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6)

환은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외려 그의 페니스를 더 강하게 쥐고 속도를 더 빨리했다. 해진은 저도 모르게 구멍을 움찔거렸다. 젖은 채로 움찔거리는 아래로는 여전히 환의 성기가 느껴졌다. 감각이 잔뜩 예민해진 탓에 이제는 울퉁불퉁한 핏줄까지 다 읽혔다. 해진은 이 충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알파의 발기한 성기에다 애액을 질질 흘리며 성감을 더 끌어내려 용썼다.

“나, 진짜, 나올, 으응! 아!”

결국 정액이 이리저리 튀었다. 남의 손에 사정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해진은 그의 성기에 닿은 구멍을 반사적으로 오물오물 조이면서 욕조에 정액을 마음껏 쏟아내었다.

“하아, 하…… 으으…….”

다리에 힘이 자꾸 풀리자 환이 페니스를 쥐고 있던 손을 놓고 그의 엉덩이를 짝! 소리 나도록 후려쳤다.

“허벅지 힘, 제대로 안 줘?”

평소의 그라면 미친놈이 어디서 남의 둔부를 후려치고 명령질이냐며 쏘아붙였을 텐데, 해진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저 헐떡거리며 후희를 만끽했다.

환이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진은 몸을 조금 떨었다. 방금 사정하고도 묘한 열감이, 아니, 어마어마한 열감이 아직 남아 있었다. 환의 성기가 그의 구멍 위에 거칠게 마찰되자 해진은 그 열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알파의 씨를 배 속으로 받고 싶은, 오메가의 본능이었다.

해진은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경험은 없지만 반사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저 환의 성기를 좀 더 느끼고 싶었다. 안으로 들여서 쥐어짜댄 다음에 몸속에 씨를 뿌리게 만들고 싶었다.

정신이 혼미했다. 방금 느낀 오르가즘이 무색하도록 쾌감이 진득했다. 해진은 그 감각에 빠져 욕조를 짚었던 손을 앞으로 내밀며 허우적거렸다.

“조, 조금 더…… 해주세요…….”

제 말에 환이 뚝 굳어버리는 것도 알지 못한 채 해진은 그저 뒤로 뺀 엉덩이를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젖은 구멍에 닿은, 뚝 멈춰 있는 그의 성기를 슬슬 문질러댔다.

“흐응, 흠, 뻑, 젖어서…….”

이성이 끊어지는 데에도 소리가 들린다면 그의 귀에 필경 뚝, 하고 크게 울렸으리라. 그러나 해진은 그런 것을 들을 정신조차도 없었다.

“너무 젖어서…… 이상해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해진이 웅얼거렸다. 숨이 차서 할딱거릴 때마다 그는 환의 알파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러트도 아닌데 위스키 향이 독하다. 그 역시 그만큼 흥분하고 있단 뜻이었다. 그 사실이, 그 역시 해진에게 잔뜩 흥분하고 있단 사실이 생소했다.

“흐응…….”

콧소리가 절로 났다. 이젠 어찌 되어도 좋았다. 아니, 부디 그가 제 안에 씨를 뿌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간절했다.

반면 환은 제 성기 위에 옴짝거리는 해진의 구멍 감촉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빌어먹게 음란한 오메가 놈이…….”

어디 손가락이나 후벼 넣을 수 있을까 싶게 좁은 구멍이 그 둘레의 - 체감상 - 열 배는 됨직한 제 성기를 원하는 듯이 꼬옥, 꼭, 오물거리는 것이 같잖았다. 감히 이딴 더러운 구멍으로 내 성기를 먹으려 들다니.

그러나 그럴수록 환은 더더욱 이 건방진 강해진을 확실히 교육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기도 했다. 어차피 이제 계약서만 쓰면 제 소유인데, 초장부터 길을 들여놓아야 하지 않을까.

손을 들어 해진의 머리채를 화악, 잡아챘다. 해진이 히익, 하는 소리를 냈다. 놀라서 내는 그 소리마저도 음란했다.

