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제4장 전역(2)
강태섭을 만나러 지하 1층 카페로 가는 길.
나는 부단히 심호흡을 해야 했다.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도 냉정했던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살짝 손을 올려 본 뺨은 난로마냥 뜨거웠다.
강태섭은 내가 개발한 신수술을 훔쳤다. 그 후환이 두려워 나를 외지로 내팽개쳤다.
정점을 향해 치닫던 내 커리어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내게 강태섭은 악마였다.
하지만 분노와는 별개로 호기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강태섭은 지금 대체 어느 병원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을까.
이 시기의 강태섭은 어떤 성격일까 등등.
복잡한 생각과 복잡한 마음으로 카페에 도착했다.
평일 점심시간의 카페는 병원 스태프들과 환자 보호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클래식 음악 반주 위로 재잘재잘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소한 원두 향기가 코끝에서 살랑거렸다.
“여기입니다, 이 선생.”
한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강태섭이었다.
강태섭이야 내가 초면이겠지만 나는 강태섭이 초면이 아니었다.
그래서 카페에 들어온 순간 강태섭을 알아보고 해당 테이블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반가워요. 신원대학교 부산 분원 흉부외과 과장 강태섭이에요.”
“군의관 근무 중인 이믿음이라고 합니다.”
악수와 통성명을 나누고 나는 강태섭의 맞은편에 앉았다.
전생을 거슬러 마침내 마주한 원수 강태섭.
잘생긴 외모와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그는 호남이었다.
거기다가 예의까지 발랐으니 초면에 강태섭을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묘하게도 막상 강태섭을 만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매도 맞기 전이 두려울 뿐 정작 맞고 나서는 덤덤한 것처럼.
“이 선생님은 외모가 훤칠하네요. 의사 말고 배우를 했어도 성공했겠어요?”
“과찬이십니다.”
“태극 병원 스태프들에게 듣기로는 이 선생도 신원대학교 출신이라고 하던데…….”
“네, 맞습니다. 언젠가 과장님 밑에서 일을 할 수도 있겠네요.”
말을 하면서 나는 강태섭과의 격전지가 부산이 될 것임을 느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고.
부산에 있는 강태섭을 잡으려면 부산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헛고생은 아니었어.’
나는 속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전생대로라면 강태섭은 서울 본원에서 과장을 맡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본원 근무 당시 적폐 세력들을 무찌르면서 인사 발령이 꼬인 게 분명했다.
이것만으로 내 회귀는 소정의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같은 과장이라도 본원 소속이냐, 분원 소속이냐에 따라서 권력의 크기가 달라지니까.
“나야 이 선생이 부산으로 와 주면 든든하고 좋죠. 하지만 내 욕심으로 이 선생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이 선생은 서울에서 근무하는 게 좋겠습니다.”
강태섭의 혓바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콤했다.
강태섭은 내 능력을 치켜세웠으며 내 편의를 더 우선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본심은 아니었다.
이것은 환심이었다.
강태섭은 환심을 사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으니까.
아마 나중에 예술 같은 타이밍을 잡아서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스카우트 전화를 날리겠지.
내 눈에는 강태섭의 수법이 훤히 보였다.
억울하게도, 그리고 불행하게도.
세상에는 직접 당해 봐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대화를 좀 더 나누면서 강태섭이 내게 양해를 구하고 반말을 하기로 했다.
빠른 호칭 정리를 통한 친밀한 관계 형성.
역시 강태섭이 즐겨 쓰는 수법이었다.
이 요망한 인간은 사람을 조련할 줄 안 단 말이지.
“저는 부산에 내려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진심이니?”
“네, 서울 환자와 부산 환자가 다르지는 않겠지만… 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걸 좋아해서요.”
“특이하구나. 보통은 그 반대인데 말이야.”
“새로운 인맥도 새로운 환경에서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자못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내가 만들고 싶은 인맥은 강태섭과의 인맥이었다.
강태섭은 이런 나를 광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저 강태섭을 멕이러 가는 것뿐이고.
“믿음이 네가 결심만 한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하마.”
“나중에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직 군의관 생활이 끝난 것도 아니고. 제대 후에는 제임스 홉킨스 병원에서 수련도 해야 해서요.”
“제임스 홉킨스 병원?”
“네, 9개월짜리 해외 연수권을 세 장이나 가지고 있어서요.”
이어진 대화는 모난 부분 없이 둥글게 진행되었다.
강태섭의 화술이야 천하가 다 알 정도로 뛰어났고 나는 강태섭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송곳니를 감추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대략 1시간 정도 카페에 머물렀다.
주로 강태섭이 질문하고 내가 답변하는 형태였다.
강태섭은 외과의로서의 내 실력에 크게 주목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강태섭은 사냥에 쓰고 버릴 사냥개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데리고 올 사냥개가 사냥을 못한다면 난감할 테지.
“수술 끝나고 피곤할 텐데 내가 너를 너무 오래 붙잡았구나. 슬슬 일어나자꾸나.”
강태섭이 자상한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내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는 증거였다.
근데 어쩌나. 먹힐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인걸.
“아직 새파란 저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장님.”
“앞으로 흉부외과를 책임질 스타 서전과 대화를 나눴는데 나야말로 영광이지.”
강태섭이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서로의 속내를 반쯤 감추고 우리는 헤어졌다.
부대로 복귀하는 도중 자동차가 신호에 멈췄을 때.
나는 키키오톡 휴대폰 메신저를 확인했다. 전화번호를 교환한 탓에 연락처 창에서 강태섭의 상태창을 볼 수 있었다.
