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제1장 푸른 거탑(4)
이믿음의 글은 이신우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산만하고 어수선했다.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다 보니.
또 한 편의 글에 너무 많은 것을 쑤셔 넣으려다 보니 글이 대체적으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예상 밖의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산만한 와중에도 번뜩이는 문장이 한두 개씩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울타리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앞을 막는 장해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환자를 끔찍하게 아끼는 보호자를 지켜보면서 나온 문장이었다.
-두려움은 미래에서 오는 감정이다. 하지만 미래는 평생 현재에 닿을 수 없으므로 두려움은 허상이다.
이것은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나온 문장이었다.
이믿음은 자신이 느낀 감정과 생각을 생생하게 건져 낼 줄 아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재능의 영역이었다.
글 쓰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통찰과 문장은 구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이신우는 인쇄물에서 눈을 떼고 슬쩍 이믿음을 훔쳐보았다.
이믿음은 오매불망 그의 평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아들.”
“네, 아버지.”
“솔직히 본인 글, 잘 썼다고 생각하지?”
“으음… 솔직히 그래요. 이만하면 처음 쓴 것치고는 괜찮지 않나요?”
이믿음은 조금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당연히 그럴 거야. 원래 글이라는 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취해야 잘 나오거든.”
이신우는 글 쓸 당시 이믿음의 심리를 꿰뚫어 보며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취한 상태에서 보는 세상은 온전한 게 아니란다. 사실과 달리 많이 왜곡되어 있지.”
“제 글이 많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죠?”
“그래, 고쳐야 할 점이 많이 보이는구나.”
이신우는 이믿음의 글이 가진 잠재력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이믿음의 글에서 부족한 부분만을 얄밉게 꼬집기 시작했다.
물론 이믿음에게 억하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믿음은 그의 소중한 아들이었고, 가난했던 시절 복을 몰고 온 복덩이였으니까.
다만 이신우는 궁금했다.
자신의 따끔한 질책에 이믿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신우는 30분 가까이 이믿음의 글을 신랄하게 깐 후 이믿음에게 물었다.
“아버지 조언이 너무 야박하게 들리니?”
“아니요, 전혀.”
그의 예상과 달리 이믿음은 끄떡도 없었다.
자기 글이 부정당하면 자기 자식이 욕먹고 돌아온 것처럼 분개하는 게 작가라는 족속인데 말이다.
“이유가 뭐니?”
“아버지 말이 맞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그런 부분이야 앞으로 고쳐 나가면 되니까요.”
“그래서 앞으로 계속 글을 쓰겠다?”
“당연하죠. 어떻게든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이믿음의 되물음에 이신우는 껄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신우가 듣고 싶은 대답이었고, 이신우가 보고 싶은 태도였다.
사실 글을 쓰는 데 중요한 것은 재능도, 지식도, 감수성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단지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 불같은 욕망을 꺼트리지 않고 오래오래 보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믿음은 그 뜨거운 욕망을 충분히 가졌으며 욕망을 보관할 아궁이도 가진 듯했다.
한마디로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큰아들 글에는 장점도 많아. 아버지가 의지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일부러 안 좋은 소리만 했단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 쓴소리도 못 견디면 앞으로 글을 계속 못 쓸 거라고 생각하셨다는 것도요.”
“녀석, 벌써 아버지 머리 꼭대기 위에 있었구나.”
“감히 머리까지는 아니고 어깨쯤 아닐까요?
부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본격적인 글쓰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 * *
아버지가 구체적으로 에세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아버지의 말이 다 옳았기 때문이다.
과연 소설가라는 직업은 화투로 딴 것이 아니었다.
단어와 문장과 문맥을 바라보는 깊이가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 아버지는 내가 에세이를 쓸 당시의 심리 상태까지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용한 무당을 마주한 것처럼 신통방통할 따름이었다.
흉부외과 수술은 교수급으로 펼치는 나였지만 에세이에 관해서는 의대생 수준이었기에 나는 아버지의 말을 뼈마디에 새겼다.
기존 에세이를 정갈하게 다듬고, 다음 에세이는 더 정교하게 쓰고 싶은 욕망에 불탔다.
띠리리리~
아버지의 강의에 흠뻑 젖어 가던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집중력을 깨트렸다.
방해꾼의 등장이 성가셨으나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 잠시만요.”
나는 방으로 이동해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번호를 보니 의무병이 건 전화였다.
“무슨 일이니?”
-단결! 일병 강진수입니다. 지대장님, 혹시 통화 괜찮으십니까?
“어, 괜찮아.”
-방금 의무대에 환자가 한 명 들어왔습니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다가 가슴을 다쳤다는데 숨 쉬는 게 조금 불편하다고 합니다.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강진수의 목소리가 차분한 것을 보아 환자의 상태는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환자가 중증이라면 아마 호들갑을 떨며 보고 했을 테니까.
대수롭지 않다면 대충 진통제 처방 정도만 내릴까.
아버지께 에세이 교육을 더 받고 싶은데.
나는 그런 유혹에 잠시 빠졌다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건 내가 혐오하는 부류의 군의관들이 치료하는 방식이었다. 그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내려가서는 안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가슴을 어떻게 다쳤대?”
-그냥 욱씬거리다고만 했습니다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아니, 그냥 환자를 바꿔 줘. 그게 더 빠르겠다.”
-알겠습니다, 지대장님.
잠시 후 굵은 목소리가 귓가에 퍼졌다.
