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제4장 귀국 (1)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의외로 따분하지 않았다.
생각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나는 러셀과 러셀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했다.
러셀이 나 말고 점찍어 두었다는 다른 흉부외과의 아사다와 루카도 떠올렸다.
출국 전 아사다와 루카에 대해 검색해 봤지만 뾰족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
해외 논문 데이터베이스에 두 사람의 논문이 기재된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베일에 싸인 존재.
그래서 더 두 흉부외과의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로움이 생겨났다.
러셀이 그 두 사람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도.
반면 러셀은 내가 몰랐을 뿐, 미국 내에서 인지도가 어마어마한 서전이었다.
신수술 브레이커 말고도 러셀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었다.
바로 갓 핸드.
다소 유치찬란하고 과장되게 들리는 별명이었지만 러셀의 활약은 대단했다.
특히 샴쌍둥이의 심장을 분리하면서 그 탁월한 솜씨를 인정받았다.
‘샴쌍둥이 심장 분리 수술이라…….’
나는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리며 전생의 기억 속으로 더 깊게 빠져들었다.
전생의 내게도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할 기회가 단 한 번 주어졌었다.
당시 싱글 포트 수술에 매진하고 있었던 탓에 수술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나 대신 부교수 최철민이 쌍둥이를 맡았고 쌍둥이는 사망했다.
다시금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회귀한 지금의 나라면 쌍둥이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먼 훗날 내가 맡게 될 쌍둥이의 이름을 가슴속에 새겼다.
지연이와 지애.
기내식을 먹고 선잠에 들었다 깨니 한국이 가까워졌다.
그때부터 나는 앞으로 내가 펼칠 행보를 고민했다.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활동해야 하는지를.
사실 답은 일찍부터 정해져 있었으므로 나는 큰 틀만 재점검했다.
긴 시간의 비행 끝에 마침내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현재 시각은 오후 7시 10분.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면서 해가 빨리 떨어진 모양이었다. 창밖은 칠흑으로 어두웠다.
드르륵. 드르륵.
나는 캐리어를 끌고 입국 수속을 밟은 뒤 1층 로비로 이동했다.
영어 대신 보이는 한글들이 반가웠다. 한국 사람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 소리가 정다웠다.
공항이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모처럼의 귀국이 너무 기뻤던 것이다.
“큰아들!”
“믿음아, 여기!”
“형!”
1층 로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나를 찾았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사랑하는 가족들이 안내소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반갑고 그리운 마음에 나는 잰걸음으로 가족에게 다가갔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이와 차례대로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통화를 나눴지만 통화는 직접 보는 것만 못했다.
“우리 아들, 타지에서 고생 많았나 보네. 살이 쏙 빠졌어.”
“겉으로만 그래 보이는 거예요. 사실은 쪘어요.”
“볼이 홀쭉한데 이게 찐 거라고?”
어머니가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고 나는 대답 대신 전보다 튀어나온 배를 문질렀다.
미국 흉부외과의는 한국 써전보다 여유가 넘쳤다.
정규 스케줄도, 수술 스케줄도, 일과 후 스케줄도.
그 넉넉한 여유 시간에 간식을 먹었더니 나는 예전보다 3킬로그램가량 체중이 불어났다.
“사랑아 축하한다. 사법 고시 한 번에 합격하고 로펌에 들어갔다면서?”
나는 자랑스러운 동생의 어깨를 두들겼다.
법조계 쪽은 문외한이지만 사법 고시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동생이 이뤄 낸 성취에 괜히 내가 다 뿌듯해졌다.
“고마워, 형. 근데 사실 합격하는 데 운도 많이 따라 줬어. 내가 공부한 부분이 시험에 많이 나왔거든.”
사랑이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쑥스러워했다.
포켓몬스터를 좋아하던 사랑이는 어느새 나보다 키가 컸다.
어머니를 닮은 나와 달리 아버지를 닮아 강인하고 호방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는 사랑이였다.
