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248화 (248/257)
  • 248화 제5장 도전 (3)

    허겁지겁 수술 전 소독을 하고 수술 복장을 착용하고 나는 수술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보호자와 실랑이를 한 시간은 10분 정도.

    따지고 보면 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잣대를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서의 10분은 황금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고?

    사람이 목숨을 잃는 데는 놀랍게도 10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환자 상태는?”

    나는 집도의 자리로 이동하며 물었다.

    “H.A(Heart Arrest, 심장마비) 발생해서 CPR로 막 회복시킨 참이었습니다.”

    3년 차 레지던트의 대답을 듣고 보니 최경훈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최경훈의 들썩거리는 가슴과 거친 호흡 소리도 안쓰러워 보였다.

    “경훈아, 넌 나가서 씻고 돌아와라. 한 5분 정도 푹 쉬고.”

    “하지만 수술이 한시라도 급한 상황인데…….”

    “환자가 심장 리듬을 되찾았다면 좀 더 경과를 관찰해도 좋아.”

    “알겠습니다.”

    최경훈이 떠난 후 나는 환자 감시 장치를 살피고 마취의의 자세한 노티도 들었다.

    혈압은 100mmHg/80mmHg.

    체온은 36.5도.

    맥박은 분당 90회.

    호흡수는 분당 28회.

    바이탈 사인이 정상 범위는 아니었으나 수술을 감당하기에는 충분했다.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심전도 그래프도 규칙적인 리듬을 띠고 있었고.

    수술 전 환자가 사망하는 최악의 사태는 모면한 듯 보였다.

    당신의 고집불통인 신념에 만족하십니까?

    당신의 신념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괴롭고 곤란한데도?

    전신 마취에 빠진 환자를 내려다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수술이 성공한 후에 환자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의 종교적 신념과 수혈 거부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기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지켜 내야 할 가치가 존재하는지를.

    “하늘아, 자가 혈액은 얼마나 모았니?”

    “400밀리미터 3팩입니다. 관상 동맥 우회술을 하려면 최소 6팩은 있어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

    “셀 세이버는?”

    “미리 연결해 놨습니다.”

    내 시선이 인공호흡기 옆에 놓인 장치로 향했다.

    셀 세이버(Cell saver).

    직역을 하면 세포를 구한다는 뜻이지만 그 용도는 자가 수혈 장치였다.

    셀 세이버에서 재가공된 혈액은 환자에게 다시 투입할 수 있었다.

    대량 출혈이 예상되는 수술.

    또는 무수혈 수술에서 동아줄과 같은 의료 장치였다.

    그렇다고 셀 세이버가 만능이라고 착각해선 곤란했다.

    셀 세이버의 사용 범위는 어디까지나 부족한 혈액의 보조였다.

    환자 본인의 피를 무한으로 재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님, 수술은 예정대로 OPCAB(무 인공 심폐기 관상 동맥 우회술)으로 진행하시는 겁니까?”

    “아니. MIDCAB(최소 침습적 관상 동맥 우회술)으로 간다. 대신 오프펌프로.”

    내 대답을 듣고 조하늘은 침묵을 지켰다.

    너무 놀라서 말문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내 수술이 무모해 보일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일반적인 OPCAB은 가슴 정중앙을 절개하고 그 절개창을 좌우로 벌려서 수술 시야를 확보한다.

    당연하게도 수술 시야가 넉넉했다.

    반면 MIDCAB은 수술 시야가 좁았다.

    좌측 흉부에 5-8센티미터 정도 되는 절개창을 만들 뿐이었으니까.

    다만 내가 OPCAB에서 MIDCAB으로 선회한 데는 다 까닭이 있었다.

    절개창이 작은 만큼 출혈량이 적기 때문이다.

    인공 심폐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라면 수술 후 환자의 심장 회복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였고.

    “가뜩이나 시야도 좁은데 오프펌프까지 한다면 교수님이 너무 고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조하늘이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외과의가 고생해야 환자가 고생을 덜하는 법이지.”

