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9퍼센트의 연인 1-1화 (1/16)

99.99퍼센트의 연인 1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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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손에 든 종이를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앞에 적힌 이야기는 안 읽어도 뻔하다. 외울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이미 이 짓거리를 백 번도 넘게 했으니까.

그 말인즉, 백 명이 넘는 자와 테스트를 해보아도 만족할 만한 수치를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남자의 시선이 정확한 위치를 찾아 내려갔다. 적힌 숫자를 읽는다.

「2%」

커다란 손안에서 종이가 구겨졌다. 눈치를 보던 박 비서가 조심스레 상체를 들이민다.

“전무님, 자꾸 낮은 수치가 나오다 보니 테스트 진행한 회사에서도 조금 여유를 두고 진행하는 게 어떠냐고 의견을 보냈습니다.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회사 바꾸고, 오메가 샘플은 다시 찾으십시오.”

더 말해보았자 소용이 없을 터다. 박 비서는 자세를 바로 한 뒤, 허리를 숙여 보이고 돌아서서 나갔다.

남자는 구겨진 종이를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흐트러진 넥타이를 손으로 고치며 사무실 한쪽 전면창을 향해 섰다. 검은 야경에 제 모습이 비쳤다.

문득 그는 다시 돌아서서 바닥에 떨어진 종이에 눈길을 주었다. 구겨진 종이 맨 위에 적힌 커다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매칭 테스트 결과」

* * *

「테스트 결과: 당신은 용감한 탐험가!」

화면에 뜬 글자를 보자마자 기분 좋아진 해진이 작게 소리 내어서 헤헤, 웃었다. 역시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테스트다. 굉장히 공신력이 있나 보지.

홈페이지에 덕지덕지 뜬 광고들을 하나씩 닫으며 해진은 그 뒤에 있는 남은 글자들을 마저 읽었다. 테스트가 추천하는 그의 직업은 전문 산악인, 오지탐험가, 생물학자, 구조사람 등이 있었다. 구조사람은 아마 구조요원을 잘못 번역한 것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모두 마음에 들었다.

「당신은 그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탐험을 적극적으로 즐깁니다. 오지로 떠나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즐겨보세요.」

해진은 정말로 오지로 떠나기라도 한 것처럼, 손에 채집용 나이프를 들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씩씩하게 주먹을 꾹 쥐었다. 아마존이나 로키산맥을 거침없이 누비는 제 모습을 상상하자 심장이 뛰었다.

“강해진 씨, 보고서 마무리됐어?”

민 팀장의 물음에 해진은 주먹을 쥔 채로 파티션 너머를 올려다보았다. 민 팀장이 그의 주먹과 조금 상기된 얼굴을 보더니 픽 웃었다.

“네. 어, 얼른 드릴게요.”

대답하고서야 해진은 주먹을 내렸다. 인터넷 창도 내렸다. 깨끗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다시 꼼꼼하게 눈으로 훑었다. 칸 하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민 팀장에게 발송했다.

의자에 몸을 기댄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아마존도, 로키산맥도 갈 수 없으리란 사실은 누구보다 해진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 데다 선천적으로 뼈와 심장이 약한 그는 결코 오지에서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강해진’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는 약한 몸으로 늘 고생했다.

강해진은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그해 말에 오메가로 발현했다.

오메가마다 히트사이클 스타일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해진은 특히 그 증세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고작해야 열이 조금 나고 아랫배가 당기는 것이 전부였다. 덕분에 그 흔한 억제제 한 번 먹은 적이 없었다. 가뜩이나 지병이 많은 그로서는 다행인 일이다.

매칭률이 높은 알파를 만나면 히트사이클 증상도 달라진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야 딱히 근거도 없이 오메가들 사이에서 떠도는 게 전부라 해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형질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에는 히트사이클과 러트의 증세를 구분해 열성과 우성으로 나누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알파와 오메가의 매칭률이라는 것을 발견한 뒤부터 우성학은 사라졌다. 중요한 건 증세가 아니라 매칭률이니까.

‘알파와 오메가의 매칭률이 높을수록 건강한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해진은 아직 매칭률 테스트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오메가였다.

점심시간에 회사 건물 밖은 제법 붐빈다. 잘 관리된 조경수 사이로 놓인 벤치는 사람으로 꽉 차고 1층 카페도 줄을 서야 주문할 수 있다.

“내일이지? 출장.”

카페 야외석에서 팀원들과 목을 축이던 중, 민 팀장이 해진에게 물었다. 해진이 빨대를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이구, 우리 신입이 이제 다 커서 출장까지 가네.”

한 주임의 말에 해진이 발끈하였다.

“저 이제 신입 아니에요. 다음 달에는 제 후임도 들어올 거거든요.”

“으응, 그래, 그래.”

이번에는 민 팀장이 그를 아이 어르듯 얼러준다. 해진은 다짐했다. 후임이 들어오면 꼭 선배처럼 행동해야지. 그러면 한 주임님도, 민 팀장님도 나를 애처럼 대하지 않으실 거야.

워낙 유순하고 조곤조곤한 성격 덕분에 해진은 회사에서도 이리 예쁨을 받았다. 특히나 체구가 작아서 더더욱 사람들이 쉽게 보는 탓도 있었다.

해진은 제 성격이 싫지 않았다. 좀 마르고 선이 가느다란 편인 얼굴도 딱히 싫지 않았다. 그러나 제 작은 체구는 싫었다. 해진은 좀 더 단단한 몸을 갖고 싶었다. 어딘가 험한 산골에 내던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몸.

‘다음 생에는 천재 산악대원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종교도 없는 해진이지만 오지탐험을 하고 싶을 때마다 그렇게 빌곤 했다.

