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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피폐물 악녀, 남주에게 찍혔다-111화 (110/122)

@111화

“오늘이 아니면 저 책을 읽지 못할 거 같아서, 미리 읽었던 건데.”

“그런데 제가 다 망쳤네요?”

“응. 말괄량이.”

밀러는 나른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두 팔을 펼쳐 보였다.

“안아도 될까?”

“너무 새삼스러운 거 아니에요?”

“갑자기 생각났어. 그대의 허락 없이 만지지 말라는…….”

“악, 그 말은 그만해요. 이미 선은 진작 넘었는데 허락은 무슨?”

고귀한 빛을 내는 금안이 곱게 휘며 웃었다. 흉내 내지도 못할 만큼 그의 웃음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린느는 그의 흰 뺨에 뺨을 맞대며 배시시 웃었다.

“기사님, 그럼 이제 침대로 가실까용?”

장난스레 묻자, 밀러는 대답하듯이 그녀를 단번에 안아 올렸다. 그러자, 희고 가느다란 팔이 밀러의 목을 가볍게 감싸 안았다.

“오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이 방에서 게으름피우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안 그래요?”

“음.”

“약간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방 같기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설레는데.”

“아. 듣고 보니 약간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렇……!”

그의 입술이 그녀의 대답을 삼키고, 호흡마저 앗아갔다. 번뜩 뜨였던 청록색 눈동자가 보기 좋게 풀어지며, 부드럽게 폭 감겼다. 부드럽지만 강한 흡입력에 간간이 숨이 거칠어졌지만, 거기에서 오는 쾌락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가볍게 입술을 떼며, 린느를 침대 위로 천천히 내려놨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느슨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 린느 역시 따라 미소 짓자, 그는 그녀의 머리칼을 정리해 주며 미간을 미세하게 떨었다. 심장이 쿵 하고 울리며 온몸에 전기를 맞은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오래전, 태자가 사모하던 시녀가 있었는데. 둘 사이를 눈치챈 그녀의 친부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온갖 핑계를 둘러대, 자신의 딸을 시녀직에서 해임하도록 했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었는데, 멀쩡해 보이던 태자가 밀러를 불러다가 죽을 만큼 술을 진탕 마셨다.

그때, 황태자가 뭐라 했더라?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프고, 아려서 숨이 막힌다고 했던가. 밀러는 그때 그 자리에선 말없이 그를 위로했다.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으나, 오래된 친우가 그토록 고통스럽다 하니 그런가 보다 짐짓 아는 체하며 위로했다.

하지만, 고작 사람 한 명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프고, 아리고, 숨이 막힐 수가 있을까? 심장이나 기관지 쪽에 문제가 있어 그런 게 아닐까 홀로 고민했던 밀러였다.

「어제는 내가 추태를 보였소. 그래도 내 친우 덕분에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 같소.」

「도움이 되었다 하니 다행입니다. 숨 쉬기가 힘드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아는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고칠 병이 아니건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오. 오늘은 배웅이 힘들 거 같소. 미안하오, 대공.」

황태자는 터덜터덜 태자 궁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고, 밀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진정 궁의를 불러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을 했다. 참, 그보다 멍청한 걱정도 없을 테지.

밀러는 척추를 관통하는 전율에 탄성을 뱉었다. 그래, 린느라면 태자처럼 혹은 그보다도 더욱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프게 할 수도 있겠어. 아려서 숨이 막힐 수도 있겠고. 아니, 죽을지도. 밀러는 제게 스며든 린느의 흔적을 되새기며 탄성을 뱉었다.

“린느, 다시 생각해 봐도 내겐 그대뿐인 거 같아.”

“다, 다시 생각……! 하지, 마요…!”

신전에서 수행하는 신관처럼 밀러에겐 매일이 수행이나 다름없다. 이 얇은 피부에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해서, 또 그녀가 아파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한데, 어째서 그녀와 함께 지낼수록 갈증은 더 깊어질까. 이거, 해갈은 할 수 있는 갈증일까? 그 자신도 두려울 만큼, 린느에 대한 소유욕이 더해 갔다.

“사랑해. 내 모든 걸 다 쥐여 주고 싶어.”

“흐읏!”

린느는 손을 뻗어, 침대 시트를 쥐어 틀었다. 그가 뱉는 뜨거운 숨결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솜사탕을 물에 풀어 넣은 것처럼, 그에게 빠져들어 녹아들 것처럼 온몸이 녹는 기분.

도대체 그의 손길과 입술엔 뭐가 담겼기에 이렇게 사람을 녹이려 드는 건지! 린느는 젖은 눈으로 귀여운 원망을 담아, 창밖을 바라봤다.

얄미운 노을은 혼난 아이처럼 걸음을 늦추고 또 늦춰 버티고 서 있었다. 달은 도대체 언제 뜨나! 린느는 저도 모르게 밀러의 옷깃을 쥐어틀며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는 눈을 번뜩 뜨더니,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봤다.

“천, 천히요. 천천히…….”

“내기했어?”

“응.”

린느는 입꼬리를 배시시 웃으며 천진하게 웃었다. 그 탓에 그녀의 젖은 눈동자가 더욱 색스럽게 반짝였다.

“그대가 지겠는데.”

“아니……! 하…!”

