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제4장 군의관(4)
오늘은 외진이 있는 날.
나는 개인차를 몰고 국군 태극병원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한 명, 후방 좌석에 세 명이 나와 함께했다.
부대에 아픈 병사가 많았으므로 엠뷸런스에 외진 인원을 다 태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개인 차를 몰고 외진에 나가는 편이었다.
“지대장님, 무엇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동 중 조수석에 앉은 병사가 불쑥 물었다.
말끝에 다, 나, 까를 붙이는 병사의 존칭이 나는 아직 어색했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말해 봐.”
“지대장님은 대위십니까? 전에 계시던 지대장은 중위셨습니다.”
“아… 그거? 레지던트 4년 근무를 마치고 오면 호봉으로 쳐주거든. 그럼 군의관도 대위부터 시작해.”
나는 군의관 임관에 대한 설명을 짧게 덧붙였다.
본래 내 경력이라면 대위에 의무 중대장을 맡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의무 중대장 T.O가 다 차서 대대에 발령을 받았다고.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정 감사하면 치료 잘 받고 건강하게 제대해.”
“지대장님은 확실히 저번 지대장님하고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차를 몰아서 외진도 보내 주시고…….”
“대대에서 해 줄 게 없으면 의무대나 병원이라도 보내줘야지.”
내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그 이름이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대대 의무대의 의료 환경이 워낙 열약한 탓에 병사들을 제대로 치료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심하게 자책할 필요는 없었다.
세계 최고의 명의라고 해도 대대 군의관으로 부임하면 본인의 무력함에 치를 떨게 될 테니까.
태극병원으로 가는 길은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병사들과 친해지려고 종종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짧고 건조했다.
병사들이 내게 질문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병사들이 나를 어려워하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병사와 간부의 간극이랄까.
그렇게 30분쯤 운전했을 때.
외곽 지역에 우뚝 솟은 국군 태극병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국군 병원답게 엠뷸런스와 군용 지프차 등등이 입구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나는 병원 앞 도로에 잠깐 정차해서 병사들을 내려 주었다.
때마침 가까운 장소에서 우리 대대 의무병이 외진자들에게 당부 사항을 말하고 있었다.
“지대장님.”
외진 통솔자 강진수가 내게 헐레벌떡 달려왔다.
“교통정리는 거의 다 끝났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너희는 PC방에 가 있어. 나는 혼자 있을 테니까.”
“혼자 계시면 심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PC방도 지겹고 어차피 할 게임도 없는데, 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의무병들이야 산골짜기 GOP를 탈출해서 좋겠지만 나는 바깥에 나와도 별 감흥이 없었다.
본래 GOP 부대는 군의관이라도 퇴근을 할 수 없지만 요령껏 외출을 만끽할 수 있었다.
주말에는 집에 갈 수도 있었고.
“그래도 어떻게 지대장님만 두고 저희끼리…….”
“됐어, 난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진료 끝날 때쯤 로비에서 보자.”
나는 병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로비로 올라왔다. 그리고 길은 잃은 아이처럼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훑었다.
의무병끼리 재미있는 시간을 즐기라고 빠져 주기는 했다만…….
그렇다고 내가 시간을 때울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참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나는 이 상황이 갑자기 못내 우스웠다.
전생보다 더 나은 흉부외과의가 되기 위해.
전생에 허망하게 내 손을 떠났던 환자를 살리기 위해.
권력에 눈이 멀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동료 의사를 응징하기 위해.
나는 지금까지 시간을 쪼개 가며 아등바등 살아왔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라니…….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고.
노는 것도 놀아 본 놈이 논다는 말은 과연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권태에 빠져 치를 떠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지. 전전생에 나는 우직하게 일만 하는 소였을지도.’
결국 나는 기존에 먹고 있었던 마음을 180도 뒤집기로 했다.
-앞으로 고생할 걸 생각하면 군의관 시절이나마 편히 쉬자. 이 시기를 재충전의 시기로 삼자.
이런 느슨한 사고방식을 폐기 처분하고 능동적인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겐 그게 더 어울렸다.
군의관 생활을 하면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나는 병원을 내부를 어슬렁어슬렁 걸으면서 깊은 고뇌에 빠졌다.
나와 마주치는 병사들이 단결이나 충성 같은 구호를 붙이며 인사하는 것을 대충 받아 주면서.
그렇게 우연처럼, 운명처럼 도착한 곳은 서점이었다.
군 병원 내 서점은 5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었다.
몇 개 안 되는 진열대 위로 병사들이 좋아하는 잡지와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진열대로 다가가 책을 훑었다.
의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끄럽게도 단 한 권의 교양서적도 읽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조리 의학 서적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책 제목과 표지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아…….”
나도 모르게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감탄사.
처음 보는 이방인 중에 반가운 지인이 섞여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한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책 제목은 ‘먼 미래에 내가 그리워할 오늘’.
장르는 에세이.
저자는 이성훈이었는데, 나는 이성훈 씨와 피를 나눈 사이였다.
초라한 책방 주인에서 지금은 인기 소설가로 변모한 이성훈 씨의 정체는 바로 내 아버지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책을 발견한 순간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동시에 나는 아버지의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꼈다.
시간이 나면 꼭 읽어야지, 하고 결심했던 게 무려 10년째였다.
“좋은 책을 고르셨네요. 사도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책을 들고 계산대로 갔더니 인상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아버지의 책을 추켜세웠다.
괜히 내 어깨도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책을 구입한 나는 가까운 카페로 이동해 커피를 주문하고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에세이는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따뜻했으며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혜안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것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생에 실패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패란 여러분을 훈련시키기 위해 하늘이 내려 준 또 하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섰을 때 여러분은 한층 더 강해진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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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실패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실패입니다.]