그는 한국에서 제법 큰 여행사인 ‘마루투어’의 기획팀에 다니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여행사 기획팀에 취직하게 된 것도 제 바람 때문이다. 여행 상품을 만들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몸이 튼튼해지면 꼭 내가 가야지, 생각하면서 일하면 기분도 좋았다. 일의 능률도 오르고 말이다.

이번 출장은 그런 면에서 좀 시시하긴 했다. 팀에서 기획한 상품의 리조트에 가서 1박을 묵으며 시설이나 서비스를 조율하는 것이니.

“이참에 호캉스 한다 생각하고 편하게 갔다 와. 알았지?”

“호캉스라뇨. 노는 게 아니라 꼼꼼하게 상품 확인하고 체크하는 엄연한 업무인데요.”

해진이 또박또박 말하자 민 팀장이 두 손을 기도하듯 맞잡았다. 감동하는 표정마저 지어 보였다. 한 주임도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해진이. 야무진 것 봐.”

해진은 제게 잘 대해주는 상사들을 위해서라도 처음으로 혼자 가는 출장을 꼭 완벽하게 해내리라 다짐했다.

* * *

리조트에 도착한 해진은 꼼꼼하게 프로그램 동선부터 확인했다. 수영장과 기타 부대시설이 깨끗하게 관리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였다. 방문객을 위한 시설들에 부족한 면은 없는지, 관리자는 누구인지도 모두 묻고 확인한 뒤 메모했다. 보고서로 정리해서 깔끔하게 올리려면 직원을 귀찮게 해서라도 빠지는 것 없이 체크해야 한다.

해진은 직원에게 양해를 구한 뒤 보란 듯이 휴대폰을 들고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협력사의 출장이 있는 날만 깨끗하게 관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을 끝낸 뒤에는 빳빳한 클립보드에 끼운 서류를 펜과 함께 담당자에게 내밀었다.

“여기 사인 부탁드립니다. 혹시라도 변동 사항 생기면 바로 말씀 부탁드려요. 세부 협의 사항은 월말에 저희 측에서 연락드릴 예정입니다.”

또박또박한 말투로 차분히 말한 뒤 사인한 서류를 돌려받으면서 ‘사원 강해진’이라고 적힌 명함을 내미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도.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숙소는 으리으리한 스위트룸이었다. 해진은 속으로 회사에 감사 인사를 했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호화로운 곳에서 머물겠어.

도착하자마자 내내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던 탓에 일단 가방을 내려놓고 약통을 꺼냈다. 늘 먹는 일곱 가지 영양제 및 지병 약이 가지런히 든 약통을 눈에 띄는 곳에 놔둔 뒤 베드벤치에 털썩 앉았다. 맞은편에 놓인 매끈한 장롱 문에 제 모습이 비쳤다. 작은 체구에 볼품없는 정장. 길이 줄이는 걸 잊어서 손등을 덮을 정도로 긴 재킷 소매.

그러나 해진은 주눅 들지 않고 발딱 일어났다.

“객실 시설 체크해야지!”

욕실과 드레스룸의 상태, 카펫과 창문의 청결함, 침대 시트와 토퍼의 탄성까지 모두 메모를 하고서야 해진은 침대 위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하고는 싶은데 사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고, 어릴 때부터 병원 신세나 방구석 신세가 전부였던 해진은 노는 법도 몰랐다.

하지만 당장 억울하다거나 슬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좀 아까울 뿐이지.

해진의 입술이 크게 벌어지며 하품을 뱉었다.

“아으, 피곤해…….”

차도 없이 여기까지 버스며 택시를 타고 온데다가 오자마자 일을 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결국 해진은 광란의 밤을 보내는 대신 잠깐 잠을 자기로 했다. 이곳 침대 토퍼가 꽤 마음에 든다는 게 그에게 위안이 되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저녁에는 1층에 딸린 식당에서 뷔페를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꼼꼼하게 메모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세 접시나 해치워서 볼록해진 배를 문지르며 객실에 올라가서는 어메니티를 모조리 써보겠다는 각오로 거품목욕을 두 시간 동안이나 했다. 결국 현기증에 휘청거리긴 했지만 향기 덕분에 기분은 좋았다.

욕조 물을 빼고 몸을 헹군 뒤 머리를 말리던 중, 해진은 문득 욕조 귀퉁이에 놔두었던 렌즈통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이제 보니 빈 렌즈통은 욕조 개수대 근처에 뒤집혀 있고, 안에 들어 있던 렌즈는 온데간데없었다. 물을 빼면서 휩쓸려 내려간 모양이었다.

“여분도 안 가져왔는데!”

해진은 눈이 나쁜 편이라 렌즈가 없으면 사람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혹시나 싶어 안경을 가져왔다는 점과, 중요한 체크는 다 끝났단 점이었다. 어차피 서울까지는 셔틀버스가 데려다주고, 서울 도착하자마자 새 렌즈를 사면 문제는 없을 터다.

다음 날 아침에는 리조트 측 담당자를 만나서 추가적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들을 체크하고, 민 팀장님과 통화도 했다. 민 팀장은 어디 물가에 애라도 보내 놓은 것처럼 해진을 걱정했다. 회사에 청구하면 되니까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오라는 말까지 했다. 그럴 수는 없기에 정중하게 거절하고, 셔틀버스로 서울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택시를 타겠다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가려던 해진은 로비의 소란을 보고 멈춰 섰다. 누군가 로비 데스크 앞에 서 있는데, 직원이 무슨 연유인지 쩔쩔매고 있는 게 아닌가. 해진은 캐리어를 고쳐 쥐고 소란이 이는 쪽으로 걸어갔다.

“교육을 정식 이수했는데도 그 모양입니까? 매뉴얼을 안 외운 겁니까, 알고도 대처를 안 하는 겁니까.”

