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제4장 전역(5)
나는 기흉의 원인을 찾으러 병동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기흉의 원인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었다.
휴게실에서는 긴가민가한 부분이 있었지만 고민해 보니 답은 쉽게 나왔다.
‘귀엽네.’
나는 고뇌에 빠진 권태우를 힐끔 쳐다보고 웃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환자는 아픈데 그 이유를 몰라서 괴로워하던 시절이.
하지만 이는 의사로서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통이었다. 고민하고 고뇌하지 않는 의사는 결코 성장할 수 없었다.
드르륵.
환자가 있는 6인실에 도착했다.
수술 대기 중인 환자들은 긴장한 것처럼 보였고 수술이 끝난 환자들은 아파 보였다.
보호자들은 누구나 상관없이 무기력해 보였다.
환자와 보호자들끼리 친해진 병실은 아닌 것 같았다.
병실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떠들어 대는 것은 TV 속 리포터뿐이었다.
“안녕하세요. 흉부외과의 이믿음이라고 합니다.”
나는 강아름 환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강아름은 흉부외과 병동에서 보기 드문 젊은 환자였다.
몸에 꽉 낀 환자복이 어색해 보였다.
보호자는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선생님은 가운을 안 입고 계시네요?”
“정식 출근은 내일부터라서요.”
“대학 병원이라서 믿고 왔는데 수술도 하기 전에 이게 무슨 참변인가요?”
강아름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검지로 가리킨 가슴에는 흉관이 꽂혀 있었다. 기흉 처치 때문에 삽입해 놓은 것이었다.
강아름이 불만을 표시하자 권태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긴 내 눈에도 강아름은 한 성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수술도 하기 전에 이 꼴이죠?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네요.”
“설명드리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혹시 입원 전후로 생리를 하셨습니까?”
내 질문에 강아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성적인 질문이라 생각해서 모욕감을 느낀 듯했다.
곁에 서 있던 권태우는 본인에게 불똥이 튈까 봐 안절부절못했고.
생리라는 단어를 엿들은 몇몇 환자와 보호자는 흥미롭다는 듯 이쪽을 주시했다.
“아, 진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세요?”
강아름이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목덜미에 새파란 핏줄이 섰다.
하지만 나는 강아름의 분노에 전염되지 않았다.
여전히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네,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환자분께 이걸 물어보려고 병실까지 찾아왔으니까요.”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성희롱을 하러 발품도 파시고.”
“그래서 대답은요?”
“그래, 입원하러 온 날이 생리하는 날이었다. 이 변태 의사야, 이제 속이 후련해?”
“환자분의 가슴에 기흉이 생긴 건 그 생리 때문입니다.”
원하는 대답을 듣고서 나는 곧바로 진단을 내렸다.
이 양반아, 생리하고 기흉이 대체 무슨 상관인데?
권태우와 강아름이 나를 쳐다보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시점.
나는 월경성 기흉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월경성 기흉은 파열된 자궁 내막 세포가 폐로 올라가서 생기는 질환이었다.
환자의 주 연령대는 평균 32-35세.
호발 시기는 보통 생리 시작 전후로 72시간.
주로 오른쪽에 기흉이 생기는 특징이 있었다.
즉 강아름은 월경성 기흉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멍이 없으므로 강아름은 외상성 기흉이 아니다.
자발성 기흉이 가장 의심되는데.
강아름은 여자였으며 키가 크고 마르지 않았으며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그렇다면 강아름이 걸릴 수 있는 질환은 월경성 기흉뿐이다.」
나는 소거법과 근거 대기를 통해 강아름을 진단했다.
이는 전생의 멘토 서인석에게 배운 유용한 진단 기술이었다.
“폐에 달라붙어 있는 자궁 내막 조직은 OPCAB 수술을 진행할 때 같이 제거하겠습니다.”
내가 프로답게 설명을 하자 강아름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곁눈질을 하니 권태우는 나를 존경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강아름과 마찬가지로 나를 변태처럼 바라보던 환자와 보호자들의 눈빛도 변했다.
그들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저기요, 선생님.”
병실을 나가려던 나를 강아름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더 궁금하신 점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방금 전에는 죄송했어요. 수술하기도 전에 너무 아프고.”
“…….”
“남편이 너무 늦게 간병 온다고 하길래 짜증이 나 있던 상태기도 해서요. 사과드릴게요.”
“괜찮습니다, 편히 쉬세요.”
나는 씽긋 웃으며 병실을 나왔다.
환자에게 오해를 받는다는 건 분명 불쾌한 일이었다.
나만 해도 오늘 공개적인 장소에서 변태 의사라는 치욕적인 호칭을 들었으니까.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오해는 오히려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사건으로 강아름에게 신뢰를 얻었음을 확신했다.
내 활약이 인상 깊었을까.
회의실로 이동하는 도중 권태우가 감탄사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역시 내 옛 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내가 못 하는 진단과 처치를 척척 해내는 선배들을 보면 나도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근데 그 환자 성깔이 너무 더러운 것 같습니다.”
권태우가 강아름을 화제로 올리며 씩씩거렸다.
“선생님이 민감한 질문을 했던 건 맞지만 그렇게 성질낼 필요는 없었잖아요? 빽빽 소리나 지르고 다른 환자들 앞에서 변태 취급이나 하고.”
“…….”
“오늘부로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을까 봐요.”
“태우야.”
나는 권태우의 이름을 지그시 불렀다.
오는 길에 제법 친분을 쌓아 우리는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되었다.
“네, 선생님.”
“환자는 아프고 예민한 사람이지. 건강한 보통 사람하고 똑같이 대하면 안 돼. 환자를 대할 때는 더 너그러워야 한단다.”
나는 전생에서 스스로 터득한 환자론을 설파했다.
