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제3장 금의환향 (4)
측와위(옆으로 누운 자세)인 환자에게 나는 측방 개흉술을 펼쳤다.
스으으윽.
메스를 따라 3-4번 갈비뼈 사이에 4센티미터 정도 되는 절개창이 생겼다.
오늘따라 유난히 절개 면이 매끄러워 보였다.
“앤써니, 리트랙터.”
“오케이.”
지시를 받은 제1보조 앤써니가 절개창에 고정형 견인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착각인지 몰라도 앤써니의 손놀림이 불안해 보였다.
평소답지 않게 앤써니는 희미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견인기를 벌리고 나사를 조이는 작업도 더뎠다.
그런데 다른 스태프들을 살펴보니 그들은 앤써니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러셀의 참관 때문에 예민해진 걸까.
아니면 앤써니의 변화가 너무 미약해서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둘 중 무엇이 진실인지 나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본인에게 직접 묻는 거겠지.
“앤써니, 무슨 일 있어?”
“아니, 별일 없는데? 무슨 일 있어 보여?”
앤써니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견인기 설치에 이 정도 시간이 걸릴 네가 아니야. 뭔가 이상해. 혹시 몸이 불편해?”
“사실 컨디션이 썩 좋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썩 나쁜 것도 아니야. 집중해서 잘할게.”
앤써니는 대답을 마치고 참관용 수술실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 마당에 내가 괜찮지 않다고 박박 우겨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수술을 속행했다.
“포트(port) 설치할게.”
나는 절개창에 포트를 설치했다.
포트는 이름대로 항구 같은 역할을 하는 수술 기구였다.
포트는 깔때기처럼 생긴 기구로, 흉강경 수술에 필요한 모든 도구는 포트를 거쳐서 수술 부위로 이동한다.
포트의 역할로는 수술 시야 유지.
수술 도구들의 무균 상태 유지 등이 존재했다.
포트 설치가 끝나면서 본격적인 흉강경 수술의 막이 올랐다.
“리는 참 대단하단 말이지. 어떻게 싱글 포트로 수술할 생각을 했는지 몰라.”
제2보조 카멜로가 나를 쳐다보며 감탄한 기색으로 말했다.
“비밀이 궁금해?”
“당연히 궁금하고말고.”
“이런 말 하면 실망하겠지만 사실 얻어걸린 거야, 우연히.”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전생의 내가 신수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에 남다른 사명감이나 도전 정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때는 그저 강태섭에게 더 잘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트리플 포트 흉강경 수술에 매진 중이었는데 문득 포트를 하나로 줄여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수술이 끝난 후 강태섭에게 물었다.
싱글 포트로 흉강경 수술을 하면 어떨 것 같냐고.
강태섭은 그거 좋은 생각이라면서 나를 응원했다.
그 응원이 먼 훗날 내 목을 조일 올가미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다시 수술에 집중합시다. 2층에서 러셀이 두 눈 부릅뜨고 있는 거 보이지?”
나는 스태프들이 수술에 집중하도록 주의를 환기했다.
그리고 나서 제1보조 앤써니와 수술 부위인 우측 폐 상엽으로 서서히 접근해 나갔다.
이번 흉강경 수술의 성공 여부는 나와 앤써니의 호흡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앤써니가 내시경 카메라로 시야를 확보하면 내가 그 확보된 시야로 진입해서 암 조직을 떼어 내는 방식인데…….
우리 둘의 호흡이 유독 중요한 이유는 포트가 하나뿐이라서였다.
하나의 포트를 공유하다 보니 각자 손에 쥔 수술 도구가 상대방의 수술 도구를 건드릴 위험이 컸던 것이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을까.
갈비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는 동안.
앤써니의 내시경 카메라와 내 손에 들린 처치 도구가 몇 번이나 부딪쳤다.
과실 여부를 따지는 일이 치사하긴 하다만 대부분의 실수는 앤써니의 손끝에서 비롯되었다.
