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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218화 (218/257)

218화 제4장 전역(3)

전역을 하고서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흉부외과에서 근무를 다시 시작한 것도 아닌데 흉부외과에서 근무를 하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의 대부분은 사람을 만나는 데 썼다.

제일 먼저 찾아뵌 사람은 스승 양 교수였다.

양 교수는 은퇴를 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바다를 자주 보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양 교수를 만난 장소는 해운대의 물결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였다.

소원을 성취한 덕분인지.

아니면 과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벗어던져서 자유로워진 덕분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양 교수는 편안해 보였다.

대화 도중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경우가 잦았다.

사소하지한 신기한 모습이었다.

과거의 양 교수는 세상의 고뇌란 고뇌는 다 짊어진 철학자처럼 심각한 표정이었으니까.

양 교수의 일상 이야기를 나는 귀 기울여 들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 할 말이 있어서 양 교수를 찾은 게 아니었다.

지난 3년간 양 교수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서 찾았으니까.

양 교수는 개를 기르고 있다고 했다.

견종은 골든 리트리버.

일 년 전부터 기르기 시작한 강아지는 폭풍 성장을 했단다.

바다로 산책을 나가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녀서 돌아올 때면 절여 놓은 배추처럼 몸이 처진다고 했다.

양 교수는 요즘 영화도 자주 본다고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일상을 이야기하는 양 교수의 모습에는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첫 번째 감정은 행복이었다.

은퇴한 양 교수가 행복한 것 같아서 나도 행복했다.

혹시 은퇴 후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을 앓으면 어떨까 걱정했는데 전부 기우에 불과했다.

두 번째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양 교수는 은퇴한 후에 느끼고 있었다.

양 교수를 향한 안타까움은 곧 나를 향했다.

양 교수에게서 내 미래를 봤던 탓이다.

“믿음이 너는 군대에서도 화려하더구나?”

“저 말씀이십니까?”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니?”

양 교수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총상 환자 치료를 하지 않나? 3D 프린터를 이용한 인공 판막 수술에 참여하지를 않나.”

양 교수의 지적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양 교수에게 말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꽤 놀란 눈치구나. 은퇴를 했다고 해서 흉부외과 돌아가는 일에 까막눈은 아니란다. 네 소식 정도는 다 전해 듣고 있어.”

나를 향한 양 교수의 관심에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외과의로서 나의 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양 교수였다.

“교수님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제 제 걱정은 마시고 교수님의 삶을 온전히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되니까 문제지지.”

양 교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미간을 찌푸렸다.

커피가 써서 그런지, 내 걱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부터 의사 생활이 많이 힘들어질 거야.”

양 교수는 앞으로 내가 겪을 고난에 대해서 언급했다.

내가 흉부외과의로서 두각을 나타내면 필시 주변에서 수많은 시샘과 공작, 정치질이 들어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일들을 말하고 있었던 걸까.

말을 하는 양 교수의 표정은 괴로워 보였다.

과거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것 같았다.

“교수님, 저 그렇게 만만한 인간 아닙니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다른 사람을 속이면 속였지, 다른 사람은 절 못 속입니다. 제 수완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잘 알지. 하지만 세상에 비범한 사람이 너 하나만 있는 건 아니란다. 난 그게 걱정되는구나.”

“세상에 잘난 사람이 많다지만 그래도 저만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나는 여전히 자신감을 드러냈다.

물론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는데 그 자신감의 등 뒤에는 회귀가 있었다.

인생을 두 번 산 사람.

앞으로 일어날 굵직굵직한 일을 손금 보듯이 알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주름지고 검 버선이 핀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이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스승님은 그저 저를 믿기만 하시면 돼요.”

“녀석도, 참.”

양 교수가 피식 웃으며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하긴 믿음이 너야 워낙 일을 똑 부러지게 하고 사람들도 잘 다루니 나와는 다르겠지.”

“…….”

“나이를 먹으니 이상하게 걱정만 늘어나는구나.”

내 자신감에 압도당한 양 교수가 금방 걱정을 거두었다.

스승과 즐겁게 회포를 풀고 헤어질 때 나는 돌김 세트를 받았다.

스승은 빈속에 김을 먹어 두면 속 쓰림이 덜할 거라고 했다.

내가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건넨 속 깊은 선물이었다.

양 교수를 만난 후에도 만남은 계속 이어졌다.

반가운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고.

대학 동기인 신철우와 남초롱을 만났고 간간히 유지은과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친모와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후 유지은은 한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본인이 너무 매몰차고 야박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닌가 자책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자책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꾸준히 연락하며 유지은의 마음을 관리해 주었기 때문이다.

유지은의 마음에 박힌 가시들을 나는 따뜻하고 진심 어린 위로로 뽑아 주었다.

유지은은 곧 친모의 그늘을 훌훌 떨쳐 냈다.

똑순이답게 자신의 삶을 본래 궤도에 올려놓았다.

- 선배, 오늘은 뭐 해요?

- 밥은 제때 먹었어요?

- 뮤지컬 티켓 얻었는데 같이 갈래요?

친모 사건을 함께 경험한 후 유지은과 나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내 메신저의 8할은 다 유지은과 주고받은 것이었다.

유지은은 내심 내게 뭔가를 바라는 눈치였으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중요한 이야기면 본인이 직접하겠지.

