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3장 어둠을 먹는 꽃(1)
“넌 진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다양한 욕들을 김호는 간신히 집어삼켰다.
이믿음의 수준이라면 OPCAB의 고정기를 더 압박해도 수술 성공률이 낮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믿음은 오히려 고정기의 압박을 느슨하게 만들어서 심장이 미쳐 날뛰도록 했다.
본인이 천재라는 사실을 믿고 객기를 부린 것이다.
‘빌어먹을… 하늘도 무심하시지.’
차마 이믿음을 원망할 수 없어서, 지금 집도하는 이믿음을 꾸짖으면 수술에 영향이 가기에 김호는 대신 하늘을 원망했다.
하늘이 너무 야속했다.
우 관상동맥.
단 한 장소의 문합을 남겨 두고 하필이면 주로 쓰는 오른손을 다치게 하다니…….
“지금부터 문합 진행하겠습니다.”
이믿음의 말에 김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머리카락보다 딱 두 배 굵은 4-0 Prolene(봉합사)을 준비해서 이믿음에게 건넸다.
“과장님, 어시스트를 안 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손을 다치셨는데…….”
봉합사를 건네받으면서 이믿음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김호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 순간이 무척 우습다고, 김호는 문득 생각했다.
이믿음은 자신의 다친 손을 걱정하고, 자신은 이믿음이 OPCAB 집도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정교하게 손을 움직일 때만 문제가 있을 뿐이야. 이 정도 어시스트는 문제없어.”
“최선을 다할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구나.”
이믿음이 니들홀더로 봉합사를 쥐고 우 관상동맥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합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불길하게 문제가 터졌으니…….
제1 어시스트로 들어간 유지은이 우회로 혈관을 제대로 고정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치프, 심장 박동 때문에 제 손도 같이 떨려요. 혈관 고정을 못 시키겠어요.”
유지은의 눈빛은 어느새 울상이 되어 있었다.
응급 상황에서 동료들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믿음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심외막 고정기를 예전 상태로 돌려놓거라.”
“…….”
“그래야 지은이도 제대로 어시스트를 할 수 있단다.”
모처럼 발언 기회를 잡은 김호가 이믿음을 한 번 더 설득했지만 이믿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수술 후 저혈압과 저심박출량 때문에 강심제를 계속 사용했고, 그 결과 강심제의 허용량은 한도를 초과했습니다.”
“…….”
“강심제를 더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심장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은 고정기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네가 무슨 말하는지 나도 안다.”
김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의사가 어떻게 매번 최선의 길만 걸을 수 있겠니?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선택할 줄 알아야지.”
“기왕 저를 믿기로 하셨으니 부디 끝까지 저를 믿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과장임에도 이믿음은 뒤로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양보하지 않았다.
그가 뒷걸음질 치면 환자가 죽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이태선 신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믿음이 전생에서 갈고닦은 OPCAB 실력과 노하우를 남김없이 발휘하는 것.
“지은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너 정도면 오히려 잘하고 있어.”
이믿음을 어쩔 줄 모르는 유지은을 어르고 달래며 말을 이었다.
“심장 때문에 손이 엄청 떨리고 있잖아. 그치?”
“네, 미칠 지경이에요. 처음에는 심장 때문에 손이 떨리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제 손도 덩달아 진짜 떨리고 있어요.”
“괜찮다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떨어. 어때? 그건 할 수 있겠지?”
이믿음의 파격적인 제안에 유지은의 눈동자가 부엉이처럼 휘둥그레졌다.
아니, 손을 떨어도 된다고?
손을 떨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치프, 지금 장난칠 상황이 아니잖아요. 과장님은 손을 다치셨고 환자는 VIP라고요.”
“…….”
“얼마 전에 신원그룹 막내아들이 병문안도 왔다는데… 아까부터 너무 진지하지 못한 거 아니에요?”
이믿음의 조언을 터무니없다고 여긴 유지은이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이믿음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럼 혈관이나 제대로 홀딩(Holding)하든가.”
“…….”
“뭐야, 치사하게 입 꽉 다물고 있기야? 지은이 네가, 네 능력 바깥의 일을 맡게 됐으니까 도움을 주려는 거 몰라?”
꾸짖음에 뒤이어 설명이 이어졌다.
이믿음이 유지은에게 지금처럼만 손을 떨라고 했던 이유.
그것은 손을 떨더라도 그 떨림이 규칙적이라면 이믿음이 그 규칙을 이용해서 문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믿음의 논리적인 설명에도 스태프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게 정말 가능해?
스태프들은 말만 안 했을 뿐 다들 그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쯤 되면 빨리 문합술을 선보여야겠다고 이믿음은 결심했다.
소중한 시간을 더 이상 허비할 순 없었다.
“치프, 이 정도면 될까요?”
유지은이 아까보다 누그러진 목소리로 이믿음의 의견을 구했다.
“됐어, 딱 좋아. 떨면 안 된다는 부담감은 갖지 말고 지금처럼만 떨면 된다는 느낌을 유지해. 알았지? 너라면 할 수 있어.”
“네, 치프.”
맵고 쓴 과정을 지나 드디어 첫발을 내딛게 된 OPCAB.
이믿음은 자신만의 독특한 OPCAB 요령을 펼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심장 박자 파악하기.
그는 수술대 아래에 놓인 자신 오른발을 까딱거렸는데, 그 잔망스러운 발재간은 어느새 심장 박자와 하나가 되었다.
탁. 탁. 탁.
쿵. 쿵. 쿵.
두 번째는 문합할 혈관을 쥐고 있는 유지은의 손이 떨리는 박자 파악하기.
타다다닥. 타다다닥.