겉모습이 성숙했어도 내 마음속 사랑이는 여전히 애였다.
부모님이 왜 아직도 나를 애 취급 하는지를, 나도 사랑이를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로펌 입사 축하하는 의미로 형이 차 한 대 뽑아 줄게.”
“차씩이나?”
“형이 그 정도 능력도 없어 보여? 미국에서 연봉이 무려 6억이었다고.”
나는 장난스럽게 으스댔다.
“믿음아, 우리한테 떨어지는 콩고물은 뭐 없니?”
잠자코 있던 아버지도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 대화에 참여했다.
“당연히 아버지 어머니 선물도 해 드려야죠. 기대하세요.”
“오냐, 기대하고 있으마.”
우리 가족은 그대로 주차장으로 이동해 인천 공항을 빠져나갔다.
운전은 아버지가 아닌 사랑이가 했다.
오락실에서 500원짜리 게임 자동차를 몰던 사랑이는 이제 없었다.
면허를 딴 후 사랑이는 우리 집의 전용 운전기사가 되었다.
서로의 근황을 사이좋게 묻는 동안 차는 서울로 진입했다.
나는 한국의 도심 풍경이 못내 반가웠다. 빽빽하게 밀집한 빌딩들에 꽉 막힌 도로까지도.
싫어했던 것들조차 그리워질 만큼 한국에서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큰아들, 뭐 먹고 싶어?”
어머니가 저녁 식사 메뉴를 물었다. 그제야 잊고 있었던 식욕이 되살아났다.
“모처럼 돌아왔으니까 고기 어때? 한우도 좋고 돼지갈비도 좋고.”
사랑이는 고기파였다.
“내 생각에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한식파였다.
“엄마 친구 아들은 해외 연수 갔을 때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다고 하던데.”
어머니는 중식파였다.
가족들의 접근은 제법 일리가 있었지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따로 있었다.
“전 떡볶이에 순대가 제일 먹고 싶어요.”
귀국 후 처음으로 간택한 메뉴는 바로 떡볶이였다.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떡볶이에 순대, 튀김을 잘 버무려서 배 터지게 먹고 싶었다.
그날 저녁.
모처럼 가족과 분식 파티를 벌인 나는 소화제까지 챙겨 먹어야 했다.
* * *
귀국하고 나서 보름 동안, 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무려 3년 6개월을 떨어져 있었더니 서로 할 말이 많았다.
평일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는 가족과 여행을 떠났다.
산도 구경하고 바다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뭐랄까, 미국식으로 맞춰져 있던 시차를 한국식으로 고쳐 가는 과정이었다.
한편 귀국 소식을 알린 뒤 지인들의 문자와 통화가 쇄도했다.
그중에서도 본원 1년 선배인 황은우의 연락이 가장 끈질겼다.
황은우는 나의 본원 복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행선지를 결정해야 했던 시기라서 나는 영등포의 한 주점에서 황은우와 만났다.
“미천한 외과의가 그레이트 서전을 뵙습니다.”
황은우는 첫 인사부터 넉살을 떨었다.
“저를 놀릴 의도였다면 대성공이네요. 지금 쪽팔려서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에요.”
“농담 반, 진담 반이니까 혀는 반만 깨물어.”
“진담이 왜 반이나 돼요?”
내가 되묻자 오히려 황은우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아직도 몰라?”
“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요?”
내가 뚱한 목소리로 되묻자 황은우가 설명에 나섰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러셀이 미국 흉부외과 협회에 내 싱글 포트 흉강경 수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논문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갓 핸드의 네임 밸류는 뭔가 달라도 달랐던 것일까.
지지부진하던 싱글 포트 수술의 전파 속도는 그때부터 급물살을 탔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빅5 병원을 중심으로 싱글 포트 수술에 대해 논의 중이라나 뭐라나.
‘누구랑 달리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네.’