견인기를 고정할 때 보였던 앤써니의 희미한 손 떨림.
그것이 본격적인 흉강경 수술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툭!
정확히 다섯 번째 충돌이 발생했을 때,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앤써니, 너 너무 불안해. 지금이야 수술 부위로 접근 중이니까 그나마 괜찮은데. 종양 절제 중에 날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미안해, 리.”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전혀 너답지 않잖아.”
그쯤에서 나는 앤써니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다.
앤써니는 두 달 전부터 싱글 포트 수술을 어시스트한 베테랑이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할 사람이 아니었다.
앤써니에게 수술을 소화할 능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내가 어시스트로 선택하지도 않았을 테고.
“숨기는 거 있으면 지금이라도 빨리 다 말해.”
나는 앤써니를 추궁했다.
러셀에게 신수술을 인정받는 일은 둘째로 치고 중요한 건 환자였다.
나는 환자에게 최상의 수술을 집도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휴, 이젠 어쩔 수 없지. 다 말할게.”
앤써니가 한숨 쉬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 * *
“나 의대 시절 러셀 교수님의 해부학 수업을 들었어. 러셀 교수님은 그때도 지금처럼 엄격한 사람이었지.”
“…….”
“아니, 그때는 더 심했어. 학생들에게 호통치는 일도 다반사였으니까.”
앤써니의 사연이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해부학 수업에서 된통 꾸지람을 당하고 F학점을 2번이나 받은 트라우마가 있다.
트라우마를 안겨 준 러셀이 참관용 수술실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너무 긴장이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전생에서 두려워했던 교수님들이 있었으므로 앤써니의 두려움을 십분 이해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유독 내가 기를 못 펴게 만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 사람 앞에서는 평소 안 하던 실수도 하게 되니까.
하지만 앤써니의 사연을 환자가 이해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참관용 수술실 안 쳐다보고 최대한 집중해 볼게, 리.”
앤써니가 미안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앤써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응? 갑자기 왜?”
“아무래도 이번 수술에서 너를 배제해야 할 것 같다.”
내 폭탄 선언에 스태프들이 술렁거렸다. 날 바라보는 스태프들의 눈빛은 ‘너 미쳤어?’라고 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판단을 무를 생각이 없었다.
“종양에 접근도 안 했는데 이 정도 떨었다면 종양 절제할 때는 더 떨게 될 거야. 러셀이 지켜보고 있는 넌 너무 위험해.”
“아니야, 난 잘할 수 있어.”
앤써니가 억울하다는 듯 속사포로 말을 이었다.
“속내를 털어놓고 나니까 후련해졌어. 이젠 정말 잘할 자신 있다고. 그리고 내가 빠지면 어시스트는 누가 하는데?”
나는 대답 대신 왼손을 들어 올렸다.
1살 때부터 키워 온 왼손이 앞으로 제1어시스트가 될 것이다. 외과의로서는 드물게 나는 양손잡이였다.
물론 선천성이 아닌 후천성으로.
“앤써니, 난 너를 신뢰해. 그래서 지금까지 함께 해 왔던 거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야.”
“그래, 솔직히 오늘은 내가 형편없었던 거 인정해. 그렇다고 너 혼자 내시경 카메라까지 맡는 건 무리야.”
“맞아, 리. 앤써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잠자코 있던 카멜로가 앤써니를 거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번 생의 내 판단은 전적으로 환자의 회복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앤써니를 어시스트로 계속 사용하는 것이 환자에게 이득일까.
내가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 환자에게 이득일까.
내 판단은 후자였다.
“에이, 이젠 나도 몰라. 네 마음대로 해.”
앤써니가 신경질을 부리면서 수술방을 떠났다.
수술방 분위기가 한층 무겁고 냉랭해졌다.
스태프들 간의 화목한 분위기를 깨트린 것은 유감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제이슨, 내시경 카메라 좀 건네줄래.”
“알았어.”
