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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252화 (252/257)
  • 252화 제1장 결자해지 (2)

    대망의 팔로 4징후군 수술 당일.

    오전 컨퍼런스와 회진이 끝난 후 천중혁 교수가 내게 다가왔다.

    “이 교수, 수술 괜찮겠어요?”

    천중혁이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많은 교수진 중에 나를 염려해 주는 사람은 놀랍게도 천중혁뿐이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이시형 편이었고.

    나머지 교수들은 어린 나이에 부 교수가 된 나를 불편해하고 싫어했다.

    “문제없습니다. 준비를 단단히 해 뒀거든요.”

    “뭐, 이 교수도 다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판을 벌렸겠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사실이에요.”

    “…….”

    “성인 수술과 소아 수술은 아예 궤가 다르니까요.”

    “어쩔 수 없죠.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해내야 하는 목표가 있으니까요.”

    “목표요?”

    “네, 나중에 설명드릴 날이 올 겁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요. 나도 이믿음 교수 믿습니다.”

    천중혁의 진심 어린 걱정을 받고서 나는 소아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인큐베이터 안에 한 살배기 지호가 누워 있었다.

    지호는 산소 호흡기로 가쁘게 숨을 쉬는 중이었다. 손바닥 한 뼘 너비의 작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거리기 바빴다.

    팔로 4징후군으로 인한 청색증으로 지호의 손끝과 발끝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말도 못 하는 저 어린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저 어린 것을 지켜만 봐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또 오죽할까.

    나는 예전부터 성인 환자보다 소아 환자에게서 더 진한 애잔함을 느끼곤 했다.

    아무리 인생이 가혹하다고 해도

    시련을 견딜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호의 바이탈을 직접 확인한 나는 중환자실을 나왔다.

    바깥에서 대기 중인 지호의 부모와도 짧게 대화를 나눴다.

    부모는 지호를 잘 부탁한다며 내게 연신 허리를 굽혔다.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허리를 굽혔다.

    지호 수술까지 한 시간이 남은 시점.

    나는 의국 회의실로 돌아갔다.

    경훈이에게 다른 스태프들의 회의실 출입을 엄금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벌써 수술이 진행 중이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위급한 심장 마비가 발생하고, 예기치 못한 출혈이 터지고, 봉합 부위가 풀려 버리고 등등.

    잠시 후 닥쳐올지도 모르는 수많은 위기를 나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미리 경험하고 미리 대처했다.

    [이 교수, 소아 수술을 할 때는 3가지 법칙을 잊지 말아요. 이 3가지만 기억해도 중간은 갈 테니까.]

    마지막으로 나는 이태원 교수가 알려 준 소아 심장 수술의 3원칙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D(Delicate, 섬세함).

    P(Power, 힘 조절).

    S(Slow, 느긋함).

    D.P.S를 뼛속에 새기고서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 * *

    참관용 수술실.

    진료부 원장 성철용은 강태섭과 함께 수술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환아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고 그 주변에서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수술 준비 중이었다.

    ‘하도 큰소리를 쳐서 맡기기는 했는데 어째 불안하단 말이지.’

    불편하고 초조한 마음 때문일까.

    성철용은 쉬이 팔짱을 풀지 못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도 여전했다.

    강태섭이 지호의 수술을 선뜻 맡겠다고 했을 때, 성철용은 크게 놀랐다.

    수술 가능한 소아 흉부외과의가 해외 연수를 떠났기 때문이다.

    외과의가 없는데 무슨 수로 수술을 한단 말이지?

    성철용이 채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강태섭이 입을 열었다.

    - 새로 부임한 이믿음 교수가 지호를 수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믿고 맡겨 주시죠.”

    - 이 선생이 유명한 건 아는데 그래도 성인 파트 외과의 아닌가?”

    - 소아 수술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나서지도 않았겠지요.”

    강태섭이 다른 이유를 덧붙였다.

    수술용 로봇이 도입되면 그 로봇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사람이 이믿음이다.

    이 기회에 이믿음의 실력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고 했다.

    강태섭의 유창한 언변을 성철용은 반만 믿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말을 정확히 반만 믿는 것.

