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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5화 (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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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5화

    3. 모그리안 가문의 귀빈(1)

    거대한 대륙을 삼분한 국가.

    그린리버 제국. 콜드우드 제국. 로 공국.

    이들은 모두 ‘통신역참’이란 기관을 운영한다.

    일정 구간마다 세워진 기관인데, 거리 제한이 있는 통신마법을 역참에서 역참으로 전달해 주는 일종의 ‘긴급연락망’이다. 황실과 상아탑이 불과 반나절 만에 모그리안 영지발 소식을 전해들은 것도 이 통신역참 덕분이었다.

    “탑주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린리버 제국의 웅장한 수도 ‘그린리버디움’.

    그곳의 가장 존귀한 자가 국정을 다루는 곳.

    바로 황성 집무실에서 ‘테리 그린리버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가 없사옵니다.”

    담담한 어조로 대꾸하는 백발노인.

    그는 상아탑의 탑주이자 5클래스 대마법사 ‘허버트’였다.

    “하오나…….”

    “하오나?”

    탑주가 남긴 여지에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는 중년의 황제.

    “역사를 통틀어 5클래스의 경지에 올랐던 마법사는 그리 많지가 않사옵니다. 운이 좋게도 그중 한 자리를 소인이 차지하고 있지요.”

    “뜬금없이 자랑은, 내 모를 리가 있겠나?”

    “마나란 본디 피를 타고 떠도는 기운입니다. 그 기운을 뜻대로 움직이는 순간부터 마법사의 길이 시작되지요. 술식으로 마나브레인을 자극하는 방법, 마법을 발현시키는 방법까지. 보통은 아카데미에서 배우게 됩니다. 저 또한 그랬고, 모든 마법사가 그렇습니다.”

    “계속 해보게.”

    “한데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깨우쳤다고 합니다. 심지어 1클래스의 마법까지 자유자재로 부린다고 하는군요. 마치 ‘최초의 마법사’처럼 말이지요.”

    아주 오래 전.

    누구에게도 전수 받지 못했을 최초의 마법사.

    그라면 스스로 깨우치지 않았겠는가.

    마나의 운용도, 마법의 발현도.

    마법사들에게는 가히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최초의 마법사? 무슨 드래곤이라도 된다는 얘긴가?”

    “드래곤은 허상일 뿐입니다. 하나 최초의 마법사가 존재했을 거란 이야기는 엄연한 사실이지요. 시작이 있어야 현재도 있는 법이니 말이옵니다.”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

    그 모습에 탑주가 말문을 이어갔다.

    “상식적으로는 보고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씀을 올려야겠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현명한 친구를 파견시켰으니 말입니다.”

    “딱히 거짓 보고를 올릴 이유도 없겠지.”

    이번에는 침묵으로 응수하는 탑주.

    긍정하지는 않았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

    “사실이겠군.”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옵니다.”

    “하면 사실이라고 단정을 지어봄세.”

    황제의 집요함에 탑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올렸다.

    “만에 하나 조금의 거짓도, 착오도 없는 사실이라면…….”

    “사실이라면?”

    “실로 위험한 재능이다, 지금은 이렇게만 말씀을 올리겠나이다.”

    “으음.”

    의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생각에 잠기는 황제였다.

    그 재능이 진짜냐 가짜냐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이미 진짜배기라는 확신을 품어버렸으니까.

    “밖에 태자 있느냐?”

    “예. 아바마마.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들어오너라.”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 들어왔다.

    직계로 물려받은 황금빛 머리칼이 인상적인 미청년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아바마마.”

    “그래. 기껏 불러놓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소자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쩐 일이신지요.”

    다소 급해 보이는 황태자의 어조였다.

    무언가 처리할 일이 있어서라기보단, 태생부터 그런 듯하다.

    “마지막으로 황성 밖을 나가본 지가 얼마나 됐지?”

    “예? 아, 그것이…….”

    “대흉작 때 시찰이 마지막 아니더냐?”

    “그, 그렇사옵니다! 아바마마.”

    “벌써 5년도 넘었구먼. 세월이 참 빨라.”

    잠시 세월의 무상함을 체감한 황제가 말을 이어갔다.

    “5년 만에 바깥구경을 좀 다녀와야겠다.”

    “……바깥구경 말씀이시옵니까?”

    “내 너에게 제2 황실기사단 전원과 삼백의 제국군. 3클래스의 마법사 셋을 내릴 터이니, 조속히 모그리안 영지로 떠나 이안 페이지라는 소년을 데려오너라.”

    “이, 이안 페이지라 하시면…….”

    아무래도 황태자는 이안의 이름을 모르는 눈치다.

    이미 황성 전체에 소문이 쫙 퍼진 그 이름을.

    “설마 그 이름을 아직도 듣지 못한 게냐?”

    “소, 송구하옵니다!”

    “이건 송구할 문제가 아니라. 후우, 그만 되었다. 신변의 문제도 있고, 이런 일은 다른 황자들에게 맡기는 편이 좋겠어.”

    “아, 아니옵니다! 부디 소자에게 맡겨주시옵소서!”

    ‘다른 황자’라는 말에 펄쩍 뛰며 나서는 황태자.

    말하는 태도부터 확연하게 달라진다.

    “하명하신 일을 반드시 수행해 내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황태자의 줏대에 씁쓸함을 느끼는 황제였다.

    이러한 반응을 보고자 흘려본 말이 맞다.

    맞기는 한데.

    ‘속내를 너무 대놓고 드러낸단 말이지.’

