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236화 (236/257)

236화 제3장 금의환향 (1)

환자는 고혈압 환자가 맞았다.

내 예상대로 탑승 전에 고혈압 약을 챙기지 못했던 것도 맞았다.

기내에 고혈압 약을 비롯한 다양한 상비약이 있다는 사실을 환자는 몰랐다고 했다.

“고마워, 리. 당신은 생명의 은인이야.”

환자는 자신을 클라라라고 밝히며 감사를 표시했다.

미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허리를 굽실거려 가며 고맙다고 하진 않았다.

다가와서 나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이런 것도 앞으로 미국에서 겪을 문화 중에 하나겠지.

전생에 해외 연수를 간 적이 없으므로 지금부터 펼쳐질 일은 나로서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컸다.

궤도를 이탈한 삶의 짜릿함도 있었고 내 실력이 미국에서 얼마나 먹힐지도 궁금했다.

상황이 정리되면서 클라라가 자리로 돌아갔다.

승무원들도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속 편한 표정으로 흩어졌다.

이제 화장실 앞에 있는 사람은 나와 마이클 두 사람뿐.

본인의 오진이 민망했을까.

마이클은 연신 뒷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소지품에 고혈압 약이 없어서 당연히 고혈압 환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네가 옳았네.”

“상황은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스스로를 탓할 필요 없어. 난 환자가 공황 장애가 아니라는 근거를 가지고 있었고 넌 없었잖아.”

“만약 환자와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면 너도 나와 같은 진단을 내렸을까?”

마이클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설령 인사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나는 환자를 공황 장애로 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황 발작과 심장 발작은 많이 닮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그 차이를 분간할 수 있었다.

나 같은 흉부외과 전문의는.

“칫, 뭐야 결국 네가 잘났다는 소리잖아.”

“당연한 거 아니야? 심장에 관련된 질환이라면 내가 마이클보다 잘났지. 피부 질환이라면 그 반대겠고.”

“한국은 의사도 맵네.”

마이클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나는 마이클의 손을 잡았다.

마이클의 손은 우악스러울 정도로 컸고 잔털들이 무수히 많았다.

외국 의사들은 손이 커서 처치나 수술이 한국 의사만큼 능숙하지 않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곧 알게 되리라.

나는 그 자리에서 마이클과 10분 정도 더 대화를 나눴다.

마이클은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인종 차별주의자는 아니었고 그저 자존심이 세서 내 진단을 무시했던 것이었다.

외국 사람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건 어쩌면 내 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화를 마치고 좌석으로 돌아온 나는 기내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눈을 감고 앞으로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제임스 홉킨스 병원에서의 보낼 2년 7개월의 연수 생활.

1년 동안은 병원 일을 보조하며 USMLE 과정을 완료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USMLE란 미국의 의사 면허였다.

USMLE를 통과해야만 주 면허를 받아 정식으로 의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남은 1년 7개월이 연수의 노른자 같은 시기가 될 것이다.

나는 그 기간 동안 미국의 심장 파트와 폐·식도 파트의 펠로우 과정을 마칠 계획이었다.

제임스 홉킨스 병원에는 Fast track(패스트 트랙)이라는 멋진 제도가 존재했다.

일종의 월반 개념이었다.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은 수련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2년을 다 수료해야만 자격을 인정받는데 말이다.

계획을 바쁘게 점검하던 나는 문득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볼티모어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8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 * *

길고 길었던 여정의 마침표가 찍혔다.

비행기는 마침내 착륙했고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루함에 곤죽이 된 몸을 이끌고 나는 공항 로비로 향했다.

볼티모어 공항은 인천 공항이 그러했듯 사람들로 붐볐다.

인천공항과 다른 점이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한국인이 아니라 백인과 흑인이라는 점.

상점 이름과 게시판이 전부 영어로 도배됐다는 점이었다.

만약 미국 생활이 길어지고 향수병이 깊어지면 한글마저 그리워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저 사람이구나.’

마중 나온 사람을 발견하고 나는 반갑게 다가갔다.

흑인 남성이 ‘Welcome. Korean Lee’라는 푯말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반가워, 한국에서 온 이믿음이라고 해.”

나는 영어로 상대에게 인사를 건넸다.

“리미듬? 리비듬? 만나서 반가워.”

남성이 내 이름을 어설프게 되뇌다가 악수를 청했다. 나는 남성과 악수를 나누며 편하게 ‘리’라고 부르라고 했다.

간단한 통성명이 이어졌다.

남성의 이름은 안드레였고 앞으로 연수 기간을 함께할 파트너였다.

안드레는 레지던트 3년 차로 전공은 흉부외과였다.

통성명 도중 나는 안드레의 나이를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외국에서 나이를 묻는 건 실례라는 말을 얼핏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존댓말 개념이 거의 없으니 상대가 나이가 적건 많건 무슨 상관일까.

“병원으로 안내할게.”

나는 안드레를 따라 공항 바깥으로 나왔다.

한여름 햇살이 작렬하고 있었다.

습도가 높아 끈적한 공기가 기분 나쁠 정도로 피부를 휘감았다.

내 표정을 읽은 안드레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볼티모어는 7월이 가장 더워. 아주 끔찍한 수준이지. 한국 날씨는 어때?”

“한국도 여름에는 더운 편인데 이 정도는 아니야.”

나는 벌써부터 얼굴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훔치며 말했다.

공항 주차장에 도착해서 안드레의 차에 올라탔다.

제임스 홉킨스 병원으로 가기 전, 우리는 은행에 들르고 휴대폰 숍에도 들렸다.