“강해진 씨 때문에 내 성기가 더러워졌지 않습니까.”

“흐으, 으…….”

환은 지독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일전 히트사이클을 겪는 그의 원룸에 찾아갔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충동이었다. 그를 뼈째로 씹어 삼켜 이 음란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은 채로 구멍 위를 페니스로 쓰윽, 쓱, 문질렀다. 젖은 소리가 크게 났다. 비빌수록 더 흥분하는지 물이 아주 흥건하게 흐를 정도였다. 환의 입술이 비죽이 뒤틀렸다.

“이렇게 구멍에서 질질 싸대니, 더럽고 불결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으응…….”

제 불쾌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진은 입으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구멍을 오물거리기만 했다.

환은 그를 짓누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제 아래 짓눌러 놓고 멋대로 주무르고 휘둘러 버리고 싶었다. 제게 꼼짝도 못 하게 만들고 싶었다. 겁박해서라도.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확, 끌어당겼다.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냥 지금 안에다가 확, 싸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고.”

속삭이자 해진의 몸이 파르르 떨리며 움츠러드는 게 느껴졌다. 반쯤은 겁을 주고 싶어서 한 말이지만 나머지 반은 진심이기도 했다.

그는 본래도 인내심이 없는 성격이었으며, 특유의 조급함은 자꾸 강해진의 앞에서 더 도드라졌다. 이 더러운 오메가가 제게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환은 그 사실이 너무나 불쾌했다.

정말로 이대로 몸에 좆을 박고 흔들어버릴까. 환은 이를 으득, 갈며 허벅지 사이에 끼운 페니스를 거의 끝까지 빼내었다가 콱, 다시 박았다.

강해진의 허벅지는 지나치게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꼭 함부로 입에 넣어서는 안 되는 불량 식품 같았다. 그래서 환은 더더욱 그를 입에 넣고 삼켜버리고 싶었다. 할 수만 있으면 몸에 넣고 다니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페니스를 쭈욱, 빼내자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해진의 몸에서 나온 애액이 페니스의 귀두 끝까지 적시고 점성을 보이며 길게 흘러내렸다.

“흐으…… 빨리…….”

몸이 잔뜩 달아오른 해진은 천박한 구멍을 꼭꼭 조이면서 자꾸 보채었다. 흥건하게 젖은 환의 페니스가 꿈틀거렸다.

정말로 이대로 성기를 그의 몸에 쑤셔 박을까, 하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그러나 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강해진이 정말로 자신의 몸을 원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박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대신 해진의 귀를 앞니로, 이번에는 정말로 세게 콱, 깨물었다.

“아…!”

통증으로 인한 비명이 분명한 목소리에 환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물고 있는 앞니를 놓지 않고 일부러 더 세게 깨물었다.

“아, 아파요, 아파요…!”

보잘것없고 작은 구멍에 제 좆이 박히면 이것보다는 몇 배로 더 아플 텐데, 웬 엄살일까. 환은 먹을 것을 씹듯이 그의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으며 허리를 움직였다. 질척한 다리 사이로 성기를 빠르게 움직였다.

해진의 매끄러운 살결이 그의 페니스를 끝없이 자극시켰다. 허벅지가 이렇게 부드러운데, 이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뭉개지는 것처럼 좋은데, 안으로 들어가면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

그는 귀두 끝으로 해진의 구멍을 긁듯이 스치고 지나쳤다. 해진이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파득거렸다.

“으응! 아! 하으읏!”

과연 신음도 음란했다. 이런 오메가를 밖에 나다니게 하는 것은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임이 분명했다. 가둬두고 임신할 때까지, 아니, 아이를 낳을 때까지 제 시야가 닿는 곳에만 있게 하고 제 좆만 받게 하는 것이 옳을 터다.

젖은 귀두 끝이 그의 구멍을 침범할 듯 침범하지 않으며 젖은 곳을 긁어댔다. 금방이라도 쑤셔 들어갈 것 같은 사나운 기세지만, 절대 들어가지는 않았다.

