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253화 (253/257)
  • 253화 제1장 결자해지 (3)

    팔로 4징후군은 총 4가지의 질환이 한꺼번에 나타난다고 해서 4징후군이란 이름이 붙었다.

    각각의 질환은 다음과 같았다.

    심실중격 결손.

    우심실 협착로 협착.

    대동맥 기승.

    우심실 비대.

    주된 증상은 청색증과 무산소 발작으로 치료시기를 놓치면 수술이 어려워지고 환아의 생존율도 떨어진다.

    수술 중인 환아는 특히 우심실의 상태가 절망적이었다.

    한마디로 이번 수술의 승부처는 우심실이었다.

    ‘일단 결손부터 메워야 해.’

    내 시선이 심방과 심실을 나누고 있는 중격에 머물렀다.

    심실중격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이 구멍을 메우지 못하면 우심실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심장의 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만다.

    “이거 강윤정 교수가 맡았어도 힘들었을 같은데…….”

    양재석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내가 주제넘은 수술에 손을 댔다고 은연중에 타박하는 것이리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죠.”

    “안 대봐도 되는 걸 이 교수만 모르고 있는 거 아닙니까?”

    “글쎄요, 양 교수님이 지레 겁먹은 걸 수도 있죠.”

    그동안 얌전했던 나는 양재석에게 기어이 한 방 먹였다.

    힘든 수술을 진행 중이니 초조하고 걱정스러운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까지 받아 줄 순 없었다.

    팔로 4징후군 하나도 감당하기 버거운 상대인데 거기에 양재석까지 상대하라고?

    회귀한 나라도 그만한 정신력은 없었다.

    “이 교수. 거, 말이 너무 심하네. 수술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그게 할 말입니까?”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양 교수님은 저를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어요.”

    차라리 이 자리에서 서로를 향한 앙금을 다 털어 버리자고 나는 결심했다.

    현 수술 구간은 스태프 간의 손발이 어긋나면 돌이킬 수 없는 구간이었다.

    서로에게 감정이 있다면 다 털고 나아가는 게 맞았다.

    “제1보조가 집도의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수술이 제대로 굴러가겠습니까?”

    “알아요. 다 아는데…….”

    양재석이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해 보여서 그럽니다. 성인 흉부외과의가 왜 소아 흉부 수술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양 교수님.”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양재석을 불렀다.

    “이 사단이 난 이유는 수술이 끝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수술이고 환자를 살리는 일이라는 걸 잊으시면 안 돼요.”

    “…그건 이 교수 말이 맞아요. 내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요.”

    “정 저를 못 믿으시겠다면 환아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도와주세요. 그 정도는 해 주실 수 있겠죠?”

    양재석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무장이 됐는지 양재석은 이전과 눈빛부터 달랐다.

    흐리멍덩했던 눈동자가 총기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집도를 앞두고 변한 양재석의 태도가 반가웠다.

    ‘어렴풋이 눈치는 챈 모양이네.’

    양재석은 환아가 정치적인 희생양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내게 수술 포기를 종용하고 고까운 말투를 사용했던 걸 보면 말이다.

    내가 양재석의 입장이었더라도 이번 수술은 달갑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번 수술에 정치적인 요소가 복잡하게 엉켜 있다고 해서 내가 무지성으로 덜컥 집도를 결정한 건 아니었다.

    이날을 위해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할 정도로 날카롭게 칼을 갈아 왔다.

    혼자서 다양한 논문을 찾아보고.

    서울 본원으로 가서 수술을 참관하고 이태원 교수에게 수술 요령도 배워 오고 등등.

    그동안 다듬어 온 칼이 얼마나 매서운지 지금부터 보여 주리라.

    나는 심호흡하고 다시 니들 홀더를 손에 쥐었다.

    불안, 초조, 긴장, 두려움 등의 감정이 물러나면서 마음이 고요해졌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오감은 한층 민감하고 정교해졌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무아경이었다.

    무아경.