그의 송곳니가 린느의 살결을 가볍게 물었다. 잇자국이 미세하게 생겼다가 사라질 만큼, 가벼운 입질이었다. 린느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며 다리를 오므렸다. 좀 더 세게 물었으면 저 잘난 흑발을 콱 잡았을 텐데! 린느는 쾌락에 깃든 탄성을 지르며 그를 내려다봤다.

“미안.”

고작, 눈 좀 흘겼다고 이 커다란 맹수가 또 금세 꼬리를 내리고 사과한다. 이러니 사랑할 수밖에. 린느는 짓궂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러자 밀러는 얇은 실크 슬립 위로 봉긋 솟은 살결을 치아로 천천히 매만지며 간지럽혔다.

“자, 잠깐……!”

이 야해 빠진 남자 같으니.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 오는 건지! 린느는 밀러의 어깨를 힘없이 통통 내려쳤다. 그러자, 밀러는 양손으로 그녀의 봉긋한 살결을 움켜쥐고 더욱 자극했다. 그의 입질 한 번에 뭉텅뭉텅 이성이 잘려 나갔다. 린느의 주먹질이 점차 힘을 잃자, 밀러는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미안.”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입막음용으로 잘도 사과하지, 아주. 그는 노련한 수완가답게, 침대 위에서도 수완이 좋은 편이었다. 우는 소리 하면 적당히 숨 쉴 틈을 내어 주거나 짧게 사과함으로써 린느의 투정을 막았다. 그리고는 투정도 못 부릴 만큼 진득한 쾌락으로 그녀의 온몸을 녹였다. 영악한 남자.

린느는 이 영악한 남자에게 백기를 내밀었다. 그녀는 마른 입을 축이며 등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그의 커다란 몸체도 따라 올라와 보이는 흰 살결마다 입을 맞췄다.

그의 도톰한 입술이 흰 살결에 고이 수를 놨다. 붉게 물들이고 싶었으나, 꾸역꾸역 참으며 옅은 자국만 남겼다. 그녀의 숨결을 삼켰을 때처럼, 그의 입맞춤은 무척이나 농밀했다.

그는 그녀의 선명한 빗장뼈에 입을 맞추더니, 얇디얇은 어깨끈을 이로 물어 천천히 풀었다. 그리고는 희게 드러난 여린 살갗 위로 입을 맞췄다.

“읏!”

눈앞이 희게 질리더니, 천장이 흐릿해졌다. 머릿속 가득 차 있던 상념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닌 척 종일 괜찮은 척했으나, 뒤늦게 밀려든 허탈감에 생각이 깊어졌는데. 밀러의 입맞춤은 그녀의 그 상념들까지 모조리 앗아가고 나아가, 산산조각을 내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도 생각할 틈도 없이, 빠듯하게 거리가 좁혀졌다. 린느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밀러는 그녀와 입을 맞췄다.

“으음……!”

살짝 벌어진 틈에서 린느의 탄성이 흘렀다. 흥분에 젖은 얇고도 높은 고음이 침실을 천천히 달궜다. 그녀의 입술에 고이 올려진 립스틱이 그의 입가에 옅게 묻어 나올 만큼, 린느의 숨이 점차 가빠졌다.

누가 더 오랫동안 잠수하는지 내기한 아이처럼, 린느는 이따금 달뜬 숨을 뱉으며 그를 받아들였다.

그에 비해 밀러의 금안은 반쯤 뜨인 채로 여유를 부렸다. 말없이 린느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상체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 방금까지도 망가트릴 것처럼 몰아치던 그가, 여신께 경배라도 드리듯이 경건하기까지 했다.

그는 린느의 흰 목선을 따라 입을 맞추며, 커다란 손으로 살결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너무 약하지도, 너무 강하지도 않게. 그녀에 맞춰 그의 커다란 손이 섬세하게 움직였다. 길고도 굵은 손가락이 마디마디 잘게 움직이면서도, 그는 간간이 린느의 안색을 살폈다.

“아아…!”

그녀의 가느다란 흰 목이 뒤로 젖혀지자 밀러는 기다렸단 듯이 천천히 자리를 잡아갔다. 그녀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무척 능숙한 움직임이었다. 해가 끝자락에 걸쳐 린느를 놀렸다. 해에게 진탕 놀림받은 린느가 미간을 좁히고서 창밖을 노려봤다. 그때였다.

“사랑해.”

생경한 감촉이 전신을 일깨웠다. 린느의 가느다란 몸이 잘게 떨리며 흠칫 놀라자, 그는 그런 그녀를 부드럽게 달랬다. 진한 키스로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다가도, 숨을 깊게 들이마시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기다란 검지로 린느의 머리칼을 천천히 귀 뒤로 넘겨 주며 움직였다.

“읍!”

전신을 가로지르는 생경한 감촉에 린느의 두 손바닥이 밀러의 가슴팍을 밀었다. 이는 본능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도 받아들이기 매번 버거운 탓이다. 게다가, 이렇게 민다 해서 밀려날 그도 아니지 않은가. 밀러는 미동도 없이 천천히 움직였다.

두 입술이 서로를 욕심껏 탐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사랑한다며 고백했다. 옭아매는 붉은 혀에 발음이 뭉개지고 또 뭉개졌지만, 서로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상관없었다. 그때, 그의 굵직한 등줄기 근육이 크게 움직였다.

장난스럽게 진짜냐고 묻자 밀러는 대답하듯이 그녀를 단번에 안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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