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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251화 (251/257)
  • 251화 제1장 결자해지 (1)

    “네, 알겠습니다. 제가 맡죠.”

    강태섭과 통화를 마친 후, 나는 한참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일이 안 풀리려고 하면 이렇게도 안 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처럼 깨달았다.

    일단 나는 머릿속으로 관계 정리부터 했다.

    환자는 생후 12개월이 지난 유아로 팔로 4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환자의 할아버지는 분원의 원무과장인데 진료부 원장과 막역한 친구 사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관계가 소아 흉부외과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

    여기에 또 소아 흉부외과의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었다.

    부산 분원에는 단 2명의 소아 흉부외과의가 있었다.

    보통 대학 병원 본원에만 소아 흉부외과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꽤 파격적인 인사였다.

    문제는 소아 심장 수술을 맡고 있는 교수가 해외 연수를 나갔다는 점이었다.

    즉 원무과장의 손자를 수술할 외과의가 없었다.

    “그럼 서울 본원으로 보내는 게 낫지 않습니까?”

    설명을 듣던 중 나는 강태섭에게 물었다.

    굳이 부산에서 수술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본원에는 내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뛰어난 소아 흉부외과의들이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강태섭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 이 교수,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성공해야 우리 과의 위신이 서지 않겠어?

    “…….”

    - 원무 과장님하고도 이야기해 봤는데 서울까지 올라가는 걸 불편해하시는 눈치더군.

    강태섭은 거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였다.

    원무과장의 손자를 우리 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수술해야만, 진료부원장이 수술용 로봇을 도입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설 거라고 했다.

    솔직히 이전에 말한 이유들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이유만큼은 내가 듣기에도 꽤 그럴 듯했다.

    진료부 원장의 친한 친구인 원무과장의 손자를 성공적으로 수술한다?

    그러면 진료부 원장도 흉부외과 쪽으로 팔이 굽을 확률이 높았다.

    - 이 교수, 혹시 소아 수술도 소화할 수 있나?

    강태섭이 기대하는 목소리로 물었으나 나는 즉답을 피했다.

    본원에서 인턴 근무를 하던 당시.

    근 8개월 동안 소아 흉부외과에서 수련을 하긴 했다.

    명의들의 수술을 도우며 그들의 수술 방식, 처치 요령, 출혈 관리 등을 익혔었다.

    큰 줄기들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했지만, 나머지 것들은 글쎄였다.

    벌써 까마득한 12년 전의 지식들이었으니까.

    - 하긴, 아무리 자네라도 소아 수술까지는 무리겠지. 똑같은 심장이라도 소아의 심장을 다루는 일과 성인의 심장을 다루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말이야.

    “…….”

    - 원무 과장님께는 내가 잘 말해 보지.

    내 침묵을 강태섭은 거절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수술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닙니다, 과장님. 이번 수술 제가 어떻게 해서든 성공시키겠습니다.”

    - 어허, 나 때문에 무리할 필요 없어. 내 입으로 부탁하긴 했지만 애초에 너무 위험한 일이기도 했고.

    강태섭은 도리어 이번 수술에서 한발 물러났다.

    수술 실패 시의 파급력을 뒤늦게 우려한 듯했다.

    하긴 이번 수술의 득실을 따져 보면 말이다.

    성공했을 때 얻을 것보다 실패했을 때 잃을 것이 더 많았다.

    성공 시에 얻을 수 있는 딱 하나뿐이었다.

    수술용 로봇 도입 확률의 증가.

    반대로 실패 시에 잃은 것은 세 가지나 되었다.

    원무과장과의 반목.

    진료부 원장의 불신.

    수술용 로봇 도입 확률의 감소.

    나와 강태섭의 대내적인 평판 하락 등등.

    리베이트에 눈이 멀었던 강태섭은 뒤늦게 계산기를 두드려 봤으리라.

    그리고 이번 수술의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리라.

    - 오늘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게. 괜히 쉬는데 고생만 시켰군.

    “별말씀을요. 하지만 과장님, 저는 이번 수술을 꼭 맡고 싶습니다.

    - 그 위험한 수술을 하겠다고?

    강태섭이 놀라서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애초에 수술용 로봇 도입을 꺼낸 건 저 아닙니까?”

    - 그거야 그렇지.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싶습니다. 책임을 질 수 있게 해 주시죠.”

    내 부탁에 강태섭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강태섭이 머릿속으로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과연 강태섭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 알았네. 내 자네만 믿지.

    “감사합니다, 과장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었다.

    ‘아무렴,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순 없어.’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도로 넣고 물결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통화의 열기로 달아오른 두 뺨을 시원한 바닷바람이 식혀 주었다.

    수술용 로봇은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반드시 도입되어야 했다.

    그래야 강태섭이 리베이트를 받아 처먹을 테고 내가 강태섭의 리베이트를 폭로할 수 있을 테니까.

    * * *

    오전 컨퍼런스와 회진을 마친 후였다.

    강태섭은 회의실에서 부교수 이시형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외래 진료를 보기 전, 블랙커피를 마시는 일은 강태섭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과장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이시형이 말하고 싶은 바를 빤히 알았음에도 강태섭은 일부러 오리발을 내밀었다.

    “원무과장님의 손자를 수술하는 일, 말입니다. 그런 중요한 일을 이 교수에게 맡겨도 되는 겁니까?”

    이시형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항의하는 투였다.

    요즘 이시형은 이믿음이 엮인 대화를 할 때마다 감정부터 앞세우고는 했다.

    물론 전부 강태섭이 의도한 바이긴 했다.

    굴러온 돌인 이믿음이 잘나갈수록 박힌 돌인 이시형은 초조할 것이다.