    그 신중함이 지금의 성철용을 만들었으니까.

    강태섭과 대화를 마친 후 성철용은 죽마고우인 원무과장에게 전화해 선택지를 주었다.

    서울로 올라가서 수술할래?

    아니면 부산에 남아서 이믿음 교수에게 수술을 받아볼래?

    원무 과장의 선택은 후자였다.

    이믿음이라면 충분히 믿어 볼 만한 데다가 손주를 서울까지 올려 보내는 수고를 겪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래서 성사된 것이 오늘의 수술이었다.

    “강 과장.”

    성철용은 강태섭을 지그시 쳐다보며 운을 뗐다.

    “네, 부원장님.”

    “이번 수술에 내 체면도 달려 있는 거 알고 있지? 친한 친구의 손자가 우리 병원에서 사망한다면 난 고개를 못 들 거야.”

    “이번 수술의 중요성은 저도 이 교수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성철용의 시선이 다시 수술방으로 향했다.

    이번 수술이 성공한다면 성철용은 수술용 로봇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할 작정이었다.

    앞선 강태섭의 지적처럼 말이다.

    소아 수술마저 소화하는 이믿음이라면 거액을 들여 투자할 가치가 있었으니까.

    탁. 탁. 탁.

    성철용은 다리를 떨어 가며 이믿음의 입장을 기다렸다.

    이번 수술 하나에 걸린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 * *

    벅. 벅. 벅. 벅.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나는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하고 있었다.

    빨간 소독액이 묻은 솔로 손과 팔뚝 등을 힘차게 문질러 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솔질을 하다 보니 팔의 상태가 말도 아니었다.

    건조하게 갈라진 피부에 솔이 닿을 때마다 시큰한 통증이 퍼졌다.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피부 질환 말고도 나는 허리 통증과 손목 통증, 안구 통증을 함께 앓고 있었다.

    힘들지만 이만한 아픔으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오히려 축복이 아닐까 싶었다.

    내 옆에서는 양재석 교수도 스크럽을 하고 있었다.

    양재석은 소아 폐·식도 파트 외과의로 나를 돕기 위해 이번 수술에 파견되었다.

    양재석이 제1보조의를 맡아 주면서 내 수술 부담도 한층 줄었다.

    비록 세부 전공은 다를지라도 소아에 대한 이해도는 높을 테니까 말이다.

    “이 교수, 그 소식 들었어요?”

    양재석이 처음으로 말문을 뗐다.

    “무슨 소식이요?”

    “오는 길에 들었는데 원무과장님도 이번 수술 참관한대요.”

    “원무 과장님이요? 그건 의외네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수술을 참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수술을 받는 환자가 남도 아니고 혈육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혈육의 신체가 반으로 갈라지고 선혈이 낭자하는 광경을 견뎌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원무 과장님, 독한 분이에요. 지호가 죽으면 이 교수한테 소송을 걸지도 몰라요. 참관은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는 의미일 테고요.”

    “…….”

    “차라리 지금이라도 수술을 포기하는 게 어때요?”

    양재석이 수술 포기를 종용했지만 나는 대꾸 없이 고개를 저었다.

    수술용 로봇 도입과 강태섭의 리베이트를 엮어 강태섭을 내쫓아야 하는 나였다.

    그 절호의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 줄 수술을 포기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또한 나는 이미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다. 중간에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 갈 때까지 가는 것 외에 다른 돌파구는 없었다.

    “휴우, 어쩌다가 이런 위험한 수술에 휘말렸는지. 나도, 참.”

    “양 교수님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수술을 시작하면 알게 될 거예요.”

    짧은 잡담을 마치고 나는 수술 복장을 착용했다.

    지이이잉.

    수술방으로 들어가 집도의 위치에 섰다.

    지호는 이미 전신 마취가 끝난 상태였고 바이탈은 안정적이었다.

    고개를 돌려 참관용 수술실을 바라보니 세 명의 관객이 눈에 띄었다.

    진료부 원장과 원무과장. 그리고 강태섭까지.

