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99화 (199/257)
  • 199화 제5장 발전(4)

    재건술이 끝난 후 총상 수술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은 훨씬 쉬웠다.

    우선 인공 심폐기가 꺼지고, 심장에 혈액이 돌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깊은 잠에 빠졌던 심장이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모두가 초조한 눈빛으로 심장을 지켜보았다.

    봉합으로 재건한 심근이 잘 버텨 줄 것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불안에 떨었지만 나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재건술을 마친 순간 재건술이 완벽했다는 것을 나는 본능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런 확신이 드는 날은 많지 않지만 이런 확신이 들었을 때 수술에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확신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심장의 거센 박동 속에서도 심근은 건강하게 움직여 주었다.

    봉합은 들뜨지 않았으며 장력은 팽팽하게 유지되었다.

    스태프들은 나보다 한발 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처치했던 수술 부위를 꼼꼼하게 다시 살피고 혹시 거즈 따위가 남지 않았나 크로스 체크하면서 나는 수술 부위를 닫았다.

    혈압은 120mmHg/80mmHg.

    체온은 36.0도.

    맥박은 분당 70회.

    분당 호흡수는 20회.

    총상 수술이 완료된 후 환자의 바이탈은 건강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환자 감시 장치에 나타난 심전도 그래프 또한 평범하고 평온했다.

    누구도 슬퍼할 일 없이 수술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나는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고 고개를 숙였다.

    힘들고 다소 무모해 보였던 수술을 잘 따라와 준 스태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들은 태극 병원 소속도 아닌 나를 끝까지 믿어 주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나 혼자 아무리 발버둥을 친들 환자를 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고생했다, 너도.’

    내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환자였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앳된 환자.

    자신의 가슴에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비극의 환자.

    환자의 몸에서 무사히 총알이 제거되었으므로 환자의 마음속에 박힌 총알도 무사히 제거되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지이이잉.

    자동문을 지나 수술실로 나온 나는 수술 가운과 수술모, 장갑 등을 벗었다.

    사우나에 들어갔던 것처럼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잊고 있었던 피로가 단번에 밀려왔다.

    한순간이지만 다리가 풀려 주어 앉을 뻔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환자는 이승으로 돌아왔으며 생에 첫 총상 수술을 멋지게 성공시켰으니까.

    나의 노력과 나의 회귀는 배신당하지 않았다.

    “이 선생님, 잠깐 저 좀 보시죠?”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 * *

    그 날 저녁, 나는 백경민과 함께 병원 인근의 식당을 찾았다.

    24시간 영업하는 순댓국집이었다.

    밤 11시로 꽤 늦은 시간임에도 순댓국집에는 제법 손님이 많았다.

    테이블의 3할 정도가 차 있었는데, 대부분 반주를 곁들이며 식사를 하는 중년인들이었다.

    길고 힘들었던 수술 때문에 허기가 졌던 걸까.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만으로도 나는 군침을 삼켰다.

    우리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순댓국을 주문했다.

    “우리 병원에서 소화해야 할 수술은 이 선생님이 했잖아요? 맨입으로 보내기는 좀 미안하더라고요.”

    백경민이 식사를 같이하자고 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 입에서 살살 녹는 소고기 정도는 사 주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마음 같아서야 백 번이라도 사 주고 싶은데 군 병원 월급이 워낙 짜서 말이죠. 그래서 전 싱거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제 월급을 생각해요. 그럼 간이 딱 맞거든요.”

    내 농담을 백경민도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심근의 총알 제거를 하느냐, 마느냐로 다툴 때만 해도 나는 백경민을 미워하고 싫어했다.

    까칠하고 시비를 잘 거는 사람.

    백경민을 그 정도로만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오판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차례 격렬한 논쟁을 벌인 후 백경민은 묵묵하게 어시스트를 도왔다.

    그의 처치는 섬세하고 정확해서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백경민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백경민은 단순히 수술이 겁나서 수술을 미룬 게 아니다.

    수술을 미루는 게 정말 환자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백경민이 단순히 보신을 위해 수술을 반대했다면 내 집도를 돕지 않았을 것이다.

    수술이 실패했다면 그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했을 테니까.

    순댓국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소고기만큼 맛있는 순댓국이 나왔네요.”

    종업원이 테이블에 뚝배기를 내려놓고 떠나자 백경민이 다시 한번 농담을 던졌다.

    “이 집 순댓국 잘해요. 앞으로 외진 나오면 여기만 찾게 될 거예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인스턴트 음식에 질렸던 참인데.”

    나는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들깻가루를 듬뿍 넣은 후 순댓국을 한 숟갈 떴다.

    놀랍게도 백경민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내심 순댓국이 다 똑같은 순댓국이지 뭐 특별한 게 있냐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순댓국은 정말 특별했다.

    입안 가득 진한 퍼지는 진한 돼지 육수 맛이 일품이었다.

    나는 입천장이 데는 것도 모르고 국물을 퍼먹다가 밥공기까지 풍덩 빠트렸다.

    백경민은 그런 나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어때요? 끝내주죠?”

    “이 정도면 제대를 해도 찾아올 것 같네요.”

    순댓국을 먹으면서 우리는 자잘한 사담을 나눴다.

