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96화 (196/257)
  • 196화 제5장 발전(1)

    세상 모든 문제가 그랬다.

    문제를 맞닥뜨리기 전에는 겁도 먹고 초조하고 불안도 하지만 막상 맞닥뜨리게 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술방에 입장한 순간, 나는 내 페이스를 되찾았다.

    나는 수술방에서 가장 빛나는 외과의였다.

    수술 도구와 수술 장비 준비.

    전신마취 등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끝나자 스태프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스태프들의 눈빛은 잔뜩 얼어 있었다.

    국군 병원 의사도 아닌 생판 모르는 내가 집도의인데다가 경험 없는 총상 환자를 수술하게 됐으니 긴장할 수밖에…….

    “다들 긴장 푸세요. 이번 수술의 최종 책임자는 접니다. 여러분들에게 해가 갈 일은 없어요.”

    나는 스태프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은 그저 평소 하던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스태프들이 짊어진 부담감을 덜어 준 후 나는 간략하게 수술의 방향을 요약해서 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생에 첫 총상 환자 수술.

    “10번 블레이드.”

    나는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은 후 환자의 우측 갈비뼈를 절개했다.

    두 발의 총알은 각각 환자의 흉벽과 우심실 부근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정중 흉골 절개술이 아닌 우측방 절개술을 선택했다.

    스으으윽.

    메스가 미끄러지면서 피부와 근막이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근 세 달 만에 쥐는 메스였지만 솜씨는 죽지 않았다.

    땅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손은 떨림이 없었다. 힘 조절도 잘되었으며 깃털이 달린 듯 손이 가벼웠다.

    이윽고 5-6번 갈비뼈 사이 7센티 크기의 절개창이 생겼다.

    절개가 끝나자 맞은편에 있던 제1 보조.

    그러니까 급하게 수술방에 투입된 레지던트 2년 차 용태섭이 견인기로 절개창을 벌렸다.

    부들부들.

    용태섭의 양손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혹시 수전증 있어요?”

    “아니요, 전혀. 상황이 상황인지라 너무 떨리네요. 선생님은 안 떨리세요?”

    “네.”

    “우와, 강심장이십니다. 제가 선생님이었으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것 같은데.”

    “긴장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유용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긴장에 잡아먹히지만 않는다면 긴장은 사람의 능력을 각성시켜 주는 훌륭한 자극제였다.

    도리어 긴장을 안 한다고 치자.

    느슨해진 마음으로 중요한 일을 처리하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터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긴장을 하되 긴장의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을 찌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나는 일부러 잡담해 가면서 수술을 진행했다.

    아직 수술 시야를 확보하는 단계라 여유가 있었는데, 처음 보는 스태프들과 라포를 쌓을 수 있는 시점은 지금밖에 없었다.

    스으으윽.

    나는 메스로 갈비뼈를 절개하고 파죽지세로 분홍빛 흉막까지 절개했다.

    그렇게 우측방 절개술을 마무리 짓던 중 내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지진이 난 것처럼 요란하게 떨리던 용태섭의 손이 어느새 잠잠해졌다.

    어시스트를 하는 속도도 이전에 비하면 괄목할 정도로 빨라졌다.

    잡담에 꽤 짭짤한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다 됐습니다.”

    용태섭이 고정 견인기를 들고 있던 손을 떼며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정 견인기가 설치되면서 견인기가 절개창을 상하로 쭉 벌려 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수술 시야가 한결 넓고 쾌적해졌다.

    “이런…….”

    탁 트인 시야를 확인하던 중 나는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환자의 흉벽에 박혀 있던 첫 번째 총탄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다른 스태프들도 뒤늦게 총상을 확인하고 약속한 듯 탄식을 쏟아 냈다.

    나는 총알의 각도부터 확인했는데, 대각선으로 박혀 있는 총탄을 보면 횡격막 파열까지 의심해 볼 만했다.

    그러면 그렇지.

    응급실에서 산소포화도가 너무 낮다 싶었는데.

