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제2장 신 수술(5)
“별 이상은 없네요?”
정형외과 외래 의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검사를 했으나 그 어떤 검사에서도 원인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흉부 및 요추, 경추 엑스레이, 피 검사, 심전도, 복부 초음파 등등.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외래 의사가 성심껏 진료를 봐준 편이었다.
2지대장이 외래 의사였다면 엑스레이 몇 장 찍고 말았을 테니까.
슬쩍 문용호를 쳐다보니 녀석은 고개를 떨어트린 채였다.
무릎 위에 올라온 주먹은 단단하게 쥐어져 있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에 문용호는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자대 배치받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유격 훈련을 뛰고 또 갑자기 무릎을 다치다 보니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신경 좀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장장 3시간에 걸친 진료의 마침표가 찍혔다.
우리 세 사람은 일주일치 진통제만 잔뜩 처방받아서 부대에 복귀해야 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상심한 문용호를 달랬다.
난 네가 꾀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쉽지는 않겠지만 함께 병인을 찾아보자고 했다.
내 위로에 참았던 설움이 터졌는지 문용호는 꺽꺽 울었다.
지대장님, 저 진짜 꾀병 아닙니다.
아플 때는 진짜 아픈데 안 아플 때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정말 답답합니다.
문용호의 목소리는 울음으로 떨렸다.
군대에서 아픈 것도 서러운데 심지어 꾀병 환자 취급을 받으면 얼마나 참담한 기분일까.
나는 문용호가 느끼고 있을 몸과 마음의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외래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 하죠?”
의무대 막사로 돌아가자 2지대장이 빈정거리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거봐요, 제 말 들었으면 헛고생 안 해도 됐잖아요. 우리 대대 소속이었으면 넌… 아휴.”
“분명 그만하라고 했어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내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노려보자 2지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꾀병 환자에게 휘둘리는 어리석은 군의관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으으으윽!”
막사에 도착하자 전신 통증이 재발한 모양이었다.
들것에 누운 문용호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내가 문용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잘 다독여서 진통제를 먹이는 일뿐이었다.
“병인을 밝힐 때까지 내가 곁에 있어 주마. 같이 잘 이겨 내 보는 거야.”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문용호 앞에서 맹세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기를 소망하면서.
* * *
4박 5일로 진행된 유격 훈련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크고 작은 부상과 응급 상황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전부 의무대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혹시 훈련 중에 병사가 사망하면 어떻게 하지?
훈련 전 나를 사로잡았던 걱정은 기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대 병력들이 의무대로 복귀한 다음 날부터 의무대는 살짝 바빠졌다.
복귀 행군을 하는 도중 발을 다친 병사가 많아서였다. 대부분 길고 고된 행군으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병사들이었다.
개중에는 500원짜리 두 개를 붙여 놓은 크기의 물집을 가진 병사도 있었다.
물집 치료에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의무병들은 자신들이 마냥 맹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알아서 척척 처치했다.
소독한 바늘로 물집을 터뜨리고, 주변부를 소독하고, 그 위에 거즈를 붙여 주었다.
대대에 복귀한 후 나는 문용호의 병인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문용호가 꾀병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기를 썼다.
정형외과 전공 동기에게 자문을 구해 보고 정형외과 관련 논문도 뒤져 봤다.
그 결과 깨달은 사실.
노력은 결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적어도 이번 문용호 케이스에 한에서는.
내 노력은 매번 배신을 당했다.
열흘 넘게 눈이 빨개지도록 자료를 찾아 헤매도 내 손은 늘 빈손이었다.
그쯤에서는 문용호의 무릎 골절도 다 나았다.
왼쪽 다리에 한 깁스가 풀리고 문용호는 평범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무릎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통증도 사라질 거라는 내 마지막 바람은 철저하게 무너져 내렸다.
문용호는 여전히 원인 불명의 전신 통증에 시달렸다.
“아프면 언제든지 의무대로 와.”
내 지시에 따라 문용호는 일과 중에도 자주 의무대를 찾았다.
그러니 문용호의 선임과 소대원들 사이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이 새끼, 무릎 골절로 유격 훈련 째더니 이젠 군 생활을 통째로 째려고 하네?
-군 생활은 문용호처럼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양심 없는 새끼. 어디서 저딴 게 우리 소대에 굴러와 가지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날카로운 비난과 악담에 문용호는 상처를 입었다.
그런 문용호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의무대가 유일했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나는 문용호의 방패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하루는 문용호의 부소대장 하사 허구현이 나를 찾아와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지대장님, 용호를 너무 감싸 주시는 거 아닙니까? 저러다가 제 버릇만 나빠집니다.”
“아픈 건 버릇이 아니라 상태죠. 병인을 찾기 전까지는 지켜봐야 해요.”
“검사를 해도 나오는 게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사실상…….”
허구현이 하려던 말을 삼켰다.
삼켰던 말은 아마 꾀병이었을 것이다.
“제가 지켜본 바로 용호는 진짜 아픕니다. 연기자도 저런 식으로 아픈 연기를 할 수는 없어요.”
“아프면 원인이 있을 테고, 원인이 있으면 의학으로 밝혀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세상에는 아직 밝혀내지 못한 질환도, 아직 치료하지 못하는 질환도 많아요.”
“지금 소대원들 불만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부디 제 입장도 좀 생각해 주세요.”