나는 제이슨이 건넨 내시경 카메라를 왼손에 쥐고 포트 안으로 삽입했다.
시선은 내시경 모니터에 고정한 채 오른손에 쥔 전기 소작기까지 포트 내부로 삽입했다.
지난 시절 치열하게 갈고 닦았던 왼손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다시 수술 부위로 접근하는 동안.
카메라와 소작기는 단 한 번도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
갈비뼈나 다른 주변 장기와 부딪치는 일도 없었다.
나는 무사히 갈비뼈 사이를 통과해 우측폐 상엽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와… 말도 안 돼.”
“저게 된다고?”
경이로운 양손 신공에 스태프들 몇몇이 감탄사를 토해 냈다. 하지만 그와 달리 내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양손을 쓴다는 게 꼭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가 세로로 갈라지는 느낌.
양손을 동시에 쓰면 자연스럽게 집중력도 분산되기 마련이었다.
나조차 이런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승부를 봐야 해.’
나는 왼쪽 손목을 이리저리 꺾어 가며 우상엽에 위치한 종괴와 주변 조직들을 살폈다.
폐 CT로 봤던 영상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종괴의 크기는 3-4센티미터 정도.
림프절 전이는 없어 보였다.
앤써니를 배제하는 것은 계획에 없었으나 수술은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을 듯했다.
치이이익.
나는 오른손에 쥔 전기 소작기로 종양 주변을 지지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두 눈.
왼손을 조종하는 우뇌.
오른손을 조종하는 좌뇌.
다양한 부위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감각 정보들이 나를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최고의 수술을 완성하기 위해 그 모든 고통을 기꺼이 감내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은 본래 괴롭고 어려운 법이었다.
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 * *
“허… 수술을 보러 왔다가 묘기를 보게 될 줄이야.”
수술방을 비추고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러셀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국에서 왔다는 리가 제1보조를 내팽개치고 양손으로 싱글 포트 수술을 펼치는 중이었다.
처음에 러셀은 리가 미친 짓을 벌였다고만 생각했다.
제1보조의 어시스트가 심각하게 불안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어시스트를 배제하고 혼자 수술을 소화할 줄이야.
“과장님, 저 동양인 친구 너무 무모하지 않습니까? 어시스트를 새로 불러야지 자기 혼자 수술을 하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곁에 앉은 교수 케빈이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 아니겠어?”
“저 친구 편을 드시는 겁니까?”
“그럴지도 모르겠군.”
“저렇게 설쳐 대는 서전은 싫어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실력이 없는데 설치는 놈들을 싫어할 뿐이야. 실력이 받쳐 주면 아무 문제없어.”
러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러셀은 리를 잘 몰랐다.
얼마 전 싱글 포트 수술이라는 혁신적인 수술법을 개발한 서전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직접 참관해 보니 싱글 포트 수술은 의외로 완성도가 높았다.
내시경 도구만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면.
스태프들 간의 호흡만 잘 맞는다면 굳이 포트를 2-3개까지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동양인이 개발한 수술이라서 그런 건가?’
러셀은 싱글 포트 수술이 주류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를 리의 인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흑인의 인권은 그래도 존중을 받는 편이었지만 동양인의 인권은 그렇지 못했다.
동양인을 향한 편견도 마찬가지였고.
수술이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시야를 확보 중인 리의 왼손이 몇 번 심하게 떨렸다.
내시경 카메라가 헛돌아 수술 부위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을 몇 번 비춘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리는 침착하게 종양을 절제해 나갔다.
순간 리가 수술 부위를 단순히 눈으로만 보고 있는 게 아님을 러셀은 눈치챘다.
리는 수술 부위를 머릿속에도 담아 둔 것이 분명했다.
눈으로만 수술을 했다면 카메라가 빗나갔을 때 오른손이 멈췄을 테니까.
‘대단해. 양손에 맵핑까지 할 줄 이야. 저 나이에 나와 비슷한 수준까지 도달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