강태섭의 상태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석을 발견한 하루]
명백하게 나를 겨냥한 문구에 나는 피식 웃음 터뜨렸다.
여전하구나, 당신은.
* * *
3년의 군의관 생활을 제법 알차게 보냈다고 나는 자부할 수 있었다.
첫째로 대대에 있는 병사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치료에 성의를 다했다.
설령 일과가 끝났더라도 응급환자가 생기면 나는 부대로 달려갔다.
몸과 마음이 아픈 병사들을 대신해 간부들과 싸우는 일도 불사했다.
간부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싸움닭이었다.
외진 나갈 때는 한 명의 병사라도 더 데려가기 위해 항상 내 자동차를 대동했다.
물론 이 모든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군의관으로서의 기본을 지켰을 뿐이었다.
둘째로 나는 자기 계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우선 흉부외과의 대중화를 위해 에세이 작업을 열심히 했다.
난생처음으로 써 본 에세이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감정과 생각들은 정리되지 않은 날 것들이었고.
그 재료들을 가공하는 내 글솜씨 또한 서툴고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경구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괴롭고 방황하는 내 곁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전생과 달리 원숙한 작가가 된 아버지는 등대처럼 내 앞길을 밝혀 주었다.
아버지가 곁에 있었던 덕분에.
아버지의 작가 유전자 반쪽이 내 것이었기에 나는 서서히 글쓰기에 능숙해졌다.
심금을 울리는 글은 아니더라도, 보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울 수는 있는 글은 쓸 수 있게 되었다.
군의관 전역까지 6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나는 백경민을 따로 만났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판막 수술로 백경민은 한참 잘나가고 있었다.
임상 강사로 떠돌던 그는 단숨에 조교수로 치고 올라갔다.
외진이 있던 어느 날.
우리는 평소처럼 순댓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내가 용건을 꺼냈다.
“형,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부탁이 있는 건 괜찮은데, 미안할 건 없어. 내가 네 덕을 조금 많이 봤냐?”
“형이 곤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형 무시하냐? 이래 봬도 요새 잘나가는 몸이야. 과장도 나한테 함부로 못해.”
백경민이 피식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다행이고. 혹시 나 수술 연습할 장소 좀 만들어 줄 수 있어?”
내가 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수술 연습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군의관 생활을 하면서 손 감각이 차차 무뎌지고 있었다.
태극 병원 과장에게 찍힌 이후 나는 수술방에 단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틈틈이 뜨개질을 하고는 있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 손의 감각을 되살리는 일은 무리였다.
외과의에 손에 들려 있어야 하는 것은 뜨개질실이 아니라 봉합사여야 했다.
뜨개질바늘이 아닌 니들홀더와 포셉이어야 했다.
“휴우~ 믿음아.”
내 부탁을 듣고 백경민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수술 환경을 제공받는 건 무리였을까.
“그 정도는 일도 아니지. 나 개인 연구실 따로 있어. 수술 도구 있고 실험용 쥐도 있으니까 거기 사용하면 돼.”
“진짜 써도 돼?”
“얼마든지. 과장한테만 안 걸린다면야.”
백경민의 대답에 나도 한시름을 덜었다.
전역하면 1, 2개월 정도 국내에 머물다가 바로 미국으로 넘어갈 나였다.
그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최상의 손 감각을 되찾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 형, 예뻐 죽겠네.”
“끔찍한 소리 하지 마. 팔뚝에 소름 돋으니까.”
백경민이 바르르 몸을 떨며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실험실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녹슨 솜씨에 윤활유질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쉴 생각을 하는데 너는 일할 생각만 하는구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백경민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군의관 생활도 FM으로 하고 에세이도 쓰고 수술 연습까지 하면 몸이 남아나겠어?”
“하루라도 젊었을 때 열심히 살아야지. 나도 나이 먹으면 이렇게 못해.”
“젊었을 때 너무 열심히 살면 나이 먹고 골병든다?”
“그러면 내 팔자려니 해야지. 별수 있나. 원하는 것을 다 가지면서 살 순 없어.”
나도 잘 안다.
내가 이런저런 분야에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걸.
하지만 전생에서 겪었던, 또한 앞으로도 겪을 비극들을 막기 위해서 나는 잠시도 멈춰 설 수 없었다.
“어쨌거나 형, 땡큐.”
“유어 웰컴.”
순댓국집 회동이 끝난 주의 목요일.
그러니까 두 번째 회진 날에 나는 백경민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백경민의 연구실은 미니 수술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수술에 필요한 도구는 대부분 갖추고 있었다.
환자는 없었지만 환자를 대신할 실험용 쥐도 있었다.
-소모품은 부담 없이 마음대로 써도 돼. 연구비 넉넉하니까.
백경민이 호언장담을 했기에 나는 적당한 수준에서 욕심을 부리며 수술을 연습했다.
실험용 쥐를 마취시키고 심장 수술을 진행했다.
당연하게도 쥐의 혈관은 사람보다 얇았으며 쥐의 심장은 미니어처처럼 작았다.
하지만 피가 뜨겁고 붉으며 심장이 요동친다는 점은 사람과 같았다.
실험용 쥐를 이용해 나는 미세 문합술을 가다듬고 발전시켰다.
서툰 바느질에 터져 나가던 혈관이 어느 순간부터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수부외과.
성형외과의 한 분야로, 절단된 신체의 혈관과 신경을 미세 봉합하는 과목.
전역할 무렵 내 손놀림은 수부외과의 수준만큼 정교해졌다.
쥐의 심장과 혈관을 세심하게 다루다 보니 한 걸음 더 성장하게 된 것이다.
나는 마침내 전생의 내가 넘지 못했던 벽을 뛰어넘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