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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91화 (191/257)
  • 191화 제4장 군의관(1)

    투구꽃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아코니틴 성분이라는 성분을 들은 순간 고성우는 아차 싶었다.

    투구꽃이라면 독극물 테스트를 통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투구꽃을 검출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테스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테스트는 형사들이 사체의 독살 가능성을 염두했을 때 진행하곤 했다.

    이번 케이스처럼 형사들의 개입 없이 가족들이 부검을 원해서 할 경우는 예외였다.

    ‘하지만 어떻게…….’

    고성우는 눈을 깜빡이며 이믿음을 쳐다보았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이 보약은 어디서 났고, 이 보약에 투구꽃 성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등등.

    “일단 확인은 해 보겠어요. 결과가 나오는 동안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기다리던 바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교수님께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범균아! 손정균 씨 혈액 샘플 남은 걸로 2차 독극물 테스트 진행해라. 아코니틴 성분 검출 추가하고.”

    고성우는 레지던트에게 보약을 건넸다.

    거북이 무늬가 그려진 포장지 안에 황갈색 액체가 넘실거렸다.

    이 안에 투구꽃 성분이 섞였을 거라는 생각에 문득 등골이 오싹했다.

    그는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이믿음과 대화를 나눴다.

    이믿음의 입에서 나온 진실에 그는 잇따라 경악했다.

    백이면 백 자연사라고 말했을 손정균의 죽음에 불편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망자의 아내가 생명 보험금을 타기 위해 투구꽃 성분이 섞인 보약을 망자에게 먹였다는 것이다.

    이믿음도 그 보약을 먹어 보았다고 한다.

    퇴원 전 망자가 보약 몇 포를 건네주었던 덕분에.

    “한 포를 먹었는데도 심장이 엄청 뛰더군요. 한 번에 두 포에서 세 포를 먹었다면 심장마비가 발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이 선생이 느낀 증상을 남편이라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한 번은 먹는다고 쳐도 그다음부터는 먹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고성우는 이믿음의 의견에서 논리가 빈약한 부분을 발견하고 공격했다.

    손정균이 심계항진을 유발하는 보약을 계속 먹을 이유가 있었을까.

    그는 없다고 생각했다.

    “첫째로, 사랑하는 아내가 챙겨 주는 보약이니까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둘째는요?”

    “심박이 빨라지는 걸 일종의 자양강장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죠. 약효가 잘 들어서 힘이 솟는다고 말이죠.”

    이믿음은 퇴원 당일 손정균에게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를 근거로 내세웠다.

    -이거 진짜 엄청난 자양 강장제예요. 여기저기서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니까요.

    반론과 반박을 미리 준비한 것처럼 이믿음은 청산유수로 대답했다.

    고성우는 금방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대화의 주도권이 이믿음에게 넘어가면서 이믿음이 본인의 사연을 계속 이야기했다.

    망자와의 인연.

    병동을 찾아와 유족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또 진실 규명에 대한 부탁을 받았던 일.

    주제넘게 부검에 참석하고 싶다고 부탁한 일.

    바로 오늘 보약을 직접 먹어 본 일 등등.

    이번 사건을 유족만큼이나 진심으로 대하는 이믿음의 말을 들으며 고성우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부검의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선입견을 가지고 부검에 나섰다.

    환자는 급성 심장마비로 죽은 게 틀림없다고 단정 지었다.

    본의 아니게 망자의 편이 아닌 범인으로 확실시되는 아내의 편을 들었던 것이다.

    “내가 이 선생을 오해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하죠.”

    고성우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하마터면 망자와 유족분들께 몹쓸 짓을 저지를 뻔했군요.”

    “교수님의 탓이 아닙니다. 워낙 타살로 의심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니까요. 형사들은 아예 수사도 안 들어갔는걸요.”

    이믿음의 목소리는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고성우가 느끼고 있는 창피함과 죄책감을 넉넉히 감싸 안을 만큼.

    그래서일까.

    고성우는 고개를 들어 바라본 이믿음에게서 명의(名醫)의 연륜을 느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일이죠. 세상에는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일도 존재하니까요.”

    “허참, 누가 보면 이 선생이 교수고 내가 레지던트…….”

    벌컥!

    휴게실 문이 거칠게 열린 탓에 고성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니 천범균이 허리를 굽힌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녀석, 왜 그렇게 야단법석이야? 검사 결과 나오려면 몇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아코니틴 검출 검사만 따로 먼저 진행했는데…….”

    천범균이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사체의 혈액에서 정말 아코니틴이 검출됐습니다. 약재로 쓰는 양보다 10배는 더 많았습니다. 치사량입니다.”

    * * *

    사체의 혈액에서 투구꽃 성분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손정균이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만천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앞으로 많은 일이 생기고, 바뀌고, 뒤집히겠지.

    하지만 나는 그 소식을 직접 들으면서 마냥 기뻐할 수도, 마냥 슬퍼할 수도 없었다.

    진실이 밝혀진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독살당했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손정균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원하는 정보를 얻은 나는 고성우에게 인사하고 휴게실을 벗어났다.

    손정균의 아버지에게 바로 전화를 연결했다.

    -네, 선생님. 무슨 일로…….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풀 죽어 있었다.

    부검에서 밝혀진 것이 없어진 후로 그는 심한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형사들은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며 매스컴은 등을 돌렸고, 며느리는 기세가 등등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이제 그가 되었다.

    하지만 바람은 이미 바뀌었다.

    그 바람은 손정균의 아버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며 그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을 뒷걸음질 치게 만들 것이다.

    “아버님이 좋아하실 소식이 있습니다.”

    -그런 게 남아 있었던가요?

    “물론입니다. 깜짝 놀라실 준비부터 하세요.”