    장차 일국의 주인이 될 황태자거늘.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아비가 아닌, 황제의 시선으로는 그랬다.

    ‘걱정이로다.’

    물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황제 이 전에 아버지로서 무한한 믿음을 주는 것.

    최대한 많은 것들을 손에 쥐어주는 것.

    특히 부족한 능력을 채워줄 인재가 많이 필요했다.

    앞으로 쭉 황태자의 수족이 되어줄 그런 인재.

    ‘그 소년을 제 수족으로 만들어야 할 텐데.’

    이미 완성된 자들은 힘들다.

    그들은 벌써 나름의 주인을 정했을 테니까.

    당장 눈앞의 탑주마저도 5황자를 선택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황태자를 직접 보내려는 것이다.

    보석을 얻을 수 없다면, 원석이라도 취해야 할 터.

    ‘출발 전에 따로 일러줘야겠군.’

    이내 생각을 정리한 황제가 황태자에게 명했다.

    “알겠다. 물러가서 준비를 하도록 해라. 북부까지는 제법 긴 여행이 될 터이니.”

    황태자가 퇴장한 집무실에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하면 저도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겠사옵니다.”

    먼저 그 침묵을 깨는 것은 탑주의 몫이었다.

    “벌써 말인가?”

    “아시다시피 바깥으로 나도는 걸 끔찍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저희 마법사란 족속들이 말이지요. 지금부터 설득해두지 않으면 아마 출발까지 3명을 맞추기가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럴 테지. 어서 가보게나.”

    황제가 터뜨린 호탕한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집무실을 빠져나온 탑주. 그의 발걸음은 상아탑 꼭대기가 아닌, 황자들이 기거하는 별궁 앞에 멈췄다. 정확히는 다섯 번째 황자 ‘라그나르 그린리버’의 거처였다.

    * * *

    “후우!”

    밤까지 꼬박 세워가며 마나호흡에 몰입한 이안. 한데도 몸 상태는 숙면을 취한 것처럼 쌩쌩했다. 말끔하게 가신 피로, 충만하게 채워진 마나, 방금 목욕재계를 끝낸 것처럼 깨끗한 피부와 머리칼, 말끔하게 감도는 체취까지.

    ‘이래서 마나호흡이 좋다니까.’

    정확히는 ‘이안 페이지표 마나호흡법’의 효과였다.

    ‘어머니는 아직 주무시고…….’

    바깥바람이나 좀 쐬어 볼까?

    간만에 모그리안 영지도 구경하고 말이지.

    추억은 별로 없다만, 그래도 고향땅 아니겠는가.

    ‘통일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지워질 풍경인지라.’

    모그리안은 북쪽의 대제국 ‘콜드우드’와 맞닿은 영지다.

    아군에게나 적군에게나 요충지로 꼽힐 터.

    어느 쪽이든 전란의 불길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소식이 갔을 텐데.’

    어제 그 파견마법사의 행동으로 미루어볼 때, 곧장 보고를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아카데미 입학조차 하지 못한 이안을 제국의 마법사로 인정해 준 장본인 아니던가? 바랐던 일이고, 분명 의도대로 움직였을 거다.

    ‘현 황제는 인재가 절실하겠지.’

    황제 자신이 쓸 사람이 아닌, 적장자에게 붙여줄 인재.

    덜떨어진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 말이다.

    ‘상아탑의 늙은 여우도 라그나르한테 붙었을 거고.’

    상아탑의 늙은 여우.

    탑주 허버트를 뜻하는 표현이었다.

    ‘그쪽도 사람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

    곧 황실과 상아탑 사이에 내분이 벌어질 터.

    어릴 적의 일이라 자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다.

    읽었던 기억이나 라그나르에게 전해들은 이야기.

    그런 기억들로 정황만 헤아릴 뿐이다.

    ‘어디든 비집고 들어갈 틈은 많아. 그건 확실해.’

    전생의 힘을 빠르게 회복하겠다는 일차적 목표.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는 무엇이든 해볼 요량이었다.

    황제 쪽으로 붙든, 탑주 쪽으로 붙든.

    혹은 제3의 길을 걷든.

    ‘이제 이용당하는 쪽은 내가 아닐 테니까.’

    생각을 멈춘 이안이 여관방에서 슬쩍 빠져나왔다.

    아직 이른 시간대인지라 1층도 텅텅 비었다.

    한데 바깥이 조금 소란스러운 것 같다.

    여관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 거리 일대가 그랬다.

    ‘뭐지?’

    재빨리 귀 쪽으로 마나를 집중시키는 이안.

    벽에 귀를 대고 바깥의 소리를 살폈다.

    증폭 효과 덕에 어느 정도 뚜렷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묵고 계신 게 맞는가?”

    “맞습니다요. 그 덩치 큰 기사 한 분이랑 같이…….”

    “제대로 찾아왔군.”

    묻는 자는 모르겠으나, 대답하는 이는 여관 주인이었다.

    그밖에도 꽤나 많은 인원의 소리들이 들렸다.

    “흐음…….”

    이안 자신을 찾아온 건 확실한 것 같다.

    그것도 우르르 몰려서.

    “마법사님. 시작하시지요.”

    갑자기 무슨 마법사?

    뭘 시작하라고?

    바로 그때였다.

    “제국의 마법사 이안 페이지는 지엄한 황명을 받드시오!”

    “큭!”

    어마어마한 목청에 자칫 이안의 고막이 찢겨나갈 뻔했다. 가뜩이나 마나까지 집중시켰는데, 저쪽은 무려 성대에 마나를 모았다. 어제 만났던 그 파견마법사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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