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화 (2/342)

#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화

1. 30년 전으로 돌아오다

“우욱……!”

이안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매스꺼움이었다. 계속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매스꺼웠다.

‘어떻게 된 거지?’

재빨리 가슴팍을 살폈다.

피, 상처, 통증, 그 무엇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이변이 일어난 것은 확실하다.

“이안, 갑자기 왜 그래?”

순간 이안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매스꺼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말이지 익숙한 목소리.

익숙하고도 그리운 목소리가 왼쪽 귀를 간질였다.

“어, 어머니……?”

오래 전에 돌아가셨던 이안의 어머니.

‘베네사 페이지’의 목소리였다.

설마 어머니와 다시 만나는 날이 올 줄이야.

‘성공한 건가?’

아니면 저승에 떨어져 어머니를 만날 걸까?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은 이안이 주변부터 살폈다.

“다음!”

“로, 로이드 마을에서 온 제스라고 합니다!”

“로이드? 그런 마을도 있나?”

“멀리 떨어진 마을이라서…….”

“흠, 아무튼 들어가.”

“저, 저 안에 진짜 마법사님이 계신가요?”

“거 들어가 보면 알 거 아니야?”

“예, 옙!”

일렬로 줄을 선 수천 명의 아이들.

그 줄에 섞인 이안과 베네사.

인파를 통제하는 영지성의 험상궂은 병사들.

상아탑의 깃발이 휘날리는 새하얀 천막.

일련의 풍경만으로도 이안은 가늠할 수 있었다.

‘성공…… 했구나.’

작아진 손이 확신을 더해줬다.

정확히 30년 전으로 돌아왔다.

대륙이 그린리버의 이름으로 일통되기 전으로.

어찌 정확한 햇수까지 구분하느냐?

이 아이들은 모두 ‘검사’를 받고자 줄을 선 거다.

영지별로 시행되는 ‘마나반응검사’ 말이다.

‘검사는 12살이 되는 해에 의무적으로 받지.’

회귀 전 이안의 나이가 마흔둘.

따라서 30년 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생각보다 멀리 돌아왔군.’

10년도, 20년도 아닌 30년이라니.

물론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

‘그저 내 손에 묻은 피를 지우고자 했을 뿐이었지만.’

용언까지 파헤치며 시간마법을 연구했던 이유.

자신의 마법으로 벌어진 학살의 기록을 지우고 싶었다.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황제에게 독살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또 뒤통수를 맞으면서 끝낼 수는 없지.’

친구라는 구실하에 많은 것을 양보했다.

충성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것을 감내했다.

한데 그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절친했던 벗, 황제 라그나르의 배신.

평생 이용만 당하다가 죽임을 당한 꼴이다.

‘이번 생은 다를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되찾아야 한다.

8클래스 마법사의 권능을.

나아가 그 이상의 경지까지도.

이미 한번 걸어간 길이다.

단숨에 달려가 그 앞을 가늠하리라.

“다음!”

이안의 결심이 굳어지는 그때.

마나반응검사의 순서가 돌아왔다.

“다녀올게요.”

걱정스러운 표정의 어머니를 안심시킨 이안.

그가 천막 앞을 지키는 병사에게 말했다.

“모그리안 마을, 이안입니다.”

“모그리안…… 아아, 우리 베네사 아들내미였구먼?”

이안의 어머니는 영주성의 부엌데기였다.

부엌데기치곤 아름다운 외모 탓에 껄떡대는 병사들도 많았다. 만만하게 보는 거다.

그녀는 과부에 부엌데기였으니까.

“들어가. 괜히 마법사님 귀찮게 이것저것 묻지 말고.”

어머니를 향한 병사의 끈적이는 눈빛.

어릴 적에는 느낄 수 없었던 시선이다.

‘조만간 저 눈빛부터 고쳐줘야겠군.’

가벼운 다짐과 함께 이안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 파견마법사와 그를 지키는 기사 셋이 있었다.

“아론 경, 아이들이 얼마나 남았소?”

“아직 반나절은 꼬박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허어…….”

벌써 수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검사한 탓일까.

피곤함이 잔뜩 묻어나는 마법사의 목소리였다.

‘옛날 생각나네.’

이안 역시 수습마법사 시절 검사관으로 파견을 나가봤다.

한적한 시골영지였던지라 크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여기는 사정이 좀 다르겠지만.’

하나 이곳은 모그리안 영지.

제국의 4대 영지라고도 불리는 대영지다.

검사받을 아이만 수천 명에 달할 터.

“그래, 꼬마야. 가까이 오렴.”

온화한 목소리로 이안을 부르는 마법사였다.

마법사치고는 제법 인성이 괜찮은 양반 같았다.

이안도 마법사긴 하나, 마법사란 족속들은 대부분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른다.

‘귀족 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마법사는 귀하다.

평범한 이들은 한 번 만나보기가 힘들 정도로, 가치도 가치거니와 머릿수부터 적다.

그중 9할이 평생을 1클래스에 머문다.

한데도 그 1클래스의 권위는 소귀족에 버금간다.

나아가 4클래스부터는 대귀족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법사의 수가 곧 국력이라는 말도 있었으니까.’

해서 대대적인 마나반응검사를 실시하는 거다.

단 한 명의 마법사라도 더 양성하기 위하여.

“일단 머리를 좀 숙여주겠니?”

첫 번째 자질은 ‘마나 브레인’.

뇌의 일부분인데, 마법의 실질적인 ‘발현’을 담당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만 지니고 있다.