유지은의 속내에 대해서 나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전역 후 중요했던 만남 중 하나는 단연 출판사와의 만남이었다.

전역 후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마침내 에세이가 완성되었다.

근 3년 동안 쓰고 다듬어 온 내 새끼.

최종 퇴고를 마치고 느꼈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고생 많았다, 큰아들. 이 정도면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겠구나.”

에세이 최종본을 본 아버지의 평가는 좋았다.

정말 글이 좋았던 건지.

자식인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어쨌거나 아버지의 책을 출판하고 있는 출판사 관계자와 나는 미팅을 가졌다.

대화는 길었지만 서명은 빨랐다.

계약 조건을 서로 맞춰 놓은 상태에서 만났으니까.

전역 후 분주함은 놀랍게도 딱 열흘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나는 근본적으로 무직이었으니까.

부족했던 시간이 남아돌면서 지루함에 몸이 꽈배기처럼 꼬였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고.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하는 것처럼 쉬는 것도 쉬어 본 놈이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쉬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남들이 꿀 빤다는 군의관 시절에도 숨 쉴 틈 없이 바빴으니 말 다했다.

신원 대학교 병원이 해외 연수권을 처리해 주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한 달.

그 한 달 동안 무슨 일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 * *

“오랜만이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터졌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나는 3년 만에 서울 신원 대학교 본원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병원 건물은 변한 것이 없었다.

만약 바뀐 것이 있다면 병원을 오고 가는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과 행정 직원들.

즉 사람들일 것이다.

등을 떠미는 봄바람의 재촉에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로비를 통과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흉부외과 병동을 찾았다.

“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게 얼마 만이에요?”

스테이션을 지나가는데 김지연 간호사가 하이 톤으로 인사를 했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니 나도 반가웠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지는 못했지만 잘 지내고 있는 중이랍니다.”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는 말장난 같은 건가.

“선생님이 저를 처음 봤을 때는 1년 차였잖아요. 지금은 4년 차고요. 이제 일이 손에 익었다는 뜻이에요.”

“아… 그런 뜻이구나. 짬을 먹더니 말이 청산유수가 되셨네요?”

“훗, 원래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죠.”

김지연이 팔짱을 끼며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었고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단 말이지, 김 간호사는.

“이제 본원 복귀하시는 거예요?”

“복귀는 아직도 못 할 것 같아요. 해외 연수를 나가야 해서.”

김 간호사와 짧은 잡담 마치고 나는 회의실을 찾았다.

텅 빈 회의실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서인석이었다.

서인석은 전생의 내 멘토였다.

강태섭이 본원 과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쳐 낸 실력 있는 외과의였다.

내가 전생과는 다른 타임 라인을 만들었기 때문일까.

서인석의 타임라임도 전생과는 180도 달라졌다.

그는 현재 서울 본원의 흉부외과 과장이었다.

그것도 한 달 전 부임한 따끈따끈한 과장.

“과장님, 저 왔습니다.”

나는 먼저 아는 체를 하고 서인석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이구나, 믿음아. 잘 지냈니?”

“보시다시피 건강하고 별 탈 없었습니다. 얼마 전 과장으로 진급하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난 어색해 죽겠는걸? 과장 소리를 듣는 것도 민망하고 과장 감투를 쓴 것도 불편하고 말이야.”

서인석의 뺨에 어느새 홍조가 떠올랐다. 겸손하고 낯을 가리는 모습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한결같은 사람.

나는 서인석을 볼 때마다 소나무가 떠올랐다.

“그래도 금방 적응하시지 않겠어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구나.”

우리는 금방 흉부외과 병동으로 화제로 돌렸다.

서울 본원 흉부외과는 한마디로 잘나가는 중이었다.

국내 최초로 흉강경 폐암 수술을 성공시킨 후 이어진 유명세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1년 전에는 무려 폐암 센터를 증축했단다.

“매출이 나오니까 윗선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더구나. 조만간 홍보 대사도 위촉할 예정이야.”

“홍보 대사씩이나요? 진짜 많이 성장했네요.”

나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말했다.

전생에서 본원의 흉부외과 대접은 형편없었다.

다른 빅5 병원은 이미 다 있는 폐암 센터가 지금으로부터 5년 뒤에나 생길 정도니 말 다했다.

“이게 다 양 교수님과 네 덕분이지. 최초의 흉강경 수술을 우리가 선점했으니까.”

“저야 운 좋게 숟가락만 얹었을 뿐인데요, 뭐.”

“숟가락이 없으면 밥도 못 떠먹고 국도 못 떠먹는 법이란다.”

서인석이 여유 있게 내 말을 받아쳤다.

굳이 폐암 센터가 아니더라도 흉부외과의 사정은 좋아 보였다.

나보다 먼저 전역한 능력 있고 선한 성품의 선배들이 펠로우 과정을 밟는 중이었다.

교수진은 빵빵했으며 개중에 정치질에 특화된 사람도 없었다.

더군다나 과장이 전생의 멘토였던 서인석 아닌가.

본원 흉부외과의 미래에 그늘은 없어 보였다.

“이제 수술 들어가셔야 하죠?”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화제를 돌렸다.

슬슬 본론을 꺼낼 차례였다.

“한 10분 정도는 더 대화해도 될 것 같은데? 눈치를 보아하니 따로 용건이 있는 모양이구나.”

“네, 사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나는 차분하게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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