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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피폐물 악녀, 남주에게 찍혔다-1화 (1/122)
  • [ 19금 피폐물 악녀, 남주에게 찍혔다 ]

    @1화. 프롤로그

    린느는 제게 쏟아지는 그를 버거워하며 달뜬 숨을 내쉬었다.

    “가, 각하…!”

    제국을 그러쥔 그의 손아귀는 강건하지만 부드러우며, 맹수처럼 날랜 금빛 눈동자는 뜨거운 태양처럼 찬란했다. 밀러 폰 페리하츠 대공. 그가 원한다면 타국의 황녀와도 혼담을 나눌 수 있을 테고, 그가 원한다면 이 소설의 원작 여주와도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무소불위의 남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도대체 왜 이 남자는 [웹소설 악녀 콘테스트] 중에 [가장 하찮은 악녀 1위]를 차지한 그녀에게 침실을 허락하고 있는 건지! 이미 풀린 그녀의 눈동자가 그의 진심을 찾고자 헤맸지만, 부질없었다.

    ‘도대체 속을 알 수가 있어야지.’

    제국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한 이 남자의 속을 쉬이 알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밀러의 뜻이고 계획일 테지. 그의 수를 읽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속을 들킬 만큼 어수룩한 남자였다면, 하이에나처럼 즐비한 귀족들에게 이미 뜯어먹히고도 남지 않았을까?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남자가 불안증을 앓고 있으니, 그의 비밀을 알아낸 귀족의 완벽한 꼭두각시가 됐겠지. 그의 의중을 살피는 건 포기하는 게 빠르다.

    이 눈치 빠른 남자는 린느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다는 걸 귀신처럼 알고서, 부드러운 살결에 진한 입맞춤을 남겼다.

    “아…!”

    눈앞이 다시 희게 질렸다. 린느는 곱아든 발끝으로 침대 시트를 꾹 짓눌렀다.

    “린느.”

    나직한 목소리가 색스럽게 갈라졌다. 고작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색정적일 수가 있을까?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다정했으며, 한편으론 엄중했다.

    “머리가 길었어, 그때보다.”

    밀러가 린느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다정스레 정리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머리칼이라고, 그는 제국의 안위가 걸린 일처럼 조심스럽게도 매만졌다. 한 올 한 올 머리칼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움직이자, 린느는 기분 좋은 간지러움에 눈이 자꾸 감겼다. 그의 손가락이 린느의 애교머리를 넘겨 주고, 앞머리와 기다란 머리칼을 정리할 때마다, 그의 잘 다듬어진 근육이 옅은 빛에 음영을 만들었다.

    “…….”

    묘한 기류가 두 사람을 감쌌다. 늘 거침이 없는 남자가, 무슨 일로 머뭇거린 탓이다. 사람의 목숨을 쥐고 펴는 서류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공가의 인장을 쾅쾅 찍어 대는 사람이면서 망설인다. 그때, 린느의 시선이 밀러에게 향했다.

    ‘설마 기다리는 거야? 아니, 내 허락을 구하는 거야?’

    린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썹을 굽이쳤다. 원작 소설에서는 배려심이라곤 티끌도 없는 남자가, 엑스트라 악녀인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에게 배려심은 결여돼도 하등 문제없는 게 아닌가? 그를 두고 누가 배려심이 없다고 험담이라도 하겠냔 말이다. 그랬다가는 다른 귀족들에게도 공감받지 못하고 괜한 소리를 하는 촉새라는 타박만 듣겠지. 그런 남자가 침대 위에서 배려하고 있다니, 린느는 헛웃음이 올라왔다.

    ‘아무렴 어때.’

    서로 즐기면 그만이지. 린느는 달뜬 숨을 안고서 밀러의 목을 가볍게 감싸 안았다. 허락이었다.

    “…….”

    밀러는 그녀의 허락에 기꺼워하며 입꼬리마저 올려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를 보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영애들과 부인들의 통곡이 들릴 만큼, 혼자 보기 아까운 미소였다. 고작, 하룻밤 즐기는 데에 이렇게까지 웃음 지을 건 또 뭐람?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만큼, 순수한 미소였다.

