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84화 (184/257)
  • 184화 제2장 살아야 하는 사람(4)

    이태선 신부를 위한 OPCAB 수술의 막이 열렸다.

    유지은에게 10번 칼날을 건네받은 김호가 환자의 가슴을 세로로 내리그었다.

    스으으윽.

    은빛을 뿜어내는 메스의 길을 따라 피부와 근육의 막이 갈라졌다.

    갈라진 틈 사이로 빠알간 핏방울이 새어 나왔다.

    계속되는 정중 흉골 절개술.

    스태프들은 견인기를 이용해 갈라진 절개창을 좌우로 벌리고, 의료용 전기톱으로 복숭아 뼈 모양의 흉골을 갈랐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전기톱이 토해 내는 소리는 언제나처럼 야단법석했고, 주변으로 튀는 하얀 뼛가루는 어수선하고 야단스러웠다.

    이믿음의 손에 들렸던 전기톱이 작동을 멈추면서 수술방에 고요가 찾아왔다.

    쩌저저적.

    이믿음은 세로로 금이 간 흉골을 좌우로 벌렸다.

    흉골과 흉골에 붙어 있던 갈비뼈가 잘 익은 수박처럼 좌우로 벌어졌다.

    동시에 갈비뼈가 감싸 안아 보호하고 있던 심장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치열한 전쟁이 펼쳐질 전쟁터.

    즉, 심장을 내려다보며 이믿음은 OPCAB 성공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

    존경하는 사람 이태선.

    그가 전생과 이번 생에 걸쳐 두 번씩이나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살릴 수 있어. 분명히.’

    이믿음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이태선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생의 수술은 CABG였고, 전생의 어시스트 중에 이믿음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생의 수술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수술은 OPCAB으로 바뀌었고, 어시스트 중에는 회귀한 전직 흉부외과 교수 이믿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생의 비극을 바꿀 만한 충분한 개연성을 갖춘 것이다.

    “stabilizer(심외막 고정기) 사용하겠습니다.”

    이믿음은 박동하고 있는 심장에 네모난 프레임을 덧씌웠다.

    끼리리릭, 끼리리릭.

    나사를 돌리자 네모난 프레임이 점점 좁아지면서 심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상하좌우로 4.5센티씩 전진했습니다. 연습하던 때와 같은 조건인데, 어떻게 할까요?”

    “조금만 더 전진시키자꾸나. 아직도 박동이 너무 강해.”

    “알겠습니다.”

    이믿음은 김호의 주장을 받아들여 프레임을 지금보다 1센티만 더 전진시켰다.

    프레임이 심장을 옥죄면서 심장의 박동이 한층 약해졌다.

    심외막 고정기의 이치는 단순했다.

    네모난 프레임으로 심장을 조여서 뛰고 있는 심장의 움직임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었다.

    심장이 조금이라도 덜 움직여야 집도의가 조금이라도 더 수술하기 편할 테니까.

    “1센티만 더 전진할까?”

    김호의 거듭된 제안에 이믿음은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프레임으로 이 이상 심장을 조이면 심장에 무리가 가게 된다.

    심장에 부담을 덜어 주려고 시행하는 OPCAB 아닌가.

    그런데 이대로라면 OPCAB이 오히려 심장에 무리를 주고 만다.

    “교수님, 지금이 최적의 압력인 것 같습니다. 이 상태에서 진행하시는 건 어떨까요?”

    “지금도 박동이 너무 강해. 혈관 채취야 가능하겠지만 문합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구나.”

    김호는 심장을 내려다보다가 손가락을 심장에 올려놓았다.

    심장 박동에 맞춰 손가락이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했다.

    “상하좌우 압박이 7센티까지는 문제가 없다는 논문이 있단다. 그런데 우린 아직 거기까지 가지도 않았어.”

    김호의 강경한 주장에 이믿음은 속으로 혀를 찼다.

