳으로 늑대정령을 부르는 이안.

    주인의 목소리를 들은 강아지처럼 후다닥 달려온다.

    “이 냄새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있겠어?”

    킁킁거리며 주변을 배회하는 늑대정령.

    냄새로 추적해 보겠다는 심산인 것 같은데.

    “마법사님.”

    “말씀하세요.”

    “계속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이미 일차 수색 때 사냥개들을 풀어봤습니다. 얼마 가지 못하고 해매더군요. 의도적으로 흔적을 분산시킨 모양입니다.”

    그러니 냄새로 추적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런 말을 우회적으로 건네는 선임기사였다.

    일리가 있기도 하고.

    다만.

    “개들은 사람보다 후각이 뛰어나다고 하죠? 수백 배 정도.”

    이안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늑대정령의 후각은 개보다 수백 배 뛰어납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책에서 봤습니다.”

    “……예?”

    “마법의 모든 것이라고, 유명한 책 있잖아요? 대마법사 루크가 쓴 책인데.”

    “아, 알긴 압니다만…….”

    자신감 넘치게 말하더니 그 끝은 책이라?

    선임기사가 늑대정령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킁킁거리는 모습이 수색의 긴장마저 풀게 만든다.

    저 앙증맞은 걸음걸이는 또 어떻고?

    ‘정말 저런 녀석이?’

    하물며 책에서 봤단다.

    그래, 유명한 책인 건 안다. 기사인 본인조차 읽었을 정도이니.

    수많은 마법에 관한 묘사가 수록된 책.

    전설적인 마법사가 쓴 책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젠장.

    정말 믿고 따라도 되는 걸까?

    의구심이 불거지는 그 순간.

    [아웅! 아우웅!]

    우뚝 멈춰서 갸르릉 거리는 늑대정령.

    따라오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갑시다.”

    이안을 포함한 수색대 전원이 움직였다.

    그 선두는 새끼 늑대정령의 몫이었다.

    녀석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냄새를 추적했다.

    아마 전생에도 비슷한 그림이었으리라.

    파견마법사 마르코 역시 소환술을 선택했겠지.

    [킁킁! 킁킁!]

    숲과 나무를 가르고 거침없이 달린다.

    늑대정령과 마주치자 벌벌 떠는 산짐승들.

    아무리 흉포한 놈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저래 봬도 짐승의 정령 아니겠는가.

    한입거리조차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후우, 후우, 후우!”

    병사들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산속 깊숙이, 깊숙이, 또 깊숙이.

    어찌나 깊숙이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산에서 빠져나갈 걱정을 해야 할 때쯤.

    [그르르르르…….]

    잘 나아가던 녀석이 일순간 멈춰 섰다.

    뿐만 아니라 경계태세를 갖춘다.

    “멈춰요.”

    이안의 작은 목소리에.

    “정지!”

    선임기사가 모두를 정지시켰다.

    자세를 낮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박. 사박.

    신중하게 약진하는 이안. 풀 밟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렸다.

    ‘협곡?’

    그 앞으로 펼쳐진 것은 커다란 협곡이었다.

    자칫 떨어졌다간 뼈도 추리지 못할 깊이.

    양쪽 곡벽으로 뚫린 동굴까지.

    은거지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저기…… 저기를 좀 보십쇼!”

    협곡 아래를 살펴본 병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곧 모두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저, 저게 말이 돼?”

    “무슨 고블린이…….”

    협곡바닥의 가장 깊숙한 곳.

    그곳에 펼쳐진 실로 어마어마한 광경.

    “도대체 몇 마리야……?”

    고블린이 모여 있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그랬다.

    단지 그 머릿수가 과하게 많다는 점.

    대충 봐도 오백 마리는 넘을까?

    그때였다.

    둥-! 둥-! 둥-! 둥-! 둥-!

    묵직한 북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고블린들.

    순식간에 둥그런 형태로 헤쳐모여 중앙을 비운다.

    뿐이랴? 그 중앙으로 통하는 길까지 낸다.

    훈련된 병사마냥 조금의 무질서함도 허용치 않았다.

    “저, 저건 또 뭐지?”

    수색대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 고블린들이 만든 길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체불명의 몬스터 한 마리.

    ‘홉 고블린?’

    이번에야말로 이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인 남성만한 덩치, 연분홍색 피부.

    잠깐 떠올렸던 홉 고블린이 확실했다.

    ‘어떻게?’

    홉 고블린은 남부 대초원에만 서식한다.

    이안의 상식으로는 분명히 그랬다.

    방금부로 틀려먹은 상식이 되어버렸지만.

    ‘저놈이 우두머리 행세를 했던 건가.’

    확실한 것은 놈이 왕 행세를 한다는 사실이다.

    모그리안 산 모든 고블린들의 왕 행세를.