    동시에, 이 오만한 남자가 제 앞에서 쩔쩔매는 꼴도 꽤 볼 만해 만족스러웠다. 입술을 포개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녀가 그를 향해 실소를 뱉었을지도 모른다.

    “그대에게서 달콤한 향기가 넘실거려. 알고 있나?”

    그러니, 이 귀여운 여인이 만든 덫을 그냥 보고 지나칠 리가. 밀러의 도톰한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닿는 곳마다 그는 녹진한 키스를 남기기 바빴으니, 그녀의 얇은 허리가 휘었다. 그의 움직임에 목적은 명료했으나, 그 과정은 부드러웠다.

    “처, 천천히……!”

    이보다 더 천천히 할 수 있을까? 현자를 데려와도 그녀 앞에서 이보다 더 천천히 할 순 없을 테지. 밀러는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며 소년처럼 웃었다.

    “분부 받들지.”

    그의 넓은 등 뒤로 달빛이 서늘하게 비쳤으나, 둘 사이를 차게 식히기엔 터무니없었다. 그녀가 쾌락에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밀러는 낮은 탄성을 뱉었다.

    밀러의 커다란 몸체가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그녀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그제야 반쯤 뜨여 있던 그녀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제국의 대공은 얼굴도 몸도 모자라 심지어 그곳까지 완벽해야 하는 걸까? 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가! 린느는 평생을 걸쳐 처음 보는 광경에 할딱 숨만 들이쉬었다.

    ‘사, 사람이야?’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절륜남이 최고라지만…! 막상 자신에게 일이 닥치자 그녀는 말을 잃고 입술을 짓씹었다.

    그때, 밀러가 그녀를 넉넉하게 품을 만큼 상체를 숙이자, 린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무서운 게 단번에 제 몸을 가를까 싶어, 작은 몸마저 잘게 떨었다.

    그녀의 예상과 달리, 그는 곳곳에 입술을 맞췄다. 신중하고도 인내심이 따른 녹진한 입맞춤이 그녀를 녹일 듯이 달게 굴었다. 전신을 훑은 후에야, 그는 봉긋하게 솟은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 존경의 의미로 입을 맞췄으며, 달콤한 청록색 눈꺼풀 위로 애정을 담아 입을 맞췄다. 귀여운 코끝으로 밀러의 오만하고도 날카로운 코끝이 스치며 그녀의 입술을 또다시 탐했다.

    “흣….”

    그의 입맞춤엔 형언하기 힘든 인내심이 따랐다. 밀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린느가 요청한 ‘천천히’를 착실히 따르고자 노력에 신중을 더했다. 선대 대공이 죽고, 그가 대공가의 주인이 된 후로 이렇게까지 인내심을 발휘한 건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툭하면 자신의 앞에서 기절하거나 잠들거나 취하는 이 말괄량이를 두고, 매 순간 인내심의 연속이긴 했다만. 그때의 인내심과 지금의 인내심은 차원이 다르다.

    “대공님.”

    그때, 기분 좋은 피곤함에 젖은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거리. 그의 굵직한 몸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아……!”

    델 듯이 뜨겁고, 강경한 강도. 그 생경한 촉감에 그녀의 몸이 활처럼 휘자, 그의 도톰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대신 다독였다. 두 사람의 입매 사이로, 그녀의 새된 소리가 흘렀다.

    홧홧한 감촉에 몸이 녹아내릴 듯이 짜릿했다. 그 짜릿한 쾌락에 그녀의 흰 목이 뒤로 젖혀졌고,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다급히 침대 시트를 쥐어짰다.

    “흣…!”

    전신을 꿰뚫는 아픔에 눈가에 눈물이 맺혔으나 그의 움직임이 달가웠다. 동시에 그 사실이 두려워, 린느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 얼마나 잔악한 쾌락인가! 밀러는 그녀의 손에서 침대 시트를 뺏는 동시에, 린느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물렸다. 맞잡은 두 손을 린느의 머리 위로 올려 잡고서, 잔잔한 바닷가에 물이랑을 일으켰다.

