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제5장 발전(3)
돕겠다는 백경민을 내칠 수가 없어 나는 허락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전문의인 그가 어시스트를 선다면 수술은 한결 쉽고 편할 것이다.
하지만 마냥 장점만 있다고 보기엔 애매했다.
심근에 박힌 총알 제거를 반대한 것처럼, 백경민은 사사건건 내 처치를 걸고넘어질 확률이 높았다.
한마디로 우리는 불편한 동행이었다.
“총알은 어떻게 제거할 겁니까? 잘 써먹던 치과용 포셉은 무용지물인 것 같던데.”
“심근 절제술을 펼칠 겁니다.”
“심근 절제술이요? 너무 과격하게 나가는 거 아닌가요? 이 선생님은 중간이 없습니까?”
우려했던 대로 백경민이 삐딱한 태도를 보였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들어 보고 타당하면 따를 테니…….”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심근 절제술은 반대입니다. 위험성이 너무 높아요. 주변부에 주요 동맥들이 있잖아요. 잘못해서 동맥이 파열되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비극이 벌어질 겁니다.”
“저기요, 백 선생님.”
“왜요?”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말고 제발 입 좀 닥치세요. 제 수술에 그만 훈수 두시라고요!”
“…….”
“그게 아니면 직접 집도를 하던가, 씨발.”
나는 목구멍에서 간질거리던 말을 끝내 입 밖으로 토해 냈다.
어지간해서 거친 표현은 쓰지 않는 나지만 이번만큼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외과의끼리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하거늘…….
이번에 백경민은 선을 심하게 침범하고 말았다.
“…….”
본인의 잘못을 알긴 아는지 백경민은 한참 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가 침묵을 지키면서 수술방 분위기는 다시 한번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게 괜히 껴들어서, 잘하는 짓이다.
스태프들 호흡하고 분위기나 깨트리고.
나는 백경민을 한참 노려보다가 환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는데, 수술도 마찬가지였다.
내 기분이 수술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됐다.
「환자의 심장은 뜨거워야 하지만 외과의 심장은 차가워야 한다.」
스승 양 교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나는 흥분으로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여러분은 아까처럼 최선을 다해 주세요. 책임은 제가 집니다.”
나는 스태프들을 다독이고 본격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10번 블레이드.”
손에 쥔 메스의 무게가 유독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 무게감이 이번 처치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나는 우심실의 우측 하부를 향해 메스를 뻗었다.
심근에 박힌 탄알이 무영등을 반사하며 눈 부신 빛을 뿌리고 있었다. 올 테면 와 보라고 나를 도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냐. 네가 죽든가, 내가 죽든가.
둘 중 하나는 오늘 비참하게 무릎을 꿇게 되겠지.
총알이 박힌 자리 주변에 있는 혈관을 요리조리 피하며 나는 심근에 메스를 대었다.
서걱.
서늘한 감촉과 함께 심장의 일부가 도려졌다.
그런데 혈관을 건드린 것도 아니거늘 메스 끝에 희미하게 혈흔이 남았다.
괜히 신경이 쓰여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치이이익.
기다렸다는 듯 백경민이 생염수로 도려낸 부분을 세척했다.
해당 부위를 쓱 훑더니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혈관 건드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단순히 주변에 있던 미세 혈관이 자극받았을 뿐입니다.”
“그쪽에서는 미세 혈관이 보이나 보죠?”
“네, 그러라고 보조의가 있는 거니까요. 같은 심장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기 위해서. 집도의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깐족거리는 데만 도가 튼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의외로 정상적인 말도 할 줄 아네요?”
백경민의 말에 감탄한 내가 농담을 던졌다.
“사실 내가 정상이고 그쪽이 비정상이거든요? 누가 이 환자에게 이 정도 범위로 심근 절제술을 펼칩니까?
그의 토라진 대답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백경민이 밉살맞게 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 수술에 위험성이 큰 것 또한 사실이었다.