    내 실력을 200퍼센트 끌어 올릴 수 있는, 회귀 후의 얻은 놀라운 외과적 경지.

    무아경에 빠진 나는 홀린 듯이 집도를 시작했다.

    뒤늦게 의식을 차렸을 때는 수술이 이미 끝난 뒤였다.

    * * *

    ‘뭐야, 사람 맞아?’

    양재석은 고개를 들어 이믿음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믿음은 한창 심실중격 결손을 꿰매어 나가는 중이었다.

    양재석이 결손 부위에 패치를 대고 있으면 이믿음이 봉합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믿음의 봉합 솜씨가 심상치 않았다.

    이믿음의 봉합은 무척 빨랐다.

    잠깐 한눈을 팔면 매듭 하나가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빠르다고 해서 정교함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재봉틀을 사용한 것처럼 마감이 깔끔했다.

    패치와 결손 조직, 그리고 봉합사.

    이 셋이 들뜨지 않고 한 몸으로 붙어 있었다. 매듭과 매듭 사이의 간격 또한 자로 잰 것처럼 균일했다.

    심지어 소아의 심실중격은 성인의 심실중격보다 얇고 연약하지 않은가.

    불리한 전장에서도 이믿음 기적에 가까운 솜씨를 뽐냈다.

    이래서 팔로 4징후군 수술을 맡겠다고 했구나.

    양재석은 뒤늦게나마 이믿음이 집도의인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믿음은 단순히 만용을 부린 게 아니었다.

    수술을 감당할 능력이 되어서 수술을 맡은 것뿐이었다.

    생각이 180도 바뀌자 양재석은 이믿음을 믿지 못한 사실이 못내 미안했다.

    믿고 도와줘도 모자란 판국에 틱틱거리며 발목이나 잡아 버렸으니 말이다.

    “양 교수님, 절 힐끔힐끔 훔쳐볼 때마다 손 떨리는 거 알고 계시죠?”

    “…….”

    “뭘 해도 좋은데 손은 떨지 마세요.”

    “아… 주의할게요.”

    “용진이 넌 아까부터 석션하고 수술 도구 건네주는 게 한 박자씩 느리다? 집중력 떨어졌니?”

    “아… 아닙니다.”

    “말로만 아니라고 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무슨 일을 하든 방심했을 때가 제일 무서운 법이니까.”

    이믿음의 거듭된 지적에 양재석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믿음은 수술에 집중하면서도 스태프들의 사소한 변화까지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초능력자 수준 아닌가.

    “결손 부위는 패치로 다 막았고 이제 비대한 우심실을 절제합니다.”

    이믿음은 어시스트에게 받은 메스로 우심실 근육을 일부 잘라 냈다.

    성의 없이 툭툭 자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절단면은 매끈했고 절단 범위는 적절했다.

    ‘완벽해, 이 정도면.’

    양재석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인 파트 흉부외과의가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우심실 교정은 빈틈이 없었다.

    이 기세라면 나머지 폐동맥 교정도 문제가 없으리라.

    한편 이믿음을 향한 감탄은 수술실 안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참관용 수술실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친구가 정말 대단해. 제임스 홉킨스에서 바캉스를 즐기고 온 건 아닌 모양이야.”

    성철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빗장처럼 단단하게 걸려 있던 팔짱은 풀린 지 오래였다.

    성철용은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열고 순수하게 이믿음의 수술을 즐기고 있었다.

    비록 내과의였지만 그는 심장이라는 장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3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심장내과에 몸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믿음이 대단한 흉부외과의라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저 나이에 성인 심장은 물론이요, 소아 심장 수술까지 소화할 수 있는 외과의가 또 있을까?

    분명 전국을 뒤져도 이믿음이 유일할 것이다.

    “그래서 제가 수술용 로봇, 수술용 로봇 노래를 부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수술이 순조롭자 강태섭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친구 솜씨면 기기 비용도 2-3년 안에 다 뽑아낼 수 있을 겁니다. 저희 흉부외과 평판도 치솟을 테고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어. 말로만 들었을 땐 실감이 안 났는데 직접 수술을 참관하니 실감이 나는군.”