    승마면 승마, 검술이면 검술, 양궁이며 총술까지 못하는 게 없는 그의 손아귀는 제국을 모두 그러쥘 수 있을 만큼 커다랬다. 그 대단한 손이 여리디 연한 린느에게 볼모로 붙잡혔으며, 그는 그런 자신의 손을 기꺼이 그녀에게 바쳤다.

    전신을 꿰뚫는 생경한 쾌락에 린느는 그의 손가락을 목숨처럼 꼭 잡았다. 이 굳은살은 총술 때문에, 저 굳은살은 승마 때문에. 돌연, 그녀에게 닥친 쾌락과 격통에 눈매를 좁혔다.

    “밀러!”

    당황에 가득 찬 그녀의 부름에, 그의 속도가 다시 안정을 찾았다. 밀러는 그녀의 두 손을 놔주는 대신에 보드라운 살결을 그러쥐었다. 달콤한 과실을 머금듯이, 그의 입술이 바삐 움직였다. 간간이 그의 뺨이 옴폭 패이며 음영이 드리워졌고, 그때마다 린느의 입매가 파르르 떨렸다.

    “제발, 천천, 히……!”

    그녀의 얇고 가느다란 육체가 달빛을 머금자, 밀러는 참을 수 없는 소유욕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밀러는 콧잔등을 짧게 찡그리며 속도를 늦췄다. 등대를 부러트릴 만큼 거셌던 파도가 한층 느려졌다.

    잠깐의 방심에 이 작은 여인의 몸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천천히 하고자 안간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녀의 잇새로 새된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아아…!”

    벌써 몇 번째인지! 절정 끝에 린느는 저도 모르게 젖은 눈을 사르르 휘어 가며 미소를 지었고, 밀러는 그녀의 미소에 넋을 잃었다. 반쯤 감겨 있던 린느의 눈꺼풀이 단번에 크게 뜨였다.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쾌락에 허리가 활처럼 휘더니, 온몸이 자르르 울었다.

    “미, 밀러!”

    자꾸만 초점을 잃는다. 하지만 그녀의 전신을 가르는 남자의 얼굴만은 선명히 보였다. 무심히 쓸어 넘긴 흑발에 맹수처럼 이채가 도는 금빛 눈동자. 그의 왼뺨이 달빛을 머금어, 날카로운 콧대에 음영이 드리워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완벽한 대공은 그녀의 절정에도 흐트러짐 없이 허리를 쳐올렸다. 저녁이 길어질 거라는 예상쯤은 그녀도 했다만, 막상 일이 닥치니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그대는, 생각이 많아.”

    그의 투정 어린 말끝으로 린느는 다시 절정을 맞이했다. 그런데도 그녀를 가득 채운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으니. 이 얼마나 무서운 체력인지! 하룻밤이 아니라 며칠은 시달리고도 남을 체력이다.

    이렇게까지 절륜남일 줄 알았더라면, 다음을 기약할걸! 린느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그의 팔뚝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고작 하룻밤 즐기는 사이에 이렇게 성의껏 절륜할 게 있냐는 그녀의 경고였다. 이런 건, 대공비가 될 사람한테 하라며 린느는 욕지거리를 삼켰다.

    ‘실수, 실수라고! 망할 절륜!’

    린느는 절륜남을 욕하며 그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오만한 남자는 태어나 실수를 저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얄밉게도 남자의 계획은 이 순간 또한 포함이었다. 더불어 이후에 일어날 일들도 모두 포함일 테고.

    “아아……!”

    북부의 찬바람보다 서늘한 그가, 어째서 한낱 엑스트라 악녀인 자신에게 이러는지! 린느는 쾌락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그러고 보니, 이 원작 소설 이름이 <늪, 사랑, 감금>이었으니. 그녀는 밀러가 선사하는 늪에 기어코 빠져든 셈이구나. 원래 늪에 빠져야 할 사람은 원작 여주일 텐데.

    린느 그녀가 두려워하는 어둠이 걷히고, 태양이 모습을 비칠 때쯤에야 밀러는 그녀를 놔줬다. 이 이상은 그녀가 다칠까 염려가 된 탓이었다.

    ‘…….’

    밀러는 지쳐 잠든 그녀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었다. 이쯤이면 그녀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라 감히,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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