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제3장 전생과의 차이점(2)
백경민이 3D 프린터 업체에 버럭 소리 지르는 것을 나는 듣고만 있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이번 수술에는 환자의 목숨에 본인의 커리어까지 달렸으니까.
‘정말 이걸로 끝인 걸까?’
나는 의심을 멈추지 못했다.
전생에서 신수술이 실패한 이유는 아마 주문 제작한 판막에 오차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치수가 맞지 않는 판막을 뒤늦게 확인하고 백경민은 허둥지둥했을 테고.
어떻게든 판막을 심장에 욱여넣으려다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과 합병증으로 인해 큰 낭패를 봤으리라.
그런데 왜일까.
판막에 오차를 잡아내고도 내 마음이 개운치 않은 것은.
아직 무언가가 남아 있는 듯 찜찜한 기분은.
“휴, 아직도 분이 안 풀리네.”
통화를 끊은 백경민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업체에서 뭐래?”
“자기네들이 실수를 했단다. 저번 테스트 때 썼던 판막을 그대로 보냈대.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안 되지. 아주 따끔하게 혼내 줬다.”
백경민의 목소리가 차차 냉정해졌다.
그는 오늘 있었던 트러블까지 논문으로 작성하겠다고 했다.
업체도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니 수술 전 모형을 사용해서 판막의 타당성을 교차 검증해야 한다는 논문을 쓰겠다고 했다.
문제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의학도다운 태도가 멋있었다.
이런 인재가 전생에서 한 번의 실수로 묻혔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 미안하고 고맙다.”
“고마운 건 알겠는데, 미안한 건 또 뭐야?”
“솔직히 네가 옆에서 조언을 하는 게 아니라 깐족거린다고 생각했거든. 다 내 수행이 부족한 탓이지.”
백경민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에 나는 별걸 다 신경 쓴다고 대답했다.
사람은 원래 쓴소리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법이었다.
회귀까지 경험한 나조차 그랬다.
“그건 그렇고… 설마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퉁치려는 건 아니겠지?”
“뭘 원해? 형아가 소고기라도 푸짐하게 사 줄까?”
“소고기보다 더 좋은 게 생각났어.”
“말씀만 하셔요. 세상에 없는 것 빼고는 다 사 드릴 테니까.”
나는 차분하게 숨을 고르고 원하는 것을 말했다.
“형만 괜찮으면 이번 신수술에 어시스트로 들어가고 싶어.”
내 제안에 백경민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하긴, 꿈에도 예상 못했던 대답이었겠지.
“농담이지?”
“아니, 100퍼센트 진심.”
나는 다시 한번 어시스트 합류를 천명했다.
전생에 실패했던 수술을 성공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것은 내가 수술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리라.
전생과 이번 생, 즉 두 번의 삶을 살면서 축적한 의료지식과 의과외로서의 감각.
심장을 물론이요, 폐·식도 파트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전문성.
회귀라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나는 전대미문의 흉부외과의가 되었다.
판막의 오차를 확인한 지금 시점에서 내가 합류한다면?
수술은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가 없었다.
“야, 네가 그러면 내가 너무 염치없어 보이잖아. 계속 도움만 받고.”
“딱히 형을 위한 건 아니야. 의무대에만 있으니까 손이 녹스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
“에라 모르겠다. 같이하자. 나야 네가 있으면 말할 것도 없이 든든하지.”
“이모네 순댓국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알고 지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 둘은 친형제처럼 편하게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1년을 만나도 처음 만난 것처럼 어색한 사람이 있고.
일주일을 만나도 1년을 만난 것처럼 친숙한 사람이 있다는 걸.
대화를 마친 우리는 그 길로 병원을 나와 단골 순댓국집을 찾았다.
국물이 뽀얀 뚝배기 한 그릇을 비웠더니 속이 따뜻해졌다. 영혼까지 따뜻해진 기분이었다.
신수술은 아마 무사히 잘 끝날 것이다.
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낙관적인 감상에 빠졌다.
* * *
“단결!”
“단결! 지대장님 오셨습니까?”
의무대에 들어서자 의무병들의 인사가 쏟아졌다.
군의관 생활을 한 지도 벌써 4, 5개월이 지나가는데 저 요란한 인사는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지대장실로 들어갔다.
막 대대장에게 보고를 하고 온 길이었다.
오늘은 병원 용무가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혹시라도 응급 환자가 생기면 어떻게 하고?”
대대장의 질문에 질책하는 기색은 없었다. 단순히 내 대처가 궁금한 것처럼 보였다.
“2, 3지대장에게 부탁을 해 놨습니다. 환자가 심상치 않으면 전화 진료도 하고 직접 후송도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됐어.”
대대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2, 3지대장과 통화한 것은 어제 일과 시간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사정을 말하고 진료를 부탁했으며 두 사람 다 흔쾌히 허락했다.
다만 통화 도중 쓴소리는 한번 들어야 했다.
-지대장님 너무 일을 만들어서 하는 거 아니에요? 왜 굳이 국군 병원 의사가 하는 수술에 어시스트를 서요?
특히 3지대장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글쎄요. 저도 모르게 수술실이 그리웠나 보죠.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을 한다고 한들 그가 나를 이해할 것 같지 않아서.
때로는 서로의 차이를 좁히는 것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편할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지대장실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팔다리를 대자로 펼친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잠을 충분히 잔 덕분에 컨디션이 좋았다.