    그 초조함으로 말미암아 이시형은 강태섭의 가스라이팅에 더욱 허우적거리게 될 테고.

    “그럼 자네가 맡을래?”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환자는 본원으로 보내야 마땅합니다. 소아 쪽은 본원이 훨씬 잘 보니까요.”

    “이 교수는 잘할 수 있다고 하더군. 나는 이 교수를 믿어 보기로 했어.”

    “하… 벌써 그 새파란 애송이에게 홀딱 넘어가신 겁니까?”

    이시형의 도 넘는 발언에 강태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태섭은 느긋했던 눈빛을 거두고 섬뜩하게 이시형을 노려보았다.

    “자네, 입을 함부로 놀리는군. 내가 자네 친구로 보이나?”

    “죄송합니다, 과장님. 순간적으로 욱하는 바람에.”

    “이 교수가 자네 발작 버튼이라도 되나? 이 교수 이야기만 나오면 어째 정신을 못 차린단 말이지.”

    “그 녀석이 제가 거절한 무수혈 수술을 성공하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양입니다.”

    이시형이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강태섭은 따뜻한 말로 이시형을 위로했다.

    자신이 믿고 기대는 사람은 오직 이시형뿐이다.

    이믿음은 단지 이용하다가 버릴 사냥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시형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환해졌다.

    ‘단순하기는…….’

    강태섭은 속으로 킬킬킬 웃었다.

    한번 요령만 터득한다면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었다.

    “다 이해해. 내가 자네라도 그랬을 거야.”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과장님, 그래도 이번 수술이 위험하다는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도 다 알아.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무엇을 얻을 수 있겠나?”

    강태섭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문했다.

    “혹시 리베이트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시형이 노골적으로 리베이트를 언급했다. 지난 몇 년간 강태섭의 오른팔을 해 온 눈치는 어디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겸사겸사.”

    강태섭은 말을 아꼈지만 사실 이시형이 꿰뚫어 본 것이 정확하게 맞았다.

    근 일 년 동안 챙긴 뒷돈이 없었다.

    곡간이 텅텅 빌 지경이었다.

    이믿음이 수술에 성공하고 진료부 원장이 수술용 로봇의 도입을 허락한다면 모처럼 목돈을 만질 수 있으리라.

    어디 그뿐이랴.

    수술용 로봇이 도입되면 말이다.

    부산에 있는 흉부외과에서 오직 신원 대학교 분원만 로봇 수술이 가능해진다.

    로봇 수술로 인한 수익 증대.

    로봇 수술로 인한 평판 상승 등등.

    강태섭은 그 달콤한 열매를 맛보며 차기 진료부 원장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꿩 먹고 알 먹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이 교수가 수술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시형이 화제를 돌렸다.

    “내 책임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책임은 이 교수가 져야지.”

    “…….”

    “나는 제안만 했을 뿐이고 결국 수락한 건 이 교수니까.”

    “하아… 복잡하군요. 제가 이번 수술을 성공하길 빌어야 하는지, 실패하길 빌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거라면 내가 이 자리에서 정해 주지.”

    강태섭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 * *

    강태섭의 제안을 수락한 후, 나는 이틀 동안 세미나 참석으로 외래 진료를 쉬었다.

    물론 실제로 세미나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세미나는 핑계였고 사실은 신원 대학교 병원 서울 본원으로 이동했다.

    본원의 소아 흉부외과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수술을 참관했다.

    전생을 뛰어넘는 솜씨를 갖추고 나서 소아 흉부외과 수술을 다시 보니 소아 수술이 무척 쉬워… 보일 리는 없었다.

    오히려 소아 수술이 생각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소아 수술을 만만하게 봤던 인턴 시절의 나는 철부지였던 셈이다.

    알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더 많았다.

    첫째 날, 나는 오로지 수술을 참관만 했다.

    운 좋게도 수술 중에 팔로 4증후군 환자가 있어 수술을 눈과 머리와 가슴에 담아 두었다.

    이틀째에는 소아 심장 전문의인 이태원 교수를 찾았다.

    가능하면 대학 동기인 남초롱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남초롱이 해외 연수를 떠나 만날 수가 없었다.

    “자네가 팔로 4증후군 수술을 하겠다고? 진심인가?”

    사정을 설명하자 이태원은 크게 경악했다.

    같은 심장이라도 성인을 다루는 것과 소아를 다루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괜한 만용 부리지 말고 서울로 전원시키게. 전문가가 버젓하게 있는데 구태여 비전문가가 수술할 필요는 없어.”

    “죄송하지만 제가 꼭 해내야만 합니다. 이번 수술에 많은 것이 걸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전원을 시켜야지.”

    “부탁드립니다. 교수님의 수술 요령을 제게 알려 주세요.”

    나는 고개를 숙여 가며 다시 부탁했다.

    리베이트와 강태섭을 향한 복수까지 이태원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끈질기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는…….

    “난 자네가 쓴 에세이도 읽어 봤고 자네가 개발한 싱글 포트 흉강경 수술도 눈여겨봤지.”

    “…….”

    “그러니 이번에도 좋은 의도로 수술을 맡았다고 믿겠네.”

    내게 말 못 한 사연이 있다는 점을 간파했을까.

    이태원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팔로 4증후군 수술 노하우를 내게 전수했다.

    이태원에게 도움을 요청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어제 참관했던 수술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들이 휴지처럼 술술 풀렸던 것이다.

    이태원이 나를 왜 비전문가라고 했는지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근 3시간 동안 특강을 받고, 그날 저녁 나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상경할 때의 나와 하향할 때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팔로 4증후군 수술 잘할 수 있겠어요?]

    누군가 지금 물어본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이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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