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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233화 (233/257)

233화 제2장 출국(3)

“작가님, 바쁘십니까? 잠깐 대화 좀 나눌 수 있습니까?”

휴게실로 들어 온 황은우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선배, 작가님 소리 하지 마세요. 닭살 돋아요.”

“책 출판했으면 작가님이지 뭐.”

“아마추어인 데다가 고작 한 권밖에 안 냈는데요, 뭐.”

나는 부끄러워하며 휘휘 손을 내저었다.

에세이가 출간된 지 열흘이 지난 시점, 에세이에 대한 관심은 의외로 뜨거웠다.

전국 대형 서점의 가장 좋은 진열대에 내 에세이가 올라가 있었다.

글을 읽어 본 사람들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좋았으며 입소문도 꾸준히 타는 중이었다.

한 미디어 서평 코너에서 에세이를 추천하고 소개한 적도 있었다.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출판사의 마켓팅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라디오 광고, 버스 광고, 옥외 광고 등등.

나는 내 이름과 에세이를 곳곳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광고를 보면서도 현실감이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내가 경험하는 현실인데도 남의 현실인 것처럼 멀게 만 느껴졌던 것은.

“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하루는 병원에서 퇴근하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내가 느끼는 이질감의 정체를 아버지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세상이 믿음이, 너를 주목하고 있으니까. 믿음이 네가 이런 주목은 처음 받아 봤으니까, 그런 거란다.”

아버지의 설명을 나는 쉽게 수긍했다.

확실히 머리털 나고 이런 대접은 처음 받아 봤다.

길을 지나가면 간혹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사인까지 부탁하곤 했으니까.

세상의 중심으로 발을 디딘 것.

아버지는 내 경험을 그렇게 문학적으로 정의를 해 주었다.

또한 세상의 중심으로 발을 디디는 일은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는 것이라는 점도 알려 주었다.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나는 내 감정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에세이 성공 후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쭐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본분은 어디까지나 흉부외과에 있었다.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은 수술실이었다.

내 손은 메스를 쥘 때 가장 빛났다. 내가 가장 뿌듯한 순간은 수술로 환자의 질환을 고칠 때였다.

그밖에 다른 성취들은 곁가지에 불과했다.

그래서 사인회를 열자는 출판사 담당자의 제안도 거절했다.

그 시간에 환자를 보고 환자를 수술하는 것이 내 도리라고 생각해서.

“나도 잠깐 네 책 봤는데 글 잘 썼던데?”

“선배도 봤어요?”

“후배가 책을 냈는데 선배 된 도리로서 당연히 봐야지. 혹시 나랑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왔을지도 모르고.”

“핵심은 그거였네요?”

“아마도?”

황은우가 솔직하게 말하고 피식 웃었다.

먼저 수술 스케줄이 있던 황은우가 떠나면서 휴게실에 나 혼자 남았다.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고요해진 휴게실

환풍기 펜 돌아가는 소리만이 소란스러웠다.

에세이를 읽은 사람들의 흉부외과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

에세이를 읽고 흉부외과의를 꿈꾸는 새싹들은 생겨날까.

몇 가지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똑 부러지는 대답은 할 수 없었으나 나는 만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 * *

다음 수술 스케줄까지 한 시간이 남은 시점.

나는 병실을 라운딩했다.

가장 먼저 찾은 병실은 오진호의 병실이었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인공판막 수술을 받은 오진호는 오늘이 퇴원 일이었다.

병실에 도착하니 오진호가 어머니로 보이는 보호자와 짐을 꾸리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진호와 오진호의 보호자가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도 손을 흔들어 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에세이가 이슈 몰이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그것은 내가 유명 래퍼인 오진호를 수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진호를 볼 때마다 큰 절을 올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선생님, 책 잘 읽었습니다. 환자들의 사연은 감동적이고 현실은 참 냉혹하고. 책을 보는 내내 심정이 복잡하더라고요.”

오진호가 탁자에 올려놓았던 내 책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재미있게 봐 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퇴원 전에 사인 좀 해 주세요.”

“제가 진호 씨한테 사인을요? 에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도 아니고.”

“주름잡아도 됩니다, 선생님은.”

오진호가 간청을 했고 내가 오진호에게 신세를 진 것도 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하기로 했다.

‘이걸 어쩐다?’

오진호가 내민 책을 받아들고 나는 한참 고민했다.

예전부터 사인다운 사인을 한 적이 없는 나였다. 내 사인이란 그저 내 이름 석 자를 한글로 적는 것뿐이었다.

그냥 평소처럼 이름을 적을까.

그러면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일 것 같은데.

“평소에 쓰는 사인이 없으신가 봐요?”

망설이는 내 속내를 꿰뚫어 보며 오진호가 물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기회에 괜찮은 사인을 만들어 놓으시는 것도 좋겠요. 사인으로 선생님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덴티티씩이 나요?”

“정체성을 표현하는 게 뭐 그리 거창한 일인가요. 본인이 사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린 거죠.”

과연 뼛속까지 래퍼인 오진호였다.

오진호가 던지는 평범한 말 하나하나도 다 가사 같았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하트를 그렸다. 그리고 그 안에 내 이름 석자를 적었다.

