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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226화 (226/257)
  • 226화 제1장 충돌 (1)

    오전 5시.

    출근 준비를 마친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오진호의 수술이 있는 날이었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판막은 어제 오전에 도착했고 판막의 적합성 여부는 오후에 확인했다.

    이제 수술이라는 본게임만 남은 상황이었다.

    오진호의 수술에는 많은 것이 달려 있었다.

    첫째는 오진호의 목숨이요.

    둘째는 에세이의 흥행이요.

    셋째는 나를 무시했던 손정남에게 통쾌하게 반격하는 일이었다.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수술이므로 부담스러웠다.

    출근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어깨가 묵직했다.

    최악의 상황들이 산만하게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괜찮아. 어차피 승자는 내가 될 테니까.’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 나는 명상을 시작했다.

    전생의 말년부터 익히기 시작한 불안 명상에 돌입했다.

    불안 명상이란 말 그대로 불안한 것들을 명상하는 일이었다.

    명상이라고 하면 잡념이나 걱정을 최대한 비우는 것이 아니냐.

    불안과 명상이 과연 공존할 수 있는 것이냐.

    …라고 누군가는 되물을지 몰랐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불안은 생각처럼 나쁜 놈이 아니었다.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든든한 아군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구체적인 방법은 이랬다.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안들을 하나하나 활짝 펼쳐 놓고.

    그다음으로 그 불안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었다.

    해소 방법을 찾은 불안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수술 중 출혈.

    수술 중 혈전증이나 색전증.

    라텍스로 인한 아나필락시스.

    원인 불명의 혈압 상승이나 혈압 하강.

    스태프들 또는 나의 의료 실수 등등.

    머릿속에 펼쳐 놓은 불안을 나는 하나하나 격파하기 시작했다.

    격파당한 불안은 감쪽같이 지워졌다. 내 머릿속으로 다시는 얼씬도 못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불안들이 추풍낙엽으로 쓰러지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셋은 강적이었다.

    버겁기는 했지만 나는 그 강적들까지 해치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명절 재래시장보다 소란스러웠던 머리와 마음이 고요를 되찾았다.

    수술에 실패할 리 없다는 자신감도 무럭무럭 샘솟았다.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서 나는 벽시계를 응시했다.

    현재 시간은 오전 6시 30분.

    딱 평소의 출근 시간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올랐다.

    후드득. 후드득.

    주차장을 벗어나기 무섭게 굵은 빗줄기가 차를 때렸다.

    시야가 순식간에 흐려져서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궂은비로 인한 교통사고.

    교통사고로 인한 수술 취소.

    불안 명상으로 해결했던 문제 상황 하나가 번뜩 뇌리를 스쳤다.

    나는 저속으로 병원을 향했다.

    빗길에 미끄러진 다른 자동차가 나를 들이받을 악재까지 고려하면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은 다 내 계산 안에 있었다.

    * * *

    병동에 출근한 나는 오진호의 병실부터 찾았다.

    수술 당일이라 긴장했을 오진호를 달래 주기 위해서였다.

    “저요? 그냥 담담한데요?”

    수술을 앞둔 심정을 묻자 오진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진호가 강심장인지, 래퍼 특유의 스웨그를 부리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 생각해 보니 조금 짜증 나는 게 하나 있네요.”

    “뭐죠?”

    “어젯밤 6시부터 금식했더니 속이 쓰려요.”

    오진호의 넉살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로써 불안 명상 도중 떠올렸던 최악의 시나리오도 제거할 수 있었다.

    수술 공포로 인한 오진호의 수술 취소.

    이제 수술은 정말 성공할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배고픈 와중에도 가사 작업은 하셨나 보죠?”

    나는 테이블에 놓인 노트를 가리키며 화제를 돌렸다.

    “몸이 허기지면 최소한 마음이라도 배가 불러야죠. 곡은 거의 다 완성됐어요. 퇴원하고 바로 음원에 내도 될 정도예요.”