만약 러셀이 악당이라면 강태섭보다는 순도가 낮은 악당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쨌거나 고생해서 완성한 신수술이 빛을 보게 되어 기뻤다.
전생에서는 한국에서만 유행했던 수술이었는데, 강태섭이 개발한 수술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 생의 신수술은 내 것이 되었고 러셀 덕분에 해외까지 접수했다.
“넌 어떻게 네 이야기를 나보다 모르니?”
“집에서 푹 쉬고 있었잖아요. 아직 시차 적응 중이라고요.”
잡담을 나누며 우리는 가까운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와 안주가 곁들여지면서 대화가 점점 깊어졌다. 서로 듣고 싶은 말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황은우에게 들은 본원의 근황은 평탄했다.
전생의 멘토 서인석이 여전히 흉부외과 과장을 맡고 있었다.
폐암 센터는 순항 중이었고 의료 사고나 다른 말썽이 터지지도 않았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마 나뿐일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강태섭의 존재 때문이었다.
강태섭이 과장이었던 서울 본원은 전생에서는 난리도 아니었다.
온갖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서로 협잡질을 하고 시기하고 비방하고 등등.
가운만 입었다 뿐이지 하는 꼴은 저열한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서울에서 벌어졌을 일이 지금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겠지.’
나는 강태섭이 과장으로 있는 부산 분원을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당연히 본원으로 복귀할 거지?”
황은우가 생맥주를 절반 가까이 비우고 물었다.
“다들 널 보고 싶어 해. 그중에서도 과장님이 특히. 미국에서 수련받은 건 한국에서 다 쳐주니까 교수 자리 꿰차는 것도 문제없을 거고.”
“저도 마음 같아서는 본원에 가고 싶긴 해요.”
나는 마른 땅콩을 와드득 부숴 먹었다.
앞으로 해야 하는 말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는 독한 마음이 필요했다.
“어째 뉘앙스가 불안하다?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가면 되는 건데?”
“저 본원으로 안 가요.”
마음이 편치 않았다만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야, 이제 와서 배신 때리기야? 네가 없으면 본원은 누가 지켜.”
“선배가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본원 가면 선배 자리를 빼앗아야 할 수도 있어요.”
“그건 좀 가슴 아프지만 괜찮아. 네가 나보다 잘났으니 네가 더 대접받아야지.”
“선배는 여전히 정이 넘치시네요.”
본인 진급을 위해 레지던트를 착취하고 동기를 손정남과 달리.
황은우는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나를 위해 내놓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나도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아픈 속을 달래기 위해 맥주잔을 비웠다.
기분 탓인지 맥주가 소주보다 썼다.
“그럼 어디로 갈 생각인데? 본원보다 정이 넘치는 곳이 있어?”
“부산이요.”
“부산? 거기 상태 메롱이라고 소문났다. 성과는 본원하고 맞먹는데 레지던트랑 교수들 쥐어짠다고 악명이 자자해.”
“그래서 가는 거예요.”
“엥?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부산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요. 정리가 끝나면 그때 본원으로 복귀하는 것도 고민해 볼게요.”
황은우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내가 고집을 꺾지 않으리라는 것도.
내게 남모를 사연이 있다는 것도 읽어 낸 눈치였다.
“그래, 너 좋을 대로 해. 그레이트 서전을 누가 막겠어.”
“선배, 그레이트라는 단어만 좀 빼 주면 안 될까요?”
“싫어. 그레이트 서전. 그레이트 서전. 그레이트 서전.”
황은우는 나를 놀리다가 자기가 먼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넌 레지던트 때하고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그중에서도 사서 고생하는 버릇은.”
“그러게요. 좀 편하게 살면 좋을 텐데… 편하게 살면 두드러기가 생기는 병을 앓고 있나 봐요.”
“어쨌거나 난 네가 어디에 있던 널 응원할 거야. 부산도 멋있게 접수해 봐.”
“고마워요, 선배.”
황은우와 끈끈한 우정의 눈빛을 나누고 있는데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니 강태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