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제5장 연민 (3)
마스크를 쓴 사내 한 명이 신원 대학교 병원 검진 센터 3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검진 예약이 잡힌 래퍼 오진호였다.
검진 센터가 가까워질수록 오진호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아… 괜히 간다고 했나?’
오진호는 뒤늦게 검진 약속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병원에 왔더니 병원 울렁증이 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입술은 바짝 말랐다.
어제 저녁부터 금식을 했더니, 평소 즐겨 먹던 야식을 걸렀더니 속도 쓰라렸다.
오진호는 바늘을 무서워했고 바늘이 있는 병원도 무서워했다.
어렸을 때 억지로 맞은 주사에 트라우마를 앓고 있었다.
평소 병원행을 꺼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이이잉.
자동문을 통과해 도착한 검진 센터는 인테리어가 깔끔했다.
테이블과 의자만 바꾸면 고급 카페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건강에 관심이 많나?’
센터를 훑으며 오진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평일 오전 9시 임에도 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먼저 도착한 검진자들이 20명 정도 되었다. 검진자들의 나이 대는 30대에서 50대 정도로 보였다.
“저… 검진받으러 왔는데요.”
“예약하셨나요?”
“네, 오진호라고 합니다.”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오진호의 이름을 듣고 눈을 깜빡거렸다.
오진호를 알아본 듯했으나 특별히 더 아는 체를 하지는 않았다.
“검사지랑 채변통 담긴 서류 봉투 주시고요. 수납은 이미 되어 있으시네요? 열쇠 가지고 락카룸에서 환복한 뒤 대기해 주세요.”
오진호는 직원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쪽팔려서 진짜. 살을 빼던가 해야지.’
검진 가운을 입고 센터로 돌아오는 길에 오진호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오늘 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 중 그의 배가 가장 볼록했기 때문이다.
TV 앞 의자에 앉은 오진호는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한 명씩 호명되어 자리를 비울 때마다 괜히 긴장이 됐다.
데뷔 앨범으로 첫 음악방송을 할 때 이후로 이렇게 초조한 건 처음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오진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생각했다.
홍보 대사 계약을 하던 날.
건강에 자신 있다고 큰 소리를 뻥뻥 쳤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오진호는 요즘 들어 부쩍 제 몸이 제 몸 같지 않음을 느꼈다.
평소 너끈하게 소화하던 랩임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딸려서 고생했고.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 한참 동안 심장이 거칠게 뛰어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다 살이 쪄서 그런 거야, 별일 없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증상을 넘겼지만 개운치 못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주사기 공포증이 없었으면 진작 병원을 찾았으리라.
“오진호 님, 들어오세요.”
“네.”
직원의 부름을 받아 오진호는 대기실에서 검진실로 이동했다.
소변 검사, 심전도, 청력 검사, 흉부 엑스레이 등등.
차례대로 펼쳐지는 각종 검사에 오진호는 몸을 맡겼다.
문제의 채혈을 할 때는 안색이 퍼렇게 질리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으나 용케 참아 냈다.
그를 구원한 것은 래퍼로서의 가오(?) 덕택이었다.
무대를 휘어잡고 스웨그를 뽐내던 그가 고작 주사기를 두려워한다?
그럼 직원들이 자신을 우습게 보지 않을까.
…하는 자존심이 오진호를 구원했던 것이다.
숙적 채혈을 이겨 낸 오진호는 거칠 것이 없었다.
직원의 부름을 받아 다음 장소인 초음파실로 이동했다. 초음파실은 어두컴컴하면서도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오진호는 직원이 시키는 대로 상의를 풀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숨 참으시고 숨 들이마시고. 숨 참으시고 숨 들이마시고.
여직원이 지시를 내리며 오진호의 흉부에 스틱을 갖다 대었다.
스틱에 발라진 끈적하고 차가운 젤이 오진호는 불쾌했다.
“어라? 이상하네?”
심장 초음파를 진행하던 직원이 불쑥 혼잣말을 내뱉었다.
좋은 뉘앙스는 결코 아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심장 판막에 문제가 있어 보여서요. 보통 고객님 연령에 이 정도 문제가 있는 경우는 드문데…….”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한번 심장 초음파를 실시했다.
직원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니 이마에 진 주름이 사라질 줄 몰랐다.
오진호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직원의 실수가 아닌 건가.
정말 내 심장 판막에 문제가 있는 건가.
남은 음반 활동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 등등.
오진호는 5분 남짓도 안 되는 순간에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무거운 정적 속에 끝난 심초음파 검사.
“다른 검사 하지 말고 잠깐 바깥에서 대기해 주시겠어요?”
오진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에 묻은 젤을 티슈로 닦고 검사실을 나와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복귀한 직원을 통해 오진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오진호 님, 검사 다 받으신 후에 흉부외과 외래 진료를 받아 보셔야겠어요.”
“왜죠?”
“심장 판막이 안 좋아서 수술을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수술이요?”
오진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 * *
- 홍보 대사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환자였네요. 심장 질환을 앓고 있던 래퍼 오진호.
- 너구리의 리더 오진호. 심장 판막에 문제 있어 입원.
- 한창 잘나가던 너구리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 너구리의 리더 오진호가 앓고 있는 폐동맥 판막 역류증, 대동맥 판막 협착증이란?
.
.
.
출근길에 휴대폰으로 오진호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이틀 전부터 오늘까지 대략 50여 개 가까운 기사가 쏟아져 내렸다.
오진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지. 지금이라도 발견한 게 어디야?’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의 내 기억이 틀리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오진호는 수술이 필요한 중증 심장 판막 질환을 앓고 있었다.
