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71화 (171/257)

171화 제5장 장악(1)

“흉부외과 관련 외상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가 운전대에 왼쪽 가슴을 심하게 부딪쳤다고 합니다.”

“정말 흉부 타박뿐이야?”

“네, 치프.”

흉부 타박만으로 이렇게 심한 출혈이 발생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정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짧은 시간 동안 떠오르는 진단명을 건져 내고 버리고 다시 줍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회귀한 나라도 병인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외상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배, 지금이라도 교수님께 와 달라고 콜할까요?”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노력한 의미가 없어.”

“그렇다고 환자가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 선배도 더 곤란해질 뿐이에요.”

허수현이 나를 걱정했으나 나는 오로지 환자 걱정밖에 없었다.

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단지 스쳐 지나가서 못 본 것일 뿐.

그런 확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답답했던 침묵을 깨고 내가 마침내 한마디 했다.

“후폐동맥 쪽을 보자. 아마 후폐동맥이 파열되어 있을 거야. 시야 확보 도와주고.”

오더를 내린 나는 보물찾기하는 심장으로 심장 뒤쪽으로 뻗어 나가는 후폐동맥을 살폈다.

허수현이 심장을 살짝 들자 틈이 생겼고, 그 뒤로 비스듬히 지나가는 후폐동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내 예측이 맞았다.

찢어지고 너덜거리는 후폐동맥이 뚝뚝 피를 흘리고 있었다.

병인을 발견한 순간, 수술이 절반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보이지 않는 것과는 싸울 수 없지만 보이는 것과는 싸울 수 있기에.

“와…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지?”

나보다 허수현이 먼저 경악했다.

교통사고 외상으로 후폐동맥이 파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였다.

“이 환자 폐고혈압 환자니까. 폐고혈압 환자가 심한 외상을 입었을 때 혈관 압력이 높아지면서 혈관이 찢어질 수도 있어.”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예요.”

“나는 듣기만 하고 처음 보는 케이스다.”

당황했던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통 교수가 되면 잘하는 수술 분야가 생기고, 그 분야의 수술만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전생의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외상 환자의 폐동맥 파열을 본 적도, 수술한 적도 없었다.

‘폐·식도 파트는 양 과장님에게 배울 만큼 배웠어. 배운대로만 하면 문제없어.’

수술 견적을 뽑은 나는 다시 오더를 내렸다.

응급으로 인공 심폐기사를 호출했다.

폐동맥은 전신 순환에 관련된 혈관이라서 수술하는 동안 인공 심폐기의 도움이 필요했다.

드르르륵. 덜컹!

인공 심폐기가 작동하면서 환자의 혈액이 심장 대신 인공 심폐기를 거치기 시작했다.

착각인지 몰라도 요란한 기계 작동음이 마치 내게 수술을 재촉하는 듯했다.

오냐, 네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마.

“치프, 심폐기까지 사용하고…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닌가요?”

“죽어 가는 환자를 살리는 일이 그만큼 큰일이니까.”

나는 불안에 떨고 있는 허수현을 바라보았다.

물론 허수현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레지던트 4년 차가 교수가 해야 할 응급 수술에 손을 대니까 겁이 나겠지.

“허수현.”

“네, 치프.”

“나랑 지내면 앞으로 이런 일은 다반사야. 마음 단단히 먹고 오늘은 백신 맞는다고 생각해라. 4-0 prolene(봉합사).”

끼기기긱.

간호사가 건넨 봉합사를 니들홀더로 잡은 후 나는 본격적인 폐동맥 복원술에 나섰다.

4-0 봉합사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두 배가량 굵은 봉합사였다.

말이 두 배지 머리카락에서 두 배 굵어 봐야 얇은 건 마찬가지였다.

‘용인에서 와서 하는 첫 외상 수술, 무조건 성공한다.’

그 일념 하나만으로 나는 눈과 손끝에 모든 집중력을 퍼부었다.

혈관이 찢어지지 않게 바늘을 혈관에 운침하고.

혈관이 쪼그라들거나 헐렁하지 않도록 봉합사를 적당한 힘으로 잡아당겨 장력을 유지하고.

