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97화 (197/257)

197화 제5장 발전(2)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국군 태극 병원 소속 흉부외과의 백경민의 말이 수술실에 퍼졌다.

백경민은 수술실을 나와 수술 가운과 수술모, 마스크 등을 차례대로 벗었다.

“선생님, 수술 부위 원복 같은 건 이제 저희에게 맡겨 주셔도 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면 너무 피곤하실 텐데…….”

퍼스트 어시스트를 섰던 이성민의 말에 백경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내 수술은 제가 책임져야지. 마침표를 찍는 일도 엄연히 집도의의 일이니까.”

집도의들은 보통 수술이 끝날 때쯤 수술방을 먼저 떠난다.

절개창을 닫고 수술을 마무리하는 일은 레지던트로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지던트에게 뒷일을 맡기는 건 혹시나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해 여분의 체력을 남겨 두기 위함이었고.

하지만 백경민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뭐든지 제 손으로 일을 끝마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이성민과 잡담을 나누며 병동으로 복귀한 후 백경민은 당직의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총기 사고로 한 병사가 응급실에 내원했다.

수술 가능한 흉부외과의가 없었던 시점이라.

1분 1초가 아쉬운 초응급 상황이라 외진을 나온 대대 군의관이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와. 누군지 몰라도 그 사람, 간덩이가 부었네. 수술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지?”

“제 말이 그겁니다. 제가 그 사람이었다면 무조건 이송을 보냈을 텐데… 용기하고 객기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 같아요.”

“수술 중인 흉부외과의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이성민과 당직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백경민이 대화에 껴들었다.

백경민은 대대 군의관에게 흥미를 느꼈다.

외진 나온 군의관이 국군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케이스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대대 군의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이름은 이믿음이고 흉부외과 전문의라고 합니다. 듣기로는 신원대학교 병원에서 수련했다고 하던데… 혹시 아는 분이신가요?”

“아니.”

바쁘게 기억을 뒤졌지만 이믿음에 대한 정보는 손톱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백경민은 당직의를 시켜 총상 환자의 차트를 띄우게 했다.

응급실 기록지와 각종 검사 기록을 살피는 백경민의 이마에 점점 주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진짜 난리도 아니었겠구나.’

차트를 다 훑고 나니 정신이 아찔했다.

환자 상태는 이야기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혈흉에 횡격막은 파열되고, 흉벽과 우심실에는 탄알이 박혀 있었다.

주변에서 이믿음의 무모함을 손가락질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만약 내가 환자를 맡았으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순간, 백경민은 숨이 턱 막혔다. 사지가 결박된 것처럼 갑갑했다.

이믿음처럼 무모하게 수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이송을 보내는 건 사실상 미리 하는 사망 선고나 다름없으니…….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무슨 일 터지면 불러. 난 그 수술 참관하러 가 볼 테니까.”

“막 수술 끝나서 피곤하실 텐데 쉬세요. 결과 나오면 제가 알려 드릴게요.”

“듣는 거랑 보는 건 다르잖아.”

백경민은 레지던트를 등지고 당직실을 나왔다.

성큼성큼 수술실로 이동했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는 해도 총상 수술을 참관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

이믿음이라는 겁 없는 흉부외과의 낯짝이 궁금하기도 했고.

“선생님, 또 오셨네요? 뭐 놓고 가셨어요?”

수술실에 도착하자 친한 간호사가 백경민에게 아는 체를 했다.

백경민은 아니라고 대답한 뒤 총상 환자를 수술 중인 수술방의 위치를 물었다.

간호사는 6번 로젯이라고 말해 주었다.

6번 로젯에 딸린 참관용 수술실에서, 백경민은 수술을 지켜보았다.

‘하…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지?’

참관하는 내내 그는 감탄하기 바빴다.

나이도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이믿음이거늘 마치 총상 수술에 잔뼈 굵은 교수처럼 능숙하게 수술을 집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믿음도 사람은 사람이었다.

수술 막판에 치명적인 판단 미스를 저지르고 말았다.

수술이 잠시 중단된 상태에서 인공 심폐기사가 헐레벌떡 수술방으로 투입되었으니…….

그 뜻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환자의 우심실 심근에 박힌 총알을 기어이 빼내겠다는 것이다.

환자의 바이탈이 안정된 상태에서 굳이 저런 모험수를 던질 필요는 없었다.

한마디로 긁어 부스럼.

만약 백경민이 이믿음이었다면 우심실의 총알을 제거하지 않고 수술을 마친 후 경과를 지켜봤으리라.

그게 제일 안정적인 선택이었으니까.

‘자기 능력에 취한 게 분명해. 나라도 나서서 막아 줘야지.’

백경민은 참관용 수술실을 나와 다시 수술 복장을 착용하고 6번 로젯으로 들어갔다.

* * *

수술을 속행하는 것은, 기어이 심근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가시밭길을 자처하는 꼴이었으니까.

하지만 힘들다고 가야 할 길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심근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이번 수술은 반쪽짜리 수술에 불과했다.

그리고 반쪽짜리 수술이란 태생이 불완전하므로 언제 어떻게 환자가 목숨을 잃을지 몰랐다.

당장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수술을 애매하게 끝내는 것도 내 성격에 맞지 않았고.

인공 심폐기 연결을 위해 나는 추가로 정중흉골 절개를 펼쳤다.

잠시 후 도착한 인공 심폐기사가 환자의 심장과 인공 심폐기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수술이 문제의 2라운드로 접어드는 시점.

수술방의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무거웠다.

“마취의 선생님, 환자 바이탈은 어떤가요?”

