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228화 (228/257)

228화 제1장 충돌(3)

지이이잉.

나는 잠시 수술방을 나와서 수술 가운과 수술모, 마스크, 장갑들을 단번에 벗었다.

막내 레지던트에게 들었던 내용을 황은우에게 직접 듣기 위해서.

“선생님, 수술 중이셨던 거 아니에요?”

수술방 간호사가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흉부외과에 잠깐 문제가 생겨서요. 대동맥 파열 환자 수술 중인 수술방은 어디죠?”

“13번 로젯인데 아직 환자는 도착 안 했어요.”

“그래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고 수술실 문이 열리며 침상이 들어왔다.

황은우는 레지던트와 함께 침상을 밀고 있었다.

“선배, 뭐가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복부 대동맥 파열 환자를 왜 선배가 수술해요?”

나는 한 호흡으로 질문을 쏟아 냈다.

복부 대동맥 파열 수술은 심장 파트 펠로우가 2년 차부터 수련하는 수술이었다.

1년 차인 황은우는 감당할 수 없었다.

“너희는 먼저 수술방 들어가서 세팅하고 있어.”

황은우가 레지던트에게 지시를 내리고 나와 마주 섰다.

황은우의 얼굴에 곤란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손정남이 환자 수술 못 하겠으니까 전원하라고 시켰어. 씨발, 그게 말이 되냐? 환자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돼?”

“…….”

“짜증 나서 내가 수술한다고 확 질러 버렸지.”

황은우가 휴대폰을 꺼냈다.

손정남과 나눈 대화의 녹음 파일까지 들려주었다.

- 그래서 뭐 어쩌라고?

- 내가 내 커리어를 챙기겠다는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 양심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 멋진 양심 너나 실컷 챙겨라. 사람이 양심만 먹고 살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라고.

손정남의 뻔뻔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머리 뚜껑이 열릴 것만 같았다.

환자가 죽어 가는 마당에 이게 의사라는 놈이 할 소리란 말인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나는 심호흡으로 다스렸다.

위기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역시 전생의 강태섭이 내게 가르쳐 준 교훈이었다.

“믿음아, 너 복부 대동맥 파열 수술 할 수 있지?”

“네, 할 수 있어요.”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잘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내가 소화하지 못할 수술은 없었다.

회귀한 지금의 나는 무려 폐·식도 파트와 소아 흉부 파트까지 소화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이미 오진호를 수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래야 내 후배 천재 이믿음이지. 지금 진행 중인 판막 수술은 언제 끝날 것 같아?

“성형술은 막 끝났고 치환술은 적게 잡아도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아요.”

내 대답에 황은우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내 얼굴이라고 해서 황은우와 크게 다를 바는 없겠지만.

“선배, 판막 치환술은 소화할 수 있겠어요? 저랑 수술을 바꾸는 건 어때요?”

“그것도 안 돼. 판막 치환술은 다음 달부터 수련하거든.”

“아…….”

나도 모르게 맥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날아가 버렸다.

“나는 나름 정의감을 가지고 환자를 받았는데 내가 못나서 이 꼴이 되고 말았네. 씁쓸하다.”

“선배는 잘못 없어요. 만악의 근원은 손 교수니까.”

“황 선생님, 수술 준비 끝났습니다.”

때마침 13번 수술방 앞에서 레지던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할 따름이었다.

“오케이, 지금 갈게. 믿음아, 지금 일은 잊어버리고 네 수술에 집중해라. 뭐, 어떻게든 되겠지.”

황은우는 내 어깨를 툭 건드리고 개수대로 이동했다.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하고 수술 가운과 장갑 등을 착용한 뒤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축 처진 황은우의 어깨가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 역시 다시 스크럽을 하고 수술 복장을 갖춘 뒤 수술방으로 돌아갔다.

수술대 앞으로 복귀한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째, 계획대로 한 시간 내에 인공 판막 치환술을 소화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선택지를 따르는 일은 무척 안전했다.

수술은 분명 성공할 테고 출판사에서 수술에 관한 언론 플레이를 하면 곧 출간할 에세이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그림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선택지를 따르면 13번 수술방의 환자는 죽을 것이다.

황은우는 손정남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한 번.

감당하지 못한 수술을 제멋대로 진행해서 또 한 번.

그렇게 두 번의 문책을 받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선택지는 오진환의 판막 수술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황은우에게 합류하는 것이었다.

이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만 동시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마음만 앞서서 오진호의 수술은 오진호 수술대로 실패하고.

복부 대동맥 파열 환자의 수술도 실패할 수 있었으니까.

「환자와 황은우의 사연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가 두 마리 다 놓쳐 버릴 거야. 넌 그저 오진호의 수술에 집중하면 돼.」

이성이 차갑게 지시했다.

「옆에서 죽어 가는 환자를 모른 척하겠다고? 너 그런 마음가짐으로 의사가 된 거니? 결과적으로 네가 손정남하고 다른 게 뭐가 있어?」

감성이 뜨겁게 반박했다.

이성과 감성이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동안.

나는 양쪽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선택도, 책임도 어차피 내 몫이었기에.

“선생님, 수술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제1어시스트 권태우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선택을 하기 전까지가 괴로운 것이지 막상 선택을 하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가야 할 길은 사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단지 두려움에 망설이고 있었을 뿐.

“지금부터 실시하는 수술은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부디 잘 따라와 주세요.”

* * *

“환자 바이탈은 어떤가요?”

집도의 자리에 선 황은우가 마취의에게 물었다.

“혈압은 80mmHg/50mmHg, 맥박은 150회. 체온은 35도, 호흡수는 정상입니다. 복부 파열이 심각한 모양인데요?”