내 머릿속은 1급수 하천처럼 맑아 송어가 뛰어놀아도 될 정도였다.
맑고 또렷한 의식으로 나는 오늘 있을 수술을 천장에 그려 보았다.
수술 중에 벌어질 최상의 상황도 떠올리고, 최악의 상황도 떠올려 보았다.
1시간 정도 머릿속으로 집도를 해 보니 마음 무장이 단단히 됐다.
수술실에 들어갈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나는 승용차를 타고 국군 태극 병원으로 향했다.
평일 오전.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경기 외곽 지역의 도로는 한산했다.
자동차는 막힘없이 달렸다.
그런데 운전을 하는 도중 맞은편에서 오는 대형 트럭이 갑자기 비틀거리다가 내 쪽을 향해 돌진하는 일… 따위도 물론 없었다.
트럭 사고는 전생에서 한 번 겪은 것으로 족했다.
무사히 병원에 도착한 나는 흉부외과 병동 회의실로 들어갔다.
오늘 수술에 참여하는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도의인 백경민이 진행하는 브리핑을 들었다.
신수술에 참전하는 영광의 용사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집도의 백경민.
제1어시스트 나.
제2어시스트 치프 레지던트 배성재.
제3어시스트 3년 차 이종범.
제4어시스트 2년 차 권용국.
브리핑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백경민은 평소 좋아하던 농담 한 번 섞지 않은 채 건조한 목소리로 수술 과정을 읊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점이 불안했다.
백경민의 경직된 모습에서 백경민이 긴장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형, 참관 수술은 처음이지?”
브리핑이 끝나갈 때쯤 내가 물었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알고 자시고 할 게 있나. 한눈에 훤히 보이는데. 형뿐만 아니라 이 친구들도 잔뜩 얼어 있어.”
“얼어 있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야. 오히려 마음을 너무 풀어놓는 게 더 문제지.”
“그냥 그렇다는 거지, 뭐.”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든 처음 할 때는 긴장하는 게 당연한 법이었다.
나도 처음 참관 수술을 할 때는 잔뜩 긴장하고 얼어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는 뭘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 수술의 특성이었다.
전생에서 이번 수술은 실패했다. 큰 상처를 입은 백경민은 은둔하듯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스태프들이 긴장한 것조차 위험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브리핑 끝났으면 다 같이 스트레칭이나 한번 하고 가자.”
“갑자기 웬 스트레칭?”
“수술도 몸 쓰는 일인데 미리 풀어 두면 좋잖아.”
나는 스태프들의 긴장을 완화하고 몸도 풀 겸 앞장서서 스트레칭을 했다.
백경민이 마지못해 나를 따라 하자 레지던트들도 그 뒤를 따랐다.
스트레칭 동작 중에는 우스꽝스러운 동작도 있었기에 몸을 풀던 레지던트들은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다 내가 의도한 바였다.
드르르륵.
스트레칭이 끝나기 무섭게 한 중년 사내가 회의실로 난입했다.
백경민과 레지던트들이 사내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인사까지 들어 보니 사내는 흉부외과 과장이었다.
40대가 넘어가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옳다면 말이다.
태극 병원 흉부외과 과장의 얼굴은 욕심이 많은 상이었다.
동물로 치면 멧돼지를 닮기도 했고.
“경민아, 수술 준비는 잘 끝냈니?”
“네, 별문제 없습니다.”
“하긴, 너야 평소부터 워낙 딱 부러진 녀석이니까.”
과장이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경민이 수술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이믿음 선생님 맞죠?”
“아, 네.”
“총상 환자 때 선생님 덕을 많이 봤는데,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과장이 다가와 본인의 손으로 내 두 손을 감싸 쥐었다.
더불어 대대 군의관은 국군 병원에서 수술을 못하는데 자기가 힘을 쓴 것이라며 생색을 내기도 했다.
과장이 떠난 후 나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서 백경민에게 물었다.
“신수술을 참관 수술로 진행하라고 부추긴 사람, 저 사람 맞지?”
“오늘따라 유독 족집게다, 너?”
백경민이 나를 치켜세웠으나 내 기분은 언짢기만 했다.
백경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인간이 바로 저 과장 놈이었기 때문이다.
참관 수술이란 비슷한 케이스 수술을 서너 건은 집도한 후에야 진행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야 수술이 손에 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 많은 과장은 그 짧은 기간조차 기다리지 못해 백경민을 독촉했으리라.
자기 밑에 있는 의사가 신수술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고 싶어서.
만약 전생의 수술이 참관 수술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수술이 실패한다고 해도 백경민은 상처를 덜 받았을 것이다.
그 상처를 이겨 내고 끝내 신수술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백경민을 망가뜨린 최종 원흉은 과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할 말은 많았으나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은 수술 전이었다.
과장을 비판하면서 백경민과 레지던트들의 정신을 혼란하게 만들 수 없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고 그러냐? 긴장하지 말라고 한 건 너잖아.”
“이유는 수술 끝나면 설명해 줄게.”
브리핑과 스트레칭까지 마친 우리는 곧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벅. 벅. 벅.
개수대에 서서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하고 수술가운과 장갑과 수술모 등을 착용했다.
수술을 준비하면서 과장을 향한 분노와 적개심은 서서히 사그라졌다.
아니, 가슴 한편에 일시적으로 묻어 뒀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지이이잉.
수술방 문이 열리면서 소독약 냄새가 훅, 하고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수술방 안으로 들어갔다.
전생에서 이 자리에 없던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하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