    “실례가 안 된다면 구경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나는 오진호의 손때가 묻은 노트를 손에 쥐었다.

    평소 작업에 완벽주의자인 걸까.

    노트에는 가사를 지우거나 수정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숨겨 왔던 Pain, 내가 도망쳤던 Pain.

    그것들이 결국 내 발목을 붙잡은 패인. 비겁함은 언제나 대가를 치러. 내 심장은 병들어 죽어 가고 있어.

    .

    .

    .

    “진호 씨 사연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뭔가 확 와 닿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진호에게 노트를 건넸다.

    가사는 입원 전과 입원 후 오진호의 심경 변화를 표현하고 있었다.

    “저는 의사라 랩을 할 순 없으니 수술로 답가를 대신할게요. 전 진호 씨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 겁니다. 진호 씨가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더 랩을 할 수 있도록.”

    오진호와 짧은 대화를 마친 후 나는 회의실로 이동했다.

    오전 컨퍼런스와 회진은 평소처럼 아무 탈 없이 진행되었다.

    손정남이 이따금 나를 흘겨보긴 했지만 나는 그 시선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손정남의 훼방으로 인한 멘탈 관리 실패.

    이 역시도 불안 명상으로 해결한 바 있었다.

    회진이 끝나면서 스태프들이 우르르 흩어졌다. 나는 회의실 앞에서 1년 선배 황은우와 대화를 나누었다.

    “또 추적추적 비가 오네. 뭔가 느낌이 안 좋다? 그치?”

    황은우의 시선이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줄기는 여전히 굵고 거셌다.

    “기분 탓이겠죠.”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니야. 난 예전부터 비 오는 날에 꼭 재수 없는 일이 터지더라고. 일종의 징크스지.”

    “오늘 그 징크스를 깨면 되겠네요. 수술 스케줄은 어때요?”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중간 시간이 널널해서 모처럼 쉴 수도 있을 것 같아.”

    황은우가 창가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황은우는 눈빛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오진호의 수술은 얻을 것도 많았지만 잃을 것도 많았는데…….

    황은우는 내가 수술에 실패해서 잃을 것들을 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황은우의 걱정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걱정은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았으니까.

    “에이, 됐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이믿음 수술 걱정이지. 멋있게 잘해 봐라.”

    “네, 선배. 그럼 먼저 갈게요.”

    나는 병동을 벗어나 수술방으로 향했다.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한줄기 섬광이 먹구름을 관통했다.

    * * *

    “오셨습니까? 선생님.”

    “오셨어요?”

    수술방으로 들어가자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이 인사를 건넸다.

    나도 인사를 하고 수술대 앞에 섰다.

    수술대에 누워 무영등의 불빛을 받는 오진호의 피부는 유독 새하얗게 보였다.

    핏기가 없어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오진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스태프들을 훑었다.

    “연예인을 수술한다고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평소대로만 하면 돼요. 어차피 수술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제가 질 테니까.”

    수술에 앞서 나는 스태프들부터 안심시켰다.

    스태프들이 평소보다 긴장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떠버리 권태우는 말이 없었고.

    다른 레지던트들은 아까부터 마른침만 꼴깍 삼켜댔다.

    간호사들은 괜히 애꿎은 수술 도구를 만지작거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수술의 책임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설령 수술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여러분들은 책임이 없습니다. 죄책감이나 부담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라고 면죄부를 주는 셈이었으니까.

    내 화술이 효과가 있었을까.

    스태프들의 눈빛이 한결 편하고 부드러워졌다.

    “각자 자리에 서세요.”

    내 지시로 스태프들이 제 위치를 찾아갔다.

    집도의는 나였고 제1보조는 레지던트 3년 차 권태우.

    제2보조와 제3보조는 둘 다 2년 차였다.

    멤버는 단출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 구성이 좋았다.

    펠로우가 어시스트로 들어오면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수술을 쥐고 흔들 확률이 높았으니까.