“후우, 강해진 씨.”

그 역시 숨이 점차 거칠어졌다.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해진은 그의 몸에 갇힌 채로 버겁게 숨을 몰아쉬었다.

“당신만 보고 있으면, 왜, 후, 이렇게, 울화통이 치미는지 모르겠군.”

“흐윽…….”

해진이 우는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허벅지는 착실하게 조였다. 구멍도 이렇게 착실하게 조이려나. 환은 그의 구멍 속으로 제 성기가 들어가는 상상을 하며 희열에 몸을 떨었다.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흡…….”

해진은 이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머리채를 잡힌 채로 바들바들 떠는 동작이 가슴을 통해 전해지자 환은 찌릿한 정복욕을 느꼈다.

“나는 내 손에 들어온 걸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퍽, 퍽, 몰아치는 속도가 점차 더 빨라졌다. 그는 해진의 발기한 페니스를 손에 움켜쥐었다. 앞뒤로 문지르며 흔들자 해진이 숨을 참고 할딱거렸다.

“으응, 아, 흣!”

“그러니…… 당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단 걸 미리 알았음 좋겠군.”

마침내 해진이 토정했고, 환 역시 그와 비슷하게 사정했다. 두 사람의 정액이 사방으로 튀어 욕실을 더럽혔다. 검은 타일 위에 흰 얼룩이 이리저리 번졌다.

“하아, 하…….”

잠시 두 사람의 숨소리만 욕실에 가득 찼다. 환은 그제야 손에 쥐고 있던 해진의 머리채를 놓아주었다. 해진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욕조를 쥐고 헐떡거렸다.

“흑, 흐으…….”

심하게 헐떡거리는 그가 환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과의 스킨십이 불쾌하다는 건가, 뭔가.

그가 헐떡거리는 동안 환은 인상을 구기며 샤워기를 틀어 더러워진 성기를 씻었다. 미끌미끌한 애액이 손가락에 감기는 감촉에 인상을 썼다.

그제야 환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그토록 이성적이고 철저한 자신이 정신줄을 놓고 오메가의 더러운 구멍에다가 성기를 비비다니.

‘내가 뭘 한 거지?’

생소한 충격은 곧 결벽증의 습관으로 이어졌다. 비누칠을 해서 아직도 발기가 식지 않은 성기를 열심히 문질러 닦았다. 어찌나 물이 많이 나왔는지 아무리 씻어도 미끌미끌한 게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불결함에 화가 솟구쳤다.

해진이 욕조를 쥔 채로 심하게 떨며 헐떡거리는데, 환은 제 성기를 박박 씻어내느라 눈길조차 주질 않았다. 그는 다만 이 불쾌감을 어서 씻어내고 싶었다. 자신의 실수를, 비이성적인 행위의 흔적을 닦아내고 싶었다.

“나, 어지, 러…….”

“뭐라고 했습니까? 똑바로 말하십시오.”

가뜩이나 더러워서 짜증이 나는데,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 버럭 화를 내며 돌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욕조를 붙들고 있던 해진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환이 반사적으로 그를 붙들었다.

“뭡니까?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해진의 몸은 방금 전과 다르게 몹시 차가웠다. 아까까지 좋다고 헐떡거려 놓고는 갑자기 몸을 덜덜 떠는 그가 이해 가지 않았다. 해진이 기침을 거칠게 했다.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꺽, 꺼억, 하고 났다.

“강해진 씨?”

“힘, 이 없어서 몸, 이…….”

해진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환의 품으로 쓰러졌다. 환이 상황을 파악하고 의사를 부르기 위해 그를 안고 욕실을 뛰쳐나온 것은 그로부터 몇십 초나 지나서였다.

심각하게 아픈 곳은 없지만 안 그래도 약한 몸으로 무리를 한 탓에 졸도한 것뿐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환은 굳은 얼굴을 끄덕인 뒤 나가란 손짓을 했다.

“저, 아무래도 약한 몸이라 먹는 약들도 있을 테고, 꼼꼼하게 케어를 해줘야 할 분처럼 보이는데…….”