“저, 그게…….”

“그 유니폼, 오늘 중으로 벗고 싶습니까? 일이 장난입니까?”

교육 어쩌고 매뉴얼 어쩌고 하는 말을 들으니 남자가 진상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직원은 젊은 여성인데 벌벌 떠느라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남자는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본래 작은 체구인 해진과는 키만 해도 거의 머리통 하나 이상 차이가 나 보였다.

그럼에도 해진은 가까이 다가가서 캐리어 손잡이를 탁! 소리 나게 내렸다.

“저기요.”

남자의 시선이 해진을 향했다.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의 눈매가 눈에 띄게 날카로워졌단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해진은 물러서지 않고 외려 한 걸음을 더 가까이 다가섰다.

“클레임을 거실 거라면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피해를 봤는지, 피해를 입은 때는 언제이며 어떤 식의 보상을 원하는지 말씀하셔야죠. 남의 업장에서 남의 직원에게 해고를 운운하시면 협박밖에 되지 않습니다.”

남자의 반듯한 눈썹이 한 번 꿈틀거렸다.

“남의 직원?”

듣는 사람의 가슴을 긁어내는 듯한 목소리였다. 눈이 잘 안 보여서일까. 저음으로 한 번 물었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숨이 턱 막힐 정도였으나 해진은 떨리는 것을 꾹 참고 주먹을 쥐었다.

“진상 부리지 마시고 이만하십시오. 엄연한 영업방해입니다.”

“진상?”

남자는 아주 단단히 화가 난 듯이 보였다. 해진은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감추려고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 진상을 부리는 놈이 잘못한 거지. 흐릿하게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일부러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쐐기 박듯 말했다.

“멀쩡하게 생기셔서 왜 그러세요.”

직원은 발을 동동 구르며 해진과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혹여 이번 일로 사달이 날까 겁이 나는 눈치였다. 해진은 직원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사과하시죠.”

“저, 고객님, 그게 아니라요…….”

두려워하는 직원에게 손을 뻗어 진정시켰다.

“괜찮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니, 정말, 그게 아니라요, 고객님…….”

이번에는 옆에서 다른 고객을 상대하던 직원까지 나서려 한다. 해진은 제 앞에 선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더럽게 무서워 보이긴 하지만 제 당당한 모습에 당황했는지 이번에는 별말이 없다. 그래, 할 말이 없기도 하겠지. 진상 놈아.

“잘 들으세요, 또 이렇게 행패를…….”

말을 이으려던 해진은 바깥을 보고 뚝 입을 다물었다. 호텔 건물 밖으로 버스가 막 도착하고 있었다. 저거 타야 하는데!

“안 돼! 버스!”

해진은 그대로 캐리어를 끌고 달렸다. 그의 몸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를 연달아 냈으나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놓치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진상 놈과 상대하느라 괜히 시간을 허비했다.

버스에 올라탄 해진은 출발하고 한참 지나서야 소지품 중 하나를 놓고 온 것을 깨달았다.

‘손거울……. 엄마 건데.’

도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일단 회사 복귀해서 리조트에 전화를 해야 할 터다. 주머니가 어쩐지 허전했다.

반면 호텔 로비의 직원들은 해진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쩔쩔매는 중이었다. 프런트 앞에 선 남자는 해진이 떠난 문 쪽을 빤히 바라보다가, 기척이 사라지고서도 한참 지나서야 직원들을 다시 마주했다.

그의 시선이 닿자마자 직원들이 움츠러들었다. 좀 전까지 남자가 그들에게 보인 행동 때문이 아니다. 남자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다.

“매니저 복귀하는 대로 대응 매뉴얼 다시 교육 요청하십시오.”

“네, 전무님.”

직원들이 죄지은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리고, 남자는 돌아서서 로비를 걸으며 해진의 시선이 닿았던 재킷을 벗었다. 불쾌하다는 투로, 꼭 쓰레기를 치우듯이 옆으로 내밀자 뒤늦게 달려온 사내 하나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전무님, 차 대기 중입니다.”

사내가 재킷을 접어 들며 말했다. 로비 위를 경쾌하게 걷던 구둣발이 돌연 뚝 멈추었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직원들이 지레 겁을 먹었으나 남자의 시선은 제 직원들이 아닌, 해진이 서 있던 지점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냄새지?’

매끈하던 미간이 구겨졌다. 아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불쾌감이 얼굴에 떠오른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았으나 미미하게 느껴지던 향은 다시 맡을 수 없었다.

남자는 해진이 서 있던 곳을 응시했다. 바닥에 낡은 손거울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 * *

- ‘키스틸’의 이환 전무 측은 오늘 오전, 사임설을 전면 부인하였으며 이환 전무의 조모인 유창숙 회장과의 불화설 역시 부인했습니다.

환은 잔뜩 신경이 곤두선 채로 TV를 껐다. 빌어먹을. 욕을 나지막이 씹으며 넥타이를 늘렸다. 가뜩이나 화가 나는데 카펫은 또 엉망이다. 전화기 옆의 벨을 누르자 박 비서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전무님, 부르셨습…….”

“당장 여기 치우십시오.”

박 비서는 그가 말하는 ‘여기’가 어디인지 선뜻 찾아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눈에는 전무실이 완벽해 보였으니까. 책상 위의 필기구와 서류는 한 치 오차 없이 정갈하게 정렬되어 있고, 커튼은 엊그제 빨게 시켰으며, 창틀, 창문, 책꽂이까지 깨끗하게 닦는 것을 분명 직접 감독했다. 그럼 이번엔 또 뭐 때문에 지랄일까.

“뭐 합니까?”

