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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피폐물 악녀, 남주에게 찍혔다-112화 (111/122)
  • @112화

    “아아……!”

    린느의 발끝이 곱아든 채로 침대 시트를 긁었다. 전신을 관통하는 고통과 쾌락에 온몸이 파르르 떨려, 주체할 수 없어 허리를 비비 꼬았다. 밀러는 한동안 허리를 움직이지 않고, 그녀의 흰 뺨과 입에 쪽쪽 입을 맞췄다. 촉촉하게 젖은 눈가에도 입을 맞추며 웃었다.

    “사랑해. 진심이야.”

    서로 맞댄 심장이 쿵쾅쿵쾅 요란스럽게 울렸으나, 밀러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잔잔했다. 린느는 어렵사리 천천히 눈을 뜨며, 시선을 맞췄다. 그녀는 양손으로 밀러의 뺨을 그러쥔 채로 입에 쪽 입맞춤을 했다. 잔뜩 풀린 청록색 눈동자가 색스럽게 움직이더니, 그녀의 눈매가 사랑스럽게 휘었다.

    “저도, 진심… 이에요.”

    린느는 마른침을 삼켜 가며 끝끝내 대답했다. 성의 없이 ‘나도’라고 답하기 싫은 탓이었다. 그때, 그가 린느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면서, 허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린느는 저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혀 달뜬 숨을 뱉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마다 밀러의 입술이 그녀의 정신을 깨워 줬다.

    “흐읏! 읍……!”

    눈에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이 관자놀이를 적셨다. 아파서가 아니라, 생리적인 눈물이었다. 린느는 손톱을 세워, 그의 팔뚝에 박아 넣었다. 그럼에도 그는 허리를 깊숙하게 올려 쳤다. 무서울 만큼 절륜했다. 캐노피 침대에 달린 커튼이 살랑살랑 움직일 만큼, 그의 움직임은 가볍지 않았다.

    “린느.”

    그의 부름과 함께 그녀 전신을 가로지르던 그의 온기가 사라졌다. 빠듯하게 닿았던 감촉이 사라지자, 린느는 번뜩 눈을 뜨며 허벅지를 떨었다. 밀러는 그녀의 허벅지에도 입을 맞추더니, 그녀의 등 뒤로 누워 감싸 안았다.

    “목덜미가 너무 예뻐서.”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그의 탄탄한 팔뚝이 린느의 허리를 감싸 안고서 커다란 손으로 봉긋한 살결을 그러쥐었다. 살결의 중점에 손끝이 스쳤고, 그때마다 머리칼이 쭈뼛 일어났다.

    “읏…!”

    그때, 그의 온기가 그녀의 전신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들어찼다. 또 다른 생경한 감촉에 린느는 저도 모르게 그의 품에서 도망치고자 했다.

    하지만, 밀러는 그녀를 품에서 놔주지 않고, 다시 허리를 올려 쳤다. 처음에는 천천히 자잘한 파도처럼 움직였고, 성난 파도처럼 몰아치다가도 린느의 울음 섞인 교성에 자잘한 파도로 남길 반복했다.

    그는 그녀의 날개뼈에 진한 입맞춤을 남겼다. 마치,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그녀의 날개뼈를 경배하듯 입을 맞췄다. 볼록 솟은 뼈를 혀끝으로 자극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린느는 죄 없는 침대 시트를 찢을 것처럼 쥐어틀었다.

    몰아치는 그의 온기도 감당키 힘든데, 몰아치는 입맞춤까지 홀로 감당하라니! 린느는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으며 쾌락에 절여졌다.

    밀러는 린느의 목덜미부터 시작해 옴폭 들어간 척추 선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입을 맞췄다. 사람을 미치게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린느는 그의 사소한 움직임에도 숨을 허덕이며 그의 사랑을 받아 냈다.

    결국, 그녀의 입에서 지독하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도, 밤은 길고 또 길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그는 그녀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녀가 서운하리만큼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씨를 그녀에게서 치웠다. 마치, 아이가 생기길 바라지 않는 사람처럼.

    * * *

    요란스러운 참새 소리에 린느의 무거운 눈꺼풀이 천천히 뜨였다. 자연스레 옆자리에 손을 뻗자, 밀러가 그녀의 손을 잡아 줬다.

    “잘 잤어?”

    “잠은 아주 제대로 잤어요. 누구 덕분에.”

    그는 배시시 웃으며, 그녀의 손등 위로 입술을 포갰다. 예뻐라. 이러다가 숨이 콱 막히도록 예뻐. 그는 아침부터 팔불출처럼 헤실거렸다.

    “아침에 중요한 약속 있다며요?”

    “약속이 뭐라고. 이제 준비하면 돼.”

    “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 거예요?”

    “응. 그대보다 우선인 건 없어.”

    밀러는 보드라운 이불 밖으로 빼꼼히 나온 린느의 흰 발등에 입을 맞췄다. 장난으로 엄지발가락을 콕 깨물자, 린느는 기겁하며 발을 쏙 뺐다.

    “발은 더러워요.”

    “그렇긴 하지만, 그대는 예외야.”

    “저도 발로 걸어 다니거든요? 제가 왜 예외예요.”

    “나한테는 그래. 이참에 내가 그대를 늘 안고 다닐까? 땅에 발도 안 닿게.”

    “그거 조금 무서운 말씀이네요.”

    “그런가. 아무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시내로 나가 함께 식사해도 좋아.”

    “음…… 고민 좀 해 볼게요.”

    “그래. 생각하고 있어.”

    그는 끝내, 그녀의 흰 발등에 입을 맞추고서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다급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각하, 언제 준비 끝나시는지…….”