‘닥터 최’라고 불리는 이 영감은 유 회장부터 섬겨온 집안의 주치의였다. 회장부터 자신까지, 혹은 그 주변 사람들까지, 병원에 갈 수 없는 몇 가지 일을 해결해준 나이 지긋한 이 의사가 부리는 오지랖이 환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시고 나가십시오.”

조금 강경한 어조로 말하자 그제야 닥터 최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 나갔다.

환은 침대를 차지하고 누운 해진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인상을 찌푸린 채로 의자를 빼서 앉았다. 눈 감은 강해진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팔자 좋군.’

딱히 걱정이 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환은 짜증이 났다. 내일도 업무 일정이 있는데 이 오메가 놈 때문에 잠을 설친 것도 화가 나고, 저답지 않게 흥분해서 그에게 덤벼든 것도 화가 났다.

이 모든 것이 강해진의 계략 같았다. 이 자그마한 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환은 제 손에 들어온 것을 다루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 오메가 놈은 제 손에 들어오고서도 자꾸 이렇게 말썽을 부린다.

아, 그래,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이 빌어먹을 오메가 놈이 비실거리다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99.99퍼센트의 매칭률이 나오는 오메가를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니.

“……쯧.”

혀를 한 번 찬 환은 그대로 방을 나섰다. 일거리가 밀려 있으니 이딴 오메가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 * *

해진은 눈을 뜨자마자 덜컥 겁이 났다. 대체 몇 시간을 잔 건지.

‘몇 시지? 회사……!’

그리고 자신이 회사에서 잘렸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변태 사이코 발바리 놈 때문에.

“흐어…….”

기지개와 회한과 슬픔과 두려움이 섞인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그래도 호텔이라고, 침대 하나는 끝내주게 푹신해서 좋았다.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은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방전된 상태였다. 창밖으로 흘러들어 오는 햇빛이 아직 차가운 것을 봐서 시간대는 아마 오전인 모양이었다. 누운 채 고개만 돌려 충전기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협탁 위에 익숙한 물건이 하나 보이기는 했다. 엄마의 유품인, 나무 손거울이었다. 해진은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들어 손을 뻗어 손거울을 만져보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모르겠다…….’

졸음 때문인지 자꾸 체념이 들어 다시 눈을 감았다. 맨몸에 닿는 이불 감촉이 좋다……고 생각하다가…….

‘알몸?’

감았던 눈을 퍼뜩 떴다. 왜 알몸이지? 생각한 해진은 그제야 간밤의 일을 떠올렸다. 제 구멍 아래를 마구 스치던 페니스의 딱딱한 감촉이, 머리채를 움켜쥐었던 사나운 손이, 귓가에 터지던 뜨거운 숨결이 모두 기억났다.

‘아, 세상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환에게 더 해달라며 애원하던 것도 기억이 났다. 진짜 미쳤지, 강해진.

‘하지만…… 너무 좋았어…….’

알파랑 몸을 맞대는 일이 그렇게 좋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진은 제 성기가 다시 발기하는 것을 느끼며 이불 속에서 몸을 배배 꼬았다.

푹신푹신한 침대 위에서 뒹굴던 해진은 어느 순간 몸을 발딱! 일으켰다. 이대로 누워 있기만 할 순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해.’

도망칠 수가 없다면 정당하게 문으로 걸어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푹신한 침대에서 억지로 나온 해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고 온 정장을 찾을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가운을 걸치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 * *

환이 다시 오피스텔로 왔을 때 해진은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매일 먹을 약을 늦은 오후까지 먹지 못해서 계속 기침도 나고, 아토피 때문에 온몸이 가려웠다.

다행히도 환은 도착하자마자 그가 먹는 약을 거실 테이블에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해진은 얼른 달려가 약통을 열고 한 알씩 입에 넣었다. 삼키지도 않았는데 생명줄이라도 찾은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환은 물건을 보듯 해진을 쓰윽 훑어보더니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꺼내 펼쳤다.

