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82화 (182/257)

182화 제2장 살아야 하는 사람(2)

OPCAB(무인공 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나는 세 가지를 꼽았다.

그 중 첫 번째는 이번 수술을 과장이 집도하는 것이었다.

용인 흉부외과 최고의 서전은 누가 뭐래도 김호 과장이었다.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수술 건수를 대폭 줄였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주변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검객이라 불렸다.

손놀림이 정교하면서 또한 과감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으음… 내가 집도한다면 OPCAB을 성공시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김호가 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신부님께 CABG를 펼친다고 해서 경과가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구나. OPCAB은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구나.”

“…….”

“수술 중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니까.”

예상대로 김호는 내 OPCAB 제안에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내 제안을 탐탁지도 않아 하는 눈치였다.

무릎 쓰는 위험에 비해 얻는 것이 적다는 판단을 했겠지.

하지만 전생과 과정이 똑같다면 그 결과까지 똑같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이태선이 두 번 죽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까 VIP 병동에서 신부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래서?”

“차분하게 이야기하다 보니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하시더군요. 외래 진료받을 때는 안 적혀 있던 정보입니다.”

“…….”

“혈관 조영술 결과 동맥의 석회화가 심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우려할 수준이며…….”

“…….”

“피 검사 결과를 보면 혈중 요소질소, 혈청 크레아틴 수치 등의 수치도 정상치를 꽤 넘었고요.”

나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 OPCAB의 필요성을 강하게 변론했다.

김호의 입장에서 OPCAB이 부담스럽다는 건 알고 있다.

심장이 펄떡펄떡 뛰고 있는데 그 거센 심장 리듬 속에서 수술하고 싶은 서전이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고된 수술이라도 피할 수 없는, 해야만 하는 때도 있는 법이었다.

바로 지금 말이다.

“지금 신부님의 상태라면 인공 심폐기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습니다.”

“…….”

“심폐기를 사용한다면 뇌와 신장에 무리가 갈 테니까요.”

“하아… 믿음아, 넌 단순한 길도 복잡한 길로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김호가 한숨 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내 치밀한 화술에 지치고 질렸다는 모습이었다.

“네가 말하는 바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란다. OPCAB? 당연히 좋은 수술이지.”

“…….”

“하지만 말이야 환자는 재단에서 신경 쓰는 VIP이자 사회적 명망이 높은 신부님이란 말이지. 굳이 OPCAB이라는 도박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 꾸준한 설득에도 김호는 CABG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이 요새처럼 단단하게 느껴진 것은 오랜만이었다.

-높은 수술 성공률 VS 비교적 낮은 수술 성공률.

-적당한 수술 후 경과 VS 완벽한 수술 후 경과.

나와 김호의 가치관이 정면충돌하고 있었기에 어느 한쪽이 물러나지 않는 한 해결될 기미는 없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제압할 논리를 가다듬었다.

과감하게 먼저 칼을 빼 든 쪽은 나였다.

“과장님께서는 방금 OPCAB이 도박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암, 그랬지.”

“따지고 보면 CABG를 마치고 신부님의 경과가 좋기를 바라는 게 더 도박 아니겠습니까?”

“…….”

“수술은 성공했지만 환자는 죽었다. 그런 책임 회피용 멘트를 원하시는 건 아닐 텐데 말입니다.”

“책임 회피용 멘트?”

순간 김호의 눈썹이 사납게 치솟고 이마에는 자글자글 주름이 생겼다.

책임 회피라는 단어가 김호의 신경을 자극한 것이다.

순간 나는 김호를 논리가 아닌 감정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아주 탁월한 방법이 있지.

“방금 아주 발칙한 단어를 썼구나. 나는 그 어떤 환자도, 그 어떤 질환도, 그 어떤 수술도 피한 적이 없어. 길이 두 갈래라면 보다 안전한 길을 택했을 뿐이야.”

“어쨌거나 서울 본원에 있을 때 과장님이 검객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나는 김호의 표정을 살피며 천천히 운을 뗐다.

“OPCAB에 부담을 느끼셔서 CABG를 하신다고 하니 너무 아쉽습니다. 과장님의 OPCAB을 꼭 보고 싶었는데…….”

내가 자존심을 벅벅 긁자 김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 도발이 정확히 먹힌 것이다.

상대의 심리와 감정을 자극하는 도발은 언뜻 유치해 보인다. 때로는 도발에 걸리는 사람이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일단 도발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다면 말이다.

도발만큼 상대를 움직이기 쉬운 방법도 없었다.

그럼 여기서 최후의 한 발자국을 나아가 볼까.

“지금 생각해 보면 CABG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역시 위험한 길은 회피하는 게 맞겠죠.”

나는 CABG로 의견을 바꾸면서 고의적으로 회피라는 단어를 한 번 더 언급했다.

김호를 자극하기 위해서.

김호는 내 말을 듣고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고개를 들었다.

“믿음아.”

“네, 과장님.”

“집도를 안 하는 것과 집도를 못하는 것의 차이를 알고 있니?”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뗐고 덕분에 원하고 원하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모른다면 이 기회에 알려 주마. 신부님은 내가 직접 집도할 테니까. OPCAB으로.”

휴, 다행이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신부님께 OPCAB 하기로 했어요? 과장님이 완전히 칼 뽑았네요?”

과장과의 일대일 면담을 마치고 당직실로 돌아온 나는 유지은과 해당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지은이도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과거에 비해 OPCAB 기술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흉부외과 서전에게 OPCAB이란 여전히 가시밭길이었다.

박동하는 심장 위에서 바느질을 한다면 그 부담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심지어 단 한 번만 실수해도 환자에게 치명적인 손상이 발상하는데…….