    “그래도 이 환자는 고생을 해도 싼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라면 애초부터 환자를 받지 말았어야지. 난 때문에 네가 고생도 많고 걱정도 많구나.”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교수님이…….”

    “그럼 됐어. 네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으니까.”

    지이이잉.

    수술방 문이 열리고 최경훈이 복귀했다. 최경훈은 제2보조라서 내 옆에 섰는데 야무진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경훈아, 이번 수술에서는 내 역할도 중요하다.”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바로 너.”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으며 검지로 셀 세이버를 가리켰다.

    “출혈이 발생했을 때 웬만하면 거즈는 쓰지 말고 석션으로 처리해. 나중에는 혈액 한 방울도 아쉬울지 모르니까.”

    * * *

    참관용 수술실.

    강태섭은 이시형과 함께 이믿음이 준비 중인 무수혈 수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집무실에서 퇴근을 준비하던 찰나, 이시형이 전화를 걸었었다.

    무수혈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와서 응급 수술을 진행하게 됐는데 관심이 있냐고 물었다.

    강태섭은 당장 수술실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암초를 이믿음이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해서.

    “젊은 친구라서 그런지 이 교수는 지나치게 무모한 구석이 있습니다. 무수혈 수술에 MIDCAB에 오프펌프라니… 그게 가당키나 합니까?”

    “가당하지. 수술을 소화할 수만 있다면.”

    이시형과 달리 강태섭은 이믿음의 판단을 높게 사고 있었다.

    현 상황에서 환자의 경과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수술.

    그것은 이믿음이 선택한 수술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선을 선택한다고 해서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최선을 코앞에 두고도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왜냐고?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강태섭은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이번 참관을 통해 강태섭은 이믿음이 환자를 위해 희생하는 헌신적인 의사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앞으로 환자를 미끼로 삼는다면 이믿음을 조종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고.’

    사실 이번 수술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강태섭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수술이 성공한다면 질투와 시샘에 불타게 될 이시형을 잘 이용하면 됐다.

    수술이 실패한다면 요새 잘나간다고 건방 떠는 이믿음을 길들이면 됐다.

    강태섭으로서는 손해를 볼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종하고 이간질하는 것은 강태섭의 주특기였다.

    덕분에 그는 레지던트가 된 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해를 보고 산 적이 없었다.

    “과장님, 지금 서운하게 이믿음 교수 편을 드시는 겁니까?”

    “어허, 나야말로 섭섭하게 왜 그래? 내가 인정하는 부교수는 자네뿐이라고.”

    “그럼 애초에 저 친구를 부산에 데리고 오지 않으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부른 게 아니라 저 친구가 제 발로 왔다니까. 직급하고 연봉 협상은 진료부원장님이 하셨고.”

    강태섭은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이시형이 감히 진료부원장에게 협상 여부를 물어볼 수는 없을 테니 들통날 일도 없는 거짓말이었다.

    “아, 그런 거였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강태섭의 거짓말을 듣고 이시형은 한결 안도하는 눈치였다.

    굳었던 표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단순하기는…….

    애정 결핍이 있는 이시형은 강태섭이 부려 먹기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제 슬슬 외국물 먹은 이 선생 실력 좀 볼까?”

    잡담을 마친 강태섭의 시선은 다시 모니터로 향했다.

    * * *

    “10번 블레이드.”

    최경훈이 건넨 메스를 받고서 나는 환자의 왼쪽 가슴 전방을 가로로 절개했다.

    절개 폭은 대략 6센티미터 정도.

    더 넓은 수술 시야 확보를 위해 절개 길이를 늘릴까.

    순간 욕심이 들끓으면서 손목이 멈칫했다.

    하지만 나는 금방 욕심과 손을 함께 거두었다.

    내 편의를 생각하는 순간 이번 수술은 물 건너갈 것이다.

    치이이익.