대한민국의 많은 의사가 착각하거나 또는 간과하고 있는 태도가 하나 있었다.
바로 환자를 일반인처럼 대하는 것이었다.
크게 앓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질병에 걸리거나 외상을 입었을 때 사람의 신경이 얼마나 곤두서는지.
심리적으로 얼마나 여유가 없는지를.
그런데 의사들은 정작 그런 중요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성적으로 말했는데도 환자가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심지어 별것도 아닌 질환으로 호들갑을 떤다며 환자를 욕하는 의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옳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몸이 아프고 정신이 약해져 있는 환자를 건강한 일반인 취급한다면 그게 공평한 일인가.
강아름이 모욕적인 언사를 했음에도 내가 발끈하지 않았던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었다.
병실에서 유일하게 보호자 없이 쓸쓸하게 있었던 강아름.
젊은 나이에 큰 심장 수술을 받게 되어 불안했을 강아름.
나는 강아름이 심리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못난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내 환자론을 듣고서 권태우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강아름을 향한 분노도 어느새 사그라진 듯했다.
“병원이 있고 의사가 있어서 환자가 있는 게 아니야. 환자가 있기에 병원도 있고 의사가 있다는 걸 잊지 마.”
“…….”
“선후 관계를 잊어 버리면 누구처럼 타락하게 되니까.”
나는 두 사람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 * *
서인석 과장이 힘깨나 썼던 모양이었다.
과장과 미팅을 마친 다음 날부터 나는 전례가 없었던 흉부외과 폐이 닥터로 근무를 시작했다.
오전에 느지막하게 출근한 나는 인사과부터 들러 근무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후 중앙 공급실에 들러 가운과 콜폰, 명찰 등을 지급받아 곧바로 수술실을 찾았다.
첫 수술은 OPCAB.
환자는 어제 월경성 기흉을 진단했던 강아름이었다.
복귀 후 첫 근무라는 점을 배려했을까.
나는 집도의가 아닌 제1어시스트로 배치되었다. 집도의는 1년 선배인 황은우였다.
펠로우 수련 중인 황은우는 내가 알던 황은우가 아니었다.
상황 판단이 빨랐고 손놀림은 정교해졌다.
이런 인재를 탈주하게 만든 전생의 내가 다 부끄러워질 만큼.
“이믿음, 너 대체 군대에서 무슨 짓을 하고 왔냐?”
수술 도중 황은우가 혀를 차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선배?”
“아니, 군대 들어가기 전보다 실력이 더 늘었잖아. 난 이런 OPCAB 어시스트는 처음 받아 본다고.”
황은우는 성장한 내 실력에 놀란 눈치였다.
하긴 내 혈관 그래프트 채취, 혈관 고정, 혈관 관리가 완벽하긴 했지.
이 실력의 밑바탕에는 1년 전부터 태극 병원 연구실에서 생쥐를 이용한 심장 수술이 큰 몫을 했다.
쥐의 심장으로 수술을 하다 보니 사람 심장을 다루는 일이 훨씬 편해진 것이다.
지금의 나는 표면적으로는 흉부외과 면허증을 딴 전문의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교수였던 전생의 실력까지 아득히 뛰어넘은 명의였다.
“에이, 이제 좀 따라잡았나 싶었는데. 더 멀리 달아나 버렸네.”
황은우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그저 듣기만 했다.
전생에서 내가 동경했던 황은우가 현생에서는 오히려 나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 간격의 차이 때문에 기분이 오묘했다.
꽉 막힌 관상 동맥에 우회 혈관을 연결하면서 수술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선배, 뭐 빠트린 거 없어요?”
내가 황은우에게 물었다.
“빠트린 거? 그런 거 없는데?”
황은우는 금시초문이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거 하나 빠트렸잖아요. 자궁 내막 세포 제거해야죠.”
“아… 맞다. 이 환자 월경성 기흉도 있다고 했지? OPCAB에 집중하다 보니 깜빡했네.”
“기흉 제거는 제가 할게요.”
“오냐.”
황은우와 나의 친분이 두터웠으므로 우리는 스스럼없이 자리를 바꿨다. 나는 집도의 자리에 서서 환자의 가슴 내부를 살폈다.
수술방은 어느새 고요해졌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이 이따금 적막을 깨트릴 따름이었다.
‘뭐야, 이건?’
환자의 폐와 늑막을 유심하게 살피던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기흉이 일으켰을 자궁 내막 세포가 도통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환자는 틀림없이 월경성 기흉일 텐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눈치 빠른 황은우가 물었다.
“자궁 내막 세포가 안 보이는데요?”
“엥? 그럴 리가.”
황은우가 루뻬(광학)안경을 고쳐 쓰고 환자의 가슴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 역시 자궁 내막 세포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허탕을 치고서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럼 월경성 기흉이 아닌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요. 환자의 기흉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월경성 기흉밖에 없어요.”
“그럼 자궁 내막 세포가 있어야지. 짜식, 너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실수도 다 하고.”
황은우가 놀리듯이 말했고 나는 침묵을 지켰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진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중요한 정보를 놓치고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용쓰지 말고 수술 부위 닫자. 한 시간 있다가 다음 수술도 있는데.”
“안 돼요. 지금 해결 못 하면 기흉이 재발할 거예요.”
월경성 기흉은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 생리 때 기흉이 재발할 위험이 있었다.
나는 환자가 다시 병원을 찾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건 환자가 월경성 기흉일 때의 이야기잖아.”
“그럼 5분만 시간을 주세요. 근거를 꼭 찾을 테니까.”
나는 눈을 부릅뜨고 환자의 가슴을 재차 살폈다.
전생과 현생을 통해 머릿속에 방대하게 쌓아 놓은 논문도 뒤지기 시작했다.
정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