정작 해진은 심경이 복잡해서 그를 쳐다보기도 힘든데, 환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간밤에 그렇게 몸을 섞어놓고 말이다. 해진은 그것이 화가 났다.

해진은 그의 맞은편에 섰다. 정장을 입은 환과 달리 그는 아직도 가운 차림이었다. 이 빌어먹을 호텔 방에는 자기 옷 한 벌도 없기 때문이었다.

“저랑 이야기 좀 해요.”

“일하는 거 안 보입니까?”

“일하실 거면 왜 굳이 여기 오셨어요? 너네 집에 가서 하시지.”

일부러 못되게 말했는데도 환의 멀끔한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흠집 없는 조각에 무딘 끌을 툭툭 치는 기분이었다.

“강해진 씨가 행여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만에 하나 주제넘게 도망칠 궁리라도 할까 신경이 쓰여서 말입니다.”

해진은 입술을 씹었다. 저 말은, 분명 자신이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하는 말이었다. 저 여유로움과 재수가 없을 정도로 뻔뻔한 표정을 보면 말이다.

그는 자신을 감금하고 있는 이 사태에 대해 논지를 펼치는 대신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무언가를 달라는 투로 내밀어진 손바닥 쪽으로 환이 흘끔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해진을 올려다보았다. 뭘 어쩌란 건가, 하는 눈빛이었다.

“보상 주세요.”

환의 얼굴이 조금 사납게 구겨졌다. 해진은 굴하지 않고 똑바로 그를 마주했다.

“저와 성관계를 맺으셨잖아요. 계약서는 아직 안 썼지만 우리, 그거 대가로 계약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또박또박 설명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웬걸, 환은 입꼬리를 틀어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성관계? 구멍에 좆대가리도 들어간 적 없는 걸 성관계라고 부르나?”

“그것도 성관계거든요? 그리고 좆……대가리는 잠깐…… 들어갔었어요.”

환의 시선은 이제 다시 노트북 화면을 향했다. 해진은 그 화면을 확 닫아버릴까, 고민하다가 참았다.

“하여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계약 조항, 추가해요.”

여전히 노트북에 붙박여 있는 시선이 얄미웠다. 노트북이 아니라 목을 접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해진은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소파에 앉자 환의 미간이 구겨졌다.

“앞으로 이렇게 돌발적인 성관계를 맺게 될 시, 저에게 보상을 한다고 추가했으면 좋겠네요. 환이 씨도 솔직히 급하게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여전히 환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자존심이 바삭바삭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전날 밤 그런 짓을 해놓고는, 자기는 기절까지 했는데 혼자 가버리고. 이 호텔 방에 내버려두고. 처음 만나서 원나잇 하는 알파도 이것보단 매너가 좋을 거다. 물론 해본 적은 없지만.

그가 제게 감정이 없단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사살 당할 때마다 구멍이 나는 것처럼 속이 상했다. 익숙해져야 할 텐데.

“아, 머리 아파…….”

무심히 혼잣말을 읊으며 해진은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두통은 언제나 달고 사는 습관과 비슷한 것이라 딱히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어차피 진통제도 안 들어서 참아야 했다.

그런데 환의 반응이 의외였다. 내내 모니터만 향하던 시선이 어느새 저를 향하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내가 아프든 말든 신경도 안 쓸 때는 언제고.’

해진은 의아했다. 밥 먹었느냐 한 마디도 않던 환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유를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 없어지면 오메가 새로 구해야 되니까 그러겠지.’

어차피 내 몸뚱이가 고장나면 나도 소용없으니까, 그래서 제 몸 상태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강해진이라는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게 아니다.

생각이 그렇게 닿기까지 이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환의 시선은 어느새 다시 노트북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확 파일이라도 날려먹었음 좋겠네, 못된 생각을 해도 개운치 않았다.

해진은 서러움을 꾹 누르고 여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차례차례 읊기로 했다.

“제가 직장을 잃고 이렇게 호텔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이환 씨?”

