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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229화 (229/257)
  • 229화 제1장 충돌 (4)

    ‘역시 선배도 대단하단 말이지.’

    나는 환자의 복부를 꼼꼼히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황은우의 응급 처치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혈관겸자로 복부 대동맥에 흐르는 혈류를 일시적으로 차단한 점.

    지혈 거즈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

    지혈제와 주사약을 통해 지금까지 환자의 바이탈을 유지한 점 등등.

    초응급 상황에 펠로우 1년 차가 이렇게 침착하고 깔끔하게 처치하기란 쉽지 않았다.

    문제는 정확한 처치에도 불구하고 출혈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복강에 계속 피가 고이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석션을 하거나 지혈 거즈를 덧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왜 출혈이 계속되는지 궁금하죠?”

    나는 황은우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왜 이 모양인지.”

    황은우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났다.

    “고정형 견인기 제거하고 수술포도 잠깐 걷어 보죠.”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의심 가는 점이 있어서요.”

    황은우는 내키지 않는다는 눈치였지만 내 지시를 따라 주었다.

    펄럭!

    수술포가 걷히고 견인기가 제거되었다.

    ‘수상하다 싶었는데 이럴 줄 알았지.’

    내 예상대로 환자의 복부와 옆구리에 반상 출혈(광범위한 멍)이 존재했다.

    하지만 예상이 맞았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반상 출혈은 아마도 구타의 흔적일 것이다.

    즉 부모가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를 구타해서 외상성 복부 대동맥 파열이 발병했다.

    이것이 내 추론이었다.

    PI) 집에서 놀다가 넘어짐.

    응급실 초진 기록지에 적힌 환자의 부상 경위였다.

    황은우야 복부 대동맥 파열에 집중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모양인데…….

    나는 다친 경위를 몹시 수상하게 여겼다.

    고작 넘어진 일로 복부 대동맥 파열이 생길 수 있을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 확률은 악당 강태섭이 갑자기 회개할 만큼 희박했다.

    환자가 넘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환자의 옆구리에 존재하는 반상 출혈이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환자가 넘어져서 복부를 다쳤다고 치자.

    그렇다면 옆구리의 상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넘어지면서 복부와 양 옆구리를 동시에 다칠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환자는 구타를 당한 게 분명했다.

    “아… 그랬구나. 난 그 생각까지는 못 했는데…….”

    내가 파악한 정보를 알려 주자 황은우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서 환자 숨이 넘어가는데 거기까지 신경 쓰기는 힘들죠.”

    “근데 환자가 폭행을 당한 건 당한 거고 수술은 수술이잖아. 당장 중요한 건 출혈을 막는 거 아니야?”

    “다 연관이 있어요. 새 수술포 덮고 이번에 견인기 고정할 때는 좌우로 5센티미터만 더 벌려 주세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작업을 마친 후 내가 나섰다.

    황은우가 복부 대동맥만 바라봤던 것과 달리 나는 그 위쪽의 장기의 장기에 관심을 가졌다.

    다행히 간은 이상이 없었다.

    간에 이상이 있었다면 간담췌 외과의를 급하게 섭외하면서 일이 더 커졌을 테니까.

    내 시선은 간 다음으로 위를 향했다가 최종적으로 한 장기에 머물렀다.

    비장(Spleen, 지라).

    비장은 좌측 신장과 횡격막 사이에 위치한 장기로 순환계와 면역계의 역할을 수행한다.

    환자의 출혈은 바로 이곳 비장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파열된 비장에서 새어 나온 피가 복강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전 차트를 보고 환자가 구타당했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래서 수술포를 걷고 반상 출혈을 확인한 거예요.”

    “…….”

    “반상출혈 부위를 알면 출혈 부위까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듣고 보니 그러네. 환자 옆구리에 반상 출혈이 있었으니까 옆구리에 위치한 장기가 손상됐을 거라고 추론했구나.”

    “맞아요.”

    “후우, 원인을 알아서 후련하긴 한데… 일이 커졌네. 소화기 외과 연락해 볼게.”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하면 돼요.”

    “네가 직접 비장 절제술을 하겠다고?”

    놀란 황은우의 눈썹이 올라가고 목소리도 올라갔다.

    다른 스태프들의 반응도 황은우와 다를 바 없었다.

    너 흉부외과의잖아, 네가 무슨 비장 절제술을 한다고 그래?

    다들 그런 눈치였다.

    “시간 단축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전공이 아닌 부분까지 손대는 건 오버야. 믿음아, 무리하지 마.”

    “무리 아니에요. 저 비장 절제술 50번도 더 했어요. 헤모 스탯.”

    간호사에게 받은 혈관 겸자로 비장과 연결된 큰 혈관들을 잠그면서 나는 말을 계속했다.

    레지던트 4년 차 시절.

    나는 외상 센터가 있는 용인 흉부외과로 파견을 나갔다.

    용인에서 수많은 외상 환자들을 경험하고 또 직접 수술을 해 왔다.

    비장 절제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복부 외상 환자의 대다수가 간 파열 또는 비장 파열을 앓기 때문이다.

    차마 간 수술까지 배우지는 못했으나 내 능력으로 비장 절제술 정도는 너끈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잡담 금지입니다. 수술에 집중해 주세요.”

    나는 집도의로서 스태프들에게 주의를 주고 메스를 손에 쥐었다.

    메스가 깃털처럼 가벼웠다.

    메스가 가볍게 느껴지는 날, 나는 수술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 * *

    결론부터 말해서 인조 혈관 치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근 4시간의 고된 수술 끝에 파열된 혈관 자리에 인조 혈관이 자리를 잡았다.