심근 절제술이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장 근육을 뭉텅 잘라서 떼어 내는 수술이었다.
흉부외과에서 그리 드물지 않은 빈도로 펼쳐지곤 했다.
문제는 내가 펼치는 심근 절제술의 범위가 평범한 심근 절제술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데 있었다.
이 경우 심장 근육이 줄어들어 심장의 활동성이 약해질 수도 있었다.
“총알이 이 정도로 박혔으면 총알만 쏙 빼는 건 불가능해요. 그건 백 선생님도 알잖아요.”
“아니까 수술을 중단하고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죠.”
“지켜본다고 달라진 건 없었어요. 그러다가 환자가 멀쩡해 보이면 아마 추가 수술 없이 추적 관찰만 하자고 했을걸요?”
나는 태극 병원 흉부외과의들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내가 수술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추가 수술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수술 중에 환자가 죽은 것.
수술이 끝나고 몇 개월 뒤에 환자가 죽은 것.
이 둘 사이의 간격은 엄청난데, 그 어마어마한 간격 덕분에 외과의는 책임을 면하게 될 것이다.
결국 환자만 불쌍한 신세가 될 것이고.
“그래도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 이만한 판을 벌였겠죠? 난 그렇게 믿겠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백 선생님이 건 자리에 잭팟이 터질 겁니다.”
백경민의 어시스트를 받으며 나는 총알이 박힌 심근을 무사히 제거했다.
총알 제거는 예상했던 것보다 20분 정도 빨랐다.
주변 동맥을 건드릴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백경민의 도움으로 잘 헤쳐 나갔다.
입을 닫은 백경민은 뒤를 맡겨도 좋은 아군이었다.
“심근 상태를 확인해 보죠.”
나는 메스로 심근 주변을 과감하게 가르면서 총알을 빼냈다.
탄두 부근에 새까만 그을음이 존재했다.
즉, 총알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100퍼센트 감염증이 발생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심근염은 나중에 심장이식이 필요한 심부전으로 번졌을 테고.
과감하게 심근 절제술을 시도한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짜릿한 쾌감이 등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선생님 말이 맞았네요. 좋아요, 내가 안일했다는 거 완벽하게 인정하겠습니다.”
“…….”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부터겠죠.”
백경민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백경민의 말이 옳았다.
총알이 박힌 심근을 절제한 데까지는 나무랄 곳도, 흠잡을 곳도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크고 무거운 숙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거된 심근만큼 심근의 힘은 약해질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 * *
백경민의 질문이 나를 향하고 스태프들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수술방이 배라고 하면 외과의는 그 배를 지휘하는 선장이자 조타수였다.
앞으로 내가 하는 한마디에 따라 수술의 방향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차분하게 입을 뗐다.
“저는… 심근 재건술을 펼칠 겁니다. 백 선생님이 한 번 더 도와주셔야겠네요.”
“재건술이라… 심장 판막 수술법을 응용한 건가요?”
“그런 셈이죠. 이런 상황이라면 남은 심근으로 뭐라도 해야 하니까요.”
나는 잘려 나간 심근들의 주변 심근들을 바짝 당겨서 꿰맬 생각이었다. 그러면 이미 절제한 심근들의 공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응급 상황에서 급하게 떠올린 것치고는 꽤 근사한 수술법이었다.
전생의 경험과 이번 생의 경험이 합쳐지면서 생긴 관록 덕분에 발견한 수술법이기도 하고.
“왜요? 재건술도 또 마음에 안 드나요?”
“다행히 이건 마음에 드네요. 재건술이 쉽지는 않겠지만 제가 있으면 못할 것도 없을 테고.”
“은근히 자기 자랑을 끼워 넣는 겁니까?”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백경민이 어깨를 으쓱거렸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백경민의 합류 이후 내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좋은 어시스트란 본래 그런 존재였다.
