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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피폐물 악녀, 남주에게 찍혔다-122화 (완결) (122/122)
  • @122화

    익숙하고도 반가운 얼굴들을 쭉 둘러보며, 린느는 눈을 끔뻑거렸다. 단체로 오늘 화원에서 파티라도 열기로 한 걸까?? 린느는 온갖 추측과 함께 그의 팔뚝을 툭툭 잡아당겼다.

    “파티…… 해요?”

    “파티이긴 하지. 그대가 주인공이야.”

    참석한 이들이 기다렸단 듯 이 두 사람을 위해 길을 터 줬다. 그들은 손뼉을 치며 한마디씩 축복의 말을 얹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선명한 웃음이 가득해,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했다.

    밀러는 린느의 손을 꼭 잡고선 웨딩아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린느가 입꼬리를 선명하게 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이런 생각은 또 어떻게 하셨어요? 연애 안 해 봤다면서 이런 엉큼한 건 잘하구.”

    “서툴긴 해도 최선은 다하니까. 특히,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충 방법이 보이거든. 앞으로도 늘 노력할게. 부족하지만, 부족한 게 보일 틈 없이 노력할게.”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쪽 맞췄다. 여신께 올리는 입맞춤처럼, 그의 입맞춤에 주변 이들이 숨을 죽일 만큼 경건했다. 린느는 그에게 입맞춤을 받자마자, 웨딩아치를 향해 그를 끌어당겼다.

    “손뼉 치다가 손바닥에 불나겠어요. 우리 어서 웨딩아치로 가요.”

    그녀다운 해맑은 미소가 밀러의 미간을 좁혔다가 늘리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자신의 반려라는 게 가슴이 벅차, 눈이 시었으니. 밀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함께 웨딩아치에 나란히 섰다.

    싱그러운 초록색 잎과 새하얀 꽃들로 장식한 웨딩아치가 두 사람을 더욱 환하게 비춰 줬다. 이를 보며 하객들이 탄성을 흘렸다.

    “세상에, 마치 여신님 같지 않아요?”

    “난 오늘부터 개종할 거야. 우리 아가씨를 여신이라 생각할 거라구.”

    “주접은 이따 하렴. 쉿.”

    사용인들이 돌아가며 린느와 밀러의 칭찬을 입에 담았으나, 알렉스와 세르트 경은 나란히 서서 입술을 꾹 물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내 딸이 결혼이라니…….”

    “그러게요. 저희 각하께서 결혼이라니…….”

    “고생하셨습니다, 세르트 경.”

    “고생은 애커만 경께서 하셨지요. 우리 딸이 경을 얼마나 귀찮게 했는지 제가 다 압니다.”

    “큽, 그랬던 분이 저리 철이 드셨으니…….”

    알렉스는 손수건에 두 눈을 파묻고 소리 없이 울었다. 물론, 그들의 결혼식이 기뻐서.

    그때, 한쪽에 차려진 단상 위에서 악당의 연주가 시작됐다. 도입부를 듣자마자, 린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광장에서 들었던 노래, 맞죠?”

    “응. 그대가 좋아하는 악단에게 악보를 줬더니, 하루 만에 다 외웠다더군. 그대를 위한 노래야.”

    린느는 몸을 살짝 틀어, 연주자를 바라봤다. 시선이 닿자 그들은 아버지처럼 인자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 줘서 고마워요. 나 진짜 결혼 제대로 하는 거 같아. 행복해.”

    “결혼반지까지 끼고 나면 더 행복할 거야.”

    그는 준비된 반지를 린느의 약지에 천천히 끼워 줬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계속 약지를 만진다 했지. 린느는 울상을 지은 채로 반지를 내려다봤다. 보석의 크기가 곧, 사랑의 크기라는 말이 있던데.

    “밀러, 절 정말 사랑하는군요?”

    “집채만 한 걸 끼워 주고 싶은데, 끼고 다닐 수는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기엔, 보석의 크기는 밀러의 엄지손톱만큼 커다랬다. 묵직한 보석이 휘청거릴 만큼 크게 빛나, 하객으로 참석한 부인들의 턱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세상에. 제가 여태 본 결혼반지 중에서 제일 커요.”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무려 각하께서 식을 올리시는데?”

    “아휴, 만져나 보고 싶네요. 저렇게 큰 결혼반지라니…….”

    하객들은 탄성과 탄식을 동시에 뱉으며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밀러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더니 지그시, 린느를 바라봤다. 그가 그녀에게 폭 빠지게 만든 청록색 눈동자를 번갈아 맞췄고, 그다음은 그녀의 입술. 그는 입술에 시선을 고정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였다. 린느가 그의 옷깃을 잡아끌며 입을 맞춘 게.

    린느의 가느다란 두 팔이 밀러의 목을 감싸 안자, 밀러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자연스레 보듬었다. 두 사람이 웃으며 입을 맞추자, 기다렸단 듯이 환호성이 터졌다. 지휘자와 악단원들이 스윙하며 연주에 박차를 가하더니, 여기저기에서 샴페인 터트리는 소리가 그들을 축복했다.

    “레이디, 저와 평생 춤을 춰 주시겠어요?”

    “평생이요? 흠, 하는 거 봐서요. 일단 오늘은 특별히 춰 드리죠.”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새침하게 답하자, 밀러는 가볍게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들을 에워싼 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꽃잎을 뿌려 줬다. 허공에 흩뿌려진 수많은 꽃잎 사이로 두 사람이 입을 맞췄다.

    입술에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그와 키스를 나눴으며, 또 입가가 얼얼할 만큼 웃었다. 여태 태어나서 웃음 지었던 날들을 모두 합쳐도, 결혼식장에서 웃음 지은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멀찍이서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시선이 처연한 빛을 띠며 온 길을 되밟아 돌아갔다.