    “기다리라 해. 나 보려고 타국에서 내려와 응접실에서 3일을 기다린 놈도 있는데, 고작 3시간을 못 기다린다던가?”

    “죄송합니다, 각하!”

    알렉스가 서 있을 법한 문을 냉랭하게 노려보던 밀러가 돌연 표정을 달리하며 린느에게 시선을 뒀다.

    “그럼 다녀올 테니, 편히 있어.”

    “알았어요. 어서 다녀와요.”

    밀러는 입매를 반듯하게 올려 웃더니, 문을 밖으로 나섰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곧장 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말했다.

    “빗질도 하지 말고 있어. 내가 해 줄 거야.”

    “알았어요. 어서 다녀오기나 해요!”

    그제야 밀러는 방에서 떠났다. 홀로 남은 린느는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고서 배시시 웃었다. 귀여운 구석이 있어, 하여튼. 밤새 제게 쏟아지던 그의 애정은 그토록 불같았는데, 또 평소엔 순한 양이 된단 말이지. 린느는 남몰래 입술을 움직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 * *

    밀러는 입매를 바짝 굳힌 채로 응접실로 건성건성 걸음을 옮겼다. 대공이란 자리에 이 정도 책임은 당연하다 여겼고, 업무가 많아도 그러려니 했던 밀러였다. 하지만, 유독 요즘따라 제게 밀려드는 업무에 불만이 깊어졌다.

    사소한 업무부터 대공만이 할 수 있는 엄중한 일까지. 일을 할 때마다 그는 짜증이 늘었다. 이 시간이면 린느와 화원을 구경하는 건데, 이 시간이면 린느와 여행을 가겠군, 이 시간이면 안나에게 미용법을 배우고 말지.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작위에 불만을 품었다. 지금도 그렇다. 왜 이 시간에 보기도 싫은 락센의 보좌관을 만나 줘야 하는 건지, 원.

    “짜증이 나는군.”

    “……들어 보니 락센 경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합니다, 각하.”

    “원래 심각했던 작자였어. 애초에 정상이 아니었단 소리지.”

    “그렇기야 하지만…….”

    “라밀라가 곤란하면 린느가 곤란할 테니 도와달라는 말을 하려는 거겠지.”

    “맞습니다, 각하.”

    밀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선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보기에도 애처로울 만큼 퀭한 얼굴의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뒤늦게 밀러를 발견하고서 그는 허리를 접어 가며 인사했다. 그런데도 밀러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고 꺼지라는 얼굴이었다.

    “제국의 또 다른 태양을 뵙습니다! 페, 페리하츠 대공가에 영광을.”

    “용건만 간단히.”

    사실 만나 주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들른 대공저였다. 한데, 그가 응접실까지 나와 줬으니, 보좌관은 더 바랄 게 없이 안심됐다.

    “라, 락센 경께서 아시다시피 건강이 좋지 못하십니다. 어제 저녁에도…….”

    “용건만.”

    협박성 짙은 그의 명령에 보좌관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빠르게 말했다.

    “라밀라 님을 저와 함께 락센 백작저로 돌아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각하!”

    “후계 때문인가? 락센 경에겐 따로 후사가 없으니, 백작 부인인 라밀라에게로 작위를 넘기겠다. 이건가?”

    “예! 예, 맞습니다, 각하!”

    밀러는 잠시 허공을 빤히 응시하더니, 알렉스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단 듯이 응접실을 빠르게 나섰다.

    “한데, 내가 락센 경의 말도 믿지 못할 참인데. 그대의 말을 믿어야 할까?”

    머리를 조아린 채로 눈치를 살피던 보좌관이 흠칫 놀라며 밀러를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진저리를 치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저, 저희야 주인님께서 하자는 대로 움직이는 하찮은 종입니다!”

    “그래서 라밀라가 그런 곤욕을 당하는데도 무시로 일관했군.”

    “그, 그것은 저희 불찰이었습니다. 하, 하지만…….”

    “라밀라가 거부한다면 나도 라밀라를 락센 저로 돌려보낼 생각 없다. 그대도 알다시피 소백작이 특히나 라밀라를 아끼는 터라.”

    “아, 알지요! 알다마다요! 그리고… 이미 백작저 사용인 대개가 그만둔 상태입니다. 하여, 인력도 다시 뽑아야 하지요. 가문의 주인이 바뀌었으니,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아첨은.”

    밀러는 쯧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락센이 그녀에게 그토록 악질로 대할 때는 무엇하다가 이제 와서 라밀라를 락센 가의 주인으로 삼겠다는 건지, 무척이나 우스웠다.

    물론, 라밀라에게 품은 오래된 죄책감이라는 감성적인 이유보단, 락센 가의 명맥 유지가 이유일 테지. 락센 가의 명맥이 끊어지면, 보좌관이자 가신인 그의 가문도 뒤흔들린다. 그러면, 그 여파가 제게도 닥칠 테니, 보좌관은 자신이 살기 위해 락센 가의 명맥을 잇고자 라밀라를 택한 것이었다.

    잠시 응접실에 정적이 감돌았고, 보좌관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얕은 숨만 내쉬었다. 밀러 앞에서 크게 숨 쉬는 것조차 두려운 탓이다.

    보좌관의 숨이 거의 끊어질 무렵, 알렉스와 라밀라가 함께 응접실로 들어섰다. 라밀라의 차가운 시선이 보좌관에게 닿았고, 보좌관은 그만 시선을 바닥을 떨어트렸다. 차라리 밀러와 단둘이 있었을 때가 나을 정도로, 라밀라의 시선 또한 살벌하게도 식어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라, 라밀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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