환이 날을 세우며 물었다. 박 비서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엎드렸다. 어떻게든 더러운 곳을 찾아내야 한다. 카펫 위에 뺨을 대고 살피자 다행히 머리카락 한 가닥이 보인다. 제 상사는 저 한 가닥 때문에 저 지랄을 하는 거다. 얼른 기어가 주웠다.

“제가 요즘 눈이 잘 안 보여서…….”

멋쩍은 투로 웃곤 머리카락을 휴지통에 버렸다. 돌아서려던 박 비서는 이환 전무가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잠깐 멈춰 섰다. 얼핏 보니 뒤판이 나무로 된 손거울 같다. 이환 전무가 갖고 다니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게 뭡니까?”

조심스레 묻자 이유는 몰라도 이환 전무의 얼굴이 구겨진다. 살벌한 기세에 박 비서는 다시 눈치를 보다가 적당히 뒤돌아 나간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환은 책상 위에 손거울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곤 길게 한숨을 뱉었다.

자리에 앉으려던 그는 책상 한쪽에 놓인 검사지를 보고 멈칫했다. 미간이 사납게 구겨진다.

“갖다 버리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종이를 꺼내 바닥으로 내던졌다. 벌어진 종이에 적힌 퍼센티지를 보니 또 한숨이 난다. 고작 2%의 매칭률이라니.

이환은 알파였다. 그리고 그는 끝도 없이 오메가와의 매칭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이상하게도 오메가와 매칭률 테스트를 할 때마다 낮은 수치만 나왔다. 보통은 30~45%가 평균치라던데, 그는 어떤 오메가와 테스트를 해도 3% 초반이 최대치였다. 하다못해 10%만 되어도 그 오메가를 선택할 텐데.

물론 여기서 ‘선택’이란 ‘생식’을 뜻한다. 오메가와 섹스해서 아이를 낳는 일 말이다.

환은 의자에 몸을 깊이 묻고 앉았다. 전무실 창밖으로 햇빛이 부드럽게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알파라는 사실은 곧 생식에 특화된 종족이란 뜻이다. 그러나 아이는 딱 질색이다. 어느 정도로 질색이냐 하면 어릴 적의 제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조차 싫었다.

아이는 더럽다. 침도 흘리고, 먹을 것도 흘리고, 변도 가리지 못하잖은가. 이환은 더러운 것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반드시 사무실 청소를 시키고, 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치가 떨린다.

그런데도 그가 끝없이 오메가를 찾아 아이를 낳으려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바로 상속 조건 때문이다.

대기업 ‘키스틸’의 레저 쪽은 그가 실질적으로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리조트와 부산에 있는 호텔, 카지노까지 모두 제 손아귀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키스틸의 극히 일부분이었다.

회장 유창숙, 그의 조모는 환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부터 그를 키웠다. 환은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서 경영학을 배웠다.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 부족한 그가 엉덩이를 뗄 때마다 조모는 직접 매질을 했다.

크고 나면 당연히 키스틸 그룹이 제 것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유학을 전전하고 어린 나이에 군대를 전역한 뒤 그가 입사한 곳은 키스틸의 생산 라인 쪽, 그것도 일용직이었다.

‘컨테이너에서 단순 작업을 시키실 거면 왜 저를 유학 보내셨습니까? 왜 제게 경영을 가르치셨습니까?’

반발하는 그에게 유창숙 회장은 혀를 차며 대답했다.

‘이 배은망덕한 애새끼야, 내 돈 한 푼이라도 받고 싶으면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정말 친조모가 맞을까, 의심마저 들었다.

그날부터 이환은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일했다. 피로에 찌든 채로 귀가한 곳은 집도 아니었다. 경기도 변두리의 오피스텔이었다. 조모가 그를 집에서 내쫓았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일할 거면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나.

‘너는 참을성이 부족한 게 문제다.’

조모는 언제나 그의 성급한 성미를 꾸짖었다. 그러나 타고난 성격이 그렇게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느린 것을 싫어했고, 갑갑한 것은 더 질색이었다. 그래도 꾹 참았다. 그래야 키스틸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조모가 그랬으니까.

어쨌거나 이환은 그렇게 죽어라 일해서 이 자리까지 올랐다. 참을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가 여태까지 버틴 것만 해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한계에 가까웠다. 물론 삼십 대에 전무직까지 꿰찼으니 조모의 입김이 한껏 묻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는 남들처럼 고생하지 않아도 되겠지, 생각할 때에 조모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애를 낳아라.’

먹던 차를 뿜을 뻔한 이환은 애써 표정을 수습했다.

‘저는 오메가가 아니라 알파입니다, 회장님.’

‘그래. 오메가를 데려와서 애를 낳으라고.’

‘대체 왜…….’

조모는 늘 그렇듯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을 하고, 남을 보듯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가정을 만들고 아이를 낳으면 내 재산을 물려주마.’

입이 떡 벌어졌다. 이환은 애써 웃었다.

‘……아이가 필요하신 거면 보육원을 찾아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네 씨로 낳아서, 네가 키워라. 그 오메가도 내게 데려오고.’

‘대체 이유가 뭡니까!’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네 가정을 만들고 지켜 보여라. 가정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회사 식구 십만 명을 어떻게 먹여 살릴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었다. 제게 대체 왜 이러시느냐며 다과상을 엎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착한 손자답게 경련하는 입꼬리를 한껏 더 끌어 올렸다.

‘손주가 그렇게 보고 싶으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닥치는 대로 매칭률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 빌어먹을 성격 때문인지 지나치게 우월한 유전자 때문인지 매칭률은 2~3%를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알파와 오메가의 매칭률이 높을수록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2~3%는 임신 자체가 힘든 확률이다.

그의 생식 기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침마다 흉흉하게 일어서는 성기는 당장 씨를 뿌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검사 결과, 정자도 팔팔하다고 했다.