집도의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주는 존재.
총상 수술은 이제 최후에 최후 단계로 치닫고 있었다. 스태프들도 그 중요함을 깨달은 듯 비장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재건술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어. 하지만 적어도 군대서 억울하게 죽지는 마. 알았지?’
나는 환자가 들을 수 없는 말을 속으로 했다.
그리고 가볍게 손목을 풀고서는 곁에 선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2-0 Vicryl.”
간호사가 포장을 뜯은 봉합사를 건넸고, 나는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꽉 조였다.
끼기기긱.
조여지는 봉합사만큼 내 마음도 바짝 조여졌다.
잘려 나간 우측 하단 심근을 바라보는 내 눈빛에는 어느새 지독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믿음아, 몸이 힘들고 마음이 흐트러질 때는 이런 생각을 하렴. 수술 부위를 마치 철천지원수처럼 여기는 거야. 그러면 집중력이 더 날카로워질 거란다」
지금은 은퇴한 스승 양 교수의 말을 따르자 온몸에 충만한 에너지가 솟구쳤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감정은 분노고, 그 분노는 사용하기에 따라서 막강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스승은 말해 주었다.
과연 나는 그 말 그대로 되었다.
“지금부터 우심실 우측 하단 절개 부위에 대한 심근 재건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내 은은한 목소리가 수술방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에 백건우가 양손에 포셉을 들고 벌어진 심근 사이를 바짝 끌어당겼다.
하나로 겹쳐진 심근을 나는 차분하고 또 꼼꼼하게 꿰매기 시작했다.
봉합법은 단순 단속 봉합.
외과 봉합의 가장 기초적인 봉합술로, 한 땀 한 땀을 꿰매고 매듭을 지어 주는 방식이었다.
단순 단속 봉합은 여타 봉합에 비해 시간 소모가 심하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하지만 봉합사의 장력이 강하고 외과의가 세심하게 한 코 한 코를 관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예상했던 대로 재건술은 만만하지 않았다.
재건해야 할 부위가 너무 광범위한 데다가 심근을 기존 형태대로 성형하면서 봉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이중고를 겪는 것이었다.
심근 재건술을 해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 또한 내 발목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안간힘을 써 가며 봉합에 집중했다.
스승의 말대로 헤지고 너덜너덜해진 심근을 원수로 생각하고 본때를 보여 주려고 했다.
심근을 끌어당기느라 팔을 부들부들 떨며 고생하는 백건우.
그리고 다른 스태프들을 생각하면서 남은 기력과 집중력을 쥐어짰다.
모두의 노력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심근은 서서히 본래 모습을 되찾아 갔다.
그 과정은 흡사 건축 공사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흉물스러운 철근 더미에 지나지 않았던 건물이 어느새 살고 싶은 건물로 변하는 과정 같았다.
∩ 자 형태로 잘려 나갔던 심근은 봉합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하나로 붙기 시작했다.
꼭 그 자리에서 새 살이 나고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나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주변에서 나를 돕는 스태프들도 잊어버리고, 나조차도 잊어버렸다.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무아경과는 또 다른 경지에 빠져들었다.
꿈결 같은 순간을 통과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재건술은 순식간에 끝나 있었다.
이건 됐다.
실패할 수가 없다.
재봉질을 한 듯한 촘촘한 봉합과 매듭을 확인한 순간.
본래의 가지런한 모습을 되찾은 심근을 확인한 순간.
나는 수술의 성공을 100퍼센트 확신했다.
오지랖을 부린다, 수술을 그만둬라 등등.
주변에서 쏟아지는 역경을 이겨 내고 기어이 생에 첫 총상 수술을 완벽하게 소화한 것이다.
왠지 모를 서러움과 감격이 터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콧잔등은 시큰해졌다.
나는 가까스로 감정을 억누르며 긴 수술로 말라붙은 입술을 떼어 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재건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