    세 사람에게 최고의 수술을 선보이는 것이 오늘 나의 목표였다.

    “용진아, 시작할까?”

    “네, 교수님.”

    내 지시에 3년 차 레지던트 우용진이 환아(患兒)의 몸을 수술포로 덮고 가슴을 소독했다.

    “10번 블레이드.”

    나는 우용진에게 받은 메스를 환아의 가슴에 대었다.

    [소아 수술의 제2원칙, 힘 조절.]

    평소와 달리 나는 손에 힘을 빼고 메스를 세로로 내리그었다.

    스으으윽.

    메스를 따라 환아의 살결과 근막이 갈라졌다. 성인을 생각하고 힘을 썼다면 아마 근막이 아닌 흉막까지 갈라졌으리라.

    ‘힘은 평소의 3할 정도만 쓰면 되겠어.’

    메스를 단 한 번 써본 것만으로도 나는 힘 조절의 범위를 터득했다.

    최근 내 수술 솜씨는 물이 오를 대로 올라와 있었다.

    빠드드득.

    빠드드득.

    이어서 나는 뼈 절개용 메스로 환아의 흉골을 반으로 갈라 나갔다.

    성인과 달리 한 살배기의 흉골은 작고 연약했다. 우악스러운 전기톱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소아 수술의 제3원칙, 느긋하게.]

    흉골 절개술을 펼치면서 나는 제3원칙을 충실하게 지켰다.

    흉골이 쉽게 갈라지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다.

    소아 수술을 성인 수술과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한다면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나였다.

    흉골 절개술이 평소보다 20분 정도 더 걸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 느긋한 마음가짐 덕분일까.

    절개된 흉골과 옆으로 젖혀낸 갈비뼈의 절단면이 무척 깔끔했다.

    “이 교수, 생각보다 잘하네요?”

    절개술을 마치기 무섭게 양재석이 감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눈으로만 웃었다.

    고작 이 정도로 감탄을 하다니…….

    본격적으로 팔로 4징후군 수술에 들어가면 아예 기절하시겠어?

    “용진이는 견인기로 절개창 벌려 주고 양 교수님은 고정형 견인기 장착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스태프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끝에 수술 시야가 완전하게 잡혔다.

    환아의 가슴이 좌우로 넓게 벌어지면서 갈비뼈 뒤에 숨어 있던 심장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쿵.

    환아의 심장은 쪼그맣고 앙증맞았지만 그 박동만큼은 무척 거셌다.

    [살아 있다는 것은 뛰고 있다는 것이다.]

    잠깐 떠오른 낭만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나는 환아의 심장과 인공 심폐기를 연결했다.

    심정지액까지 주입되면서 움직임을 멈춘 심장.

    심장은 잠시 잠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띠리리릭.

    띠리리릭.

    나는 눈에 착용하고 있던 루뻬(광학 안경)의 배율을 조절했다. 소아는 심장이 작아서 광학안경의 배율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배율을 높이자 환아의 심장이 성인의 심장처럼 커다랗게 보였다.

    “10번 블레이드.”

    우용진에게 건네받은 메스로 나는 환아의 우심실부터 반으로 갈랐다.

    ‘하… 이건 좀 심하잖아.’

    머릿속으로만 하던 생각을 나는 하마터면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실제로 본 환아의 심장 상태는 CT와 초음파로 확인한 것보다 더 나빴다.

    우심실 근육이 비대해질 만큼 비대해져 있었다.

    우심방과 우심실 사이에 커다란 구멍도 뚫려 있었다.

    이 정도면 일반 팔로 4징후군이 아니라 중증 팔로 4징후군이었다.

    양재석도 환아의 심장을 확인하더니 쯧쯧 혀를 찼다.

    그래도 실패는 없어. 반드시 성공하고 만다.

    나는 불안함을 밀어내고 그 대신 뜨거운 의욕을 불러왔다.

    회귀했다면 이 정도 수술은 성공해야 하지 않겠는가.

    강태섭을 쫓아내려면 이 정도 고생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Vicryl 3-0, patch, 니들홀더.”

    내 지시와 함께 팔로 4징후군 수술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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