“마나로 네 머리를 살짝 자극할 거야. 어지러울 수도 있는데, 일시적인 거니까 걱정하진 말고.”

그리 말하며 이안의 머리에 손을 얹는 파견마법사.

설명대로 어지러움이 전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마나브레인이 자극되며 나타나는 현상이니까.

“좋아. 이번에는 등을 내 쪽으로 돌려보렴.”

두 번째 자질은 ‘마나하트’.

마나의 생성과 순환, 저장을 총괄하는 기관.

주문식이 새겨진 단검을 찔러 넣었던 그 부위다.

“흐음.”

이제 마나하트만 증명해 주면 끝이다.

즉시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터.

한데도 좀처럼 마음이 내키지가 않는 이안이었다.

정확히는 ‘부족함’을 느꼈다.

“뭐하고 섰어?”

이안이 머뭇거리자 재촉하고 나서는 마법사였다.

뭔가 떠오른 듯 말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 지금 네 머리에 마나브레인이 발견됐어. 이게 뭔 말이냐? 인생역전이 코앞이라는 소리지. 여기 마나하트만 있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얼른 돌아봐.”

어쩌면 올해 첫 통과자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

인생역전이란 말까지 들먹이며 이안의 마나하트 검사를 서둘렀으나, 정작 당사자는 그보다 높은 곳을 원하고 있었다.

‘단순한 아카데미 입학으로는 부족해.’

시작선상부터 최대한으로 앞당길 필요가 있다.

마나가 부족하긴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좀 더 과감하게 나가볼까?

“저기, 마법사님.”

결정을 내린 이안이 입을 열었다.

앳된 목소리가 아직 낯설게 느껴졌다.

“보여드릴 게 있는데.”

“설마 편지나 뭐 그런 거라면…….”

그래, 그런 녀석들 많았지.

존경한답시고 편지나 선물을 바치는 아이들.

성격이 괜찮은 편에 속했던 이안도 자주 겪어봤다.

아마 이 양반도 처지가 비슷할 거다.

“그런 건 아니고요.”

하지만 이안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폭등시킬 수단.

마법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화르륵!

이안의 손에 주먹만 한 불꽃이 타올랐다.

1클래스에 속하는 기초적인 마법 ‘파이어볼’.

“파이어볼……?”

마법사의 반응에 만족한 이안.

반대편 손으로 물방울 하나를 더 만들어낸다.

이번에는 ‘아쿠아볼’이었다.

“더블 캐스팅……?”

마법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켜보는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꼬맹이가 마법을 선보인다? 아카데미의 문턱은커녕, 이제 막 마법반응검사를 받는 중인 꼬맹이가? 그것도 더블 캐스팅을?

단언컨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사건이리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을 갈구하는 마법사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이안.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문을 이어갔다.

“언젠가부터 되더군요.”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까.

이 꼬마, 의심스럽다.

“혹시 누구한테 배웠다거나.”

“아뇨. 그런 적은 없습니다.”

“정말이냐?”

물어보는 동시에 신문마법을 거는 마법사였다.

심장 박동이나 동공의 움직임처럼 본능적인 생체 반응을 체크하는 마법.

“잘 생각하고 대답해. 만약 거짓을 고한다면 반역자가 될 수도 있어. 네 녀석은 물론 네 가족, 그리고 이웃들까지도 싹 다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소리야.”

마법사의 말은 결코 겁주는 말이 아니었다.

상상 초월의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만큼, 그 관리도 이중삼중으로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게 바로 마법사란 존재다.

모든 마법사는 제국과 상아탑에서 관리한다.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는 그 자체로 반역이다.

허락받지 않고 마법을 가르치는 행위 또한 반역이다.

일련의 행위를 경계하는 전담 기관이 존재할 정도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물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안이었다.

마법사가 발동시킨 신문(訊問)마법도 인지했다.

한데도 거짓을 고했다. 왜냐?

‘정말 누구한테 배운 적은 없거든.’

마나의 기초적인 운용 방법. 그리고 몇 가지 마법들.

모두 전생에서 독학으로 깨우쳤다. 정확히는 마나반응검사를 통과했던 그 당일부터 마법아카데미의 입학 시즌 사이, 약 세 달 남짓의 기간 동안 말이다.

‘불세출의 천재도 나쁘지 않겠지.’

애초에 이안은 천재가 맞다.

인류 최초의 8클래스 마법사 아니던가? 단지 전생의 그가 뭉뚱그려 천재였다면, 이번 생에는 시작부터 불세출의 천재가 되어보리라.

“허허…….”

마법사의 입술을 비집고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여러 의심을 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신문마법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의도적으로 모든 본능을 통제한다?

신문마법에 들키지 않도록?

‘그건 말도 안 되지.’

마법사는 단언할 수 있었다. 불가능하다.

극한의 훈련을 소화한 첩자일지언정 이 정도로 무반응을 보이지는 못한다.

‘답은 두 가진데.’

눈앞에 이 꼬마가 역사상 최고의 첩자거나.

혹은.

‘최초의 마법사와 같은 재능이거나.’

마법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전설.

평범한 사람들은 마법의 시초로 ‘드래곤’을 말한다.

하나 마법사들은 바로 이 ‘최초의 마법사’를 믿는다.

‘어느 쪽이든 상상초월이군.’

마법사의 심중이 점점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는 그 순간.

“이, 이러지 마세요!”

“쉿쉿! 어허, 안에 귀한 분들 계신 거 몰라?”

바깥으로부터 들려오는 실랑이소리.

천막 앞을 지키던 병사, 그리고 어머니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