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제2장 신 수술(4)
나는 병사가 하늘을 보고 똑바로 눕도록 만들었다.
병사의 얼굴은 땀에 전 채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부상으로 인한 고통으로 이마가 구겨져 있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나는 병사에게 물었다.
병사는 힘겹게 검지로 왼쪽 무릎을 가리켰다.
통나무를 건너다가 넘어지던 도중 무릎부터 바닥에 충돌한 모양이었다.
“구급함 줘 봐.”
나는 의무병이 허리에 둘러매고 있던 구급함을 받아 처치 도구를 꺼냈다.
당장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건 붕대와 부목 정도였다.
병사의 무릎 뒤에 부목을 대고 나는 붕대를 칭칭 감았다. 무릎의 움직임을 제한해 추가적인 부상을 막는 처치였다.
하지만 응급 처치를 끝내고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병사의 무릎을 만져 보니 뜨끈한 열감과 땡땡한 붓기가 느껴졌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사단 의무대나 태극 병원에 가 봐야 할 듯싶었다.
병사는 들것에 실려 의무대 막사에 도착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지대장이 정형외과 전공이었다.
2지대장은 병사에게 문진을 실시하고 무릎 관절의 운동성을 평가했다.
“으음… 단순 골절 정도로 보이는데?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아니, 오히려 잘된 걸지도 모르지. 넌 이제 훈련 열외니까.”
2지대장이 병사에게 말했다.
병사의 무릎 보상이 오히려 병사에게는 호재가 될 거라는 식이었다.
딴에는 농담으로 한 건지도 몰라도 그의 화법이 내게는 성급하고 무례하게 느껴졌다.
병사는 여전히 괴로워했으며.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않았으므로 제대로 된 진단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농담을 할 거면 최소한 병사가 호전되거나 확실한 진단을 받았을 때 해야 했다.
우리 대대 소속 병사가 다쳤으므로 우리 의무병과 내가 병사를 사단 의무대로 이송시켰다.
무릎 엑스레이 촬영 후 병사는 왼쪽 무릎 골절 진단을 받았다.
전방 십자 인대 파열까지도 걱정했던 내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결과였다.
“푹 쉬고 일주일 있다가 다시 와.”
응급의학의는 병사의 왼쪽 발을 통깁스 처리하고 소염진통제를 처방했다.
“죄송합니다, 지대장님. 괜히 제가 호들갑을 떨어서…….”
응급실을 나오면서 병사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미안했다.
아프면 주변 사람에게 미안한 곳.
그렇다고 아픔을 참으면 내 몸만 탈이 나는 곳.
양쪽 어느 장단에도 맞추기 힘든, 군대는 그런 곳이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아픈 게 왜 호들갑이야?”
“그래도 골절 정도면 별거 아닌 것 같습니다.”
“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골절이 별 게 아니니? 뼈가 부러졌으면 충분히 큰일이지.”
내 지적에 병사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파릇파릇한 이등병이라서 그런지 주변 눈치를 특히 더 많이 보는 것 같았다.
치료가 끝난 후 의무대 막사로 복귀했다.
유격 코스 훈련이 시작되면서 하나둘 부상자가 터져 나왔다.
사단 의무대로 출발하기 전만 해도 한산했던 의무대 막사는 제법 활기를 띠었다.
의무병들은 팔다리가 긁히거나 까진 병사들에게 소독을 하고 밴드를 붙여 주었다.
지대장들도 휴대폰 대신 환자를 보고 있었다.
“눈치 보지 말고 푹 쉬어. 너희 소대장에게는 내가 잘 말해 줄 테니까. 아프건 죄가 아니야.”
“네, 지대장님. 감사합니다.”
무릎을 다친 병사가 의무대 침상 한 자리를 차지하며 말했다.
* * *
확실히 유격 훈련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대대 의무대에서 근무할 때는 많아야 하루에 열 명 정도 진료를 보곤 했다.
그런데 훈련장에 오니 진료를 원하는 병사들의 숫자가 다섯 배로 늘었다.