아, 물론 직접 섹스를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럽기는 했다. 타인과 한 침대에서 타액과 체액을 섞으며 뒹굴다니.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군.’

그가 의자에 앉은 채로 진저리를 쳤다. 남과 같은 침대에서 뒹굴고 살을 맞대는 생각만 해도 병이 옮을 것 같았다. 괜히 찝찝해져서 항균 물티슈를 뽑아 손을 한 번 더 닦았다.

‘할멈에게 아이를 안겨주고 이 회사를 모두 가질 수 있다면야, 못 할 건 없지. 하지만…… 시험관 아기 쪽도 생각해보아야겠군.’

물티슈를 뭉쳐 휴지통 쪽으로 던지던 중, 그의 시선이 문득 책상 위에 놓인 손거울을 향했다. 반들반들하게 닳아서 낡은 이 손거울도 분명히 세균 덩어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진상 부리지 마시고 이만하십시오. 멀쩡하게 생기셔서 왜 그러세요.’

체구가 자그마한 그 남자는 제가 리조트의 실질적 주인인 줄도 모르고 그리 말했다. 겁을 먹었을 텐데 눈을 땡그랗게 뜨고 진상 운운하던 고 얼굴이 이상하게 자꾸 떠올랐다.

이 손거울은 분명히 그 남자의 것이다. 그가 급하게 호텔 로비를 뛰어나갈 때 떨어진 것을 환이 주웠다.

평소라면 세균이 덕지덕지 묻었을 남의 물건을 집지도 않았을 테고, 행여 줍는다 해도 분실물은 직원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두었을 텐데 그러는 대신 제 주머니에 넣었다. 환은 아직도 제 충동적인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뒷면이 반들반들하게 닳은 거울을 뒤집자 제 얼굴이 비쳤다. 매끈하게 빗어 넘긴 포마드 헤어, 검은 눈동자, 무표정할 때는 날이 선 듯 보이는 눈빛, 창백한 피부. 그는 제 얼굴을 남의 얼굴 보듯 하다가 시선을 떼었다.

언론에서야 이환 전무의 외모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어 환장하지만, 위압적인 눈빛 탓에 아무리 봐도 제 얼굴은 딱히 편안함을 느낄 만한 모양새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 될 건 없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오메가와 연애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편하게 해줄 마음도 없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아이밖에 없었다.

손거울을 도로 내려놓으려던 그는 문득 코끝에 스치는 어떤 향을 맡았다. 설마. 반신반의하며 손거울을 코로 가져갔다. 깊게 들이마시자 나무 냄새 사이로 낯선 향이 났다. 그의 냄새는 아니었다. 달큼한 이 딸기 향은 저와 천만 광년쯤 거리가 있는 향이었다.

퍼뜩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에 환은 전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 예…… 또 왜 그러십니까, 전무님.

지친 기색이 역력한 박 비서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으로 울린다.

“지난주 목요일에 키스틸 리조트 호텔에 다녀간 투숙객 중 남성 오메가, 모두 조사해주십시오.”

- 남성 오메가요?

되묻는 목소리에 짜증을 꾹 억누르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늘 그렇듯이 환은 제 할 말을 이었다.

“그중 체구가 작고 흰 피부에 동그란 눈을 가진 사람이 분실물 문의를 했을 겁니다. 분실물은 손거울.”

환의 시선이 다시 책상 위 손거울로 향했다. 뒤에 댄 나무판이 반들반들하게 닳은 것을 보니 주인이 얼마나 이것을 아꼈는지 짐작이 되었다.

“DNA 샘플을 어디서 어떻게 구하든 상관없습니다.”

예감이니 느낌이니 하는 소리를 전혀 믿지 않는 환이지만, 이번엔 믿어도 될 것 같았다.

“그 남자와 매칭 테스트를 진행해주십시오.”

적어도 이번만큼은 말이다.

* * *

“없다니요? 분명히 그날 객실에 두고 갔습니다.”

해진은 휴대폰을 반대쪽 손으로 바꿔 쥐었다.

- 저희가 여러 번 찾아보았습니다만, 손거울은 없었습니다.

분명 그날 손거울을 객실에 두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리조트 측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한다. 그럼 대체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기억을 되짚던 해진은 문득 그날 보았던, 로비에 서 있던 덩치 큰 남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기억 속에 어떤 낯선 향이 끼어들었다.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던 묘한 냄새.

해진은 기억을 떨치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세요.”

한 마디를 덧붙였으나 정말 그곳에 손거울이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시 모니터를 마주했다. 이상하게도 그날 보았던 남자의 흐릿한 얼굴이 또 떠올랐다.

‘분명히 그 남자한테서 무슨 향이 났는데…….’

향수 냄새나 보통 사람의 체취와는 묘하게 다른 향이 났었다. 뭐였을까. 왜 기억나는지 알 수 없으나 해진은 저도 모르게 기억 속의 향을 다시 맡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다. 그리고 이내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며 두 손으로 양쪽 뺨을 찰싹찰싹 쳤다. 손거울을 잃어버렸단 생각이 다시 들자 서러움이 솟았다.

“도대체 어디 놔둔 거야…….”

뒤판이 나무로 된, 오래된 티가 날 정도로 낡고 손때가 반들반들하게 탄 손거울은 엄마한테서 받은 유일한 유품이었다. 그런데 그걸 잃어버리다니.