실패에 대한 아버지의 글귀를 읽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꼭 아버지가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이 글을 쓴 것 같아서.
전생의 나는 내 재능을 뒤늦게 알아차렸으며 세상에 빛을 볼 때쯤에는 강태섭에게 신수술을 빼앗기고 말았다.
실로 바보 멍텅구리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전생의 삶은 마냥 실패가 아니었다.
그런 큰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 실패로 인해 나는 독기를 품었고, 1살부터 차근차근 의술 실력을 다졌다.
말로 사람을 요리하는 화술을 익혔으며 좋은 사람들을 동료로 삼기도 했다.
의료계의 암적인 존재들에게 통쾌한 반격을 날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전생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기며 후회하거나 고통받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아버지의 글을 읽고서 나는 그동안 미워했던 전생의 나와 화해하고 포옹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는 글이 주는 강력한 힘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의술로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글로도 충분히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돌고 돌아 도착한 생각의 종착지는 바로 나였다.
내가 글을 써 보면 어떨까.
흉부외과의 특징과 고충, 환자와의 감동적인 에피소드, 질병과 고군분투하는 외과의의 삶 등등.
이런 것들을 에세이로 적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물론 글을 잘 쓴다는 보장이 있어야겠지만 내가 쓴 글은 어쩌면 내가 집도하는 수술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제할지 몰랐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공감이 되고.
동료 흉부외과의에게는 힘이 되고.
세상 사람들이 흉부외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기폭제가 되고.
인력난에 허덕이는 흉부외과의에 예비 흉부외과의를 끌어모으는 효과가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읽고 있던 에세이를 덮고서 잠시 눈을 감았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만 했다고는 해도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군의관인 지금이야말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었으니까.
그래, 흉부외과를 주제로 에세이를 써 보자.
아버지의 피를 반쯤은 물려받았으니 내게도 글 쓰는 재주가 없지는 않겠지.
나는 내가 가야 하는, 내가 가고 싶은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 * *
엠뷸런스 뒷좌석에 타고 있던 군의관 손형운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시선은 엠뷸런스에 탑승한 1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한 병사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병사의 이름은 유원호.
관심 병사 중 한 명으로 GOP 초소 근무 중 끔찍한 총기 사고를 저질렀다.
자기 가슴에 대고 총질을 했던 것이다.
탕! 탕! 탕!
의무대와 가까운 초소에서 터진 사건이라서 그 당시의 서늘한 총성을 손형운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사건이 터지고서 대대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소문은 총성처럼 급속도로 퍼졌으며 사방에서 군의관인 그를 찾았다.
손형운은 부랴부랴 엠뷸런스를 타고 초소로 이동해 병사에게 응급 처치를 했다.
급벌집이 된 병사의 가슴을 붕대로 칭칭 감았고, 수액을 투여했다. 의무대에서 더 해 줄 수 있는 처치가 없었으므로 그는 곧바로 가장 가까운 군 병원으로 내달렸다.
“야, 유원호. 괜찮아?”
손형운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유원호의 뺨을 가볍게 두들겼다.
유원호는 죽은 듯 반응이 없었다.
‘추워요, 너무 아파요.’라며 고통을 호소하던 녀석이 끝내 의식을 잃고 만 것이다.
순간 손형운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유원호가 이승보다 저승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는 병사의 바이탈 사인을 측정했다.
체온은 35.5도.
혈압은 110/60mmHg, 맥박수는 분당 64회.
호흡수는 분당 20회.
총상에 당한 것치고는, 의식을 잃은 것치고는 활력 징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응급 수술만 제때 받을 수 있다면 유원호를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기대 반, 불안 반으로 도착한 국군 태극병원.
손형운은 병사보다 먼저 내려서 접수처로 향했다. 그런데 접수하는 병사 직원의 말이 가관이었다.
“그게… 죄송한데 응급 환자를 볼 수 있는 흉부외과 선생님이 없습니다.”
순간 손형운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서 호통을 쳤다.
“씨발, 장난해! 병원에 의사가 없으면 우물가에서 의사를 찾으라고!”
“죄송합니다. 흉부외과 정규 스케줄이 꽉 차 있을뿐더러 총상 환자를 치료할 경력 있는 분도 안 계셔서…….”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봤나. 국군 병원에서 총상 환자 치료를 못한다고? 국숫집에서 국수를 못한다는 거랑 똑같은 거 아니야?”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민간 대학 병원으로 가시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의 천둥 같은 분노에도 병사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흉부 총상 환자는 군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곧바로 민간 병원으로 가는 건데.
군 병원에서 총상 환자 치료를 못할 줄 낸들 알았단 말인가.
손형운은 심호흡하며 들끓어 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화를 낸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을 터이니.
“그럼 가장 가까운 민간 대학 병원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려?”
“그게… 2시간 정도…….”
“이런 씨발!”
간신히 억눌렀던 분노가 다시 활화산처럼 분출했다. 손형운은 제 분을 못 이겨 발로 벽을 걷어찼다.
너무 화가 나서 아픈 줄도 몰랐다.
“흉부 총상 환자를 2시간이나 방치하면 잘도 치료가 되겠다. 그치?”
“…죄송합니다.”
접수 병사의 사과에도 손형운은 계속 씩씩거렸다.
접수하는 직원에게 죄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울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어쩐다?
이대로라면 유원호는 이송 중에 죽고 말 텐데.
진퇴양난에 빠졌던 그는 가까스로 묘책을 생각해 냈다. 유원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 책임자 누구야? 책임자 얼굴 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