앞으로 미국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갖추었다.

“한국 흉부외과는 어때? OPCAB 같은 수술은 할 수 있어?”

일정을 마치고 병원으로 이동 중 안드레가 물었다.

악의는 없었으나 안드레가 한국 흉부외과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한국 흉부외과에 OPCAB이 자리 잡은 건 무려 6년 전의 일이었다.

“OPCAB은 기본이고 미국에서 하는 웬만한 수술은 한국에서도 다 할 수 있어.”

“정말? 한국은 의료 후진국인 걸로 알았는데 의외네.”

“왜 후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야 사람들이 못 먹고 못 살잖아. 독재 정권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고.”

안드레의 추가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오해의 근원을 알아차렸다.

안드레는 한국과 북한을 혼동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과 북한을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하긴 미국 사람이 듣는 한국 소식이라고 해 봐야 뻔했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하네 마네 하는 수준이겠지.

그리고 그런 뉴스만 듣다 보면 한국이 OECD에 가입한 선진국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할 것이다.

나는 한국의 경제 상황과 의료 수준에 대해서 짤막하게 설명했다.

안드레는 여전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내 말을 반은 듣고 반은 흘려듣는 듯한 눈치였다.

오해를 완벽하게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내가 실력 발휘를 해야 할 모양이었다.

* * *

안드레가 일 처리를 똑 부러지게 한 것인지.

제임스 홉킨스 병원이 해외 연수 인력을 꼼꼼하게 챙기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나와 관련된 수속은 무척 빨랐다.

입국한 지 하루 만에 나는 통장을 개설하고, 휴대폰을 얻고, 연수증을 받고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안드레와 병원도 둘러보았다.

제임스 홉킨스 병원은 대지 면적이 신원 대학교 병원보다 3배 정도 넓었다.

건물들은 현대적인 세련됨과 과거의 옛스러움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었다.

병원 투어를 마치고 복귀한 기숙사.

나는 1인 기숙사 창가에 서서 창밖을 응시했다.

병원에 내려앉은 어둠을 가로등과 건물의 불빛이 몰아내고 있었다.

한국과 볼티모어의 시차는 하루하고도 한나절 차이가 났다.

볼티모어의 오늘 날짜는 7월 3일이고 현재 시각은 밤 7시 30분이니…….

한국은 7월 4일에 오전 7시 30분쯤 되었을 것이다.

‘어쩐지…….’

나는 쓰게 웃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거늘 몸이 축 처지고 피곤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시차 말이다.

한국이었다면 한참 자야 할 시간에 빨빨거리며 돌아다녔으니까.

창밖의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미국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앞으로도 자주 통화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가만히 시간을 죽이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 나는 기숙사를 벗어났다.

산책 삼아 병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디 갔나 했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안드레가 있었다.

“그냥 바람 좀 쐬고 있었지. 안드레야말로 왜 나를 찾았는데?”

“쓸쓸할까 봐. 챙겨 주려고.”

안드레의 목소리는 무심했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씨는 곱고 따뜻했다. 안드레와는 국적을 초월해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악당을 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가까운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계속했다.

“리, 제임스 홉킨스 병원의 해외 연수 프로그램 제대로 알고 있어?”

안드레가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신원 대학교의 해외 연수 프로그램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이오 클리닉과 연계해 왔다.

연수 병원이 제임스 홉킨스 병원으로 바뀐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영광스럽게도 내가 제임스 홉킨스 병원 연수생 1호였고.

그러니 연수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들을 곳이 없었다.

“물어보길 잘했네. 안 그랬으면 네가 상처를 받았을 테니까.”

“상처?”

예상치 못한 단어의 조합이 예상치 못한 불길함을 불러 왔다.

해외 연수와 상처라…….

잔잔했던 내 가슴에 파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해외 연수 프로그램의 목적은 해외 연수생을 공짜로 부려 먹는 거야.”

“…….”

“병원은 기숙사와 식비만 제공하고 나머지 비용은 연수생이 책임진다는 거 알고 있지?”

“그건 알아. 나야 한국에 있는 병원에서 경비를 지원해 줘서 별 부담이 없지만.”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해외 연수생을 부려 먹는다는 말, 자세히 설명해 줄래?”

“말 그대로야. 병원은 너희들에게 제대로 된 기술을 가르쳐 줄 생각이 없어.”

안드레에게 들은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해외 연수생은 보통 인턴이 할 법한 잡무만 보다가 병원을 떠난다는 것이다.

추가로 지금까지 제대로 된 기술을 배워서 나간 연수생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생각해 봐. 어차피 연수 기간이 지나면 떠날 사람인데 열심히 키워 봐야 무슨 소용이겠어.”

“그럼 애초에 연수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됐지. 이건 기만이야.”

내 목소리에는 어느새 은은한 노기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고작 인턴 잡 따위나 하려고 산 넘고 바다 건너 볼티모어에 온 게 아니었다.

“가서 따져도 돼?”

“소용없어. 윗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니까. 그 사람들은 후진국 의사가 선진 병원 문화를 체험했다는 사실을 연수라고 생각하니까.”

“이 거지 같은 사실을 나 말고 다른 연수생들도 알아?”

안드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잘됐네. 혼자 따지면 안 통할지 몰라도 다 같이 입을 모으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안드레가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연수생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

그들은 제임스 홉킨스 병원에서 수련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수련했다는 명함을 더 중요시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여론을 형성해서 병원을 압박하려는 내 계획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 열받네. 진짜.’

나는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제임스 홉킨스에서의 연수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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