    나는 방금 전 드러난 사실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전했다.

    손정균이 투구꽃 섭취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진실을 알려 주었다.

    -하느님, 맙소사.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손정균의 아버지는 내가 눈앞에 있다면 절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다.

    제삼자인 나도 그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는데 손정균의 아버지는 오죽 힘들었을까.

    나는 그에게서 동질감과 전우애를 함께 느꼈다.

    “오늘 저녁쯤에 병원으로 오시겠습니까? 전해 드릴 것도 있고, 함께 이야기 나눌 것도 있어서요.”

    -당연히 가야죠. 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정균이의 혼은 구천을 떠돌았을 겁니다.

    “별말씀을요. 이따가 뵙겠습니다.”

    손정균의 아버지와 약속을 잡은 후 나는 통화를 끊고 병동으로 돌아갔다.

    억울한 죽음을 밝혔다고 해서 사건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더 중요한 일이 남았다.

    비정하고 악랄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남편을 독살한 이혜연.

    그녀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는 일이었다.

    * * *

    저벅. 저벅.

    복도를 가로지르는 구두 소리가 요란했다.

    이혜연은 의무기록 사본을 발급받기 위해 지하 1층에 위치한 의무기록 사본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깃털을 단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

    그녀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마저 감돌았다.

    결국 모든 것이 이혜연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시아버지가 쓸데없이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녀 귀찮았지만 그럼에도 남편은 병사 처리되었다.

    부검이 그녀의 손을 번쩍 들어 주었던 덕분이었다.

    암, 당연히 그래야지.

    독극물 테스트에 잘 안 걸리는 독극물을 찾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10억 원 상당의 생명 보험금이 곧 손에 들어온다는 사실에 이혜연은 아이처럼 들떴다.

    딱 한 달 정도만 더 남편을 애도하는 척하자.

    그다음 곧바로 내연남과 해외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접수증을 뽑고 이혜연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모든 준비가 끝났으므로 이제 서류만 받아서 가면 그만이었다.

    “141번 고객님.”

    “네, 갑니다.”

    이혜연은 기꺼이 창구로 이동했다.

    직원에게 본인의 신분증과 혼인 관계 증명서 등등을 내밀었다.

    그런데 창구 직원은 일 처리를 안 하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보험회사에서 가져오라고 했던 건 다 가져왔는데.”

    “그게… 전산에 잠깐 오류가 생겨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앉아서 잠깐만 더 대기해 주시겠어요?”

    “…….”

    “전산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고객님 의무기록부터 발급해 드릴게요.”

    “그러세요.”

    이혜연은 빙그레 웃으며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평소라면 얼굴을 붉혀 가며 말싸움을 했겠지만 오늘처럼 좋은 날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이상하긴 하네.’

    근 10분 정도 기다렸을 때 이혜연의 가슴에서 의문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전산에 오류가 났다면 다른 사람들도 서류 발급을 못 받는 게 맞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잘만 서류를 떼어 갔고, 이혜연의 업무만 밀려 있었다.

    마치 일부러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창구직원에게 따지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의사 가운을 입은 사내가 그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키.

    사내의 정체는 남편이 입원했을 때 주치의를 맡았던 흉부외과 의사였다.

    이름이 특이해서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믿음이라고 했던가?

    “선생님, 안녕하세요. 여기는 어쩐 일로…….”

    “발급하시려는 서류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주셔야 할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셨거든요.”

    “…….”

    “조금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에 제가 직접 연락받고 왔습니다.”

    “…….”

    “아무래도 제가 남편분 주치의였고, 퇴원 당일에 변고를 당하기도 하셨고.”

    이믿음의 말이 제법 그럴듯하게 들려서 이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이믿음이 구구절절 사죄의 뜻을 전했다.

    본인이 꼼꼼하지 못해 남편이 죽었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 잘난 의사가 자신에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서 이혜연은 쾌감을 느꼈다.

    하긴, 의사라고 뭐 대단할 것 있나.

    넓게 보면 서비스직의 한 종류일 뿐인데.

    그녀는 충분히 우월감을 맛보고서 이믿음을 돌려보내려 했다.

    의무기록실에서 무려 30분을 지체하지 않았던가. 이젠 서류를 발급받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믿음의 눈빛이 섬뜩하게 변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나긋나긋했던 목소리와 말투는 삽시간에 사나워졌다.

    “아주 좋아 죽겠지? 보험금 탈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들썩할 거야.”

    “저… 저기요. 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이혜연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래서 본래 화를 내야 하는 상황임에도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서류 발급이 제때 안 되는 것도.

    흉부외과의사가 의무기록실까지 내려온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냄새를 맡은 이혜연이 의무기록실을 벗어나려 하자 이믿음이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도망치시려고. 정 가고 싶으면 이거라도 한 잔하던가.”

    이믿음이 가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보약이었다.

    그녀가 남편에게 먹였던, 투구꽃 성분이 들어간 보약.

    저게 어떻게 이믿음 손에 있는 거지?

    순간 손발이 차갑게 식고 오금이 저려 왔다.

    이대로라면 한 달 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멋진 해외여행지가 아니라 구치소가 될 판국이었다.

    “저기요! 여기 좀 도와주세요! 이상한 의사가 저를 희롱하려고 해요.”

    이혜연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자 이믿음이 씨익 웃으며 엄지로 본인의 등 뒤를 가리켰다.

    사복을 입은 사내들이 앞다투어 기록실로 달려오고 있었다.

    사내들의 정체를 모를 리 없는 이혜연이었다.

    그녀는 절망에 빠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이믿음의 저주가 흘러들어 왔다.

    “이 악마야, 곧 죗값을 치르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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