“혹시 치프가 과장님이 OPCAB 하도록 부추긴 거 아니에요?”

“내가? 무슨 재주로?”

역시 유지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단 말이지.

지은이의 육감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태연하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치프는 의국 실세잖아요. 보이지 않는 손이잖아요. 오늘만 해도 치프만 과장님과 일대일 면담을 가졌고요.”

“과장님 총애를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억측이 심하네.”

“…….”

“과장님이 로봇이고 내가 과장님을 조종하는 리모컨을 가진 것도 아니잖아? 내가 무슨 수로 과장님을 움직여?”

“하여간 수상해요. 제가 지켜본 과장님이라면 OPCAB이 아니라 CABG를 했을 텐데.”

유지은은 팔짱을 낀 채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쉽사리 거두지 않았다.

아마 이런 눈치가 있어서 지은이는 전생의 나와 달리 강태섭에게 이용당하지 않았겠지.

잡담을 마친 후 나는 침대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멍한 표정으로 당직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과장이 OPCAB 집도를 하도록 유도하느라 진이 빠졌다.

하지만 고진감래라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쯤에서 나는 전생의 이태선 신부가 CABG 합병으로 사망했다고 확신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공 심폐기 사용으로 인한 후유증이 되겠지만.

인공 심폐기는 정지한 심장을 대신해서 2, 3시간 동안 환자의 혈액을 전신 순환시켜 준다.

심장 수술에서 아주 고마운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엄연히 부작용 또한 존재했다.

전신 염증 반응과 출혈로 인한 출혈량 증가.

폐 기능과 뇌신경학적 합병증의 위험 증가 등등.

하지만 전생의 용인 의국은 아마 이렇게 판단하지 않았을까.

OPCAB 수술에 실패할 바엔 차라리 CABG로 생긴 합병증을 관리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결과적으로 그 판단이 잘못되어 이태선 신부는 세상을 떠났던 것이고 말이다.

“아, 참. 깜빡 잊고 말 안 한 거 있는데…….”

“뭔데요?”

“OPCAB 세컨드 너야. 퍼스트는 나고.”

“와! 선배, 사랑해요.”

지은이가 반색하며 일어나 제자리에서 깡충깡충 뛰었다.

OPCAB은 자주 있는 수술이 아니라서 어시스트에 들어갈 기회가 무척 희박했다.

그런데 어시스트 욕심이 많은 지은이가 그 희박한 기회를 잡게 됐으니 기쁠 수밖에.

“이제 와서? 아까만 해도 무슨 실세다, 보이지 않는 손이다 해 놓고 잔뜩 의심하더니…….”

“그거야 장난이었죠, 히히.”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어.”

“치프가 개구리는 아니잖아요?”

얄밉게 빠져나가는 지은이에게 나는 백기를 들었다.

더 싸워 봐야 내 입만 아플 테니까.

전생에서는 지긋이 나이를 먹고 만나서 잘 몰랐는데, 이 시점의 지은이에게는 말괄량이 기질이 있었다.

띠리리링~

때마침 당직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전화기에 더 가까웠던 내가 전화를 받았다.

“흉부외과입니다.”

-선생님, 스테이션인데요. 이믿음 선생님 좀 바꿔 주실래요?

“저예요.”

-아… 선생님이 직접 받으셨구나. 잘됐다. 지금 신원 전자의 전무가 병동에 왔는데, 급하게 이 선생님을 찾아서요.

“그 대단한 사람이 저를요? 왜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신원 전자의 전무라고 하면 재벌집 막내아들로 이름이 신원효였다.

그룹의 후계 계승자 중 한 명으로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어 나도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았다.

-VIP 병동에 신부님 입원해 있잖아요. 신부님이 속한 기부 단체를 그 전무가 관리한대요.

“신부님 병문안을 왔다가 저도 만나고 싶다는 거네요?”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지금 나갈게요.”

나는 당직실을 나와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누구인지는 굳이 분별할 필요가 없었다.

두 손님은 하나같이 병동과 어울리지 않는 시꺼먼 정장을 입었으니까.

풍채가 듬직하고 혈색이 좋은 사내가 신원효였고, 곁에 있는 여성은 수행 비서로 보였다.

신원효의 외모는 매스컴에서 봤던 것과 그대로였다.

하지만 은연중에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로열 패밀리라서 그런지 마주한 사람을 기죽이게 만드는, 묘한 기색을 가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신원 전자의 신원효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신부님 주치의 이믿음입니다.”

“신부님의 상태는 구체적으로 어떻습니까? 신부님은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셔서 믿을 수가 없거든요.”

신원효가 농담을 섞어 가며 여유롭게 물었다.

나는 신원효가 이해할 수 있게 최대한 쉬운 용어를 써 가며 신부의 상태를 설명했다.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으시군요. 덕분에 잘 이해했습니다.”

만족스럽게 웃는 신원효.

하지만 나는 쉽사리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니, 긴장을 풀지 못했다는 편이 더 정확했다.

신원효에게 숨겨 둔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신부의 몸 상태가 궁금했다면 그가 굳이 병동까지 행차할 이유가 없었다.

비서를 통해 필요한 내용만 전달받으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우리 둘의 대화가 끊긴 극히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이 마치 폭풍전야처럼 살벌하게 느껴진 것은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왜 이렇게 신부님을 신경 쓰는지 이해 못하실 겁니다. 그렇죠?”

나는 그렇다고 맞장구를 친 후 귀를 쫑긋 세웠다.

“집안만 믿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지내던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분이 신부님입니다.”

“…….”

“한마디로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어 주신 분이죠.”

“신부님을 각별하게 느끼실 만하군요. 제가 전무님 입장이라도 그랬을 겁니다.”

“하하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통하게 웃던 신원효가 잠시 호흡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잡설은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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