    쨍쨍하던 해가 노을을 만들 때까지도 하객들이 돌아가며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했고, 뒤늦게 도착한 이들도 자리에서 춤을 추며 분위기를 한껏 북돋웠다. 그 잘난 귀족들도 오늘 하루만큼은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으며, 여태까지 열린 결혼식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결혼식이었다는 찬사도 남겼다.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날 때쯤엔, 해는 진작에 사라지고 하늘엔 달과 별들만 존재했다. 그때, 화려한 부채 뒤로 호호 웃으며 엘리자가 린느에게 다가왔다.

    “얘 린느, 뒷정리는 그대로 두고, 어서 백작저 로비로 각하와 함께 가렴. 지금 벗어나지 않으면 아침까지 술만 마셔야 할지도 몰라.”

    “오, 그것도 좋은데요?”

    “뭐라는 거니? 신혼 첫날인데 후원에서 술 마시다 뻗을 셈이야? 어서 가, 어서. 이미 늦었어!”

    엘리자는 아주 능숙한 몸짓으로 린느와 밀러를 화원에서 내쫓았다. 역시 엘리자의 연회장 분위기를 읽는 솜씨는 아주 탁월했다. 두 사람이 웨딩 마차에 오르자마자 화원에 모여들었던 이들이 두 사람을 찾았지만, 엘리자가 그들의 이목까지 앗아간 덕분에 수월히 탈출할 수 있었다.

    * * *

    린느는 대공저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장난스레 그를 노려봤다.

    “밤길은 위험해서 마차로 움직이는 건 안 된다며요? 그런데 너무 잘 도착했네요? 대공저에.”

    “그랬던가?”

    “으이그, 거짓말쟁이.”

    밀러는 린느의 허리를 끌어안아 품에 폭 가뒀다. 살갗이 닿은 것도 아닌데, 그의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도 린느에게 닿았으니. 린느는 두 눈을 감고 그의 가슴팍에 뺨을 기대었다.

    “우리 지금처럼만 살아요.”

    “그래. 내가 부인 몫까지 노력해서 더 행복해지도록 할게.”

    부인이란 말에 린느는 몸을 비틀며 그의 옷깃을 잡아당겨 입을 맞췄다. 도톰한 입술이 서로 포개어지며 뜨거운 숨이 오갔다. 피곤할 법도 한데, 한 번 붙은 불씨가 몸집을 키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으음…….”

    서로의 숨을 뭉텅뭉텅 베어 먹더니 두 사람의 눈매가 야릇하게 풀렸다. 린느의 흰 손가락이 그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고, 밀러는 그녀의 애교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답답해 보여서요.”

    “알지.”

    시답잖은 우스갯소리에 두 사람은 색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도 잠시, 그의 기다란 다리가 성큼성큼 린느를 향했고, 린느는 뒷걸음질을 치며 그를 올려다봤다. 방금까지도 웃음 짓던 그의 눈매가 야릇하게 굳어 묘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를 넘나들었다.

    한없이 부드럽던 남자가 기분 좋게 으르렁대자, 린느는 온몸이 저릿할 만큼 그가 탐났다. 그때, 린느의 허벅지가 침대에 닿았다.

    “너무… 자극적인 거 아니에요?”

    맹수에게서 뒷걸음질하며 도망치는 사람처럼 린느의 등과 머리칼이 침대에 닿았다. 그러자, 밀러의 커다란 두 손이 기회다 싶어 그녀를 가뒀다. 기분 좋은 구속감에 린느의 미간이 쾌락에 찌푸려졌다. 손만 닿았을 뿐인데 온몸이 뜨겁게 달궈졌다.

    “미, 밀러?”

    당황에 찬 청록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자, 린느의 손바닥이 그의 가슴팍을 짚었다. 그녀의 흰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자, 금빛 눈동자가 멈칫했다. 간혹 참기 힘들 만큼 몰려드는 소유욕이 또다시 그의 충동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린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움직임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미안.”

    달콤한 냄새 때문에 참을 수 없었단 말을 또 버릇처럼 할 뻔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걸. 평생 이 달콤함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니, 고문이다. 그것도 기꺼운 고문.

    그는 말없이 몸을 일으키더니, 린느를 향해 손을 건넸다. 왜 그러느냐 묻고 싶었지만 린느는 말없이 그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귀여운 꼬마 커플처럼 맞잡은 두 손을 장난스레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대공저는 이미 낮처럼 훤했고, 커다란 창밖으로는 벌써 새벽 어스름이 보였다.

    “그대와 함께 뜨는 해를 보고 싶어서. 피곤하면 다시 들어가도 좋아.”

    “저도 좋아요. 매번 누구 때문에 아침 해가 뜰 때쯤이면 매번 지쳐 잠들었잖아요?”

    그 말에 밀러는 희미하게 웃으며 귀 끝을 붉게 달궜다. 맹수처럼 으르렁대는 남자가, 가끔 이렇게 소년처럼 굴 때마다 얼마나 귀여운지. 린느는 그의 팔을 꼭 끌어안고서 자리에 섰다.

    덜컥.

    써니룸 문이 활짝 열리자 달콤한 꽃내음이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잘 자란 잎새와 꽃이 거대한 창문틀을 만들었고, 그 창문 너머로는 봉긋 솟은 태양이 보였다. 찬란한 금빛이 두 사람의 앞날을 비추듯 환하게 빛을 뿜었다.

    그리고 태양과 닮은 눈동자가 린느를 바라보더니, 눈을 감고서 그녀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를 향한 고결한 고백이었다.

    『19금 피폐물 악녀, 남주에게 찍혔다』 완결

    By.[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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