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제5장 연민 (5)
“강철민, 어시스트 똑바로 못 해!”
OPCAB이 진행되고 있는 수술방, 손정남의 호통이 벼락으로 꽂혔다.
“나랑 수술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이야? 내가 봉합할 때 에디스 핀셋 쓰는 거 알아? 몰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은 제발 좀 하지 마. 넌 언제까지 죄만 짓고 살래?”
손정남이 살벌하게 노려보자 제2어시스트 강철민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손정남이 화를 내면서 수술방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스태프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손정남의 눈치만 보았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눈치 없는 환자 감시 장치만이 이따금 기계음을 흘릴 따름이었다.
잠시 후 절개한 부위를 원복하면서 OPCAB은 4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에이, 씨발. 마음에 드는 새끼가 하나도 없네.”
수술방을 나온 손정남은 신경질을 부리며 수술가운과 수술모, 마스크 등을 벗어 던졌다.
그 길로 휴게실을 찾아서 캔 커피를 마셨다.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는 화.
이 분노의 원인이 사실 강철민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손정남은 알고 있었다.
그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이믿음 때문이었다.
래퍼 오진호의 수술을 이믿음이 가로챘기 때문이었다.
‘얄미운 새끼.’
손정남은 다 마신 커피 캔을 손으로 찌그러트렸다.
그는 예전부터 이믿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믿음은 레지던트 때부터 양 교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이 수술 저 수술에 나댔다.
흉강경 폐 절제술 팀에 들어가 큰 활약을 하기도 했다.
시샘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안 그래도 보기 싫은 놈이 자신의 수술까지 훔쳐가니 하루 종일 불쾌함이 가시지를 않을 수밖에…….
손정남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 이믿음의 괘씸한 얼굴이 아른거렸다.
기분이 더 나빠졌다.
오진호 수술을 만만하게 본 모양인데 결코 그렇지 않을 거다.
넌 수술에 실패해서 피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될 테니까.
손정남은 이믿음을 저주하며 가운에 넣어 둔 휴대폰을 확인했다.
수술하는 동안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손정남의 은사 강태섭이 보낸 문자였다.
[얼마 전 조교수가 되었다는 소식 들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지금의 독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너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 거란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강태섭의 문자에 손정남은 큰 감동을 받았다.
손정남의 잠재력을 알아봐 주고 손정남에게 갈 길을 보여 준 건 강태섭이 유일했으니까.
손정남이 강태섭을 처음 만난 것은 대략 2년 전 여름이었다.
서울 본원에서 개최한 흉부외과 포럼에서였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잠깐 시간 좀 괜찮아요?”
포럼이 끝난 후 강태섭이 먼저 손정남에게 말을 걸었다.
손정남은 흔쾌히 허락했다.
무려 부산 신원 대학교 흉부외과 과장이 1:1 대화를 신청하고 있었다.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지하 1층 카페에서 진행된 대화는 흥미롭고 유익했다.
강태섭은 유쾌한 화술의 소유자였으며 손정남의 발표까지 높이 샀다.
그 때문일까.
강태섭과 대화를 나누는 내내 손정남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들떴다.
“정남이 너는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착해서 문제야.”
대화가 길어지고 편해지면서 강태섭이 손정남에게 반말을 하던 시점이었다.
“착한 것도 문제가 됩니까?”
“물론이지. 착하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호구란 뜻도 되거든.”
강태섭의 지적에 손정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착한 사람과 호구와의 연결 관계를 손정남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에게 선(善)과 호구는 전혀 다른 개념처럼 보였다.
“너 지금처럼 생활하면 교수 못 돼. 앞으로 이 병원 저 병원 떠돌아다녀야 할 수도 있어.”
“과장님도 그렇고 교수님도 그렇고. 다들 절 좋아하시는데요?”
“정말 네가 좋은 걸까? 네가 이용하기 좋아서 좋은 걸까? 그런 고민은 안 해 봤니?”
강태섭은 손정남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충격이 더 컸다.
내가 지금까지 이용당한 거라고?
한 번 피어난 의심은 좀처럼 사그라질 줄 몰랐다.
“이게 다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란다. 나도 너처럼 인성 좋은 사람이 결국 인정받는다고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이어지는 강태섭의 과거사를 들으면서 손정남은 아차 싶었다.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흉부외과에서 교수가 되는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운 길인데…
그 길이 막연하게 자신의 앞에 펼쳐질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우쳤다.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독하게 살아야지.”
“독하게 산다는 건 어떤 겁니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아랫사람을 휘어잡고 아랫사람을 이용해 먹으렴. 그게 제일 빠른 길이니까.”
“그건 너무 악독한 것 아닙니까?”
손정남은 강태섭의 조언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남에게 이용당하지 말라는 말은 십분 공감했다만 남을 이용하라는 말은 공감하기 힘들었다.
평소 손정남의 성격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뭐. 지금처럼 살아도 상관없어. 대신 교수는 못 되고 여러 병원을 떠돌아다녀야겠지만.”
강태섭의 살벌한 지적이 손정남의 공포심을 일깨웠다.
후배를 이용해 먹는 것은 싫었지만 나이를 먹어서까지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더 싫었다.
이제 손정남이 가야할 길은 명확해 보였다.
강태섭과 만난 후 손정남은 180도 변했다.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후배들을 착취해 나갔다.
죄책감은 처음 몇 달 동안만 들었다. 날카로웠던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무뎌졌다.
교수들도 손정남을 실컷 부려 먹었는데.
손정남이라고 레지던트를 부려 먹지 말라는 법 있는 가.
후배들의 고혈을 바탕으로 손정남은 결국 조 교수 자리를 쟁취했다.
그 결과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은 손정남이 아닌 동기였다. 손정남이 조 교수가 되면서 동기가 본원을 떠났다.