왜 즉흥적으로 하트를 그렸는지는 나조차 알 수가 없었다.

“역시 선생님답네요.”

오진호는 사인을 확인하더니 만족한다는 듯 씨익 웃었다.

“저다운 게 뭔지 진호 씨는 알고 있어요?”

“물론이죠. 하지만 말씀은 안 드릴 거예요. 세상은 적당히 모르는 게 있어야 더 재밌더라고요.”

오진호의 병실을 떠나기 전 나는 오진호의 개인 연락처를 받았다.

연예인 전화번호를 얻은 것은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 * *

내가 두 번째로 찾은 병실은 희망이의 병실이었다.

오진호의 병실을 찾을 때와 달리 희망이의 병실을 찾는 내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희망이는 중증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계부에게 폭행을 당해 외상성 복부 대동맥 파열 수술을 받았다.

희망이에게 존재하는 희망은 오로지 희망이의 이름 속에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드르르륵.

6인실 문을 열고 들어가 나는 창가 쪽으로 이동했다.

희망이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희망이의 보호자 윤정희는 그런 희망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자 사이에 흐르는 무기력감을 나는 어렵지 않게 감지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내가 먼저 인사를 하자 윤정희도 인사를 건넸다.

“희망아,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희망이의 목소리는 다운 증후군 때문에 어눌했다.

나를 향한 눈빛에는 초점이 풀려 있었다.

이 가여운 아이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했을 당시를 문득 상상해 보고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희망이는 좀 어떤가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배가 아프다고 잠을 못 잤는데 어제부터 좀 푹 자는 것 같더라고요.”

“개복 수술을 한 후유증 때문일 겁니다. 회복 중이고 진통제도 적극적으로 쓰고 있으니 차차 나아질 거예요.”

“…….”

“희망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던가요?”

나는 질문의 방향을 육체에서 마음으로 돌렸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므로 희망이의 육체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아마 희망이의 마음 쪽이 아닐까 싶었다.

“마침 오늘 아침에 화장실을 데려다주다가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요.”

윤정희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지나가다가 턱에 수염 난 사람을 보고 경기를 일으키더라고요. 진정시키느라 간호사 선생님들 도움까지 받았어요.”

“하… 그 사람 때문이겠군요.”

나는 얼마 전 보호자 전용 수술 대기실에서 마주쳤던 희망이의 계부를 떠올렸다.

희망이를 매정하게 짓밟은 그 남자는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복부 대동맥 파열될 정도로 폭행을 당했으니 희망이의 상처가 오죽 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신경 정신과에 협진을 요청해야겠네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협진을 거부하는 윤정희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혹시 윤정희도 알게 모르게 희망이를 구속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어지는 윤정희의 설명에 내 의혹은 쉽게 풀렸다.

“어차피 잠깐 치료해 봐야 효과도 없답니다. 받으려면 장기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저희는 그럴 만한 형편이 안 돼서요.”

윤정희가 쓰게 웃었다.

그녀는 발달 장애 및 트라우마 치료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1시간 상담을 받는 데 무려 8만원이나 든다고.

일주일에 한 시간 씩, 다섯 번.

그렇게 한 달 동안 치료를 받는다면 160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장 퇴원비 지불하기도 벅차네요. 시댁에 무릎 꿇고 손을 벌려야 할 판국인데… 그런 와중에 병원에서 잠깐 상담 치료를 받는다고 희망이가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

“…….”

“선생님은 제가 매정한 어미처럼 보이나요?”

윤정희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애절함을 감당할 수 없어 나는 시선을 회피했다.

그동안 희망이와 윤정희가 겪어 왔던, 앞으로 겪어야 할 질곡은 감히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위로조차 쉽게 건넬 수 없었다.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보호자님 편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윤정희가 희망이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래 봬도 저는 희망이한테 많이 의지하고 있답니다. 어쩌면 희망이가 저를 의지하고 있는 것보다 더.”

“…….”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든.”

윤정희의 목소리가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쓸쓸하게 느껴졌다.

“희망아,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니?”

나는 가까스로 희망이에게 말을 걸었다.

“자동차. 달리는 거 보면 재미있어요.”

“희망이 자동차 좋아하니?”

“네, 빨라서 좋아요.

희망이의 대답은 여전히 어눌했으며 짧고 간결했다.

희망이의 몸은 중학생이었으나 희망이의 정신은 아직 유치원생에 머물러 있었다.

“그럼 선생님이 조립하는 자동차 장난감 사 줄까?”

“진짜요?”

“선생님은 거짓말 안 해. 희망이 퇴원하는 날, 선생님이 선물로 자동차 장난감 사 줄게.”

“약속해요.”

희망이가 먼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나는 희망이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맞닿은 손가락에서 힘이 느껴졌다.

희망이는 아직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나도 희망이의 삶을 있는 힘껏 응원할 생각이었다.

윤정희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였지만 나는 순순히 병실을 떠났다.

나의 호기심이 윤정희에게는 상처가 될 것을 알았기에.

수술실로 향하면서 나는 출판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님, 저 사인회 일정 좀 잡아 주세요.”

- 정말요? 웬일로 마음이 변하셨대요?

담당자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고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물 살 돈이 필요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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