    “지금부터 폐동맥 판막 역류증에 관한 폐동맥 성형술. 대동맥 판막 협착증에 관한 인공 판막 치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내 목소리가 은은하게 수술방에 퍼졌다.

    “10번 블레이드.”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메스로 나는 환자의 가슴 중앙선을 세로로 내리그었다.

    피부와 근막이 종잇장처럼 매끈하게 갈라졌다.

    손끝의 감각은 가히 최상이었다.

    가볍고 떨림이 없었다.

    불안 명상으로 모든 불안을 떨쳐 낸 나는 거칠 것도 없었다.

    제2보조와 제3보조가 리트랙터(견인기)로 절개창을 좌우로 벌렸다.

    그다음은 권태우의 차례였다.

    전기톱을 손에 든 권태우가 정중 흉골 절개술을 준비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전기톱이 회전하면서 요란한 굉음이 수술방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복숭아 모양의 흉골에 닿기 전, 전기톱이 한순간 멈칫했다.

    권태우을 쳐다보니 녀석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태우야, 실패해도 괜찮다.”

    “네?”

    “실패해도 괜찮다고. 내가 수습할 수 있어.”

    나는 따뜻한 말로 권태우를 격려했다.

    ‘할 수 있어’가 가장 단순한 격려라면 ‘실패해도 괜찮아’는 좀 더 수준 높은 격려였다.

    우습게도 나는 이 격려법을 강태섭에게 배웠다.

    그 대가로 강태섭에게 내 영혼과 신 수술을 바쳤으니 꽤 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지만.

    “다시 해 보겠습니다.”

    권태우가 결연한 눈빛으로 흉골절개술을 펼쳤다. 하얀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면서 흉골이 세로로 갈라졌다.

    절단면이 깔끔해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거봐, 하면 잘하면서.”

    나는 피식 웃으며 흉골과 갈비뼈를 함께 들어냈다.

    그 상태에서 메스로 흉막을 가르자 숨어 있던 심장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 모든 흉부외과의들의 전쟁터 심장.

    심장은 오늘도 쿵쾅쿵쾅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어진 수술 준비는 순조로웠다.

    절개 부위에 스테블라이저(고정형 견인기)를 설치해서 시야를 확보하고.

    심정지액으로 심장을 멈춘 후 심장 대신 인공심폐기가 체내의 혈액을 순환하도록 만들었다.

    “10번 블레이드.”

    나는 우심방부터 세로로 갈랐다.

    아직 우심방에 고여 있던 혈액이 울컥하고 절개창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제1보조 권태우가 발빠르게 석션기로 혈액을 흡입했다.

    권태우의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나도 좋았다.

    “선생님. 정말 성형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초음파와 CT로 확인한 것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데요?”

    우심방 내부를 훑은 권태우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권태우가 혀를 찰 만큼 환자의 판막은 엉망이었다.

    우선 판막엽이 힘없이 늘어져 넝마처럼 너덜너덜했다.

    판막륜이라고 해서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판막륜에 듬성듬성 구멍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흉부외과의라면 성형술은 꿈도 못 꿨겠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회귀한 경험을 바탕으로 손재주와 흉부외과 지식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나라면 성형술이 가능했다.

    “성형술이 왜 성형술이겠니? 나만 잘 쫓아오면 재미있는 걸 보게 될 거다. 5-0 Vicryl.”

    끼기기긱.

    니들 홀더로 봉합사를 조인 나는 제 기능을 잃은 판막엽(판막의 문짝)부터 보수하기 시작했다.

    한 땀 한 땀 매듭을 완성할 때마다 판막엽은 팽팽하고 탄탄해져 갔다.

    혈류의 압력을 견디려면 판막엽 하부의 면적을 넓게 만들어야 해.

    아치 곡선은 그대로 살리고.

    처마가 서까래를 받치듯 판막륜으로 판막엽을 지탱해야 해.

    나는 머릿속으로 그린 청사진을 손으로 쫓아갔다.

    판막 성형술은 이제 막 시작했지만 나는 판막 성형술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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