-단결! 병장 하태곤입니다. 전화 바꿨습니다.
“그래, 가슴을 다쳤다고?”
나는 하태곤이 가슴을 다친 경위와 증상을 구체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내 이마의 주름도 같이 길어졌다.
지금으로부터 10분 전, 하태곤은 체육관에서 벤치 프레스를 드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게 욕심을 부리다가 프레스 봉에 가슴이 깔렸다고 했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으나 주변의 도움으로 죽을 위기는 모면했다고 했다.
-가슴이 살짝 뻐근하고 숨 쉴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으로서는 갈비뼈 골절이 가장 의심스러운데… 일단 의무대에 있어 봐. 내가 지금 부대로 복귀할 테니까.”
-아닙니다. 저 때문에 괜히 오실 필요 없습니다. 갈비뼈 골절은 관리만 잘하면 알아서 낫는 것 아닙니까?
“어쭈, 너 나 대신 군의관 할래?”
-저…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너무 죄송해서…….
“정 죄송하고 싶으면 네 갈비뼈에 해. 너 때문에 네 갈비뼈가 부러졌으니까.
나는 통화를 끊고 거실로 돌아가 아버지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너그럽게 이해 주셨다.
그 길로 나는 차를 끌고 쏜살같이 부대로 달렸다.
솔직히 갈비뼈 골절이 부대로 복귀할 만한 외상은 아니었다.
진통제 처방을 내리고 주말 동안 상태를 지켜보다가 외진을 내보내서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도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안일한 판단이었다.
내 몸이 편한 판단이었다.
의사의 판단이란 자고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몰아붙여야 하는 것이었다.
의사가 힘들어야 환자가 편해지니까.
얼마 후 내 판단은 지극히 현명하고 옳았던 것으로 판명 났다.
만약 내가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다면 하태곤은 부대에서 죽었을 것이다.
* * *
“단결!”
“단결!”
의무대 생활관으로 들어가자 활동복 차림의 의무병들이 경례를 쏟아 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고 생활관을 훑었다.
하태곤은 환자가 사용하는 관물대에 등을 기댄 채 TV를 보고 있었다.
녀석도 뒤늦게 나를 알아보고 경례를 붙였다. 하태곤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순박한 눈동자를 가진 병사였다.
“지대장님, 오셨습니까?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주말에 부대를 오시고…….”
“그만 죄송해도 된다니까. 몸은 좀 어떠니?”
“처음하고 비슷합니다. 가슴이 아프고 숨쉬기도 힘듭니다.”
“아픈 부위를 손으로 가리켜 봐.”
“이쪽입니다.”
하태곤이 검지로 가리킨 곳은 공교롭게도 심장 쪽이었다.
“진수야, 청진기 좀 가져다줄래?”
강진수가 챙겨 온 청진기로 나는 하태곤의 심음과 폐음을 청취했다.
청진판이 하태곤의 심장 위, 흉골, 갈비뼈 사이, 등 뒤를 분주하게 오가는 동안.
나는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이상음이 들리는지 확인하려 애를 썼다.
불길하게도 하태곤의 심음과 폐음이 많이 감소되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부러진 갈비뼈가 폐와 심장 쪽을 찔러 2차 손상이 발생했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판단이 선 순간 오싹해지는 등골.
하태곤을 방치했다면 벌어졌을 불상사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안 되겠다. 바로 태극 병원으로 가야겠어.”
“국군 태극 병원 말씀이십니까? 병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참을 만합니다.”
하태곤이 항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당장이야 참을 만하겠지. 조금 있으면 생각이 180도 바뀔걸? 진수야, 미안한데 너도 나랑 같이 가 줘야겠다.”
“네, 지대장님.”
나는 승용차 뒷좌석에 하태곤과 강진수를 태우고 국군 태극 병원을 향해 내달렸다.
예상대로 병원으로 이동하는 30분 동안 하태곤의 상태는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차에 탈 때만 해도 괜찮다고 떠들어 대던 하태곤은 갈수록 말수가 줄더니 나중에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힘겹게 숨을 내쉬기 바빴으며 으으으, 하고 고통 섞인 신음을 흘렸다.
나는 차가 신호에 걸렸을 때마다 백미러로 하태곤의 상태를 살폈다. 하태곤에게 일부러 말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가면 갈수록 나빠졌고 엑셀을 밟는 내 발에는 차차 더 많은 힘이 실렸다.
아직 병원에 도착하지 못했고, 자세한 검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하태곤이 최소 혈흉에서 최대 심장 혈관 파열까지 앓고 있을 거라 추측하고 있었다.
청진기로 확인한 하태곤의 심음과 폐음은 위태로울 정도로 감소되어 있었다.
1초라도 빨리 병원에 도착해야 했다.
그렇게 다급한 마음으로 달려 가까스로 도착한 국군 태극 병원.
접수를 마친 나는 강진수와 함께 하태곤을 부축해서 응급실로 들어갔다.
민간 병원 응급실과 달리 태극 병원 응급실은 한산했다.
환자와 보호자보다 의료진이 더 많았고, 침상 대부분은 비어 있었다.
마치 장사가 잘 안 되는 가게 같은, 한적한 분위기였다.
얼마 후 우리가 간호사에게 안내받은 침상으로 응급의학의가 다가왔다.
응급의학의는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으며 가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있었다.
영 믿음이 안 가나는 응급의학의의 이름은 표준기였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표준기의 심드렁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하태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표준기와도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