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2장 살아야 하는 사람(5)
“일단 노르에피네프린 1 앰플 수액에 믹스해 주세요. 30분 간격으로 PRN(필요시마다)입니다.”
김호가 강심제 오더를 내리는 동안 나는 환자의 심장을 살펴보았다.
혹시나 주요 혈관 또는 모세 혈관이 파열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광학 안경을 쓴 상태로 꼼꼼하게 훑었으나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쫄 필요 없어. CABG이나 OPCAB에서 저혈압과 저심박출량은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니까.”
김호가 나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확실히 그의 말이 옳기는 했다.
애초에 관상동맥이 막혀서 심장 혈류가 원활하지 않은 데다가 환자의 심장은 심외막 고정기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상태가 겹친 만큼 활력징후가 불안정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길한 예감이 드는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환자의 저혈압과 저심박출량 수치가 다른 환자의 평균보다 훨씬 낮아서일까.
아니면 단순한 기우일까.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합시다. 본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검객 김호의 기합과 함께 OPCAB의 여정.
문합해야 할 관상동맥은 총 세 곳인데, 그중 좌전하행지 중 한 곳이 첫 번째 결전지로 선택되었다.
좌전하행지는 좌심실 하단부에 위치하며 혈관이 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것이 특징이었다.
나는 혈관 포셉을 손에 쥐고 혈관포셉으로 아까 채취한 내흉동맥을 살포시 쥐었다.
‘다 잊고 지금에 최선을 다하자.’
이제부터 혈관 문합술 어시스트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환자의 저혈압과 저심박출량에 관한 걱정은 잠시 잊기로 했다.
OPCAB은 딴생각을 하면서도 소화할 수 있는 만만한 수술이 아니었다.
나는 조심조심 내흉동맥을 좌전하행지에 갖다 대었다.
지금부터는 힘 조절이 관건이었다.
혈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면 자칫 혈관이 터지고 만다.
전생의 나는 이미 CABG 도중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환자에게 갑작스런 심정지가 왔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포셉으로 쥐고 있던 혈관을 너무 세게 누른 것이다.
그 탓에 혈관이 팍 터져 버렸다.
새 혈관을 찾고 또 채취하느라 개고생했고, 집도의에게 쌍욕도 들었지.
이번 생에서는 결코 전생에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내가 혈관을 고정시키자 김호가 문합을 시작했다.
김호의 손놀림은 꼼꼼하면서 정확했다.
심장이 계속 박동하고 있음에도 그 박동에 맞춰 혈관을 꿰매어 나갔다.
과거 검객이라 불렸던 그의 손은 아직 녹슬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정도 실력을 갖추고도 지금까지 수술 걱정을 했다는 게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시스트 아주 잘하고 있다. 지금 상태만 유지해도 좋겠어.”
김호가 혈관 문합을 하던 도중 불쑥 나를 칭찬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내 어시스트가 얼마나 뛰어난지 김호는 알고 있었다.
포셉으로 쥐고 있는 혈관을 꿰맬 부위에 갖다 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
누군가는 내 역할을 그렇게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심장이 정지한 상태가 아닌 박동하는 상태라면.
심장 박동 때문에 손이 움직이고.
손이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손으로 쥐고 있는 혈관의 위치도 움직이게 되고.
그렇게 모든 것이 움직이다 보면 어떻게 될까.
급기야 봉합해야 하는 부위의 위치가 변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비극을 묵묵하게 원천 봉쇄하는 사람이 나였다.
쿵. 쿵. 쿵.
심장이 뛸 때마다 내 손도 오르락내리락하긴 했지만 결코 처음 위치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는 내가 너에게 해야지. 내가 너보다 어렸으면 벌써 몇 번이라도 절을 올렸을 거다.”
김호가 수술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농담을 던졌다.
그만큼 긴장이 풀리고 여유를 되찾았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를 무척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위기가 닥쳤을 때 긴장을 풀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긴장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김호라면 말할 것도 없이 전자의 사람이었다.
