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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88화 (188/257)
  • 188화 제3장 어둠을 먹는 꽃(3)

    충격에 휩싸인 나는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손정균의 죽음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현실이 아닌 꿈을 경험하고 있나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후 손정균의 부모에게 물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여태까지 우리 아들이 죽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이런 형편없는 사람이 우리 정균이를 치료했다니…….”

    아내는 통곡하는 목소리로 나를 원망하기만 했다.

    반면 남편은 아까부터 한마디도 없이 슬퍼하는 아내를 위로만 하고 있었다.

    아내와는 생각이 다른 걸까.

    아니면 원래 점잖은 성격이라 나를 대놓고 비난하지 못하는 걸까.

    어쨌거나 차분한 남편을 통해 나는 사건의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손정균의 죽음.

    그 비극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시간 전인 오후 7시에 벌어졌다고 한다.

    부부는 저녁 식사를 하고 쉬는 도중 며느리의 급박한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119 구급차를 타고 대형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신원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향한 노부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큰아들의 죽음이었다.

    “우리 아들이 죽었다면 퇴원 당일에 죽었다면 범인이 당신 말고 또 있겠어요? 내 말이 틀렸어요?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손정균의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맹렬하게 살인자 취급하고 있었으나 나는 별로 상처를 받지 않았다.

    의학을 모르는 그녀의 입장에선 나를 원망할 만한 상황이었다.

    아들을 허망하게 잃은 탓에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하지만 이제는 오해를 풀 때가 되었다.

    오해란 오해를 하는 쪽에서도, 오해를 받는 쪽에서도 피곤한 법이니까.

    “어머님.”

    “내가 왜 당신 어머님이에요?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말아요.”

    “저기 복도를 한 바퀴만 돌고 오세요. 마음을 조금만 가라앉히고 오시면 제가 다 설명 드릴게요.”

    “왜요? 그사이 도망치려고요?”

    “정 못미더우시면 아버님은 여기 남기시고 어머님만 돌고 오세요.”

    손정균의 어머니는 그제야 안심한 기색을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오겠다며.

    “아이구,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 사람이 워낙 다혈질에 막무가내라 제가 막지를 못했습니다.”

    손정균의 아버지는 손정균의 어머니와는 180도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내가 너무 슬퍼서 그런 것이니 무례를 이해해 달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아버님은 여전히 차분하시네요. 저를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드십니까?”

    나는 손정균의 아버지에게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행동과 태도를 놓고 봤을 때 수상한 쪽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그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고작 2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몇십 년 전에 아들을 잃은 것처럼 무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점이 오히려 미심쩍었다.

    “저는 아들을 죽인 사람이 선생님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범인은 누구죠?”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면 선생님만 혼란스러울 테니까요.”

    확실히 아버지 쪽에서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모양인데?

    호기심을 뒤로하고 나는 손정균의 아버지를 근처 벤치에 앉힌 뒤 음료를 권했다.

    그리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그토록 확인하고 싶었던 손정균의 차트를 살피기 시작했다.

    손정균의 어머니를 멀찌감치 떨어트린 이유.

    그것도 사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차트 리딩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장 먼저 살핀 것은 당연히 응급 기록지였다.

    응급 기록지란 응급실에서 응급의학의가 작성하는 차트로,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하게 된 계기부터 증상과 병명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응급기록지에서 건질 만한 내용은 없었다.

    내 눈에 띄는 내용도 딱 하나뿐이었다.

    -도착 시 상태: DOA(Death On Arrival, 도착 시 사망)

    손정균은 응급실에서 채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사망했던 것이다.

    더불어 사망 원인으로는 급성 심장마비가 추정된다는 사실.

    육안으로 관찰한 결과 외상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응급의학의의 소견이 존재했다.

    급성 심장마비라…….

    나는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해는 가는 사망 원인이었다.

    급성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흔하게 발생했다.

    먼 미래에 CPR 교육이 활성화하고 제세동기를 주요 거점에 배치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의혹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아주 조그만 의혹의 가시가 가슴에 박혀 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바로 119 구조대원에 관한 것이었다.

    119 구조대원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도 손정균은 이미 죽어 있는 상태였을까.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신고만 빨리 됐다면 구조대원이 출동해서 환자를 살렸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최대한 손정균 아버지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며 해당 사실을 물었다.

    손정균 아버지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그건 저도 모릅니다. 며느리의 전화를 받고 응급실에 달려갔으니까요. 며느리에게 물어봐서… 아니, 제가 119 구조 기록지를 얻어서 알려 드리죠.”

    “…….”

    “음료수는 잘 마셨습니다.”

    나는 스테이션으로 다가온 손정균의 아버지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때마침 손정균의 어머니가 건너편 복도에서 스테이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 보호자분,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요.”

    “호락호락 넘어가진 않을 것 같은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 선생님, 너무 고생하신다.”

    스테이션 간호사들이 나를 걱정해 주었지만 나는 오히려 간호사들을 안심시켰다.

    “아무리 늦어도 30분이면 끝날 거예요. 제 쪽은 신경 쓰지 말고 선생님들 일에 집중하세요.”

    “저 보호자분 보통내기 아니잖아요. 제아무리 이 선생님이라도 감당하기 힘드실 것 같은데…….”