    확인 결과 우측 횡격막에 3센티가량의 열상(찢어진 상처)이 존재했다.

    원치 않았던 숙제가 늘어난 상황.

    처음 하는 총상 환자 수술인데 너무 가혹한 거 아닙니까. 나는 문득 의술의 신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용태섭이 나를 쳐다보며 의견을 물었다.

    “글쎄요…….”

    나는 나답지 않게 말을 끌었다.

    생에 첫 총상 수술이라 처치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곤란했다.

    횡격막 복원을 먼저 해야 하나.

    아니면 총알부터 제거하고 주변 흉벽을 재건해야 하나.

    하지만 고뇌는 짧았고, 선택은 빨랐다.

    생사가 위태로운 환자를 수술하는 외과의에게는 고뇌조차 사치였다. 고뇌하는 시간만큼 환자는 죽음에 더 가까워지니까.

    “일단 총알 제거하고 흉벽 재건부터 합시다. 감염을 막는 게 우선이니까.”

    결정을 내린 나는 곁에 서 있는 간호사에게 치과용 포셉을 부탁했다.

    “치과용 포셉이요?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것처럼.

    “제대로 들으신 거 맞아요. 치과용 포셉.”

    “아… 알겠습니다.”

    흉부외과 수술에 치과용 포셉이 준비되어 있을 리 만무한 상황.

    잠시 후 순환 간호사가 수술방 바깥에서 치과용 포셉을 구해 수술방에 넣어 주었다.

    나는 기어이 치과용 포셉을 손에 쥐었다.

    치아를 뽑는 치과용 포셉은 일반 포셉과 달리 니퍼처럼 우악스럽게 생겼다.

    하지만 그 우악스러운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믿음직스러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평범한 포셉으로는 흉벽에 단단하게 박힌 포셉을 제거하긴 힘들어 보였으니까.

    스태프들의 우려 속에서 나는 치과용 포셉으로 총알을 조인 후 힘차게 잡아당겼다.

    즉흥적인 판단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괜히 끙끙거릴 필요 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주변 조직을 상하게 하는 일 없이, 나는 단번에 총알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터어엉!

    총알이 곡반에 떨어지면서 수술방에 맑고 고운 소리가 퍼졌다.

    탄알은 검게 그을려 있었으며 주변에 빨간 핏물이 뒤엉켜 있었다.

    탄을 빨리 제거하지 않았다면 흉벽과 심내막에 염증이 생겼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패혈증까지도.

    “와, 치과용 포셉으로 총알을 빼내셨네요. 선생님, 정말 총상 환자 처음 수술하시는 거 맞나요?”

    처치를 지켜보고 있던 용태섭이 호들갑을 떨었다.

    간호사들도 하나같이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축배를 터트리기에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였다.

    아까까지는 너무 긴장해서 문제였다면 지금부터는 반대로 적당히 긴장을 할 필요가 있었다.

    “수술은 이제 막 시작했어요. 너무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갑시다.”

    수술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나는 다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을 마치고 수술방을 나갈 때 과연 나는 영웅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오지랖이 넓어 환자를 죽게 만든 멍청한 의사가 되어 있을까.

    아직은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었다.

    * * *

    다른 일들처럼 수술에도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치과용 포셉을 이용해 첫 총알을 산뜻하게 제거한 후 나는 수술이 흐름에 올라탔다는 것을 직감했다.

    총상 수술은 넘지 못할 벽이 결코 아니었다.

    충분히 뛰어넘어 볼 만한 벽이었다.

    딱 필요한 만큼의 자신감만 챙긴 채 나는 수술에 집중했다.

    총알을 제거한 자리에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한 변연절제술을 펼쳤다.

    치이이익.

    감염된 부위를 보비(전기 소작기)로 지지고 소생 불가능한 일부 부위는 메스로 잘라 냈다.

    마지막으로 비흡수성 봉합사를 사용해 흉벽 재건까지 말끔하게 성공시켰다.

    이어진 횡격막 복원 또한 별 탈 없이 마무리 지었고.