    “저 친구가 정말 수술 잘하는 거 맞아? 내 눈에는 맞은편에 있는 선생이 더 믿음직스러운데?”

    뒤늦게 참관용 수술실에 입장한 원무과장 김철환이 한마디 했다.

    “물론 양 교수의 어시스트도 뛰어나긴 해. 하지만 이 교수에 미치진 못하지. 그건 그렇고…….”

    성철용의 시선이 모니터에서 김철환에게로 옮겨졌다.

    “자네는 가뜩이나 원무과 일로 바쁠 텐데 굳이 참관까지 왔나?”

    “혹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아직도 나를 못 믿어?”

    “자네를 믿는 것과 저 외과의를 믿는 건 다른 영역이야.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그래도 조금 섭섭해지려고 하는걸?”

    성철용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부터 꺼내려고 하는 이야기가 노른자였다.

    “자네 사무처장님하고 친분이 깊지?”

    “암, 형님·동생 하는 사이는 되지.”

    “그럼 사무처장님께 수술용 로봇 도입을 긍정적으로 봐 달라고 이야기해 봐. 그럼 섭섭한 게 조금 가실 것 같으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 우리 손주 놈이 수술 잘 받고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그 약속 꼭 지키게.”

    죽마고우의 다짐이 맺어진 지 약 30분 후.

    팔로 4징후군 수술은 성공리에 종료되었다.

    총 2시간 30분의 수술 시간 동안 바이탈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출혈 또한 발생하지 않았다.

    인공 심폐기를 제거한 후 환아의 심장은 건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 * *

    팔로 4징후군 수술을 성공한 이후 내 대접이 달라졌다.

    강태섭은 나를 우쭈쭈 치켜세우기 바빴고 내게 반감을 가지고 등을 돌렸던 교수들은 하나둘 관심을 보였다.

    이믿음은 단순한 낙하산이 아니었다.

    실력을 인정받아 당당하게 부 교수 자리를 거머쥔 것이라는 여론이 퍼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이시형이 거부한 무수혈 수술을 응급으로 소화했고.

    성인 파트 흉부외과의임에도 소아 흉부 수술까지 멋지게 집도했으니까.

    팔로 4징후군 수술이 A부터 Z까지 완벽했으므로 지호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수술 닷새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내려갔다.

    과업을 마친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 업무에 충실했다.

    일주일에 이틀 외래 진료를 보고 남은 삼 일 동안은 수술에 전념했다.

    그동안 나는 목이 빠져라 간절하게 기다렸다.

    수술용 로봇 도입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수술용 로봇이 도입되어야 강태섭이 리베이트를 처먹을 것이고.

    강태섭이 리베이트를 처먹어야 강태섭을 의국에서 내쫓을 수 있었으니까.

    운명의 그날은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찾아왔다.

    반팔을 입어야 하나 긴팔을 입어야 하나 고민이 되는, 봄과 여름의 경계가 애매한 어느 날 아침.

    오전 회진을 마친 뒤 강태섭이 나를 따로 불렀다.

    나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강태섭과 마주 앉았다.

    “이 교수 활약 덕분에 수술용 로봇 도입하기로 결정어. 어때? 기쁘지?”

    “마음 같아서는 만세라도 외치고 싶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나는 벅찬 감격을 느끼며 대답했다.

    드디어 강태섭과의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어 버릴 때가 왔구나.

    전생의 악몽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

    “그 정도로 기쁜가?”

    “그럼요. 과장님께 뽀뽀라도 해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나는 너스레를 떨며 가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작동시켰다.

    수술용 로봇을 도입이 확정됐다면 리베이트 이야기를 반드시 꺼낼 테니까.

    자, 어디 한번 마음대로 지껄여 봐.

    다 녹음해 줄 테니까.

    하지만 강태섭과의 대화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오는 내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강태섭은 결코 만만한 악당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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