마취의가 혀를 차며 대답했다.

수술이 지연되면서 환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언제 심정지가 터지고 언제 심전도 그래프가 누워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용태야, 혈액 팩 팍팍 쥐어 짜. 손에 쥐가 날 만큼. 진웅이는 에피네프린 1앰플 하나 더 믹스해 주고.”

“네, 선생님.”

레지던트들에게 황급히 오더를 내리고 황은우는 처음으로 환자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납작한 얼굴과 넓은 미간. 낮은 콧대와 콧날.

15세의 남자아이는 다운 증후군도 앓고 있었다.

환자 이름은 강희망이었는데 황은우는 환자에게 희망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괴로웠다.

선생님이 못나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볼 게.

황은우가 속으로 각오를 다졌을 때쯤 전신 마취가 완료되었다.

“10번 블레이드.”

수술포가 덮여 있는, 피부 소독을 마친 환자의 복부를 황은우는 메스로 절개했다.

복부 대동맥은 말 그대로 복부에 존재했다.

그래서 개흉이 아닌 개복술을 펼쳐야 했다.

피부와 근막층을 절개하자 허연 복막이 드러났다.

복강 안에 혈액이 가득 차 있는지 복막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이러니 혈압이 그 모양 그 꼴일 수밖에…….

“혈액 터질 거니까 다들 대비해라.”

황은우는 부풀어 오른 복막까지 메스로 절개했다.

순간 푸확하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수술대 근처에 있던 스태프들은 몽땅 피를 뒤집어써야 했다.

환자의 피는 축축하고 뜨거웠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리트랙터! 용태, 너는 혈액팩 짜는 거 멈추지 말라고 했지!”

황은우는 호통을 쳐가며 레지던트들의 군기를 잡았다.

싸움은 기 싸움이 팔 할이라고 하는데 외과 수술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맞서 싸우는 질환에 겁을 집어먹으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 내가 죄를 짓는 게 아니라면 당신도 나를 도와주세요.

황은우는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가 신을 찾은 것은 오늘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교통 사고를 당한 어머니가 외상 센터를 전전했을 때였는데 그때 황은우의 부탁은 매몰하게 거절을 당했었다.

끼기기긱.

환자의 복부에 고정형 견인기를 설치하면서 수술 시야는 한결 넓어졌다.

그럼에도 복강에 고인 핏물 때문에 시야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진웅이는 복강 석션하고 세훈이는 복강 주변에 지혈 거즈 좀 둘러 봐.”

레지던트들에게 오더를 내리면서 황은우는 환자의 복부 대동맥 상부를 혈관 겸자로 잠갔다.

딸칵. 딸칵.

혈액이 더 이상 복부 대동맥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일단의 응급처치를 끝내고서 황은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출혈이 그나마 안정세를 되찾았다.

이제 복강에 고인 핏물의 양은 많지 않았다.

핏물이 줄어들면서 핏물에 잠겨 있던 복부 대동맥도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환자의 복부 대동맥은 손가락 한 마디 길이만큼 찢어져 있었다.

‘이제부터 본 게임인가?’

황은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파열된 복부 대동맥을 복구하는 수술은 하나밖에 없었다.

인조 혈관 치환술.

파열된 복부 대동맥을 잘라 낸 뒤 그 자리에 인조 혈관을 위치하고 꿰매는 수술이었다.

수술은 당연하게도 쉽지 않았다.

복부 대동맥을 봉합하고 대동맥과 연결된 크고 작은 혈관들도 같이 봉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조 혈관 치환술은 지금 시작해도 장장 5-6시간은 걸리는 대장정이기도 했다.

내 솜씨로 감당할 수 있을까, 인조 혈관 치환술을?

밀려드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 황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믿음이나 다른 교수님이 백업을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거라면 나도 해낼 수 있어.

그런데 황은우는 좀처럼 인조 혈관 치환술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웬일인지 출혈이 멈추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복부 대동맥 상부를 잠갔고.

복강에 지혈 거즈를 둘렀음에도 계속해서 석션을 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황은우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일단 계속 석션만 할까요?”

제1보조인 김진웅의 질문에 황은우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오히려 황은우가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으니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출혈이 계속되면서 안정세를 되찾았던 바이탈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혈압은 급락했고 맥박은 치솟았다.

심전도 그래프는 위아래로 널뛰기를 시전하는 중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황은우는 영혼이 육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무기력감을 느꼈다.

그래도 꾸역꾸역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가 한계인 걸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왜 이렇게 넋이 나갔어요?”

바로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황은우의 정신을 깨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믿음이 어느새 황은우의 곁에 서 있었다.

“뭐… 뭐야? 너 수술 중인 거 아니었어?”

“정확히 말하면 수술 중이었죠. 방금 막 끝내고 왔어요.”

이믿음의 눈이 반달 모양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황은우는 얼빠진 표정으로 이믿음을 바라보다가 수술방에 걸린 벽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복부 대동맥 수술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난 시점.

그러니까 이믿음은 30분 만에 인공 판막 치환술을 끝낸 것이다.

말도 안 돼.

최소한 한 시간은 걸린다면서.

“야, 서두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다가 오진호 수술까지 망치면 어쩌려고!”

“서두르긴 했는데 수술은 잘 끝냈으니까 걱정 마세요. 이제 자리 바꾸시죠.”

“알았어.”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황은우는 일단은 참았다.

지금은 인조혈관 치환술이 최우선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믿음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려나.

제1보조의 자리로 내려간 황은우는 초조한 심정으로 구원 투수 이믿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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