허구현의 하소연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문용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과 별개로 허구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문용호가 일과 시간 중 자유롭게 의무대를 방문한다면 다른 소대원들의 사기에 악영향이 가긴 할 것이다.
누군들 쉬고 쉽지 않을까.
나는 고민 끝에 문용호를 의무대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하루 일과와 일과 후.
즉, 문용호가 모든 시간을 의무대 침상에서 보내도록 만들기로 했다.
소대원들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문용호가 차라리 안 보이는 게 나을 테니까.
문용호 입장에서도 소대원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고.
“차라리 그게 낫겠습니다. 하지만 용호를 마냥 의무대에 둘 수만은 없고, 그건 지대장님도 충분히 아실 겁니다.”
“네, 너무나 잘 알죠.”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 * *
노력은 결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노력을 배신하지 않으니 노력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문용호는 소리 없이 죽어 가고, 소대원들의 불만은 정점으로 치솟던 어느 날.
나는 천신만고 끝에 문용호의 병인을 밝혀냈다.
그때의 쾌감이란 전생에서 신수술을 개발했을 때와 이번 생에서 아파트를 구입하고 사랑이와 만났을 때의 쾌감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모든 위대한 결과가 사소한 시도에서 비롯되듯.
나 역시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발단은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인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던 일이었다.
문용호가 너무 힘들어하니 통증을 줄여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알아보려고 동기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그 친구 혹시 CRPS(복합 통증 증후군) 아니야?”
내 사정을 듣던 동기가 대뜸 CRPS를 의심했다.
CRPS(복합 통증 증후군).
다양한 원인으로 문제가 발생한 신경계통.
이 신경계가 육체에 끊임없이 통증 신호를 보내는 희귀 질환이 바로 CRPS였다.
하지만 나는 동기의 CRPS 진단에 조금 회의적이었다.
“무릎을 다친 거랑 CRPS랑 무슨 상관인데?”
-원래 CRPS는 외상 이후에 많이 생겨.”
“이상하네. 군 병원 정형외과랑 민간 정형외과에서는 CRPS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했단 말이지.”
내가 의문을 품자 동기가 다시 설명에 나섰다.
환자가 이등병인데다가 검사 결과가 다 정상이라서 의사들이 꾀병이라고 편견을 가진 것 같다.
또한 CRPS라는 질환은 아직 그 케이스가 많지 않으며 잘 알려지지도 않아 의사라도 의심하기 힘들다는 점을 언급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설명이었다.
솔직히 전생이나 이번 생이나 흉부외과에만 매진했던 내가 동기보다 CRPS를 더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럼 너만 믿고 환자 보낸다?”
-그럼요. 얼마든지.”
동기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동기와 연락을 취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포상 휴가증으로 문용호가 바깥에서 진료를 받게 했다.
물론 그 과정은 역경으로 가득했다.
의무대에서 하루 종일 놀고먹는 새끼가 휴가는 무슨 휴가냐.
휴가 갔다 오면 군기가 더 빠져서 민간인이 되지 않겠냐 등등.
부소대장의 입김이 발휘되면서 문용호의 휴가가 한 차례 잘리는 위기 상황이 있었다.
이에 나는 부소대장을 찾아가 직접 설득에 나섰다. 문용호를, 아니 나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믿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이번에 용호가 휴가 나가서 아무런 진단도 못 받아 오면 용호를 소대에 복귀시키는 걸로. 어떻습니까?”
내 제안을 부소대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본인이 이번 제안에서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다행히도 승리의 여신은 내 편이었다.
신원대학교 서울 본원 마취통증의학과에서 문용호는 결국 CRPS 확진을 받았다.
엑스레이, 골 스캔, 근전도 검사, 신경전도 검사 등등.
이전에 받지 못했던, CRPS를 가려내기 위해 펼친 전문적인 검사는 문용호의 손을 들어 주었다.
확진을 받던 날 문용호는 내게 전화를 했다.
-지대장님, 저 CRPS라는 희귀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문용호의 목소리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꾀병이라는 누명을 쓰고 소대원들에게 손가락질당하던 설움.
자신의 아픔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기쁨 등등.
곁에서 문용호를 지켜봤던 나는 문용호의 감정을 쉽게 공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금방 눈시울이 붉어지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다 지대장님이 저를 믿어 주신 덕분입니다. 지대장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벌써 목숨을 끊었을 겁니다.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소름 돋으니까. 병원 쪽에서 치료는 어떻게 하겠대?”
-네, 운 좋게 증상이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도중이라고 했습니다. 치료를 잘 받으면 완치도 가능할 거라고 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주치의하고 이야기 잘해서 의병제대 할 수 있으면 해. 훈련 중에 다친 거니까 배상도 받고.”
-네, 지대장님.
문용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이라서 소송을 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휴가가 끝난 후 문용호는 금의환향 아닌 금의환향을 했다.
가져온 진단서로 부소대장과 소대원들의 입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제야 한시름 덜었다.
꾀병 환자도 못 알아보는 멍청한 군의관 신세를 탈피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5개월이 더 지났고.
문용호는 의병제대를 통해 사회로 나갔고, 나는 부대에 남았다.
올해는 고난의 해인 걸까.
그때쯤 나는 새로운 숙제를 하나 더 떠맡게 되었다.
흉부외과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숙제는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