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제4장 파견(5)
“하아… 하아… 치프, 정말 저희 둘만 가도 괜찮을까요?”
수술실로 달려가는 도중 허수현이 힘겹게 물었다.
1년 차의 노티를 듣고 각종 차트의 기록을 확인한 결과 환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심각한 흉강 내 외상과 출혈이 예상되었다.
‘진짜 아닌 것 같은데…….’
허수현의 얄팍한 상식으로는 교수급이 수술에 들어가는 게 맞거늘…….
이믿음이 집도의라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스태프의 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왜, 내가 그렇게 못 미덥니?”
“치프가 못 미덥다는 게 아니라 상황이 워낙 심상치 않아서요. 다른 과가 수술 중에 흉부외과를 호출하는 케이스가 많지 않으니까요.”
“너도 알잖아. 수술 스케줄 한 번 꼬이면 다들 죽어 나가는 거. 그걸 풀기 위해 내가 용인에 왔다.”
“…….”
“이 환자는 내가 살려야 해.”
이믿음의 주장에도 근거는 충분했다.
수술 스케줄이 잘못 꼬이기라도 하면 그날은 지옥도가 펼쳐진다.
쉬는 시간 없이 곧바로 다음 수술에 들어가고, 끼니를 거르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허수현의 경우 한 번은 오전 11시에 수술방에 들어갔다가 오후 6시에 나온 적도 있었다.
몸이 불편한데 마음이라고 편할 리 없었다.
치명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받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말이다.
수술 스케줄과 루틴을 지키는 일이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교수가 할 일을 레지던트가 하는 게 옳은가.
허수현은 그 점에 관해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혹시 파견 인력이라고 욕받이로 쓰다가 버리려는 속셈인가? 그것 말고는 말이 안 되는데?’
허수현의 시선이 앞서 달리는 이믿음의 뒷모습에 고정되었다.
불신이 찾아왔다가 떠나고, 이번엔 희망이 찾아왔다.
이믿음도 생각이 있어서 나섰고, 과장도 생각이 있어서 이믿음의 손을 들어 주지 않았을까.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야.’
허수현은 어제저녁 이믿음이 보여 준 통찰력을 떠올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지던트 중 장경철의 폭행 사실을 고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믿음은 폭행 사실을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장경철을 옥죄었다.
눈치가 거의 9단인 것이다.
“수현아.”
이믿음이 갑자기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치프.”
“너 병원 생활할 때 누구한테 기대 본 적 있니? 가족 말고.”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치프의 질문이라 무시할 순 없었다.
고된 달리기로 뇌가 산소 부족을 느끼는 와중에 허수현은 가까스로 대답했다.
“아니요, 딱히.”
“오늘부로 그런 사람이 생길 거다. 기대해.”
이믿음이 언급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 허수현은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농담도 잘하시네.
용인 흉부외과는 지옥이고, 지옥에는 원래 기댈 사람이 없는 겁니다, 선배.
* * *
벅. 벅. 벅.
나는 소독액이 묻은 솔로 손과 손가락, 팔꿈치를 힘차게 문질러 댔다.
솔이 닿을 때마다 피부가 찌릿찌릿 아파 왔다.
저절로 미간이 좁아지고, 저절로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잦은 수술과 잦은 스크럽은 피부를 약하게 만들고 습진까지 불러왔다.
그래도 나는 이 정도면 다행이라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 육체는 더 망가질 것이다.
수술 도구를 하루 종일 사용한 탓에 손목이 삐걱거릴 테고.
목과 허리는 더 굽어질 테고.
눈은 침침해지며 하지정맥류에 걸릴 수도 있었다.
이른바 외과의의 직업병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으니 지금에 감사하기로 했다.
“미리 경고하는데, 개흉하는 순간 피가 확 분출할 거야. 당황하지 말고 정신 단단히 차려.”
“그걸 치프가 어떻게 아세요?”
“나만의 요령이 있으니까. 수술 끝나면 알려 줄게.”
스크럽을 마친 뒤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수술 가운과 마스크, 루뻬(광학안경), 수술모 등을 착용했다.