    과장님, 그 논문 엉터리 논문입니다.

    몇 년 뒤에 그 논문을 쓴 의사는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고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이믿음은 간신히 삼켰다.

    해당 논문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회귀를 한 이믿음만 알고 있었다.

    자신만 알고 있는 사실을 타인에게 설득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는 소리인데…

    “과장님, 까치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오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믿음인 차분하게 속담으로 설득을 시작했다.

    “7센티 압박을 주장하는 논문은 데이터베이스에 딱 하나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그 논문 하나만 믿고 가기에는 불안 요소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논문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지. 그리고.”

    김호가 차분하게 반박을 이어 나갔다.

    “심장 박동이 강한 상태에서 어설프게 수술할 바에는 차라리 심장을 더 압박하더라도 완벽한 수술을 하는 게 낫지 않겠니?”

    이믿음과 김호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안타깝게도 제3의 길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반드시 둘 중 한 명의 의견만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이건 양보 못한다.’

    이믿음은 상대가 과장님에도 무례를 무릅쓰기로 했다.

    OPCAB을 하면서 OPCAB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OPCAB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심외막 고정기의 압박 수준을 현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이믿음은 그런 결사항전의 마음가짐으로 입을 열었다.

    “과장님, 지금 압박 수준은 연습 때 책정했던 압박 수준을 훨씬 초과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지금보다 압박 수준을 올린다면 앞으로도 계속 올리고 싶은 유혹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이믿음의 지적에 김호는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실제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OPCAB을 준비해 왔지만 실전에서 마주한 심장은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쿵. 쿵. 쿵.

    심장이 한 번 수축하고 이완할 때마다 마치 거대한 지진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김호는 느껴 왔다.

    그 때문에 계속 의문이 들고 의심이 들었다.

    저 요동치는 심장에서 과연 자신이 문합술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저는 교수님이 용인 최고의 서전이라고 생각하고, 교수님이라면 이 정도 압박은 충분히 감당하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믿음의 따뜻한 눈빛과 따뜻한 목소리에서 김호는 약간의 용기를 얻었다.

    그래, 언제까지 뒷걸음질만 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없고.

    나는 원래 이런 겁쟁이도 아니었다고.

    두려움을 몰아낸 김호의 눈동자가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환자의 회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수술에 흠이 없었다는 명분에 더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수술이란 그저 환자를 위해 펼치는 것이다.

    집도의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깨달음이 정수리를 관통하면서 김호는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압박 조정 없이 바로 혈관 그래프트로 넘어가자꾸나.”

    “네, 과장님.”

    김호의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고 이믿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간신히 한 고비 넘겼나.

    * * *

    “준비됐니?”

    이믿음에게 질문하는 김호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갈라졌다.

    검객 김호는 말을 하는 것조차 힘을 낭비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리고 김호의 그런 태도를 이믿음은 좋아했다.

    김호의 생각처럼 OPCAB은 봉합술을 할 때 혼신의 힘과 집중력을 다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네, 교수님.”

    “내가 좌측 내흉동맥을 채취할 테니 네가 우측 내흉동맥을 채취하거라.”

    김호의 지시로 혈관 그래프트가 펼쳐졌다.

    혈관 그래프트란 협착증으로 꽉 막힌 관상동맥에 우회로로 사용될 혈관을 채취하는 작업이었다.

    ‘이제 실력 발휘를 해 볼까?’

    이믿음은 본인이 점찍은, 굵직하고 탄력이 넘치는 우 내흉동맥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우선 보비(전기 소작기)로 심장 하단 부분에 붙어 있는 내흉동맥의 말단부를 지졌다.

    내흉동맥의 하단 끝부분을 떼어 낸다.

    이 끝부분으로 협착된 관상동맥에 우회로를 만들어 준다.

    이것이 CABG의 핵심이었다.

    쿵. 쿵. 쿵.