병사들이 의무대를 찾아오는 시간 또한 들쑥날쑥했는데, 새벽 시간에 환자가 찾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개중에는 열사병으로 쓰러진 병사도.
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병사도.
팔이 부러진 병사도 있었다.
그런 병사들을 치료하는 내 마음은 무거웠다.
아픈 병사들은 다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자 형, 동생이었으니까.
언젠가 유격 훈련을 받게 될 사랑이가 미리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3일이 지나고.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터진 날은 훈련장에서 진료 보는 일에 슬슬 이골이 나기 시작한 3일 차였다.
그 주인공은 무릎 골절로 의무대에 머물고 있던 문용호였다.
“지대장님, 온몸이 너무 쑤시십니다. 누군가가 막 칼로 찌르는 것 같습니다.”
3일 차 오전 문용호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내게 고통을 호소했다.
어안이 벙벙했던 나는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해 눈만 깜빡거렸다.
문용호의 호소가 다소 뜬금없이 들렸다.
문용호는 단순 무릎 골절 환자였다. 온몸이 칼에 난자당하는 고통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언제부터 아팠는데?”
“어제저녁부터 아팠습니다. 그때는 참을 만했는데 오늘은…….”
문용호는 괴로워하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놀란 감정을 추스르며 문용호의 상의부터 벗겨 보았다.
현재로서 가장 의심되는 질환은 대상포진이었다.
힘든 행군과 골절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졌다면 대상포진에 걸릴 만했다.
문용호가 언급한 통증의 형태도 대상포진과 매우 흡사했고.
하지만 문용호의 배와 가슴, 등허리를 꼼꼼하게 살폈음에도 대상포진의 근거인 수포는 찾을 수 없었다.
문용호의 피부는 맨들맨들하기만 했다.
“진통제 처방해 줄 테니까 조금만 더 참아 볼래? 미안한데 지금 당장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네, 지대장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
문용호가 대상포진일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대상포진에 걸렸다고 해서 신경절을 따라 띠를 두르며 나타나는 수포가 하루아침에 생기지는 않았다.
대게는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고 몇 시간 또는 며칠이 지나야 수포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다음 날 오전까지도 문용호의 상반신에서 수포를 찾을 수는 없었다.
문용호는 진통제를 먹고도 여전히 통증을 호소했다.
심장과 폐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제한된 상황.
나는 답답한 마음에 2지대장에게 문용호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누가 칼로 온몸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뭔 소리야? 너 무릎 골절 환자잖아?”
2지대장은 문용호의 통깁스를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정형외과의인 그도 문용호의 증상을 납득 못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아파하는 문용호를 위해 잠깐 대화에 껴들었다. 문용호가 언제부터 괴로워했고, 내가 어떤 처방을 내렸는지를.
또 내가 문용호를 대상포진으로 의심했었다는 사실까지.
“저도 대상포진 말고 떠오르는 게 없는데요? 너 혹시 넘어졌을 때 바닥에 가슴 쪽도 부딪쳤니?”
“부딪치긴 했는데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사단 의무대에서 가슴 엑스레이까지 찍었는데 별 이상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럴 리가 없는데?”
2지대장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었다.
그가 해결책을 발견한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기대를 해 봤다.
문용호는 왜 전신에 끔찍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 걸까.
“에라이, 얍삽한 자식아.”
2지대장은 불쑥 문용호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문용호는 졸지에 머리를 얻어맞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가 짓고 있는 표정도 아마 문용호와 비슷했을 것이다.
“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골절로 꿀 빨아 보니까 달달하지? 그렇다고 없는 꾀병을 만드냐, 너 많이 악질이다?”
“아닙니다, 지대장님. 저 진짜 아픕니다!”
“아까까지는 아파하다가 지금은 또 왜 멀쩡한데?”
“지금은… 이상하게… 괜찮아졌습니다.”
수세에 몰린 문용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러자 2지대장이 보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지 혼자 아팠다가 말았다가 하는 거 보셨죠? 지대장님이 너무 오냐오냐하시니까 이 친구가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
“병사를 성심성의껏 봐주는 건 좋은데 병사에게 이용당하시면 안 되죠.”