매듭은 꼼꼼하고 확실하게 짓고.

외과 수술은 외견상 터프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며 매우 섬세하고 여린 작업이었다.

봉합의 경우 특히 힘 조절을 잘해야 했다. 양손의 균형 감각도 중요했다.

찰칵. 찰칵.

폐동맥 복원술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매듭을 잘라 내는 가위 소리가 경쾌하게 퍼졌다.

“휴우…….”

복원술을 절반 가까이 끝내고,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워낙 정교한 봉합술을 하다 보니 온몸에 있는 집중력을 다 길어 쓴 느낌이었다.

집중력이 고갈되면서 온몸에 힘도 빠졌다.

“치프, 진짜 대단하세요. 설마 했는데 폐동맥 복원술까지 소화하실 줄은…….”

나를 걱정하기 바빴던 허수현이 처음으로 내게 감탄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존경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사람이 나설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어시스트 할 만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치프의 지시를 따라가는 것도 벅차서.”

“괜찮아.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게 배우는 법이니까. 그리고 처음에 어려운 걸 접하면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기도 하지.”

“…….”

“잡담은 여기서 끝.”

대화를 마친 나는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수술 도구를 쥐었다.

지금까지 오른손으로 니들홀더를 쥐고 왼손으로 포셉을 쥐었다면 그 반대로 수술 도구를 쥔 것이다.

같은 손으로, 같은 수술 도구를 손에 쥐고,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 손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그럼 손과 수술 도구를 바꿔 보자.

그편이 손의 피로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즉흥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전생보다 왼손에 더 자신감이 붙었고.

모처럼 집도의가 되어 수술을 책임지니 새로운 발상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 다들 끝까지 집중합시다.”

스태프들에게 기합을 불어넣으며 다시 시작한 폐동맥 복원술.

손이 바뀌었음에도 나의 봉합 능력은 여전했다.

정교하고 능숙했으며 위기에 대처할 줄 알았으며 중용의 미를 알았다.

‘간만에 물건을 건졌네.’

손을 바꿔 수술하는 것에 나는 큰 매력을 느꼈다.

예상대로 손의 피로가 두 배 이상 줄었으며 그로 인해 감각까지 날카로워졌다.

회귀를 하고도 수술에서 아직 배울 것이 남았다는 사실에 나는 모처럼 감탄했다.

학문의 길에는 끝이 없었다.

파열된 혈관을 찾지 못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수술은 3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복원된 혈관은 식염수를 사용한 환류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다.

봉합이 느슨해서 식염수가 누수 되는 불상사는 없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스태프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환자를 살리고, 의국에 내 실력을 뽐내고, 새로운 수술 요령을 터득하고 등등.

이번 수술은 잃은 것 없이 얻기만 한 수술이었다.

* * *

수술이 끝난 후 나는 허수현을 데리고 직원 식당을 찾았다. 때마침 점심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와, 밥 냄새 너무 좋아요.”

병원 스태프들 사이에 줄을 선 허수현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병원 직원이면서도 직원 식당을 신기해하는 허수현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 속에 흉부외과의 잔혹한 스케줄과 비참한 인력난이 녹아 있는 것 같아서.

또 예전의 내 수련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더 놀라운 것은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상황이 이보다 더 악화된다는 점이었다.

외국에서 흉부외과의를 사 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뉴스까지 나왔지?

‘그래, 수술만 잘하는 의사로는 한계가 있어. 더 멀리 보지 않으면…….’

나는 모처럼 흉부외과의 시스템에 대해 생각했다.

흉부외과를 인기 없게 만드는 시스템, 즉 박봉과 더 나아가서는 의료수가의 비현실성.

잔인할 정도의 인력난 등등을.

이번 삶에서는 좀 더 머리를 키워 시스템에도 손을 대보고 싶었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비극은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될 테니까.

“식당에 밥 먹는 거 얼마 만이야?”

“거의 6개월 만인 것 같습니다. 저 사실 집밥을 좋아하는데 레지던트 생활하면서 챙겨 먹기가 힘들어서.”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정작 일을 하면서도 먹고살기가 힘드네. 그치?”