꼼꼼한 성격 탓에 뭔가를 잃어버린 적이 드문 그였다. 지갑이나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도, 심지어 비 오는 날에 우산을 놔두고 간 적도 없었다. 제 몫은 제가 챙겨야 살 수 있단 사실은 어릴 때부터 알았다. 급식에 나온 소시지를 친구에게 하나 더 양보해줄지언정 모르는 새 뺏기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유독 정신이 없었다. 출장이 처음도 아니고 일도 평소처럼 했는데, 이상하게도 렌즈를 잃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제게 제일 중요한 물건인 어머니 유품까지 잃어버렸다. 해진은 울고 싶었다. 또 오랜만에 편두통이 일 것 같았다. 늘 위염을 달고 사는지라 배도 아리고, 식도염이 도지는지 속도 울렁거렸다.

“일하자…….”

혼잣말하며 마우스를 쥐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 모니터에 뜬 보고서에 글자를 입력해 넣었다.

그날 오후였다. 점심 먹는 내내 팀원들은 막내의 표정이 안 좋아 보인다는 사실에 깊은 우려를 표했고, 식당을 나와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해진은 초콜릿이며 음료 등을 잔뜩 받았다. ‘먹고 힘내!’, ‘내가 대신 찾아줄까?’ 하는 팀원들의 걱정에 누를 끼치기 싫어서 해진은 그저 괜찮다며 웃어 보여야 했다.

그리고 오후 업무를 처리하던 중,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 안녕하십니까, 강해진 씨.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에 깨끗한 목소리. 꼭 배우처럼 깊은 울림을 가진 음색을 듣자마자 해진은 잠깐 굳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 같은데.

“예, 누구십니까?”

- 강해진 씨의 잃어버린 소지품을 제가 갖고 있습니다.

뒤이은 말에 해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팀원들의 시선에 애써 웃어주곤 휴대폰을 쥐고 얼른 복도로 나왔다.

“제 소지품이요? 혹시 손거울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말요?”

- 그래요.

반가움에 다다다 묻자 살짝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한다. 목소리가…… 정말 끝내주게 좋다, 고 해진은 생각했다.

- 시간, 언제 됩니까? 장소를 정해주시면 제가 찾아가죠.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스케줄을 되새기던 해진은 뒤늦게 이상함을 느꼈다. 회사 번호도 아니고, 이건 개인 휴대폰인데. 리조트에서 연락처를 받았더라면 회사로 전화를 줬겠지.

“저, 그런데 말씀하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누구신지, 어떻게 제 번호를 아셨는지 말씀해주셔야 제가 그쪽을 믿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작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약간 권태로운 듯한 목소리.

- 저는 키스틸 레저의 전무 이환입니다.

이환? 그 이환? 해진의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 리조트에서 강해진 씨가 다녀가신 걸 알고 회사 쪽으로 개인 연락처를 문의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시원시원한 어조다. 해진은 땡그래진 눈을 깜박, 깜박 하며 복도 맨 끝에 위치한 창가에 기대어 섰다. 여름을 맞은 이팝나무에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해진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왜 굳이……. 회사로 전화 주셔도 되셨을 텐데요. 아, 저, 기분 나쁘단 뜻은 아니에요. 그저 좀 의외라서요.”

-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습니다.

키스틸은 해진이 일하는 여행사의 모체 격 회사이며, 전무 이환은 연예인만큼이나 인기가 많은 남자다. 그런 사람이 왜 제게 따로 만나자고 하는 걸까. 할 말은 뭘까. 설마……. 갈팡질팡 표정이 오가던 해진의 얼굴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나 승진시켜주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갑자기 전무의 눈에 들었다거나. 우연히 그가 올린 보고서를 읽고 이 천재는 누구냐며 수소문을 했다거나. 온갖 상상이 펼쳐져 해진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가볍게 가로젓고는 겨우 진정했다.

- 강해진 씨?

“아, 네, 네!”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대답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해진의 귀가 간질간질해졌다.

- 직접 개인적으로 만나서 돌려드리고 싶군요. 저는 언제든 괜찮으니 강해진 씨가 편하신 시간을 알려주십시오.

상대방이 눈앞에 있지 않은 것을 잊기라도 한 듯, 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제가 이 번호로 메시지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서야 터질 것 같은 가슴을 크게 들썩거리며 휴우, 숨을 내뱉었다. 꽃잎 하나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 들어와 창틀을 쥔 해진의 손등 위에 안착했다. 해진은 어디선가 위스키 향이 나는 것을 문득 깨닫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금세 향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각, 전화를 끊은 환은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느긋이 기대었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평소라면 박 비서에게 소리를 질렀을 텐데, 이 식어빠진 커피도 오늘은 희한하게 맛이 있었다.

환은 급기야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씨익, 틀어 올려 웃었다. 누가 본다면 사람 하나 잡고 기뻐하는 사이코패스의 웃음 같았으나 그는 지금 진심으로 기뻐하는 중이었다.

“시간?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놓인 강해진의 손거울과 그 옆에 놓인 검사지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확률은 나올 수가 없거든.”

검사지를 들추어 나온 확률을 다시 보자 그의 입꼬리가 한껏 더 올라갔다.

「99.99%」

이환 전무와 만나는 날, 해진은 최대한 단정하게 입고 나갔다. 좀 김칫국 같긴 하지만, 혹시라도 면접 자리가 될 수도 있으니 정장을 다 차려입고 나갈까, 하다가 그건 좀 오버 같아서 와이셔츠에 넥타이는 빼고, 정장 바지 대신 일자핏의 청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수려한 외모의 남자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다가가려던 해진은 문득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라? 혹시 저 사람…….’

분명히 매스컴에서 몇 번 보았던 ‘키스틸 이환 전무’의 모습인데, 이상하게 익숙했다. 바로 며칠 전에 호텔 로비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남자.

“아.”

그 진상이 저를 발견하곤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강해진 씨.”

해진은 제 머리를 콩콩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바보 같은 해진! 그날 알아봤어야지! 아무리 렌즈를 안 꼈어도 그렇지, 어떻게 저 얼굴을 못 알아봤을까?