    백경민은 나보다 4살이 많았으며 부현대학교 의대를 졸업해 부현대학교 병원 흉부외과에서 근무를 했다고 한다.

    군의관 제대를 마친 후에는 곧바로 국군 병원 소속이 되었고.

    “왜 대학병원으로 복귀 안 했어? 군 병원보다 대학병원이 훨씬 낫지 않아?”

    나는 스스럼없이 물었다.

    백경민의 제안으로 우리는 형, 동생 사이로 지내기로 했다.

    “대학병원이 시설도 좋고 봉급도 쎄긴 하지. 하지만 그만큼 여유도 없잖아?”

    “그거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나는 집도는 적당히 하면서 신수술을 개발하고 싶어.”

    백경민이 당찬 포부를 밝혔다.

    수술은 한 명의 환자를 살리는 일이지만 신수술을 개발하는 일은 여러 명의 환자를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더불어 그 임무를 완수하는 데 가장 적합한 곳은 태극 병원이라고도 말했다.

    태극 병원은 대학병원에 비해서 수술 스케줄이 널널하기 때문이다.

    심장과 폐에 질환을 가진 병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병사는 과연 못 미더운 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할까, 민간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할까.

    정답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는 많아 봐야 수술이 하루에 두 건 정도야. 그러니까 나머지 시간에 연구를 하는 거지.”

    “형, 의외로 열혈 의사였네?”

    “암, 그렇고말고. 미지근하게 의사 생활할 거면 애초에 흉부외과 전공을 하면 안 됐지.”

    “하긴, 그것도 그러네.”

    나는 물로 입가심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 군 병원 출신 흉부외과의가 신수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심장 판막 수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설마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백경민이 그 주인공?

    나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형, 혹시 판막 수술에 관심 있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텔레파시라도 썼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 백경민.

    결국 내 추측이 맞았다.

    미래에 신수술을 개발할 군 병원 의사와 백경민이 동일 인물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인연이 이런 식으로도 이어질 수 있구나.

    나는 내심 감탄했다.

    “아니, 뭐 그냥… 아까 심근 재건술할 때 심장 판막 이야기를 하길래…….”

    “와, 눈치가 백단이네. 비법 있으면 나 좀 가르쳐 줘라. 난 눈치가 3단밖에 안 되거든.”

    “얻어걸린 거지, 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전생의 기억을 되짚었다.

    기억이 맞다면 백경민의 수술은 3D 프린터를 이용한 환자 맞춤형 인공 판막 제작술이었다.

    당시 학계의 반응이 뜨거워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문제는 논문 게재 이후 참관 수술에서 터지고 마는데…….

    하필이면 학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연하던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했던 것이다.

    학계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해당 수술은 감촉같이 종적을 감추게 된다.

    수술이 실패한 이유가 그 시절 3D 프린터의 정밀함이 떨어져서인지.

    수술할 환자를 잘못 골라서인지.

    집도의의 능력이 부족했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당시의 나는 펠로우였고, 강태섭에게 이용당하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백경민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완성된다면 인공 판막 수술을 받는 환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될 것은 분명했다.

    백경민의 뜨거운 열정이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흉부외과 환자의 회복을 돕는 수술이 또 하나 늘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그쯤 미치자 나는 미칠 듯이 백경민을 돕고 싶었다.

    전생에 빛나지 못했던 흉부외과의와 수술을 되살리는 일이 내게 주어진 임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수술을 계획 중인데?”

    나는 다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아무리 너라도 이건 극비라서 말해 줄 수 없어. 하여간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거라는 것만 알아 둬.”

    백경민이 팔짱을 낀 채 장난스럽게 거드름을 피웠다.

    ‘저기, 형. 그 수술 그대로 진행하면 망하는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나는 간신히 참아야 했다.

    “센세이션은 무슨? 센티멘탈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지. 신수술 개발하는 게 어린애들 소꿉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예의상 물어본 거야.”

    “이믿음, 너 말이 좀 심하다? 내가 개발 중인 수술이 뭔지도 모르잖아.”

    백경민이 얼굴을 붉히며 발끈했다.

    내 도발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여기서 입질을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됐어, 별로 알고 싶지 않으니까. 신수술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할게.”

    “하, 이 자식 사람 열 받게 하는 데도 재주가 있네? 그럼 연구 자료 메일로 보내 줄 테니까 네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봐.”

    “…….”

    “네가 함부로 무시해도 될 수술이 아니니까. 대신 바깥으로 퍼트리면 진짜 죽는다?”

    “제발 바깥에 퍼트리고 싶을 만큼 좋은 수술이면 좋겠네요.”

    나는 겉으로 빈정거리면서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결국 연구 자료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으니까.

    연구 자료를 보면 수술이 실패했던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순댓국은 잘 얻어먹었어. 그만 일어나자.”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밥집을 나온 후에는 백경민과 연락처, 그리고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백경민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자동차로 부대로 복귀하는 길.

    외곽에 접어들자 도로는 조용하다 못해 쓸쓸해 보였다.

    반쯤 열어 둔 차창에선 불어오는 밤바람은 귀곡성처럼 음산했다.

    백경민.

    3D 프린터를 이용한 환자 맞춤형 인공 판막 제작술.

    전생에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숙제를 나는 차분하게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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