“아직까지 이상 없습니다. 정상인하고 차이가 없는 수준이에요.”

“특이 사항 있으면 알려 주세요.”

짧은 문답을 마친 후 나는 환자를 내려다보며 다음 처치에 대해 고민했다.

치과용 포셉으로 제거하지 못한 심근의 총알을 어떻게 빼낼 것인가.

하나 남은 숙제는 회귀한 나조차 버거웠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지이이잉.

갑자기 문이 열리고 수술방으로 한 사내가 진입했다.

내게 접근한 그는 본인의 이름이 백경민이며 태극 병원 소속 흉부외과의라고 밝혔다.

“사실 1시간 전부터 이 선생님의 수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설마 수술을 여기까지 끌고 오실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감탄했어요.”

“감탄만 하러 오신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나는 가시 돋친 목소리로 물었다.

수술을 잘 보고 있었다면 끝까지 잘 보고 있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이제 와서 난입한다는 것은 숨겨 둔 꿍꿍이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제 의도를 알고 계신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추가 수술은 중단해 주세요.”

“뭐라고요?”

“수술을 중단해 주시라고요. 환자 바이탈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환자의 회복을 기대하면서 경과 관찰을 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겁니다.”

백경민의 논리는 나의 내면의 자아 중 한 명이 언급했던 논리와 똑같았다.

이만하면 됐으니까 위기를 자처하지 마라.

왜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못해서 안달이냐고 했던 자아 말이다.

“심근에 손가락만큼 커다란 총알이 박혀 있습니다. 심장이 뛸 때마다 총알도 같이 움직이겠죠.”

“…….”

“심근에 무리가 갈 건 불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감염의 위염성도 배제할 수 없고요.”

나는 총알을 제거하지 않았을 때 벌어질 위험을 언급했다.

환자가 지금 괜찮다고 해서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단순한 희망 사항이었다.

그리고 외과의에게 희망 사항이란 독약이나 다를 바 없었다.

또한 나는 스승 양 교수에게 이렇게 배웠다.

외과의는 항상 최악을 가정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건 이 선생님이 걱정이 많아서 그런 겁니다. 총상환자 논문은 충분히 읽어 보셨습니까?”

백경민이 까칠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비록 총알을 제거하지 않더라도 환자의 상태가 양호하다면 추적 관찰하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

“두개골에 총알이 박힌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총알이 뇌에 박히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죠.”

“뇌하고 심장은 다릅니다. 엉뚱한 소리 하지 마세요.”

“좋습니다. 그럼 백 선생님이 말한 논문들을 언급해 보죠.”

나는 차분하게 반박에 나섰다.

논문이라면 나도 눈이 빠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 백경민이 언급하는 논문이 무엇인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백경민이 언급한 논문의 대부분은 수렵총, 그러니까 산탄총에 의한 총상이었다.

1, 2mm 정도의 납탄이 심근에 박혔으니 심장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산탄총 케이스를 이번 케이스와 연결시키는 건 심각한 비약이 아닐 수 없었다.

발목에 구슬을 달고 걸으면 별 무리가 없겠지만 모래주머니를 달고 걸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걸음은 느려지고 부자연스러워지고 몸은 힘들어질 것이다.

심장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에 7,000리터의 혈액을 펌핑하는 심장이 저 큰 총알이 박힌 채 운동한다면 말이다.

심장에 무리가 가겠는가, 안 가겠는가.

그것은 주사위의 여섯 면이 다 육인 주사위를 던져 육이 나올 확률과 같았다.

즉, 정해진 운명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술을 접고 추적 관찰을 한다면 환자는 언제든 급성 심근 경색으로 쓰러질 수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언젠가 심부전으로 크게 고통받을 확률이 컸다.

나는 내 눈이 멀면 멀었지 그런 꼴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내가 내 보신을 위했다면 애초에 이 수술을 맡지도 말았어야 했다.

“답답하네, 진짜. 일단 지켜보자는 거지. 제거를 안 하겠다는 건 아니잖아요.”

백경민이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다음으로 미뤄야 하죠? 당장 환자를 살려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보입니다만.”

나도 지지 않고 대답했다.

내 등 뒤에는 환자가 있었다. 내가 뒤로 밀려나면 환자도 같이 밀려날 것이다.

그렇게 계속 밀리다 보면 환자는 낭떠러지에 떨어질 게 분명했다.

“휴, 그쪽은 진짜 고집불통이네요. 끼니마다 소 힘줄이라도 챙겨 먹습니까?”

“누가 소 힘줄이라도 대접해 줬으면 좋겠네요. 라면만 먹는 것도 지겨운데.”

“어떻게 한마디를 안 지네, 한마디를. 그래요, 당신이 이겼습니다. 당신 똥이 굵어요.”

백경민이 항복의 의미로 두 팔을 가볍게 올렸다.

때마침 인공 심폐기사가 심폐기 연결이 끝났음을 알렸으므로 나는 집도의 자리로 돌아갔다.

심정지 액까지 투입되면서 환자의 심장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심장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심근에 박힌 총알을 빼내는 게 나의 마지막 임무였다.

나는 심근에 박힌 흉물스러운 총알을 원수처럼 노려보았다.

웃기게도 백경민과 언쟁을 벌이면서 총알을 제거할 좋은 묘책을 떠올렸다.

‘그 방법’을 응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볼일은 끝난 거 아닌가요? 안 가고 뭐 하십니까?”

내가 뚱한 목소리로 묻자 백경민은 대답 없이 퍼스트 어시스트 자리에 섰다.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뗐다.

“내가 돕겠습니다. 선태보다는 백배 더 나을 테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