“그러니까 용호가 꾀병을 부린다는 이야기입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죠. 두 눈으로 보고 계시잖아요.”
“억울합니다, 지대장님. 전 정말 아픕니다.”
문용호를 꾀병으로 취급하는 2지대장.
자신의 답답함을 호소하는 문용호 사이에서 나는 심각하게 갈등했다.
2지대장의 주장도 나름 일리는 있었던 게 무릎 골절과 전신 통증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찰흙과 인간의 연관성을 찾는 게 더 쉽고 빠를 지경이었다.
문용호의 통증이 간헐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도 미심쩍다면 미심쩍게 볼 수 있었고.
하지만 말이다.
문용호가 마냥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아플 때의 문용호는 정말 아파 보였다.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으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설령 연기자라도 그런 연기는 소화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 두 사람은 내 판단을 독촉하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할 차례였다.
“일단… 국군 태극 병원에 가 봐야겠네요. 큰 병원에서 진찰받고 검사하면 뭐라도 나오겠죠.”
나는 결국 문용호의 손을 들어 주었다.
문용호가 환자라면 마땅한 치료를 받아야 할 테고.
설령 꾀병 환자라도 마음의 치료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대장님!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그러면 안 된다니까요?”
2지대장은 내 결정을 극구 만류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커졌고, 두 뺨은 붉게 물들었다.
“그게 저 얌체 같은 놈의 계획이에요. 자꾸 병원 돌면서 군 생활을 날로 먹으려는 거죠. 제 눈에는 빤히 보이는데 지대장님 눈에는 안 보여요?”
2지대장은 답답하다는 듯 급기야 본인 가슴을 두드렸다.
“다짜고짜 꾀병 취급하는 건 너무 가혹합니다. 일단 제대로 된 검사는 받게 해야죠.”
“온몸이 아프다는데 어느 부위에 무슨 검사를 하실 건데요?”
“가정의학의와 상의를 해 봐야죠. 그리고 병인을 모르니까 검사도 하고 진료도 받는 거 아닙니까? 너무 삐딱하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정확히 말하면 제가 삐딱한 게 아니고 저 친구가 삐딱한 거예요. 뭐, 지대장님 대대 소속 병사니까 지대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2지대장과 날 선 언쟁을 마치고 나니 문용호가 다시 고통을 호소했다.
문용호는 몸을 파르르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일관성 있게 온몸이 칼에 찔리는 것처럼 아프다고 말했다.
저게 연기라는 사실을 나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참나,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의심받고 병원 간다니까 또 아프다네.”
“2지대장님, 적당히 하세요. 계속 빈정거리면 저도 참지 않습니다.”
“네, 네. 다행히 저도 더 이상 할 말은 없네요.”
나는 강진수와 문용호를 내 승용차 뒷좌석에 태우고 곧바로 국군 태극 병원을 찾았다.
첫 진료부터 난관이었다.
문용호의 증상을 들어 본 가정의학의도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 역시 대상포진을 의심했다가 대상포진이 아님을 확인했던 것이다.
가정의학의가 연결해 준 진료 과목은 결국 정형외과였다.
어쨌거나 모든 통증의 발단은 무릎 골절에서 시작되었으니까.
정형외과의에게 진료를 받고 각종 검사를 촬영한 후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나는 문용호를 예의주시했다.
놀랍게도 병원에 도착한 후 문용호는 다시 멀쩡해졌다.
마치 통증 스위치를 본인이 눌렀다가 뗄 수 있는 것처럼.
2지대장의 조언이 귓가를 맴돌면서 문용호를 향한 의심이 싹텄지만 나는 그 싹을 단번에 잘라 버렸다.
문용호를 끝까지 믿기로 결심했다. 열 명의 꾀병 환자가 있더라도 한 명의 진짜 환자를 놓쳐서는 안 될 테니.
“문용호 환자,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호출에 내가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