“또 뵙네요.”

그가, 리조트 호텔에서 보았던 진상이, 이환 전무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한다. 느긋하다 못해 나른해 보이는 동작이었으나 해진은 숨이 턱턱 막혔다.

테이블 위를 한 번 턱으로 가리켜 보이는 동작에 해진은 우물쭈물하며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제,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날 렌즈를 잃어버려서 얼굴도 못 알아뵙고!”

테이블에 코를 박을 것처럼 허리를 숙이자 낮은 웃음소리가 정수리 위에서 들린다.

“괜찮습니다. 오해하실 만합니다. 제가 직원 교육에 엄격한 편이라.”

“네에…….”

해진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진상 같으셨어요. 깜빡 오해했지 뭐예요?”

환의 얼굴이 문득 굳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하하, 소리를 내어 어색하게 웃었다. 그저 진상을 부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냥 좀 무서운 상사님일 뿐이구나. 그러나 그날 보았던 얼굴과는 달리, 오늘은 어째 정말 다정해 보인다.

“식사하셨습니까? 여기 음식이 제법 괜찮습니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같이 드시죠.”

“네, 좋아요.”

해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정하게 눈을 휘며 웃는 그를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알파라는 사실은 식사를 시작하고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알파에게서 흔히 느껴지는 위압감이나 오만함이 그에게서는 보이질 않았다.

이환 전무는 그 외모만큼이나 젠틀했다. 식사하는 내내 해진이 어색하지 않도록 가벼운 농담도 던지고 편하게 대해주었다. 한 회사의 전무라기보다는 평범한, 아니, 좀 잘생긴 알파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해진이 감동한 부분은 이환 전무가 제 능력을 알아봐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그 패키지를 강해진 씨가 기획했단 말씀입니까?”

“네. 저희 팀장님이 많이 도와주시긴 했지만…… 거의 다 제가 기획했어요.”

해진이 처음으로 맡아 기획한, 키스틸 리조트를 포함한 국내 여행 상품은 아주 인기가 많다. 출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여행사의 효자 상품이 될 거라는 말까지 오갔다. 이걸 기획하고 나서 인센티브도 꽤 많이 받았다.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켠 환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이런 인재를 만나다니, 영광입니다.”

해진이 쑥스럽게 웃었다.

“너무 추켜세우시면 저 부끄러워요.”

“그럴 만한 분이니까요. 입사하신 지 이제 2년 되신 평사원이 이런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소 날카로워 보이는, 가느다란 눈매가 휘어지며 웃음을 담아냈다. 그리고 해진은 문득 코끝에 스치는 향내를 맡을 수 있었다.

‘위스키 향…….’

살짝 스모키한 위스키 향은 분명 그날 리조트 호텔 로비에서 맡았던 그 냄새와 똑같았다.

‘이게 전무님의 알파 냄새구나.’

오메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 향을 흘려내는 솜씨가 대단했다. 꼭 유혹하는 수컷 새의 보드라운 깃털처럼, 살그머니 해진의 코끝을 스쳤다가 이내 사라진 향내에 해진은 갈증마저 느꼈다.

알파가 오메가에게 이렇게 향을 흘리는 것은 명백한 유혹이다. 경험 없는 해진이지만 그 정도는 알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시선을 떨구자 이환의 길게 뻗은 손가락이 보였다. 음식을 자르는 동작이 우아하다.

“제가 탐이 날 지경입니다.”

“탐이요?”

이환 전무는 고기 썰던 손을 잠시 멈추고 해진을 빤히 마주 보았다. 아까와는 또 다른 느낌의 뜨거운 눈빛이 해진을 부끄럽게 했다.

“강해진 씨가 탐이 난단 말입니다.”

“아, 하하…….”

뺨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라고 대답하지. 제가 일을 좀 잘하긴 하죠?

“강해진 씨와 만나게 될 알파는 운이 좋겠군요.”

가슴을 울리는 낮은 톤의 목소리로, 이환이 뒤이어서 말했다. 해진은 달아오른 얼굴을 보이기 부끄러워서 접시에 시선을 박은 채로 고기만 열심히 썰었다. 벌써 조각이 다섯 개나 쌓였지만 하나도 입에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데다가 능력까지 갖춘 짝이라니. 벌써 부럽습니다.”

가뜩이나 달아오른 얼굴이 더 붉어졌다. 해진은 어렵사리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삼킨 뒤, 입을 달싹였다. 제 입술에 이환 전무의 시선이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델 것처럼 뜨겁다.

“전무님이야말로 멋있으세요. 저도 전무님 같은 알파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비록 몸이 약하고 변변한 배경도 없는 오메가지만 말이다. 솔직하게 내뱉고 나니 어쩐지 속이 후련했다. 시선이 여전히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해진은 포크를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꽉 주었다.

이환 전무가 표정 없는 얼굴로 저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날 선 눈빛이 꼭… 잡아먹을 것처럼 사납다. 등줄기에 소름이 쭉 끼쳤다. 반사적인 공포가 해진을 얼어붙게 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 놀랍게도 이환 전무의 얼굴이 다시 온화하게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저를 삼켜버릴 듯하던 흉흉한 기세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뭐지?’

해진은 잠깐 어리둥절했으나, 저를 보고 다시 웃는 이환이 너무나도 근사했기에 잠깐 느낀 의아함마저 지워버렸다.

식사는 끝내주게 맛있었다. 가격이 걱정되긴 했지만 이환 전무가 계산하겠다기에 접시를 마저 깨끗이 비웠다.

밥을 먹은 뒤 해진은 늘 하던 대로 가방에서 약통을 꺼냈다. 매일 먹는 약과 영양제가 칸칸이 빽빽하게 들어찬 케이스를 보이기가 부끄러워 무릎에 놓고 살짝 뚜껑만 열어 약을 꺼내서 입에 밀어 넣었다.