환이 씨고 전무님이고 나발이고. 이제는 애인도 아니고 상사도 아니다. 아니, 공식적으로는 키스틸 전무실로 발령이 난 것이니 상사는 상사인가. 뭐, 알 바 아니었다.

그리고 이환은 예상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꼭 없는 사람처럼 대하는 옆모습을 보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그리고 몇 가지 계약 조항을 좀 더 추가하면 좋겠네요. 아이를 갖는 게 목적이라면 오메가인 저의 생활도 좀 신경을 써주세요. 이런 식으로 갇혀 있는 건 좋지 않아요.”

“안 됩니다.”

내내 개무시를 하던 놈이 이번에는 빠르게도 대답을 한다.

“그럼 이 근방만이라도 나가게 해주세요. 사람이 어떻게 호텔에만 처박혀 있어요!”

다시 침묵. 해진은 참지 못하고 결국 노트북을 밀어 닫아버렸다. 쾅, 제법 큰 소리가 났다. 환은 반으로 접힌 노트북에 여전히 손가락을 낀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스트레스가 산모한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아세요? 비타민D 부족은요? 운동 부족은요?”

다다다 쏘아붙이는 말도 죄다 무시한 채 환은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얼굴에 드러난 무심함이 견고했다. 단단한 턱뼈와 곧은 콧대 때문에 더더욱 불통으로 보였다. 그는 꼭 말 안 통하는 애완동물을 옆에 두고 일하는 사람 같았다.

그래, 제 취급이 딱 그 정도였다. 해진은 결심했다. 그렇다면 네 용도대로 순순히 쓰여줄 생각도 나한텐 없다고.

그는 일부러 오만상을 쓰며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최대한 아파 보이도록 눈꼬리까지 늘어뜨렸다.

“아아, 또 머리가 아파오네…….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지…….”

연기에는 자신이 없지만 이환의 재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저 얼굴을 보니 오기가 생겼다.

해진은 옆으로 쓰러지는 척 슬그머니 몸을 기울이며 곁눈질로 환의 눈치를 보았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어설픈 연기이건만 놀랍게도 환의 표정이 변했다.

‘뭐지?’

의아했으나 기회를 놓칠 해진이 아니었다. 그는 아예 신음까지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실내에만 계속 있으니 자꾸 현기증이 나서…….”

그를 물끄러미 보던 환이 휴대폰을 빼 들었다. 해진은 한쪽 손으로 머리를 짚은 채 귀를 바짝 기울였다.

“가지고 오십시오, 지금.”

딱 한 마디를 하고 환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마주했다.

약 3분이 지난 뒤에 누군가 호텔 방으로 왔다. 일전에 해진도 만난 적이 있던, 박 비서라는 사람이었다. 서류 봉투 하나를 내려놓은 남자는 몹시 지친 얼굴을 하고 도로 방을 나갔다.

“확인하고 서명하십시오.”

그의 말에 봉투를 열어 보았다.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봤다면 경악할 내용들이 무슨 사업 내용인 양 조항을 갖춰서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차례대로 읽어 내려가던 해진은 조금 놀랐다. 자신이 그에게 좀 전까지 요구했던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을’은 임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 및 협조한다. 만약 2조 4항에서 정해진 3회 이외의 성관계가 돌발적으로 이루어질 시 ‘을’은 ‘갑’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 보상의 내용은 ‘갑’과 ‘을’의 합의에 따른다.]

그는 감동하려는 마음을 꼬집듯이 참았다. 가만 읽어보면 그럴싸하게 구색 삼아 넣었을 뿐이지, 이환이 합의를 안 한다고 우긴다면 답이 없는 거 아닌가. 뭐, 어차피 앞으로 ‘돌발적인 성행위’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속으로 투덜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혹시 여기 도청 장치라도 달아 놓았나? 누가 24시간 내내 듣고 있는 거 아냐?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어젯밤 그와 했던 행위들이 또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쨌든 계약서의 내용은 일전 합의한 것과 동일했다. 총 세 번의 성관계. 환의 러트와 자신의 히트사이클, 그리고 겹치는 때에 각각 한 번씩, 반드시 체내에 사정할 것. 대가는 각 10억. 출산의 대가는 20억.