    절개창에서 왈칵 흘러내리는 핏물을 최경훈이 석션기로 빨아들였다.

    수술 전 내가 내렸던 지시를 잘 따르는 모습이었다.

    똘똘한 녀석.

    앞으로 최경훈을 내 수술 전담 어시스트로 삼아서 적극적으로 키워 봐도 좋을 듯했다.

    이후 진행된 수술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절개창을 좌우로 벌려 수술 시야를 확보하고.

    심낭 위를 덮고 있는 4-5번 갈비뼈를 잠깐 박리해 놓은 다음.

    관상 동맥 우회술에 필요한 내흉 동맥을 채취했는데…….

    워낙 좁은 시야에서 내흉 동맥을 채취하다 보니 예기치 못한 출혈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 탓에 저축했던 총 세 개의 자가 혈액 팩 중 하나를 소모해야만 했다.

    “셀 세이버에 저축된 혈액량은 얼마나 되니?”

    “70밀리미터 정도 됩니다.”

    없는 것보다야 백번 낫다지만 그래도 처참한 수준이었다.

    소모한 혈액이 400밀리미터인데 70밀리미터를 재사용할 수 있다니…….

    세 팩을 다 쓴다고 가정하면 210밀리미터 정도 남는 건가.

    “Stabilizer(고정형 견인기).”

    나는 최경훈에게 받은 견인기로 요동치고 있는 환자의 심장을 고정하기 시작했다.

    견인기 고정이 너무 타이트하면 심장이 압박을 받아 회복이 늦어진다.

    그렇다고 견인기 고정이 너무 느슨하면 심장 박동 때문에 수술이 어려웠다.

    그러므로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일이 내 숙제였다.

    진땀을 흘린 끝에 나는 5분 만에 만족할 만한 고정값을 찾아냈다.

    “잘 봐. 여기가 지금부터 우회로를 연결할 좌전하행 동맥(LAD)이다.”

    나는 포셉으로 좌심방과 좌심실 좌측에 위치한 굵은 혈관을 가리켰다.

    이곳이 오늘의 승부처이자 전쟁터였다.

    “너희들이 손을 떨지 않더라도 심장 박동에 휘말리면 저절로 손이 헛도는 수가 있어.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알았어?”

    “네, 교수님.”

    “네, 교수님.”

    레지던트들의 씩씩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강태섭 밑에 있는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정신 무장 하나만큼은 단단하게 되어 있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강태섭의 도움을 받을 줄이야.

    “10번 블레이드.”

    나는 대동맥의 일부를 메스로 갈라냈다.

    철철 흘러내리는 피가 마치 환자의 생명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안타깝게 보였다.

    으… 저 아까운 피.

    취이이익.

    최경훈이 석션하는 동안, 나는 미리 채취한 내흉동맥의 한쪽 끝을 대동맥과 연결했다.

    봉합은 당연하게도 쉬울 리가 없었다.

    인공 심폐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쿵. 쿵. 쿵.

    뛰고 있는 심장 위에서 문합을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내 손도 떨렸다.

    내흉 동맥을 고정하고 있는 조하늘의 손도 같이 떨렸다.

    하지만 내 손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났다.

    무수혈 수술이라는 무게감을 벗어던지자 양손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은 더 이상 봉합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봉합의 지루함을 덜어 주는 하나의 규칙적인 리듬으로 변모했다.

    첫 번째 박동에 봉합침을 내흉 동맥에 운침하고.

    두 번째 박동에 봉합침을 대동맥에 운침하고.

    세 번째 박동에 봉합사를 당겨 봉합사에 팽팽한 압력을 발생시키고.

    네 번째 박동에 매듭을 짓고.

    봉합을 즐기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고작 7분 만에 대동맥과 우회로의 한쪽 끝을 연결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전생에서는 무려 30분이나 걸렸던 작업인데 말이다.

    이번 생의 내가 전생의 나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었다.

    그래서 환자를 살리고 보호자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지금 이대로라면 실패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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