용인 파견의 첫 단추를 꿰는 수술이 코앞까지 닥쳤다.
수술을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용인 스태프들은 이번 수술을 통해 나란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평가할 게 분명했다.
여기서 미끄러진다면 나를 향한 평판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뭐야, 본원에서 그렇게 잘났다고 치켜세우더니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별거 아니잖아?
-본원에 인력이 워낙 없나 봅니다. 저런 친구를 에이스라고 보낸 걸 보면…….
-과장님, 저 친구 수술방에 보내면 안 되겠는데? 외상 잡는 의사가 아니라 사람 잡는 의사입니다.
최악의 경우 나를 넘어 본원 흉부외과까지 깡그리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차분하게 심호흡했다. 긴장해서 날뛰는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혔다.
주변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천재의 삶.
이번 생의 나는 그런 화려하면서도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었으며 그 삶에 익숙해져 있기도 했다.
환자만 생각한다.
내 능력을 100퍼센트 발휘한다.
모든 잡념을 훌훌 털어 버리고 나는 오로지 딱 두 개의 생각만 머리에 남겼다.
지이이이잉.
에어 소독이 끝난 후 열린 수술방 문.
입장하기 무섭게 비릿한 피 냄새와 날카로운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형외과 쪽도 전쟁이었나 보네.’
나는 잰걸음으로 수술대로 이동했다.
정형외과의들이 환자의 개방성 골절 치료를 마무리는 하는 중이었다.
“흉부외과 이믿음입니다. 교대 수술 부탁하셨다면서요.”
“아, 네. 이쪽으로.”
수술을 돕던 어시스트 한 명이 나를 환자 감시 장치 앞으로 끌고 갔다.
환자 감시 장치 모니터에 떠오른 바이탈 수치와 심전도 그래프를 상태로 환자의 상태를 노티했다.
“심장내과에 연락해서 필요한 약물을 주입했더니 그나마 상태가 호전됐습니다. 일단 급한 불은 끈 것 같습니다.”
정형외과의의 말에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급한 불은 결코 꺼진 게 아니었다.
단지 시야에서 잠시 벗어났을 뿐.
외상 환자를 약물로 다스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자동차 모터가 고장 났으면 모터를 고쳐야지, 엔진 오일을 때려 넣는다고 복구되는 게 아닌 것처럼.
나는 가만히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투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환자의 흉강 내에서 찰랑거리고 있을 혈액들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정형외과 수술은 언제 마무리되죠?”
“넉넉하게 20분 정도면 될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가 놀라서 선생님을 너무 빨리 불렀네요.”
“아니요, 제때 잘 부르셨습니다. 흉부외과 수술 바로 들어갈 거니까요.”
나는 당당하게 선언하듯 말했다.
1초라도 빠를수록 좋은 것 중에 하나 바로 응급 수술이었다.
“바이탈이 그나마 잠잠해졌는데 저희가 수술 마무리한 다음에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
“공간이 협소하기도 하고 동시에 두 부위를 수술하면 환자에게 무리가 갈 수도 있는데…….”
정형외과의가 타이르듯이 말했지만 나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강경한 뜻을 전했다.
잠시 후 두 명의 스크럽 간호사들이 드레싱 카트를 챙겨 왔다. 나와 내 맞은편에 있는 허수현 곁에 자리를 잡았다.
얼추 수술 준비가 다 끝난 것이다.
“하… 사람이 참 유도리가 없네, 유도리가…….”
“뭐 이렇게까지 유난 떨 필요가 있나?”
흉부외과의 합류로 수술대가 협소해지자 정형외과 쪽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전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유도리가 어디 있고 유난이 어디 있어.”
나 역시 정형외과의들이 들으라고 속내를 담아 중얼거렸다.
“흉부외과 수술 시작합니다. 수현아, 넌 개흉 전까지 보조만 해. 알았어?”
“네, 치프.”
나는 수현이가 할 일마저 내가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편이 속도를 단축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피부 소독을 하고 수술포를 덮은 후 나는 10번 블레이드를 손에 쥐었다.
스으으윽.
세로로 내리긋는 손길을 따라 환자의 피부가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평소라면 손에 전해지는 감각을 통해 손목과 손가락의 상태, 기타 컨디션 등을 추측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일각천금.