‘지은이의 손이 심장보다 박자가 빠르구나. 지은이의 손이 떨리고 그 뒤에 심장이 뛰니까, 중간 지점에서 문합하면 되겠어.’
수술에 필요한 박자를 완벽하게 꿰뚫은 이믿음이 문합에 나섰다.
모든 스태프가 우려하는 상황 속에서.
끼기기긱, 찰칵.
끼기기긱, 찰칵.
봉합사로 니들홀더를 조이는 소리, 수술용 가위로 매듭을 자르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퍼졌다.
수술방 안에 있는 스태프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편히 내지 못했다.
심장 혈관을 문합하는 중차대한 과정 아닌가.
혹여 한 사람의 부주의로 인해 집도의인 이믿음의 신경이 분산된다면 수술은 망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 이게 정말 가능했단 말이야?’
이믿음을 지켜보던 김호는 혀를 내둘렀다.
고정기가 느슨해지면서 폭주 기관차처럼 뛰고 있는 심장.
제1 보조가 OPCAB 처음인 3년 차의 어시스트.
악재라는 악재를 모두 겪고 있음에도 이믿음은 꿋꿋하게 문합을 진행했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이믿음의 박자 감각이었다.
심장에 손을 대야 할 때와 대지 않아야 할 때를 기가 막히게 알고 있었다.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워낙 좋기 때문일까.
문합 완성도 또한 굉장했다.
운침 도중 힘 조절을 잘못해 바늘로 혈관을 찢어 버린다거나.
봉합사를 너무 세게 잡아당겨 혈관이 쪼그라지거나.
반대로 겁먹고 봉합사를 너무 약하게 잡아당겨 혈관에 제대로 압력을 못 주거나.
매듭이 어설퍼 봉합사가 중간에 풀린다거나 등등.
OPCAB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이믿음은 미꾸라지처럼 피해 갔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쯤 되면 김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하긴 하지만 자신보다 이믿음의 OPCAB 솜씨가 한 수, 아니 세 수는 위라는 것을.
“과장님, 마지막 매듭 잘라 주시겠습니까?”
“어? 그래야지.”
매듭을 자르기 전 김호는 이믿음이 문합한 관상동맥과 우회혈관을 꼼꼼하게 훑었다.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퍼펙트.
찰칵!
가위질을 끝으로 OPCAB은 그 길고 험난했던 여정의 종장을 찍었다.
남은 것은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커튼콜 같은 시간이었다.
수술 부위를 닫으면서 스태프들끼리 수술을 복기하는 시간 말이다.
생리수를 사용한 혈관 환류 테스트가 무사히 끝나고, 스태프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부담 없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총 수술 시간 4시간 30분.
마취 시간 4시간.
중간에 환자의 급성 심장마비와 집도의의 손 부상이 있었음에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 *
그 날 새벽, 중환자실.
나는 등받이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 이태선 신부를 지키고 있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킵(Keep)한다고 부르는 행동이었다.
의사가 중증 환자 또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직접 감시하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각 대처하는 것이 킵이었다.
킵을 하는 이유라면 단 하나.
전생의 이태선 신부가 수술 도중이 아니라 수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때야 수술이 OPCAB(무인공 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이 아닌 CABG(관상동맥 우회술)이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채 가시지 않아 킵을 진행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마음으로 말이다.
어쨌거나 수술 후 이태선 신부의 상태는 꾸준하게 양호했다.
저녁 식사쯤에는 의식을 되찾아서 짧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과연 공을 들여 OPCAB을 실시한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하아아아암.
잠든 이태선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할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잊고 있었던 피로가 들이닥쳤다.
오늘 오전에 OPCAB을 한 후로도 수술 스케줄에 치여 살다시피 했다.
정규 수술 스케줄만 무려 세 개나 들어갔으며 밤 8시쯤에는 응급실을 통해 들어온 T.A(Traffic accident, 교통사고) 환자를 직접 집도했다.
횡격막이 파열된 환자로 모처럼 폐·식도 파트의 수술을 소화하기도 했다.
몰려오는 피로와 잠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갈수록 깊어 가는 새벽.
중환자실은 거룩할 정도로 고요했다.
죽음에는 낮과 밤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벽 시간에 이만큼 조용하다는 것도 특별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조용함은 이태선 신부에게 별일이 없을 거라는 징조다.
나는 멋대로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이태선의 곁을 지켜보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었기에 나는 오전에 있었던 OPCAB을 복기했다.
예상치 못한 난관을 겪었다만, 수술은 성공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수술이 끝난 후 김호는 나를 치켜세우기 바빴고, 지은이는 내 광팬을 자처했다.
주변의 칭찬이 쏟아졌지만 나는 우쭐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이 얻지 못한, 회귀라는 기적 같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주사위 하나를 굴릴 때 나는 주사위 두 개를 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겸손한 마음으로 환자를 살리는 일에.
전생에 빗나갔던 인생을 되돌리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한 번 도전해 볼까?’
그렇게 생각은 돌고 돌다가 낮에 떠올린 획기적인 수술법에 머물렀다.
이름하여 NOPCAB.
인공 심폐기도 No.
심외막 고정기도 No.
심장에 부담을 주거나 회복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완전히 제거한 CABG를 펼쳐 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외과의에겐 잠꼬대처럼 허망하게 들린 발상이었지만 내겐 아니었다.
다른 외과의는 몰라도 최소한 나라면 NOPCAB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재 양손의 감각은 전생보다 몇 배는 더 예민했다.
무아경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깨우치기도 했으며.
전생에 갖지 못했던 위기 대처 능력과 스태프 관리 능력까지 보유한 나였다.
NOPCAB이라…….
재미있는 도전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