    봉합이 워낙 꼼꼼했던 터라 식염수를 부어 봐도 누수는 없었다.

    절개한 부위를 복원하는 동안, 나는 짜릿한 성취감을 느꼈다.

    오진호와 대동맥 파열 환자, 둘을 다 살리기로 한 내 선택이 옳았음도 재확인했다.

    “믿음아, 정말 고맙긴 한데 오진호 수술 제대로 끝낸 거 맞아?”

    황은우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대동맥 파열 수술이 끝나가니 오진호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괜히 나 때문에 서둘렀다가 오진호 쪽에서 문제 생기는 거 아닌지 무섭다.”

    “…….”

    “오진호는 연예인이라 문제가 생기면 일이 더 커질 텐데.”

    “제 걱정은 하는 거 아니라면서요. 잘 처리했으니까 마음 푹 놓으세요.”

    나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시간 이상 걸리는 판막 치환술을 30분 만에, 그것도 완성도를 갖추며 끝낸다는 것은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적을 감당해 냈다.

    애초에 나란 인간이 회귀를 경험한 기적, 그 자체였으니까.

    시간 단축을 위해 나는 매듭을 처음과 끝에만 짓는 연속 봉합을 선택했다.

    단, 연속 봉합의 경우 일일이 매듭을 짓는 단순 단속 봉합에 비해 봉합사가 주는 압력이 적었다.

    즉 상처를 야무지게 잡거나 당겨 주지 못했다.

    단점의 보완이 절실한 상황.

    나는 즉흥적으로 연속 봉합을 변형시켰다.

    일반적인 연속 봉합보다 봉합의 층을 훨씬 촘촘하게 했던 것이다.

    다소 무리한 도전이었고 처음 하는 도전이었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결과는 좋았다.

    봉합을 마치고 포셉으로 인공 판막을 툭툭 건드려봤는데 인공 판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에 전해지는 그 단단한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단순 단속 봉합을 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으니까.

    인공 판막 치환술을 마친 나는 곧바로 13번 로젯으로 달려갔다.

    수술 부위 원복은 권태우에게 맞긴 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복부 절개창을 다 꿰맨 후 나는 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잊고 있었던 피로감이 몰려왔다. 물에 젖은 것처럼 팔다리가 무거웠다.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다.

    양쪽 관자놀이가 콕콕 쑤시기도 했다.

    본래 능력을 120퍼센트 발휘한 후유증이었다.

    그래도 환자가 살아서, 황은우가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고 가는 인사 속에 종료된 복부 대동맥 치환술.

    지이이잉.

    나는 수술방을 나와서 수술 복장을 벗었다.

    옆에서 황은우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넌 진짜 천재 같다고 치켜세웠지만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 일은 심지어 수술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수술실 문이 열렸을 때 내가 가장 앞자리에 서 있었다.

    그 뒤를 대동맥 파열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이 뒤따랐다.

    바로 그때였다.

    “선생님, 저희 아이는 무사한가요?”

    보호자 대기석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내게 다가왔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으로 대동맥 파열 환자의 어머니로 보였다.

    여성은 나를 쳐다봤다가 뒤따라오는 침상으로 눈을 돌렸다.

    한편 여성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는 행동이 조금 굼떴다.

    어기적어기적 걸어와 아내의 곁에 섰다.

    나는 남은 집중력을 끌어모아 부부의 표정과 행동에 집중했다.

    “수술은…….”

    나는 일부러 말을 끌었다.

    역시 부부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관찰하면서 회복하면 될 것 같습니다.”

    “흐흐흑.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내 쪽이 흐느껴 울며 대답한 반면 남편 쪽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다운 증후군이 걸린 환자를 폭행한 건 남편 쪽으로 보였다.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마음고생도 저희보다 두 분이 더 심하셨겠죠.”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혹시 담배 피우신다면 잠깐 나가서 담배라도 피우고 오시죠.”

    “그래도 됩니까?”

    “그럼요. 수술도 끝났는데요.”

    나는 일부러 남편과 아내를 떨어트려 놓았다.

    그리고 황은우에게는 먼저 휴게실에서 쉬고 있으라고 일렀다.

    이제 보호자 대기실에서 복부 대동맥 환자와 관련된 인물은 나와 여성 보호자뿐이었다.

    지금부터 나는 여성 보호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꺼내야 했다.

    입술이 무거워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항상 거짓말은 달콤하고 진실은 쓴 걸까.

    나는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보호자 분,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뭔가요?”

    “수술하면서 환자의 복부에 광범위한 멍을 발견했습니다. 넘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단순히 넘어졌다고 보긴 힘든 멍입니다.”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 남편분이 아드님을 심하게 폭행한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여성 보호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저희 남편이 희망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뭔가 착각하신 거겠죠.”

    “저도 착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침통한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넘어져서 외상성 복부 대동맥 파열과 비장 파열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보호자를 진실의 낭떠러지로 밀어 버린 것이다.

    가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환자는 또 폭행을 당하고 또 병원 신세를 져야 할 테니까.

    “아니에요. 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이니까요. 어머님께서 앞으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아드님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

    내 이야기를 듣던 보호자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서러운 울음소리에 다른 보호자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나는 주변 시선으로부터 보호자를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보호자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보호자의 울음에 내 몸도 진동하기 시작했다.

    코끝은 찡해지고 눈가는 촉촉해졌다.

    “더 우세요. 제가 곁에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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