    혈관 채취의 가장 큰 적이라면 당연히 심장 박동이었다.

    평범한 관상동맥 우회술을 진행했다면 심장에 심정지액을 주입하고 인공심폐기를 이용해 심장을 멈췄을 것이다.

    좀 더 편하게 혈관을 채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펼치는 수술은 OPCAB이었다.

    심장은 무섭게 뛰고 있었다.

    심장이 요동칠 때마다 채취해야 하는 내흉동맥도 같이 움직여 댔다.

    자칫 잘못하면 엄한 혈관을 손상시킬 수 있는 아찔한 상황임에도 이믿음은 태연함을 유지했다.

    그는 심장 박동을 하나의 리듬으로 인식했다.

    리듬과 싸우지 않고 그 리듬 위에 올라탔다.

    쿵. 쿵. 쿵!

    쿵. 쿵. 쿵!

    이믿음은 심장의 세 번째 박동에 타이밍을 맞춰 전기 소작기를 사용했다.

    심장 박동과 한 몸이 된 그의 손은 다른 혈관으로 빗나갈 줄을 몰랐다.

    ‘녀석, 놀라기는…….’

    이믿음은 혈관 채취 도중 자신을 바라보고 경악하는 유지은의 눈빛까지 확인했다.

    그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이믿음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수술이 OPCAB이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그의 아버지는 OPCAB 도중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이믿음에게 OPCAB이란 아버지를 앗아 간 원수나 다름없었다.

    잊을 수 없는 원한을 갚기 위해 이믿음은 OPCAB을 미친놈처럼 파고들었다.

    그 덕분에 조교수가 된 이후로 OPCAB 성공률과 OPCAB 집도 수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이믿음이었다.

    의국에서 미운 오리 새끼 취급받던 것을 완전히 떨쳐 낸 것도 그때쯤이었고.

    ‘어디 보자…….’

    이믿음은 혈관 채취 속도를 적당히 조절하며 김호를 관찰했다.

    심장 박동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과 달리 그의 처치는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다.

    과거 주변에서 들었다던 검객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수준이었다.

    김호의 손은 마치 기계처럼 움직여 떨림이 없었다.

    소작기로 혈관을 지져서 떼어 내는 범위는 오차가 없었다.

    이 정도라면 고난이도 문합술로 넘어간다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듯했다.

    이번 생에서 펼치고 있는 이태선의 심장 수술이 순풍을 맞았구나.

    이제 해피 엔딩이라는 항구에 도착하는 일만 남았구나.

    이믿음은 그런 설렘과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믿음아, 내 쪽은 끝났다.”

    “저도 곧 끝나갑니다.”

    이믿음은 일부러 김호보다 몇 분 늦게 내흉동맥을 채취했다. 김호가 다만 조금이라도 쉬면서 긴장을 풀도록.

    “허… 나랑 별 차이가 없는걸?”

    이믿음이 채취한 우 내흉동맥 확인하고 김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를 대고 자른 것처럼 동맥의 말단부가 깔끔했다.

    뿐만 아니라 동맥 주변에 있던 모세혈관에도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요동치는 심장 위에서 펼친 이믿음의 혈관 채취가 완벽했다는 뜻이었다.

    “흉강경 수술이야 흉강경 팀에 소속되었으니 잘 소화했다고 치자.”

    “…….”

    “OPCAB은 본원도 자주 하지 않을 텐데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은걸?”

    “타고난 부분도 있고, 노력으로 발전시킨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교과서 같은 대답이구나. 따로 배울 건 없겠는데?”

    김호의 농담에 스태프들이 일제히 눈으로 웃었다.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다들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OPCAB의 꽃이라 불리는 혈관 우회술을 펼치려는 찰나.

    커튼 뒤에 있던 마취의가 심상치 않은 비보를 전해 왔다.

    “과장님, 환자에게서 저혈압과 저심박출량이 확인됩니다.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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