    “보통내기가 아닌 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나는 다가오는 손정균의 어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 * *

    30분 후.

    “아이고.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아들이 객사를 하는 바람에 이성을 잃어버려서 그만.”

    손정균의 어머니는 어느새 나를 향해 굽실굽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전생에서 만렙을 찍었던 보호자 다루기 기술이 효과를 본 것이다.

    흥분한 보호자를 다루는 요령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었다.

    첫째로 보호자에게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주기.

    두 번째는 보호자의 말을 경청하기.

    세 번째 보호자의 눈높이에서 말하기.

    이 세 가지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허리에 위치한 두 번째 단계였다.

    남의 말을 듣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고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

    누군가는 그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 보면 안다, 남의 말을 듣는 일이 생각보다 실천하기 힘들다는 것을.

    특히 지금의 나처럼 억울하게 환자 살해범으로 몰린 상황이라면 더더욱.

    손정균의 어머니가 복귀한 이후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또 들었다.

    그녀가 오해하고 있는 점을 딱 꼬집어서 지적하고 싶은 욕망을 힘겹게 참으면서.

    왜냐고?

    그녀의 가슴에 쌓인 울분이 다 쏟아지지 않으면 내가 위대한 웅변가처럼 말한다고 해도 그녀가 내 말을 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을 사람이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

    이것이 흥분한 보호자를 소화하는, 나만의 특급 비법이었다.

    “이제 제가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자기 감정을 한껏 쏟아 낸 것만으로도 손정균의 어머니는 벌써 편안해 보였다.

    “환자분은 심장에 이상이 있어서 입원한 게 아닙니다. 폐에 문제가 있어서 폐 수술을 받으셨죠.”

    “…네.”

    “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수술 후 촬영한 검사 결과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요.”

    “그러니까 정균이가 받은 폐 수술하고, 오늘 심장마비로 쓰러진 건 연관이 없다는 거죠?”

    “보호자분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보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녀가 내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느끼면서.

    “정 제가 못 미더우시다면 의무 기록을 떼어서 다른 큰 병원 의사님께 자문을 구하셔도 좋습니다.”

    “…….”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다며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아드님이 돌아가신 것에 진심으로 애도와 위로를 표합니다.”

    나는 손정균의 어머니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정확히 30분의 대화로 손정균 어머니는 내게 마음을 열었다.

    본인의 실례를 인정하고 오히려 내게 용서를 구했다.

    오해가 모두 풀리고 나니 오히려 할 말이 없어졌다. 나와 노부부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선생님.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손정균의 어머니가 먼저 등을 보였다.

    하지만 손정균의 아버지는 나와 긴히 할 말이 있다며 자리에 남았다.

    “선생님 시간을 너무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아까 못한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드디어 올 것이 오는구나.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정균의 어머니와 달리 손정균의 아버지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네, 말씀하세요.”

    “어쩌면 저희 아들은 자연사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충격적인 말에 나는 눈만 깜빡거렸다.

    그럼 손정균은 자연사가 아니라 타살이라는 뜻인가.

    하지만 타인에게 급성 심장마비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그랬다면 지구상에 인류는 남아나지 않았을 테니까.

    “역시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시는군요.”

    그의 눈빛은 체념한 듯했으며 그의 목소리는 푹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저는 며느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며느리요? 며느리분은 아드님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깨가 쏟아지는 모습이었고요.”

    나는 손정균 아버지의 의견에 정확히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았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했다.

    오늘 오전만 해도 두 사람이 뽀뽀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봤으니까.

    두 사람은 평소에도 병동에서 소문난 잉꼬부부이기도 했고.

    “사람 사이야 겉으로만 봐서는 모르는 일이죠.”

    손정균의 아버지가 이맛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두 달 전 아들놈이 우리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냐고 했더니 근처에서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군요.”

    “…….”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보험을 들었다고 했어요.”

    손정균 아버지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들과 식사를 마친 후 아들이 거실에서 TV를 볼 때.

    그는 몰래 아들의 서류 봉투를 살폈는데, 봉투 안에 든 것은 생명 보험 가입 증서였다.

    놀랍게도 보험 증서는 한 개도 아닌 세 개였고, 수익자는 전부 며느리였단다.

    사망하기 전에 가입한 세 개의 생명 보험이라…….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확실히 수상하고 구린 냄새가 풍기긴 했다. 그 타이밍이 지나치게 완벽했으므로.

    그럼에도 나는 그의 의견에 섣불리 손을 들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의학 지식 안에서 타인에게 급성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과연 손정균은 자연사한 것일까.

    생명 보험은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아니면 아버지의 주장대로 그 죽음 뒤에는 보험금을 노린 교묘한 살의가 숨어 있을까.

    나조차 어느 한쪽을 확신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혹시 경찰에게는 말씀해 보셨습니까?”

    “당연히 했죠. 경찰들은 엄청 짜증을 내더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거냐고 말이죠.”

    “…….”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이제 선생님도 짐작하실 겁니다.”

    손정균의 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본인의 손으로 내 손을 와락 감싸 쥐었다.

    “제가 기댈 곳은 오로지 선생님뿐입니다. 부디 정균이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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