퇴사하는 동기에게 소주를 사 주고 병원으로 돌아오던 길.
손정남은 자신의 선택이, 강태섭의 조언이 틀리지 않았암을 확신했다.
세상은 약육강식이었다.
약하면 잡아먹히고 강하면 잡아먹히는 곳이 세상이었다.
그리고 내가 강해지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나보다 약한 자를 잡아먹는 것이었다.
‘이믿음, 너도 결국 내 먹이야. 금방 깨닫게 될 거다.’
상념을 마친 손정남은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을 벗어났다.
전생에서 이믿음이 강태섭에게 받은 세뇌 공작.
그 공작의 주인공이 현생에서는 손정남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오전 수술을 마친 나는 병동으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문득 바라본 창가 너머의 하늘이 잿빛이었다. 곧 한바탕 비가 쏟아질 분위기였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스태프들은 보통 비를 싫어했다.
비가 오면 환자도 같이 오는 탓이었다.
대표적으로 교통사고 환자가 있었고 관절이 쑤신다고 응급실을 찾는 환자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비를 좋아하는 스태프들도 있었다.
그들은 오히려 유비무환을 외쳤다.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는 것이다.
환자의 유무와 상관없이 나는 비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빗소리를 좋아했다.
적막한 당직실에서 빗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마음이 청량해졌다.
그러고 보니 전생의 아버지가 테이블 데스를 하던 날에도 비가 내렸었지.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빗소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닐지 몰랐다.
비를 매개로 삼아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는 것을 좋아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드르르륵.
병동에 복귀한 나는 오진호가 입원한 1인실로 들어갔다.
오진호는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마침 좋아하는 음악이었는지 고개가 앞뒤로 들썩거렸다.
“진호 씨.”
“…….”
“진호 씨.”
오진호가 말 귀를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나는 오진호의 얼굴과 조금 떨어진 곳에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오진호가 내 방문을 알아차렸다. 헤드폰을 벗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입원하시고 불편한 점은 없나 여쭤보려고 들렀습니다.”
“밥이 맛없는 걸 빼면 의외로 지낼 만한 걸요. 할 일이 없으니까 음악에도 집중할 수 있고.”
오진호가 테이블에 놓인 노트를 가리켰다.
틈틈이 신곡 가사를 적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난생 처음 입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셨는데 곡 작업을 하셨어요? 저라면 불안해서 못 할 것 같은데.”
“불안한 감정까지 음악으로 표현하는 게 아티스트죠. 사실 음악이 되지 못하는 경험은 없습니다.”
오진호의 야무진 대답에 나는 감탄했다.
오진호가 왜 대중에게 사랑받는지도 알 것 같았다.
“보호자분은 안 오셨나요?”
“어머니가 방금 전까지 계셨는데 잠깐 식사하러 나가셨어요. 어머니까지 병원 밥을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효자시네요.”
나는 우스갯소리를 하고 오진호와 대화를 계속했다.
우선 오진호의 집도의가 나라는 것을 밝혔고 검사를 통해 얻은 오진호의 심장 판막 상태를 설명했다.
“지금부터 수술에 대해서 말씀드릴 건데요.”
나는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나는 3D 프린터를 이용한 인공 판막 수술을 할 계획이었는데 이는 아직 대중화가 덜 된 신수술이었다.
오진호가 거부할 가능성이 높았다.
“혈류가 역류하는 폐동맥 판막, 그러니까 우심방과 우심실 사이에 위치한 판막에 성형술을 실시할 겁니다.”
“성형술이 뭔가요? 어감은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다른 보조 판막을 쓰지 않고 기존 판막을 수선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리폼 같은 개념인 거죠?”
“역시 래퍼시네요. 앞으로 저도 리폼이라는 단어를 애용해야겠어요.”
나는 심호흡을 하고 문제의 대동맥 판막 수술법에 대해 언급했다.
백경민이 개발한 3D 프린터를 이용한 인공판막 수술을.
“기성품처럼 사용하는 판막도 있지만 저는 진호 씨 심장 구조에 알 맞는 판막을 따로 제작해서 사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3D 프린터 판막 수술을 권하고 오진호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오진호가 무표정한 상태로 한참 동안 말이 없길래 그 속내가 궁금해졌다.
침묵은 보통 부정일 확률이 높은데…….
“진호 씨? 더 궁금한 점이나 걱정되는 건 없나요?”
“죄송합니다. 잠깐 괜찮은 가사가 떠올라서.”
몽롱했던 오진호의 눈동자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수술이야 선생님이 어련히 잘해 주시겠죠. 저는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신수술인데 불안하지 않으세요? 불안한 게 있다면 지금 다 털고 가시는 게 좋습니다.”
“…….”
“수술 직전에 마음이 바뀌시면 그것도 곤란하거든요.”
오진호의 승낙이 워낙 빨라서 오히려 내가 오진호를 걱정할 판국이었다.
정작 오진호는 천하태평이었지만.
“수술은 선생님의 전문 영역이잖아요. 수술에 관해서 저는 선생님을 리스펙합니다.”
“…….”
“애초에 선생님 말을 듣고 검진을 받아서 심장 판막 질환도 발견할 수 있었고요.”
오진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믿어도 좋다는 신호였다.
과장 서인석과 선배 황은우마저 나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환자인 오진호가 나를 제일 깊게 신뢰하다니…….
그 따뜻한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오진호의 신뢰에 반드시 완벽한 수술로 보답하리라.
“그럼 오늘 중으로 심장 CT 촬영하고 업체에 연락해서 심장 판막도 제작하겠습니다. 푹 쉬시기를.”
나는 병실을 나와 휴대폰을 들었다.
백경민에게 전화해 3D 프린터 업체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