체감도 되지 않는 액수이지만 다시 보니 또 입이 벌어졌다. 마른침을 삼키는데, 환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그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짜증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다 읽었으면 서명하십시오. 가뜩이나 바쁜데 귀찮게 굴지 말고.”

하여튼 진짜 성격 이상하다. 해진은 손을 뻗어서 그의 재킷 주머니에 꽂힌 펜을 낚아채듯 가져와 계약서에 대고 사인을 했다. 환은 기다렸다는 듯이 계약서 한 부를 가져갔다. 맡겨 놓은 빚이라도 가져가는 것 같았다.

“제 옷도 좀 갖다 줘요. 다른 물건도요. 이대로는 못 살아요.”

환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재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카드 하나를 뽑아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그딴 쓰레기들은 다 내버리고, 필요한 건 이걸로 주문하십시오. 카드 값은 50억에 포함시키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해진이 카드를 들어 보았다. 새카만 색의 좀 특이해 보이는 이 카드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생각했다가 기억해냈다. 일전에 이환이 공원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고 2천 원 결제할 때 썼던 그 카드다.

“……진짜 필요한 건 다 사도 되나요? 한도가 얼마인 줄 알고…….”

그러자 환이 픽, 입술을 틀어 비웃었다.

“강해진 씨가 아무리 써도 한도까지는 못 쓸 겁니다.”

그 순간 해진은 억울하게도, 환이 진심으로 멋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이렇게 돈만 밝혀서는 안 된다. 심지어 아직 받지도 않았잖아.

“그럼 저 나가도 되나요?”

“하루에 최대 한 번, 꼭 필요한 일이라면 제가 확인 후 허용해드리죠. 대신 제 직원을 대동하십시오.”

직원이라면 저 밖을 지키고 있는 덩치들을 말하는 것일 테다. 보아하니 삼교대를 하는 모양이던데,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분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아예 못 나가는 건 아니네. 이 정도면 괜찮아.’

해진은 저도 모르게 안도하는 스스로에게 잠깐 놀랐다. 미친 알파에게 붙들려서 강제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처지인데, 뭐? 괜찮다고? 물론 돈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받기로 하긴 했지만. 한도가 엄청 높을 것 같은 카드도 받았지만.

그리고 해진은 결정적으로, 아직까지도 이환이 아주 싫지는 않았다. 미운 감정과 싫은 감정은 별개가 아닌가. 그가 밉기는 하지만, 싫으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에휴…….’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갑니까?”

“다시 자러요. 회사도 안 가는데, 뭐, 할 게 있나요. 하다못해 노트북도 없는데.”

자조적으로 말하며 터덜터덜 걸었다. 그는 열심히 모아놓은 자신의 컬렉션이 그리웠다. 아마존 탐험가들의 용감한 이야기를 다시 보고 싶었다. 한정판 블루레이를 틀어놓고 팝콘을 먹으며 시간을 때우고 싶었다.

걷던 해진이 멈춰 서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은 카드가 시야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저걸로 사면 되겠네. 절판된 건 구하기 어렵겠지만, 아무리 희귀해도 돈이면 될 것이다. 고민이 해결되었다.

좀 더 가벼워진 걸음으로 침실 쪽을 향했다. 작은 몸집에 지나치게 큰 가운이 무겁게 너풀거렸다.

“강해진 씨.”

등 뒤로 좀 묵직한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해진은 다시 뒤돌았다.

“도망칠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환의 말에 다시 마음이 쑤셨지만 내색 않고 돌아섰다.

침실로 들어가 어둑한 침대에 몸을 구겨 넣자 서러움이 더 짙어졌다. 그래도 몸 괜찮냐고, 한 마디 정도는 물어봐 줄 줄 알았는데.

“……나쁜 놈.”

그래, 나쁜 놈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돈이나 펑펑 써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웅크리고 또 웅크렸지만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 2권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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