    둥-! 둥-! 둥-!

    또다시 울려 퍼지는 북소리.

    곡벽의 동굴로부터 또 다른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무언가를 끌고 나오는 모양새였는데.

    “영주님……?”

    선임기사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고블린에게 끌려나온 무언가의 정체.

    바로 대영주였다.

    “공자님께서도 아직 살아계십니다!”

    “저기 단장님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문의 후계자 라비 모그리안.

    모그리안 기사단장 제임스.

    그밖에 살아남은 기사와 병사들까지.

    모두가 포박된 몸으로 질질 끌려나왔다.

    “키악! 키악! 키악! 키악!”

    고블린들의 함성소리가 협곡자락을 뒤흔든다.

    일렬로 꿇어앉은 인간들에게 오물까지 집어 던진다.

    증오와 광기로 물든 고블린 협곡.

    바야흐로 인간 처형식이 시작되었다.

    스릉!

    그 모습에 가차 없이 칼을 뽑아드는 선임기사.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영주님을 구해야 한다!”

    당장에라도 협곡을 타고 내려갈 기세.

    “이대로 가면 몰살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안이 말했다.

    고블린의 머릿수가 수백을 육박한다.

    2차 수색대의 인원으로는 이기지 못할 싸움.

    “보고만 있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물론 말이 통하지는 않는다.

    모두들 대영주의 모습에 흥분한 상태.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보고만 있으세요.”

    “무슨……!”

    당부는 거기까지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협곡 아래로 뛰어드는 이안.

    “마, 마법사님!”

    “패더 폴.”

    그 모습에 선임기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곡벽을 타고 내려가는 게 아니었으니까.

    말 그대로 힘껏 뛰어내렸다.

    추락한다는 뜻이다.

    “……어?”

    하나 이안은 추락하지 않았다.

    천천히 떨어지고 있을 뿐.

    대각선을 그리며 말이다.

    저속낙하 주문의 효과였다.

    ‘딱 맞게 도착하겠군.’

    고블린 무리의 정중앙.

    즉 대영주와 사람들 근처로 착지한다.

    그럼 단숨에 끝내 버릴 수 있다.

    반지의 힘까지 쥐어짜낸다면 해볼 만하다.

    마침 예쁘게들 모여 있지 않는가?

    ‘남김없이 전부 다 쏟아야 해.’

    이내 마나를 끌어 모으기 시작한 이안.

    오른손으로 흘러든 마나가 찬 기운을 토했다.

    허공에 서리가 낄 정도로 차갑게.

    “키악! 키악! 키악!”

    접근할수록 놈들의 함성도 크게 들렸다.

    고블린 특유의 찢어지는 쇳소리.

    썩 듣기 좋은 음색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이안이 몸을 틀어 낙하각도를 좁혔다.

    사형장 가운데로 떨어질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발아래로 영주와 사람들이 보였다.

    아직은 높이가 꽤 남아 있는 상황.

    ‘조금만 더.’

    지척에 이르렀다.

    숨을 죽인 채 하반신으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다리가 착지의 충격을 버틸 수 있도록.

    “키이익?”

    고블린이 하나둘씩 이안의 존재를 인식했다.

    허공으로부터 두둥실 내려오는 인간.

    홉 고블린이 도끼를 잡았다.

    “해제.”

    이윽고 추락하기 시작한 이안의 몸뚱이.

    패더 폴을 해제해버린 까닭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보다 가까워진 높이, 강화된 하반신.

    두 가지면 충분하다.

    쿵!

    이미 모든 희망을 접었던 대영주.

    그 어린 후계자와 기사, 병사들.

    바로 그들의 앞에 이안이 착지했다.

    “프로스트.”

    서리가 흩날리는 이안의 오른손이 바닥을 짚었다.

    “노바.”

    연무장을 강타했던 이안의 냉기마법.

    그 범위만큼은 본연의 클래스를 아득히 넘어선 주문.

    프로스트 노바.

    콰득! 콰드득! 콰드드득!

    사방으로 뻗어나간 냉기가 고블린을 집어삼킨다.

    연무장에서 시전했을 때보다 한층 강력해진 위력.

    쥐어짜낼 수 있는 일말의 마나까지 몽땅 태워 버린 결과였다.

    “키이이익!”

    “키아아아악!”

    고블린들의 함성소리가 전부였던 협곡.

    이제는 얼음지옥이 되어 잔혹한 비명만이 낭자했다.

    “저게…….”

    오직 책으로나 접할 수 있었던 마법사의 힘.

    그 진정한 힘을 협곡 위에서 목격한 수색대.

    그들은 이미 넋을 잃은 채 두 눈만 껌뻑거렸다.

    손에 쥔 병장기가 무색해질 정도로.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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