‘나는 몸이 약해서 알파들이 싫어할 거야.’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같이 데이트를 해도 오랜 시간 산책을 하지 못하고, 같이 운동을 하거나 격한…… 애정 행각도 하기 힘드니까.

하지만 왜인지 이환 전무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매너 좋은 알파는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그래도 몸 약한 게 자랑도 아니니 해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후식으로 나온 콩포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였다. 이환 전무가 문득 생각난 듯 재킷 안주머니를 뒤지더니 손거울을 꺼내 내밀었다.

“돌려드리지요.”

해진이 두 손으로 손거울을 받아 들었다. 곧바로 주머니에 넣자 안정감이 찾아왔다. 늘 지니고 다니던 물건이었다. 엄마의 유품인 이것을 갖고 있으면 엄마의 바람처럼 튼튼하고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진에게는 일종의 토템 같은 것이었다.

다시 이환을 마주한 채, 조금 웃으며 고개를 한 번 까딱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드려야 할지…….”

“사실 보답을 바라고 돌려드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강해진 씨를 뵙고 나니 한 가지 바람이 생기기는 하는군요.”

아주 정중한 어조, 다정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해진의 얼굴을 조곤조곤 읽듯이 응시한다. 해진은 꼭 뭔가에 홀린 듯이 그의 눈을 마주 응시했다. 연갈색 눈동자를 마주하자 꼭 그에게서 탐색 당하는 것 같았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무슨 바람이요?”

“저랑 데이트를 해주십시오.”

“……네?”

콩포트를 퍼먹던 티스푼을 툭, 놓쳐버렸다. 환은 뺨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관자놀이를 살짝 긁는 동작에서 부끄러움이 묻어났다.

“이런 말 부끄럽지만, 워낙 바쁘다 보니 함께 밥 먹을 사람도 없습니다. 이젠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할 지경이고요. 하지만…….”

가느다란 눈매가 다시 해진을 향했다. 해진은 다시 그의 눈빛에 스친 살벌함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다시 사라지지 않았다.

해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잔을 가져와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이환 전무는 옷깃을 가다듬었다. 올블랙의 정장이 굉장히 그와 잘 어울린다고, 문득 해진은 생각했다.

“하지만 강해진 씨와는 이런 자리를 좀 더 갖고 싶군요.”

말과 함께 그의 눈빛이 좀 더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오메가를 사냥하는 알파의 눈빛이다. 먹이를 앞에 둔 채로 삼킬 시간만 재고 있는 맹수 같기도 하다.

다시 위스키 향이 났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짙었다. 그러나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저를 마주한 눈빛은 이토록 뜨겁고 적나라하게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데 말이다.

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실질적인 그룹 승계자라는, 끝내주게 잘생긴 데다가 피지컬까지 완벽한 이 알파가 왜 제게 호감을 표하는지 해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누가 잘해주면, 일단 받아먹고 그다음에 튀라고.

“강해진 씨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게 주시겠습니까?”

해진은 입을 작게 벌렸다가 닫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고개를 끄덕인 뒤였다.

집에 온 해진은 얼떨떨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강해진 씨와는 이런 자리를 좀 더 갖고 싶군요.’

키스틸 레저의 전무 이환에게서 밥을 얻어먹고, 심지어 데이트 신청까지 받았다. 방금 전까지의 일이 거짓말 같았다.

해진은 물론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평범한 회사원인 자신이 그와 엮이리라 생각해본 적도 당연히 없었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알파들 중에 짐승이나 매한가지인 놈들은 오메가와 억지로 관계를 맞으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환이 그런 놈일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젠틀하고 다정한 사람이…… 말도 안 되지.

‘알파가 오메가 좋아하고 오메가가 알파 좋아하는 거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상대방 향에 눈 돌아가서 들이대다가 눈도 맞고 배도 맞고 그러는 거야.’

언젠가 친구 윤경훈이 해진에게 그리 말한 적 있었다. 경험 없는 해진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더랬다.

물론 살면서 알파를 안 만나본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해진이 베타인 것처럼 행동했다. 체구도 작고 몸이 약한 남성체 오메가는 그들에게 성적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다시 말하자면, 해진에게 오메가 대 알파로 접근한 사람은 환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제 첫 연애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심장이 마구 뛰었다.

해진은 젖은 머리칼을 말리는 것도 잊고 침대에 엎드린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강해진입니다^^ 오늘 넘 반가웠어요^^ㅎㅎ]

메시지를 적던 해진은 그래도 상사나 다름없는 분인데(다른 회사긴 해도 어차피 협력사니까) 싶어서 적던 글자를 수정했다.

[강해진입니다. 오늘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편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너무 딱딱하다.

[강해진입니다. 오늘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편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

뒤에 이모티콘 하나를 붙이자 좀 적절한 것 같다. 그대로 전송 버튼을 누르고는 천장을 보고 누웠다.

답장이 오길 기다렸으나 밤이 늦을 때까지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해진은 휴대폰을 쥔 채 잠들었다.

이환 전무에게서 답장이 온 것은 다음 날 오전이었다.

[다음 만남 장소를 안내해 드립니다.

일시: 21일 저녁 7시

장소: BC호텔 1층 카페 비하인드]

메시지를 확인한 해진은 조금 놀랐다. 꼭 무슨 워크숍 안내 메시지 같은데. 발신자는 분명 이환이 맞았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셔서 그런가 봐.’

이 정도야 문제도 아니지. 사실 이환의 얼굴을 떠올리면 아무 문제가 생길 수가 없었다. 헤실헤실 웃으며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으나 영 집중이 되질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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