순풍을 받아 순조롭게 나아가는 OPCAB.
수술은 어느덧 종장에 다다랐다.
좌전하행지와 좌회선 동맥의 문합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우관상동맥 상지와 우 내흉동맥을 이어 주는 일뿐이었다.
전생에 CABG 후유증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던 이태선.
그가 전생과 같은 패턴으로 목숨을 잃은 참극은 벌어 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생이란 얄궂고 야박하고 혹독한 것이었다.
“아…….”
다음 처치를 준비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금까지 스태프와 함께 열심히 달려왔던 심장이 멎어 버렸던 것이다.
순간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았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는 다급한 알림을 연신 토해 냈고, 모니터 속 심정지 그래프는 태업을 선언하겠다는 듯 바닥에 일자로 누워 있었다.
스태프 전원이 얼어 버린 상황.
이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 사람은 나였다.
“과장님, 저는 개흉 심장 마사지를 하겠습니다. 다른 스태프들에게 오더를!”
내 쩌렁쩌렁한 외침에 얼음이 깨지고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김호가 뭐라 뭐라 오더를 내렸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내 눈에는 박동을 멈춘 심장만 보였다.
내 귀에는 심장을 다시 뛰게 해야 한다는,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만 들렸다.
끼리리릭. 끼리리릭
심장을 옥죄고 있던 심외막 고정기부터 벗긴 후 나는 이태선 신부의 심장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었다.
심장에서 전해지는 온기로 손바닥이 따뜻해졌다.
나는 적당한 힘을 실어 심장을 손으로 주물렀다.
내가 손으로 만들어 낸 압력으로 심장이 전신에 혈액을 보내도록 유도했다.
개흉 마사지에 꼭 필요한 리듬과 힘 조절을 나는 기가 막히게 소화했다.
껍데기만 레지던트 4년 차일 뿐 그 속은 백전노장인 흉부외과 부교수였으니까.
내 손안에서, 내 손아귀의 힘으로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제세동기 준비됐어요, 선배. 잠깐 나오세요.”
“알았어.”
지은이가 젤을 바른 패드를 환자의 가슴 근처에 얹었다.
쿵!
전류가 발생하면서 환자의 몸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수술대가 심하게 들썩거릴 정도였다.
내가 펼치는 개흉 심장 마사지.
거기에 지은이의 제세동기 사용.
마지막으로 김호 과장의 오더로 들어간 응급 약물들.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서 환자의 심장은 근 5분 만에 정상 리듬을 찾았다.
“휴,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지은이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도, 아마 김호 과장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심장마비가 워낙 갑작스럽게 찾아왔으니까.
“선생님, 이거 어떻게 된 거죠?”
나는 마취의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술 중 바이탈 사인을 관리하는 건 마취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저혈압과 저심박출량 증상이 계속 있었고, 그걸 강심제로 극복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요?”
“강심제를 지속적으로 과다하게 사용해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일단 노르에피네프린은 앞으로 더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방금 심정지 때 사용한 걸로 허용량을 훌쩍 넘어 버려서.”
마취의의 노티에 수술방 분위기는 모처럼 어두워졌다.
OPCAB 수술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유용하게 쓰이는 약물이 노르에피네프린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노르에피네프린을 사용해야 하는 응급 상황이 없어야겠네요?”
“네, 힘드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기왕이면 수술 시간도 좀 더 단축할 수 있다면 좋겠고요.”
내 질문에 마취의가 괜히 미안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재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보고야 말았다.
김호의 손등에 길게 찢어진 상처가 있는 것을. 수술용 장갑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핏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과장님, 손 다치셨습니까?”
“응급 처치 도중에 드레싱 카트가 밀렸는데 그때 메스가 떨어지면서 내 손을…….”
“…….”
“그것도 하필이면 오른손을…….”
김호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수술용 장갑을 갈아 끼고 김호의 상처부터 살폈다.
