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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화 (프롤로그)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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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화

프롤로그. 배신을 당하다

“혈관 속 마나를 중화시켜주는 독일세.”

금발의 중년, 황제 ‘라그나르 그린리버’는 읊조렸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대륙 일통을 이루어낸 황제였다.

“효과는 길어봐야 몇 분 정도라더군. 자네에게는 말이야.”

절친한 벗이자 인류 최초의 8클래스 마법사, ‘이안 페이지’와 함께 말이다. 두 죽마고우의 발자취는 수많은 노래를 탄생시켰고 수많은 시를 낳았으며, 수많은 이야기책을 엮어냈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그랬다.

“해서 다른 독을 좀 섞었네만.”

“어, 어째서…….”

고향으로 돌아와 조용히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했던 8클래스의 마법사, 이안이 탁한 피를 울컥거리며 물었다.

“알고 있지 않은가.”

황제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수십 년 지기에게 특수한 극독을 먹였음에도.

“자네의 힘, 그 힘은 통일제국의 앞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 전시라면 모를까, 지금은 오히려 불안을 낳는 원흉일 뿐이지. 바로 자네가 했던 얘기일세.”

그래, 분명 그랬다.

능히 혼자의 힘으로 소국 하나를 패망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 그것이 바로 8클래스 마법사가 지닌 힘이었으니까.

“이안 페이지가 제국의 우군으로 살아 있는 한, 그 자체만으로도 반란의 불씨를 잡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고향으로 내려가 남은 여생 참회하며 살겠다. 아마 그렇게 말했었지.”

황제의 눈에 공포가 드리웠다.

왜 하필 공포일까? 독을 먹은 것은 이안인데.

“한데 이안, 아는가? 나는 반란이 두렵지 않네.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일이니까.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니까.”

“…….”

“하지만 자네는, 자네가 가진 그 힘은 어떤가? 그것도 사람의 일인가? 정녕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라고 보는가?”

이안은 대답하고 싶었다.

바로 그 힘이 너를 황제로 만들었다고.

바로 그 힘이 통일제국을 이루어냈다고.

바로 그 힘이 평화를 유지하는 균형추라고.

“쿨럭!”

하나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역류하는 핏물조차 감당키 어려웠으니까.

“두렵네. 이안 페이지가 두렵네. 8클래스의 대마법사가 두렵네. 내 오랜 벗이…… 빌어먹을! 그래, 그 친구가 두려워 미치겠다는 얘길세! 언제든지 나를, 나의 제국을 집어삼킬 수 있는 무지막지한 괴물! 그 괴물을 어찌 살려둘 수가 있겠나?”

한바탕 광기를 쏟아낸 황제가 말문을 멈췄다.

그리고 죽어가는 벗, 이안을 바라봤다.

슬프면서도 만족스러운, 아주 오묘한 얼굴이었다.

“부디 나를, 나를 용서하지 말게.”

황제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극독으로는 모자라다고 판단한 걸까. 그가 오두막집을 나서자 사방에서 불길이 솟았다.

‘개자식.’

이안 역시 나름대로 짐작은 하고 있었다.

황제, 오랜 벗 라그나르 그린리버의 변화를.

낙향을 선택한 이유도 그중 하나였다.

눈에서 멀어진다면 나아질 거라 여겼다.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설마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 줄이야.

이 정도로 미쳐 버렸을 줄이야.

‘하지만.’

품속으로부터 무언가를 꺼내 든 이안.

언뜻 보기에 매우 고급스러운 단검이었다.

보석과 문양으로 치장된 칼집부터 손잡이까지.

날붙이보다 장식품에 더 가까웠다.

스르르릉……

그런 주제에 뽑히는 소리만큼은 꽤나 그럴듯했다.

듣는 것만으로 날카로움이 짐작되는 수준이었다.

‘안일했던 것은 라그나르, 네놈도 마찬가지야.’

단검의 날에는 어떤 글자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제대로 읽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작은 글자.

‘내가 원했던 참회란.’

손에 묻은 피를 조금이나마 씻고 싶다.

자신의 마법으로 죽어간 수많은 이들.

특히 무고했던 이들에게 참회하며 살겠다.

그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다만 방법이 달랐을 뿐.

인류 최초의 6클래스, 7클래스를 넘어 8클래스까지 도달한 전무후무의 대마법사가 바로 이안이다. 기도나 올리며 허송세월을 보낼 그릇이 못 된다는 얘기다.

‘모든 것을 되돌려놓는 것.’

낙향을 결정한 그 순간부터 이안은 ‘시간마법’을 연구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만약 시간을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모든 사건을 돌이키는 게 가능하다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미완의 이론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실험이 되겠군.’

더 이상 완성도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부작용이 생겨봤자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아니, 어차피 죽어야만 한다.

‘마나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지금 극독의 효과가 미치지 않는 곳은 오직 하나.

마나의 모든 것을 담당하는 심장 속 작은 핵.

‘마나하트.’

푸욱!

바로 그곳에 주문식이 걸린 단검을 쑤셔 박았다.

마나라는 동력원을 양껏 포식시키기 위하여.

우우우웅!

이윽고 영롱한 푸른빛이 이안의 전신을 휘감았다.

[라…… 후스…… 에키로…….]

동시에 시작된 이안의 시동어.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힘겹게 토해냈다.

이는 결코 육성을 통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평범한 시동어도 아니었다.

[로…… 쿠베르가토…….]

흔히 ‘마법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드래곤.

그들이 창조해낸 고대의 언어, ‘용언’.

[젠…… 쉬나가스……!]

산속 메아리처럼 울려대는 용언이 갈무리될 무렵.

용도를 다한 단검이 가루가 되어 사방에 흩날렸다.

강렬했던 푸른빛도 점차 그 자취를 감추었다.

대마법사 이안 페이지의 육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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