지금은 짧은 순간마저 천금처럼 아껴 사용했다.
“허수현, 미쳤어? 정신 안 차릴래? 메스 절개했으며 곧장 리트렉터(견인기)로 절개창 벌려야 할 거 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어시스트 할 때는 항상 다음에 뭘 해야 할지도 생각하고 있어야 해. 안 그러면 지금처럼 맥이 끊긴다고.”
“…….”
“개흉하는 단계라서 이 정도지, 중요한 순간에 넋 놓고 있으면 진짜 큰일 난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허수현을 따끔하게 혼냈다.
효과가 있었는지 졸려 보이던 허수현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후배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술대 앞에서, 환자 앞에서는 나도 호랑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와 허수현이 견인기로 절개창을 벌리는 동안, 나는 고정 견인기를 설치했다.
끼리리릭. 끼리리릭.
나사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해 꼭 먼 훗날 유행하는 ASMR 같았다.
잠시 후 고정 견인기가 절개창을 벌리고 고정시키면서 총 여덟 개의 손이 자유로워졌다.
“곧바로 흉골 절개 들어갑니다. 흉골 절개 끝나면 피가 분출하니까 다들 주의해요.”
잠깐의 숨 돌릴 여유도 없이 나는 곧바로 전기톱을 손에 쥐었다.
복숭아뼈처럼 생긴 흉골을 세로로 내리그었다.
흉골을 반으로 쪼개고 갈비뼈를 옆으로 벌려야 심장 수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이이이이잉!
목공소에서나 들릴 법한 위협적인 소리.
무영등 환한 조명 아래, 톱밥처럼 사방으로 비산하는 뼛가루들.
지금의 수술대는 수술대가 아닌 작업대였다.
‘이 정도면 선방했다. 출혈만 잡을 수 있다면…….’
시간에 쫓기던 나는 번개처럼 흉골을 가른 후 갈비뼈를 옆으로 젖혔다.
문제의 심장에 접근한 그 순간 환자의 가슴에서 확, 하고 핏물이 터져 나왔다.
온천수처럼 용출하는 핏물을 스태프들은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처치를 하던 중이라 핏물이 튈 것을 알고도 피할 수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환자의 피로 인해 수술복의 절반이 따뜻하고 찜찜하게 젖어 버렸다.
“와… 뭐야? 저거?”
“흉강 출혈이 저 정도였어? 수술 빨리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러게 아까 괜히 헛소리를 해 가지고.”
수술을 마무리 짓던 정형외과의들이 우리 쪽을 보더니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뒤늦게 사태가 심각한 걸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러게 다른 과 영역은 함부로 간섭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치프, 이제 어떻게 할까요?”
허수현이 나를 간절하게 바라보며 지시를 요청했다. 내가 허수현에게 바라고 있었던, 적극적인 자세였다.
이제 좀 호흡이 맞아 가는 건가?
“혈액 팩을 죽기 살기로 쭉쭉 짜라. 다 떨어지면 교대하고.”
“…….”
“그거면 될까요?”
“그거면 돼. 그게 지금 제일 중요한 처치니까.”
나는 스크럽 간호사들에게도 일사불란하게 오더를 내렸다.
흉강에 고인 혈액을 빨아들여라.
정맥으로 지혈제를 투입해라 등등.
오더를 내리는 와중에 나 역시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심장 주변에 있는 동맥들을 클램프(혈관겸자)로 묶어 두었다.
아직 출혈 부위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출혈 부위로 혈액이 유입되어 출혈이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대체 어디냐!
나는 광학안경의 배율을 높이고 흉강과 심장 근처의 혈관들을 유심히 살폈다.
흉강에 고였던 혈액들이 썩션기로 빨려 들어가면서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그와 반대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마땅한 출혈 부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혈액이 고였다면 금방 눈에 띄어야 하는 건데…….
초조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이믿음, 급할수록 돌아가자. 서두르면 될 일도 안 돼.
나는 스스로를 타이른 후 허수현을 호출했다.
“수현아, 환자 차트 잠깐 다시 보자.”