상처의 길이는 2센티 정도 되었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봉합이 필요한 것 같았다.
“으으으윽!”
상처를 소독할 때 김호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흘렀다.
그는 간단한 처치를 받고 손을 움직였는데, 그때마다 미간은 좁아지고 이마에 주름이 번졌다.
손을 움직이기만 해도 통증이 있는 모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밖에…….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벌어질 테니까.
“교수님, 제가 손을 봉합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순식간에, 그리고 완벽하게 김호의 오른손을 봉합했다.
“봉합을 잘해서 손은 움직이기 편해졌다만… 통증과 불편감은 여전히 남아 있어.”
“…….”
“이 상태로 OPCAB을 속행하는 건 무리야.”
김호가 전하는 절망적인 소식에 스태프들의 낯은 일제히 먹빛을 띠었다.
OPCAB 완성까지 딱 한 걸음이 남았거늘, 그 한 걸음을 채우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과장님, 제가 OPCAB 가능한 교수님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지은이가 나섰지만 김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OPCAB 가능한 교수는 윤 교수 정도밖에 없단다. 그나마도 오늘 지방 세미나에 참석해서 자리에 없고.”
“그러면 다른 교수에게 부탁하면 안 될까요?”
“CABG를 잘하는 교수들은 많아도 OPCAB을 잘하는 교수는 많지 않아. 설령 호출한다고 해도 OPCAB 연습이 안 된 상태라서 도움이 되지 않을 테고.”
“그런…….”
유일한 희망이 꺼져 버리면서 수술방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이 분위기를 만회할 사람은 나밖에 없기에 나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교수님, OPCAB 마무리, 제가 하겠습니다.”
“믿음이 네가? 네 마음은 알겠고 네 실력도 알겠지만 그건 무리야. 교수 자리에 오른 다음 1, 2년 동안 OPCAB만 파도 OPCAB이 힘든 마당인데.”
“…….”
“몇 주 동안 잠깐 연습했다고 그게 되겠니?”
“그렇다고 이대로 수술을 중단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
“다른 병원에서 OPCAB이 가능한 흉부외과를 모셔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나는 김호의 정곡을 찔렀다. 동시에 지금 김호가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는 나뿐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빨리 내게 수술을 맡겼으면 좋겠는데…….
이러는 동안에도 아까운 수술 시간은 계속 낭비되고 있는데…….
나는 벽에 걸린 수술 시계를 훔쳐보고 말을 이었다.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저는 양 교수님에게 인정받은 수제입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
“그렇다면 저를 믿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양 교수님 같은 대가가 인정했다면 말입니다.”
“휴우… 골치 아프구나.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갈등하는 김호에게 나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과장님께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를 믿고 모든 것을 거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당돌한 녀석. 좋다, 지금은 네 재능밖에 기댈 데가 없구나.”
김호가 백기 투항하면서 자리에 변화가 생겼다.
내게 집도의 자리에, 지은이가 제1 보조 자리에, 과장이 제2 보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가볍게 손목을 풀고 수술 도구를 손에 쥐었다.
두 눈은 박동하고 있는 심장에 고정시켰다.
마지막 남은 우 관상동맥 문합술을 성공시킬 자신이 넘쳐 나서 문제였다.
전생에서 아버지가 OPCAB 도중 돌아가신 뒤로 나는 OPCAB 전문 집도의가 되었기에.
오늘은 모처럼 숨겨 왔던 실력을 남김없이 선보여 볼까.
끼리리릭. 끼리리릭.
나는 일부러 심외막 고정기를 전보다 느슨하게 풀었다.
그러자 심장 박동이 더욱 거세졌다.
쿵쿵쿵이 아닌 쿵쾅쿵쾅으로.
“이믿음,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정기를 느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야 심장이 받는 압력과 부담이 줄 테니까요.”
“그건 아는데, 이 정도로 심장이 요동치는데 어디 문합이나 할 수 있겠어?”
나는 눈으로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