만약 오진호가 검진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본인이 앓고 있는 질환을 까맣게 몰랐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전생의 전처를 똑같이 밟았으리라.
1-2년 사이에 심부전증으로 인한 급성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으리라.
검진을 받은 당일 오진호는 흉부외과 외래 진료를 받았다.
검진을 통해 얻은 검사 결과로 폐동맥 판막 역류증과 대동맥 판막 협착증 확진을 받았다.
정신적인 충격이 컸기 때문일까.
입원은 당일에 하지 않고 어제 저녁에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오진호의 판막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낸다. 그 유명세를 등에 업고 에세이를 흥행시킨다.」
내 계획은 착착 맞아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계획이 지나치게 속물 같다는 기분은 지울 수 없지만 어쩌랴.
속물처럼 굴어야 흉부외과의 처참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면 이 한 몸 희생할 수밖에.
나는 내 에세이를 더 많은 사람이 읽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흉부외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를 바랐고.
흉부외과의를 꿈꾸는 청춘들이 더 늘어나기를 바랐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실존한다면 나는 기꺼이 내 영혼을 내 바칠 각오도 되어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병동에 도착한 나는 마주치는 간호사·레지던트과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복도를 가로질러 잰걸음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래퍼 오진호 알아? 걔 지금 우리 병동에 입원했다던데?”
자리에 앉자 황은우가 호들갑을 떨며 말을 걸었다.
“전 먼저 알고 있었어요.”
“진짜? 난 어제 들었는데?”
“저는 엊그제 들었어요. 소식통이 조금 늦으셨네요, 선배.”
“짜식, 그런 고급 정보가 있었으면 선배한테 빨리빨리 보고부터 했어야지.”
“소녀시절 멤버가 입원한 게 아니라서 일부러 안 했어요.”
우리의 화제는 한참 오진호에 머물렀다.
쟁점은 과연 누가 오진호를 수술할 것이냐 였다.
오진호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 연예인이었다.
따라서 오진호를 맡을 집도의 또한 스포트라이트를 피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스포트라이트는 축복이 될 수도, 저주도 될 수 있었다.
“판막 질환이 하나면 부담이 덜 할 텐데 두 개나 되니까 좀 거시기 하더라?”
황은우가 껄끄럽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먼저 와서 차트를 봤는데 폐동맥 판막에는 성형술을 하고 대동맥 판막은 치환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좀 빡세겠어.”
“그러게요. 수술 시간도 최소 5-6시간은 걸릴 텐데.”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던 나였다.
다른 교수들도 분명 황은우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오진호의 명성과 수술 난이도에 부담을 느껴 피하려고 하겠지.
그렇다면 수술은 내 차지가 될 확률이 컸다.
나는 오진호를 수술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으니까.
“이글이글 불타는 눈을 보아하니 너, 오진호 수술할 생각이구나.”
눈치 빠른 황은우가 내 속내를 읽었다.
“네, 해야죠. 하고 싶기도 하고.”
“너 잘난 건 아는데 적당히 몸도 사리고 그래라. 명성을 쌓는 건 한 세월이지만 명성이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야.”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되겠어요?”
나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여간 짱구는 말려도 이믿음은 못 말린다니까. 근데 네 마음대로 안 될 수도 있어.”
“그게 무슨 뜻이에요?”
“오진호 수술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뿐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황은우가 툭 던진 한마디가 의미심장했다.
내 가슴에 소란스러운 파문을 만들어 냈다.
나 말고도 오진호 수술을 원하는 간 큰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머릿속으로 떠올린 교수진 중에 의심 가는 이는 없었다.
대체 누구냐 넌.
“그게 누군데요?”
“일단 지켜보자고. 내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본인의 생각에 자신이 없는지 황은우가 말을 아꼈다.
더 물어봐도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도 침묵했다.
잠시 후 교수급들이 하나 둘 회의에 참석했다.
과장 서인석도 자리에 앉았다.
치프의 진행에 따라 시작된 오전 컨퍼런스.
컨퍼런스의 시작은 평소와 같이 입원 환자 브리핑이었다. 주치의인 레지던트들이 각자 맡고 있는 환자에 대해서 노티했다.
그리고 문제의 오진호 차례가 다가왔다.
“오진호 씨, 집도의가 안 정해졌는데 누가 볼래요?”
과장 서인석이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교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인석의 시선을 피했다. 누구는 창가를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면 그렇지.
폭탄을 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내가 자신 있게 손을 치켜들려는 찰나.
놀랍게도 나보다 먼저 나선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제가 맡고 싶습니다.”
손을 든 사람은 조교수 손정남이었다.
손정남은 내가 레지던트 1년 차일 때 벌써 4년 차였던 선배였다.
펠로우를 마치고 작년부터 부교수로 근무 중이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손정남의 성격이었다.
내가 아는 손정남은 적극적으로 수술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손정남은 매사에 조심스러웠으며 최대한 안전한 수술을 지향해 왔다.
“선배가 말한 사람이 손 선배였어요?”
내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너 군대 간 사이에 손 선배가 좀 많이 변했거든.”
“어떻게요?”
“뭐랄까, 많이 표독해졌어. 부교수가 된 다음부터는 말 섞기도 힘들더라.”
전생의 손정남도 이 시기에 표독했던가?
기억을 더듬던 나는 일단 손부터 번쩍 들었다.
오진호의 집도의는 내가 되어야 했으니까.
“저도 오진호 씨를 수술하고 싶습니다.”
내가 손을 들자 손정남이 나를 째려보았다.
과연 눈빛이 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