    무아경에 돌입한 나.

    곧잘 나를 따라 주고 제 몫을 다해 주는 스태프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시너지는 결코 작지 않았다.

    “휴우…….”

    수술의 9부 능선을 넘은 나는 수술 도구를 손에서 놓고 잠시 한숨을 돌렸다.

    문득 벽시계를 살피니 수술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다.

    중반에 환자의 바이탈이 크게 흔들려 위기를 겪었지만 그 후로는 특별한 위험 징후는 없었다.

    나와 스태프뿐만 아니라 환자도 수술을 잘 버텨 주고 있었던 것이다.

    벽시계에 머물렀던 내 시선이 환자에게로 옮겨졌다.

    무영등 아래서 환자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 보였다. 얼굴에 표정이 없어 환자는 밀랍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체 무엇이 환자가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기게끔 몰아붙였을까.

    나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환자를 회복시켜 본인의 입으로 듣는 것이 분명 최선이겠지.

    “총알 하나만 더 제거하면 되는 거죠?”

    용태섭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쉽지는 않겠지만.”

    “아까처럼 치과용 포셉으로 확 잡아 빼면 되지 않을까요?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

    “총알이 박혀 있는 자리가 다르잖아요. 이번에는 훨씬 더 조심해야 해요.”

    내 목소리는 어느새 착 가라앉아 있었다.

    단 하나 남은 총알이 골칫거리였다. 차라리 깔끔하게 관통을 해 버렸으면 나았을 텐데 하필이면 우심실에 박혀 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광학안경을 착용한 채 심장을 바라보았다.

    심장의 우측 하단.

    그러니까 우심실의 끝부분에 위치한 심근에 총알이 정통으로 박혀 있었다.

    흉벽에 박혀 있던 총알과 달리 이 총알에는 그을림이 없었다.

    주변부에서 염증 반응이 확인되지도 않았다.

    총알 자체는 의외로 깨끗했던 것이다.

    “이거, 그림이 안 나오는데…….”

    나는 기를 쓰며 치과용 포셉으로 총알을 빼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턱. 턱. 턱.

    야무지게 총알을 잡아 줘야 할 포셉은 허공에서 미끄러지기 바빴다.

    총알이 심근에 워낙 깊숙하게 박힌 탓에.

    심근과 거의 한 몸이 된 탓에

    포셉이 총알을 잡을 면적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수차례 헛손질을 하다 보니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스태프들도 그제야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는지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 총알은 치과용 포셉으로도 안 되겠어요.”

    나는 순순히 백기를 들었다.

    계속 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계속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데, 이 총알 제거는 후자였다.

    그래서 재빠르게 포기했다.

    불가능한 일에 시간과 힘을 투자하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이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용태섭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은 안 했지만 다른 스태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총알을 내버려 둬도 괜찮지 않겠어? 현재로서 감염 위험성은 적어 보여. 주요 혈관하고 떨어진 자리에 박혀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을 테고.

    -무슨 소리야! 당장이야 괜찮겠지만 길게 봐야지. 혹시 납탄 조각이 박혔으면 모를까, 저 큰 총알이 심근에 박혀 있는데 심장에 영향을 안 끼치겠어?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 환자 바이탈도 안정됐으니 수술 끝내고 추적 관찰하는 편이 백배는 더 나아. 그게 더 안정적이라고.

    -지랄하지 마. 네가 말하는 안정은 보신에 불과해. 국군 병원 의사들한테 남은 치료를 떠넘기겠다는 거잖아. 이대로 수술을 끝내면 환자는 두 번 수술해야 해. 그리고 그때는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어.

    -뭐? 떠넘긴다고?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 애초에 수술을 떠넘긴 건 국군 병원 쪽이라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내면의 자아가 피 터지게 싸우기 시작했다.

    양쪽 다 나름의 논리가 있었기에 어느 한쪽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판단이 더욱 힘들었다.

    스태프들이 아기 새마냥 나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나는 심호흡하고 말라붙은 입술을 뗐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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