“그러게요.”

내 블랙 유머에 허수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는 식판에 음식을 담아 빈자리에 앉았다. 허기가 심했던지라 별다른 대화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중요한 대화는 병동으로 올라가는 길에 시작되었다.

“치프는 뭔가 남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허수현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어떤 점에서?”

“아직 뵌 지 이틀밖에 안 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똑똑하기도 하고 자신감도 넘치고. 대단한 분 같아요.”

“…….”

“가끔 본원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그때 치프 이야기가 종종 나왔어요.”

“…….”

“다들 치프가 대단하고 추켜세웠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비행기 적당히 태워라. 그러다가 나 날아가면 어떻게 하려고?”

나는 웃으며 곁에서 걷는 허수현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건드렸다.

어떤 응급상황에서도 기댈 수 있는 믿음직한 선배.

때로는 호랑이 선생님 같고, 때로는 다정한 친구 같은 선배.

나는 전생에서 내가 만나고 싶었던 선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사람이 떠나가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 남아 있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고.

“수현이 너도 좋은 서전이 될 수 있어. 긴장하는 습관만 조금씩 줄이면 돼.”

“정말 그럴까요?”

“너를 못 믿겠으면 너를 믿는 나를 믿어. 오케이?”

“그러니까 왠지 치프 이름처럼 믿음이 가네요.”

훈훈한 대화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뒤 나는 본론에 들어갔다.

“다 좋은데, 장경철이는 어떻게 할 거야? 계속 맞고만 살래?”

장경철 이야기가 나오자 허수현의 낯빛이 먹처럼 어두워졌다. 얼굴은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에요. 치프가 생각하는 그런 거 절대 없어요!”

허수현이 두 손을 맹렬하게 저어 가며 장경철의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이리도 필사적으로 숨기다니…….

나는 허수현에게 연민을, 장경철에게는 뜨거운 분노를 느꼈다.

장경철을 의국에서 쫓아내지 못하면 내가 병신이다.

나는 그런 각오 속에 대화를 이어 나갔다.

“솔직히 장경철이 무슨 말을 했을지 뻔해. 어차피 나는 파견 나온 사람일 뿐이라고, 조금 있으면 떠날 사람이라고 했겠지.”

“…….”

“그러면서 누구랑 더 얼굴을 오래 보는지 잘 생각해 보라면서 겁을 줬겠지. 안 그래?”

허수현은 아까와는 달리 내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정곡을 찔린 기분이리라.

고3 때 심병수, 순환기 내과의 김슬기, 말턴 시기에 손태호, 전생의 강태섭 등등.

시기마다 다양한 악당들에게 공격을 당하면서 나는 그들의 심리와 사고방식 등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젠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

성가시고 귀찮고 분노를 일으킬 뿐.

“물론 너희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야. 기껏 찔렀는데 솜방망이 처벌이 난다? 그러면 장경철이 더 미쳐 날뛸 테니까 후환이 무섭겠지.”

“역시 대단하시네요, 치프는…….”

허수현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폭행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수술을 함께하면서 나를 신뢰하게 된 걸까.

아니면 더 이상 폭행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까.

무엇이 되었든 허수현의 변화는 긍정적인 신호였다.

폭행을 당한 레지던트들이 내 편으로 돌아선다면 나는 일을 크게 키울 자신이 있었다.

장경철에게 정의의 철퇴를 선물할 자신이 있었다.

“솔직히 저희 1, 2년 차도 단체로 과장님께 폭행 이야기를 할까 생각했어요.”

“…….”

“하지만 문득 그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폭행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과장님도 문책을 받으실 텐데…….”

“…….”

“과연 과장님이 제대로 경철 선배를 처벌하실까 하고 말이죠.”

허수현의 고백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폭행당한 레지던트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통받고 괴로워했던 시간들을.

그렇다면 더더욱 이번 사건을 매듭지을 필요가 있었다.

“수현아, 너 아까 내가 남다른 구석이 있다고 했지?”

“…네.”

“보여 줄게. 내가 과연 남들하고 어떻게 다른지.”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당직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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